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랑 이야기 | 제 자신을 찾으면서 받은 신앙의 은혜를 천지에 보은하겠습니다(박정하)
[일심포교핵랑]
입도 후 10년 만에 인생의 근원적 문제였던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 태어났다는 박정하 도생. 올바른 ‘자기해원’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신앙의 참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감내한 만큼 신앙의 열매는 탐스럽게 영글어 갑니다. 지난 2월 22일 광주상무도장에서 발표한 신앙 체험사례 내용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광주오치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교무종감 박정하 태을랑입니다. 10년 신앙에 비해 부끄러운 사례지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입도 전 굉장히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불우한 성장 과정과 나약한 심성 탓에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쉽게 끊을 수는 없는 것이어서 나름대로 이 삶을 버텨 보기 위해 가톨릭 신앙을 선택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으로 제가 가진 의문을 다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동되어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리 중 가장 큰 의문은 사람이 아무리 선하게 살았어도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 특히 비슷한 목적으로 인간을 교화하고 있는 불교를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에서 큰 진리 갈급증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증산도를 알게 되었고 『이것이 개벽이다 上』을 읽으면서 그동안 기독교 신앙에서 느꼈던 진리 갈급증을 해소하였습니다. 나아가 인생에서 품었던, ‘인간은 왜 태어나고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들까지 풀면서 바로 입문, 입도를 하였습니다. 신앙 초기에는 초발심에 도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진리 공부도 열심히 하며 즐거운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보직을 맡으면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맺어진 인연인 만큼 한마음 한뜻으로 신앙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또다시 제 인생의 근원적 문제인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는 신앙의 생명력을 잃고 시계추 신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본신앙도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2013년, 2015년에 척신 복마의 발동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도전 성구로 인용해 본다면 “이 때는 신명시대라. 삼가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 때에 신명들이 불칼을 번뜩이며 죄지은 것을 내놓으라 할 때에는 정신을 놓으리라.”는 도전 7편 26장 말씀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제가 증산도에 입도해서 저의 전생과 이생에서 지은 죄업을 닦아 나가는 공부를 너무 게을리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신앙의 은혜들이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자기해원’이었습니다. 제 우울증의 근원이기도 했던 교만함을 깨닫게 되면서 내면의 어둠이 걷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저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대상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힘든 일에 불평불만을 품고 그것을 한탄하고 푸념하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여겼습니다. 미움과 증오 속에 깃든 살기와 불평줄에 따라붙은 어두운 기운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게 한 대상에게 늘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살기와 어두운 기운들은 외부로 발산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기운으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날의 칼처럼 세상을 향해 내뿜은 크기만큼 똑같은 크기로 제 내면에도 박혀 가고 있었고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병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 자신을 미워하고 때로는 죽이고 싶어 하기까지 했던 제가 그 누구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겠으며 그 누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을 깨달으니 깊고 깊은 참회의 눈물이 터졌고, ‘내가 나를 참 많이도 괴롭히며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상제님 진리가 해원 진리인데 저는 증산도에 입도해서 이론적으로 해원을 듣고 말했지만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가 무슨 잘못을 하며 살아왔는지 차츰차츰 개두開頭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평면적이었던 신앙 생활들이 입체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봉청수의 은혜, 배례의 은혜, 말씀의 은혜, 기도응답의 은혜, 참회를 통해 마음을 닦아 가야 하는 이유 등등... 신앙 10년 만에 진짜 생활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몇 가지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상제님의 실재實在하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복마 발동 때 참회의 배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면 하루 만 배례로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거의 20여 일을 먹지도 자지도 못해 심신이 쇠약해져 있었기에 육체적 한계로 배례를 차츰차츰 늘려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주문 수행도 못하고 오로지 배례로 하루하루를 버텨 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참회배례 중 제 앞쪽으로 넓은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앞쪽 가장 높은 곳에는 상제님이 자리에 앉아 계셨고, 양쪽으로 신명님들이 늘어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소복을 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제가 그 여자분을 대하면서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고 직감적으로 저의 척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분에게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지만, 그 여자분은 그것을 받아줄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 기운이 서늘했습니다. 그때 상제님께서 일어나시어 저와 그 여자의 사이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에게 “이 아이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이렇게 사과하지 않느냐. 네가 마음을 눅여 좀 받아 주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저를 용서해 주기는 정말 싫지만, 상제님의 말씀이 계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상해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가 도장에 나와 참회의 배례를 하고 주문수행 등으로 정성을 올리면 상제님께서 저의 죄와 척을 끌러 주시기 위해 중재를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조상님과의 교감이었습니다. 한번은 정성공부 과정 중에 배례를 하고 있는데 친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잠시 후에 친할머니도 보였습니다. 친가 쪽이 사연이 많은데, 그중에 두 분이 유명幽明을 달리한 불운이 있었습니다. 처음 두 분의 기운이 어두워 흠칫했지만 곧 느껴지는 기운이 ‘미안함’이었습니다. 자살이라는 죄업 때문에 자손을 지켜내는 데 힘을 보태지 못한 미안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엷은 미소와 함께 “기특하구나. 대견하구나”라는 기운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잠깐 저를 보시다가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그 체험 때문인지 천도 신단에 모셔져 있는 조상님들의 위패를 대할 때면 정말 조상님들을 대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사선령四先靈 모두 천도 신단에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해지고 아직 모시지 못한 진외선조陳外先祖 조상님과 외외선조外外先祖 조상님들께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셋째, 도공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 번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생긴, 심각한 골반 뒤틀림을 바로잡게 되었습니다. 도공 중에 제가 의식을 가지고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자세를 취했고 그렇게 세 차례를 했더니 골반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는 생각이 정신과 육체는 상호 작용을 하는데 정신이 삐뚤어지면 몸에 부조화가 생기고 반대로 자세가 불량해서 몸이 삐뚤어지면 정신에도 영향을 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공을 통해 제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유드리고 싶은 사례는 ‘포교’에 대한 열의입니다. 입도 후 10년 동안 헤매느라, 포교에 대한 보은 의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를 겪고 나니 어디선가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또는 삶의 무게에 눌려 힘들게 인생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저와 같이 상제님 진리 안에서 ‘자기해원’을 하고 조상님과 교감하며, 그 은혜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포교를 하려니 대상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전단지 게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외출할 때면 늘 전단지를 가지고 나갔고, 길거리 전봇대, 건물 우편함, 아파트 엘리베이터, 심지어 지방에 다녀오는 길에 들르게 되는 휴게소에도 전단지를 게시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의문이었지만 나중에 대상자를 위해 기도를 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제가 입도가 준비된 대상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부끄럽기는 했지만 알았으니 고쳐서 다시 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공통 관심사가 없으면 대화를 잘 안 하게 되었는데 열의가 생긴 후로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의 관심사를 파악하려고 이야기를 잘 들어 주게 되었고, 그러다가 진리 코드가 보이면 소책자를 전해 주는 과감함이 생겼습니다. 현재 『개벽실제상황』 2권, 『다이제스트 개벽 』 2권을 전해 준 분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 중에 느끼게 된 것이 ‘아, 내가 진리를 전달하는 능력이 너무 형편없구나’였습니다. 진리 공부의 절실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포정님께서 『증산도 기본교리』 책으로 진행하는 팔관법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팔관법 공부를 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진리를 전달하는 과정에 제 생각과 제 말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리 공부를 하면서 각 관법에서 핵심을 찾고 그 핵심을 압축한 도전 성구나 도훈 말씀을 선택하여 자꾸 입으로 말해 보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경이로웠던 것은 처음에는 그 말씀들이 너무 커서 제가 사용하는 것이 송구스러웠는데 계속 말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말씀들이 체감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을천은 우주의 자궁이다.” 하는 말씀은 태상종도사님만 쓰실 수 있는 말씀 같았는데 계속 말을 하다 보니 내가 우주 공부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의식이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진리 공부를 통해 포교에 자신감이 붙어 가던 중 사회에서 만난 김지유 동생을 입도시키게 되었습니다.
동생에게서 제가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의 모습이 보여지곤 할 때면 진리 공부와 수행을 해 보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기해원의 과정을 거쳐 인생이란 것이 자신의 신성을 깨닫고 회복해 가야 하는 필수 과정이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상제님 진리만이 해답임을 진리 공부로 확신했기에 정말 자신 있게 진리를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장에서 21일 정성 공부를 통해 작지만 심적 변화를 체험한 동생은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첫 포교이고 신앙 10년 만에 이룬 보은이라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은 김지유 도생과 21일 정성 공부를 새벽수행으로 하면서 서로 격려해 가며 신앙에 원력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제가 인도자로서 김지유 도생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늘 저를 살피게 되는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밑거름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저의 도반들을 위해 저를 준비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성 공부, 진리 공부, 포교 활동의 삼박자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체험사례는 태모님께서 “나한테 내가 있다, 나를 찾아라. 내가 나를 못 찾으면 이 천지를 못 찾느니라.”(도전 11편 69장) 하신 말씀이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과정은 증산도에 입도하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저는 저의 무지함과 어리석음, 교만함으로 너무도 요란하게 거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함께하는 조직 신앙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는 은혜를 받았고, 그러기에 더욱 조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저의 환란을 함께해 주신 오치도장 성도님들과 두 분의 책임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신도 문제에 조언을 주셨던 수호사님과 도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 성도님들께 받은 은혜는 천지일월 사체 하느님과 조상님께 보은해 가는 모습으로 갚아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그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 주고, 포기하지 않아 준 저의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우리 두 사람, 증산도 신앙 안에서 맺어진 만큼 변치 않는 일심신앙으로 천지에 보은하는 가가도장 만들어 가요. 이상으로 저의 사례공유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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