도전 산책 | 제사 문화는 천지의 덕에 부합하는 일
[기고]
이기수(의정부도장, 녹사장)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회문제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고 심지어 명절 직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명절증후군’이라고도 하지요. 또 노인들은 자녀들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자녀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최근 10대부터 40대까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제사를 꼭 지내야 한다.”라고 답변한 사람은 약 60% 수준이고 또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만큼 제사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도전道典 산책 시간에는 바로 이 제사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안 지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제사를 받으시는 조상님의 존재가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사후의 세계에 관한 문제와 직결이 되는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인간이 죽으면 천상에서 신명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천상 신명이 죽으면 지상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과 사는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증산 상제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내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 ‘혼백魂魄’이라는 영적 존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혼과 넋이 각각 신과 귀가 되어 사후의 존재를 ‘귀신鬼神’이라 부르는 것이며 그 신명이 천상에서 자리를 잡는 데 4대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은 자손과의 강한 유대 관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에 신명이 존재하는 것이며, 넓고 넓은 우주의 내면세계에는 무수한 신명들이 생활하는 신도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늘 사람들이 사는 하늘나라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대우주는 ‘음양陰陽’, ‘음과 양’이라는 근본 법칙으로 존재합니다. 유형의 물질세계가 있는 것처럼 무형의 정신세계, 즉 신도神道 세계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저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요, 할머니께서 임종 직전에 저를 찾아서 제가 옆에 앉으니까 저에게 “기수야! 너만 한 동자들이 여기 많이 왔네.”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자들이 사는 세계, 그러한 신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동자들은 할머니를 맞이하러 왔다고 봐야 되겠죠. 또 가족이 아파서 제가 기도를 드릴 때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밤새 기도해 주시고, 주문을 읽어 주시고 가셨습니다. 명절날 새벽에도 할아버지께서 꿈에 오셨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신도를 믿지 못하는 걸까요? 현대인들은 이성주의와 물질주의에 고착된 서양 문화에 깊이 젖어 들면서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보편적 영성을 많이 잃어 버렸기 때문에 단지 신도神道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인 것입니다.
그럼 신도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조상님이 천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 제사 문화의 기원에 대해 알아볼까요?
서양에는 제사상을 차려 놓고 기일을 지키는 제사 문화가 없습니다. 한중일韓中日 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제사 문화가 존재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제사상을 차려서 정성껏 모시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 정작 서양에는 과연 제사 문화가 없었을까요?
서양 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대 문화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유대인의 묘지에서는 그릇, 단지, 물병 등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들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의 히브리어로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는 ‘아타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제물을 바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제사를 지낸다’는 행위에서 ‘기도한다’라는 보편적 신앙 행위가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과 자신들의 조상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그런 제사 문화, 신앙 문화가 동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 문화의 원형이 바로 인류 신앙 문화의 뿌리인 제천祭天 문화입니다. 춤, 노래, 그림, 스포츠 이런 문화들이 제천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대형 건축 문화 역시 대형 제단을 만들면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이 말은 조상님의 음덕이나 허물이 자손에게 분명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은연중에 담고 있지요? 과연 조상과 자손은 어떤 관계인지 상제님 말씀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동서 문화권에서 어디 할 것 없이 우주의 최고신을 섬겨 왔고 그 민족의 민족신과 여러 다양한 신들을 지금도 신봉하고 있습니다만, 한 인간의 생사화복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신은 바로 자신을 낳아 주신 자기의 조상신, 선령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손에게 천상의 조상은 제1의 하느님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산도의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조상은 자손의 뿌리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통해 생명 기운을 공급받습니다. 뿌리를 부정하면 그 나무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상은 자손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제사 문화는 바로 조상과 자손의 이 생명의 순환 고리를 연결시켜 주는 예식인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알아볼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차례나 제사는 형식적으로 조상을 단지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까도 잠시 언급했듯이 저의 체험을 말씀드리면, 2006년 추석날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이런 저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눈을 뜨니 5시 55분이었고 바로 동이 텄습니다. 그렇게 조상님은 차례나 제삿날에 꼭 오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일어나 씻고 음식을 차려서 할아버지 지방을 써 놓고 차례를 지냈지요. 다른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차례를 단지 형식적인 행사로 생각하며 지냈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직접 만났습니다. 차례를 지내는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것처럼 그렇게 직접 조상님이 오셔서 저희들의 대접을 받아 제물을 직접 드시며 조상과 자손의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상제님께서도 “신神은 사람 먹는 데 따라서 흠향歆饗하느니라.”(4:144) 하시며 조상님이 제사에 오셔서 제사 음식을 드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제사 문화의 의미에 대한 결론적인 내용으로, 오늘의 주제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제사를 반드시 지내라고 말씀하셨지요? 또 ‘제사가 천지의 덕에 합한다’고 하셨는데 ‘천지의 덕’이란 무엇일까요? 이 천지는 봄여름 동안 뿌리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만물이 성장을 이룬 다음 가을에 열매로 결실함으로써 그 뿌리에 보답합니다. 즉,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그 모습을 다시 되찾아 다음 봄에 다시 생명의 뿌리가 되는, 그러한 불변의 이치로 인해 이 천지자연은 끊임없이 성장,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치가 바로 생명 세계의 근본 도리이자 자연의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은 대우주의 변화가 인간 문명의 결실을 이루는 가을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가을개벽 시대, 후천개벽 시대입니다. 가을은 모든 생명 기운이 뿌리로 돌아감으로써만 결실을 맺게 됩니다. 내 생명의 근원을 찾지 못하면 그 생명은 해체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증산 상제님께서 일러 주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르침입니다. 이때에는 모든 자손이 조상님과 하나가 됨으로써만, 즉 신인神人이 합일合一되어서야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고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2:26)고 경고하셨습니다. 환부역조와 환골은 나의 부모 조상인 혈통줄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부정하면 내 생명의 원천인 뿌리 기운을 받지 못해 이 가을개벽기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원시반본의 가을 정신을 실천하는 덕목이 바로 ‘보은報恩 문화’이며 그 보은의 예식이 바로 제사祭祀 문화입니다. 제사 문화는 절대적인 문화입니다. 부디 조상님을 잘 받들고 조상님의 은혜를 크게 받아 내려 꼭 이 가을에 조상님과 함께 큰 성공을 이루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회문제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고 심지어 명절 직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명절증후군’이라고도 하지요. 또 노인들은 자녀들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자녀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최근 10대부터 40대까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제사를 꼭 지내야 한다.”라고 답변한 사람은 약 60% 수준이고 또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만큼 제사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도전道典 산책 시간에는 바로 이 제사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안 지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제사를 받으시는 조상님의 존재가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사후의 세계에 관한 문제와 직결이 되는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生由於死(생유어사)하고 死由於生(사유어생)하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4:117:13)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4:117:13)
즉, 인간이 죽으면 천상에서 신명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천상 신명이 죽으면 지상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과 사는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증산 상제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2:118:2~4)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내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 ‘혼백魂魄’이라는 영적 존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혼과 넋이 각각 신과 귀가 되어 사후의 존재를 ‘귀신鬼神’이라 부르는 것이며 그 신명이 천상에서 자리를 잡는 데 4대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은 자손과의 강한 유대 관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에 신명이 존재하는 것이며, 넓고 넓은 우주의 내면세계에는 무수한 신명들이 생활하는 신도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늘도 수수천 리이고, 수많은 나라가 있어. 이런 평지에서 사는 것하고 똑같다.”(5:280:7)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9:213:4~5)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9:213:4~5)
하늘 사람들이 사는 하늘나라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대우주는 ‘음양陰陽’, ‘음과 양’이라는 근본 법칙으로 존재합니다. 유형의 물질세계가 있는 것처럼 무형의 정신세계, 즉 신도神道 세계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저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요, 할머니께서 임종 직전에 저를 찾아서 제가 옆에 앉으니까 저에게 “기수야! 너만 한 동자들이 여기 많이 왔네.”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자들이 사는 세계, 그러한 신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동자들은 할머니를 맞이하러 왔다고 봐야 되겠죠. 또 가족이 아파서 제가 기도를 드릴 때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밤새 기도해 주시고, 주문을 읽어 주시고 가셨습니다. 명절날 새벽에도 할아버지께서 꿈에 오셨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신도를 믿지 못하는 걸까요? 현대인들은 이성주의와 물질주의에 고착된 서양 문화에 깊이 젖어 들면서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보편적 영성을 많이 잃어 버렸기 때문에 단지 신도神道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인 것입니다.
그럼 신도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조상님이 천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 제사 문화의 기원에 대해 알아볼까요?
서양에는 제사상을 차려 놓고 기일을 지키는 제사 문화가 없습니다. 한중일韓中日 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제사 문화가 존재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제사상을 차려서 정성껏 모시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 정작 서양에는 과연 제사 문화가 없었을까요?
서양 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대 문화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유대인의 묘지에서는 그릇, 단지, 물병 등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들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의 히브리어로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는 ‘아타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제물을 바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제사를 지낸다’는 행위에서 ‘기도한다’라는 보편적 신앙 행위가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과 자신들의 조상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그런 제사 문화, 신앙 문화가 동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 문화의 원형이 바로 인류 신앙 문화의 뿌리인 제천祭天 문화입니다. 춤, 노래, 그림, 스포츠 이런 문화들이 제천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대형 건축 문화 역시 대형 제단을 만들면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이 말은 조상님의 음덕이나 허물이 자손에게 분명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은연중에 담고 있지요? 과연 조상과 자손은 어떤 관계인지 상제님 말씀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만성 선령신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7:19)
동서 문화권에서 어디 할 것 없이 우주의 최고신을 섬겨 왔고 그 민족의 민족신과 여러 다양한 신들을 지금도 신봉하고 있습니다만, 한 인간의 생사화복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신은 바로 자신을 낳아 주신 자기의 조상신, 선령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손에게 천상의 조상은 제1의 하느님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산도의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존귀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면 가장 존귀한 나를 낳아 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내 부모, 내 조상이다. 내 조상으로 하여금 내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내 개인에게는 내 조상이 하나님이다. 제1의 하나님이시다. 옥황상제님보다도 우선되는 제1의 하나님이다. (『천지의 도 춘생추살』에 있는 태상종도사님 말씀)
조상은 자손의 뿌리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통해 생명 기운을 공급받습니다. 뿌리를 부정하면 그 나무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상은 자손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제사 문화는 바로 조상과 자손의 이 생명의 순환 고리를 연결시켜 주는 예식인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알아볼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차례나 제사는 형식적으로 조상을 단지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까도 잠시 언급했듯이 저의 체험을 말씀드리면, 2006년 추석날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이런 저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눈을 뜨니 5시 55분이었고 바로 동이 텄습니다. 그렇게 조상님은 차례나 제삿날에 꼭 오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일어나 씻고 음식을 차려서 할아버지 지방을 써 놓고 차례를 지냈지요. 다른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차례를 단지 형식적인 행사로 생각하며 지냈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직접 만났습니다. 차례를 지내는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것처럼 그렇게 직접 조상님이 오셔서 저희들의 대접을 받아 제물을 직접 드시며 조상과 자손의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상제님께서도 “신神은 사람 먹는 데 따라서 흠향歆饗하느니라.”(4:144) 하시며 조상님이 제사에 오셔서 제사 음식을 드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제사 문화의 의미에 대한 결론적인 내용으로, 오늘의 주제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2:26:9∼10)
증산 상제님께서는 제사를 반드시 지내라고 말씀하셨지요? 또 ‘제사가 천지의 덕에 합한다’고 하셨는데 ‘천지의 덕’이란 무엇일까요? 이 천지는 봄여름 동안 뿌리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만물이 성장을 이룬 다음 가을에 열매로 결실함으로써 그 뿌리에 보답합니다. 즉,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그 모습을 다시 되찾아 다음 봄에 다시 생명의 뿌리가 되는, 그러한 불변의 이치로 인해 이 천지자연은 끊임없이 성장,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치가 바로 생명 세계의 근본 도리이자 자연의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은 대우주의 변화가 인간 문명의 결실을 이루는 가을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가을개벽 시대, 후천개벽 시대입니다. 가을은 모든 생명 기운이 뿌리로 돌아감으로써만 결실을 맺게 됩니다. 내 생명의 근원을 찾지 못하면 그 생명은 해체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증산 상제님께서 일러 주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르침입니다. 이때에는 모든 자손이 조상님과 하나가 됨으로써만, 즉 신인神人이 합일合一되어서야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고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2:26)고 경고하셨습니다. 환부역조와 환골은 나의 부모 조상인 혈통줄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부정하면 내 생명의 원천인 뿌리 기운을 받지 못해 이 가을개벽기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원시반본의 가을 정신을 실천하는 덕목이 바로 ‘보은報恩 문화’이며 그 보은의 예식이 바로 제사祭祀 문화입니다. 제사 문화는 절대적인 문화입니다. 부디 조상님을 잘 받들고 조상님의 은혜를 크게 받아 내려 꼭 이 가을에 조상님과 함께 큰 성공을 이루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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