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 천도식을 올려 준다니 고맙기 한량 없구나 외
[입도수기]
최영례(74) / 천안구성도장 / 145년 음9월 입도
저는 아홉 살 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주교에 따라다녔습니다. 문답교리를 해야 영세를 준다고 하기에 천주교 교리를 외우기도 했었습니다. 어린 생각에도 영세를 받으면 천주교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세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열세 살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저도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생전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성당에 가자고 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성당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모께서 박태선의 전도관에 가자는 권유를 하시자 아버지는 그때부터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극 정성으로 전도관 신앙을 하셨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따라 5, 6년 전도관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 키우랴 농사지으랴 교회를 한동안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큰 아들을 낳은 후 지금도 잊지 못할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셨는데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양팔이 묶인 채 피를 줄줄 흘리며 울고 계셨습니다. 제가 “왜 우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너를 위해 이 고통을 겪었는데 너는 왜 나를 모르느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후 고향인 금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는 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도 나가고 매일같이 일심으로 새벽기도도 다녔습니다. 이어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도 매주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5년 동안 서울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던 딸이 증산도에 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어느 날 딸이 밤에 수행을 하는 것을 보고는 불쾌한 마음에 귀신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면서 청수그릇과 상을 치워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교회를 안 가고 증산도에 다니는 딸에 대해 정말이지 못마땅하고 언짢은 마음만 들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딸은 ‘춘생추살’ 책을 내밀면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도전’을 건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전’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허황된 내용으로 느껴져 책을 읽다가 덮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끔씩 딸이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는데, 저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라고만 생각이 들어 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딸은 이따금씩 신도 체험을 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허황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외할머니에 대해 신도 체험한 내용을 생생히 전해 주었는데 정말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제 꿈에도 어머니께서 나타나셔서는 “배가 고프다, 배고파 죽겠다”하시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90평생 교회만 다니던 분이셨고,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기독교 신앙만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모습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 사탄 마귀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에게도 “혜란아! 배가 고프다, 배 고파 죽겠다”고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제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해원 천도식’을 해달라고 하셨다는 소리를 듣고는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었습니다. 날을 잡고 보니 천도식까지는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제 마음이 조급하기만 했습니다. 마침 어머니의 살아생전 생신날이 되어서 딸의 도움을 얻어 간소하게 생신상을 차려드렸습니다. 그날 저는 딸과 함께 제사를 모시며 태을주를 읽어 드리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딸의 음성이 어머니 음성 그대로였습니다. 딸에게 응기하신 어머니의 영靈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고맙다. 영례야.”
“내가 니들이 음식 하는 줄 알고 보따리를 갖고 왔다”
“남은 음식 다 싸 갈란다.”
“천상에 있는 새끼들도 맥여야지...”
제가 “그럼 음식이 모자라는디?”하고 얘길 하니까 어머니는
“아껴서 맥여야지”
“내가 상을 또 언제 받을지 모르지만 애껴서 먹어야지” 등등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혜란이가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드렸을 때 니 시아버지는 그때 입도를 했다”
“내가 그때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냐?”
“상제님 진리에 입도를 하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다고”라는 말씀을 하며 서럽게 울기도 하셨습니다.
“니가 마음을 고쳐 먹고 해원 천도식을 올려준다니 고맙기 한량없구나.”라고 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딸에 의하면 그날 어머니께서는 허겁지겁 음식을 드셨고 또 남은 음식을 전부 보자기에 싸시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부모가 죽어도 한낱 귀신이 될 뿐이라고 하여 섬기지 않았는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딸의 인도로 도장에 방문하여 수호사님으로부터 상제님 진리를 공부하고, 도전을 읽었습니다. 도전의 신비스러운 말씀들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증산도에 입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위해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하는 첫날이었습니다. 105배례 후에 태을주 수행을 하였습니다. 수행 중에 상제님 어진에서 사람의 혈관처럼 생긴 것들이 빨갛게 얽혀있는 것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태을주 수행 중 뱀이 제 앞으로 기어오는데,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는 뱀을 뒤집어 놓으니까 돌돌 말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날은 왼쪽에서 꺼부정한 남자 노인이 곁눈으로 날카롭게 저를 쳐다보면서 푹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수행 때마다 계속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천상의 어머니께서 오셔서 손에 무엇인가를 조몰락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들어올 곳이 없는데도 찬바람이 불어와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진짜로 머리칼이 쭈삣 서기도 하였습니다. 또 상제님 어진 앞에서 별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딸의 신도체험 이야기가 깨달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신도세계. 그동안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알아왔는데 신도 세계를 가르쳐 주는 상제님 말씀은 너무도 신비로왔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공부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면 마음도 닦고 수행도 많이 해서 허물을 벗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비록 나이가 많아도 포기하지 않고 상제님 일을 끝까지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입도를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선조와 외선조의 천도식을 봉행하여 조상님들이 상제님 진리에 입도를 하실 수 있게 해드려서 자손으로써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65년간의 선천 종교 신앙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상제님 진리에 입도할 수 있게 도와주신 조상 선령님의 음덕에 감사드리고 상제님 진리를 잘 깨달을 수 있도록 공부를 가르쳐 주신 수호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그동안 딸이 증산도 신앙을 하는 것에 탐탁지 않게 여기며 못마땅해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아울러 신도의 세계를 깨닫게 해주고 조상님을 모실 수 있도록 알려준 우리 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태사부님이시여! 사부님이시여! 조상님이시여! 앞으로는 상제님 진리만 따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저의 남은 일생을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보은! ◎
이지민(21) / 청주흥덕도장 / 145년 음10월
증산도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학교의 동아리 가두모집 때였습니다. 동아리 홍보와 함께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현장 속을 지나가던 중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퀴즈를 내고 있는 동아리를 발견했습니다. 나름 역사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지라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문제의 내용은 제게 정말 생소했습니다. 배달, 환국 등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죠. 이후 동아리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활동하는지를 간단히 들으면서 저는 수행보다는 역사에 이끌려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숨겨진 역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서 제가 여러 번 놀랐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동아리 방의 바닥에 장판이 깔려 있어 좌식 생활을 하는 증산도 동아리방의 모습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단군 조선 이전 약 5천 년의 역사가 기득권층에 의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태을주 주문을 읊는 방법을 배우면서 세 번 놀랐습니다.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수행은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회원 가입 후 따로 시간을 내서 팔관법 진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실 교육 시간은 즐겁다기보다는 조금은 끌려서 나간다는 기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도장에 방문하여 수행을 본격적으로 해보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팔관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나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팔관법 중 신관 부분이 제 생각과 행동을 고치게 되는데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제는 곁에서 저를 수호하고 인도해 주시는 조상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또한 후천 개벽을 통과하기 위해 조상님들께서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연과도 같았던 만남이 사실은 전부 계획된 필연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입도하기 전 7일 정성 수행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신 최 성도님과 수석포감님, 그리고 동아리에서의 만남으로 인연이 맺어진 다른 성도님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열리게 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의로운 일꾼이 되기 위해 열심히 수행에 정진하겠습니다. ◎
강성희(56) / 서울잠실도장 / 145년 음10월
저는 현재 서울 잠실도장에서 신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11월에 입도를 하게 된 과정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도 목사님 말씀이나 기독교 자체에 회의가 들어 10년 전부터 기독교 신앙을 그만두고 2년 동안 불교공부에 매진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여승인데 현직 동국대 교수라 자주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순수하게 불교 교리가 재미있었고 ‘앞으로 미륵부처님이 오시는구나’라는 결론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도 있는데 불교나 기독교 등 모든 종교의 결론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여러 차례 수술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불교공부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에는 제 자신을 돌아보며 자유롭고 싶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 세계의 모든 종교가 같은 길을, 같은 곳을 향해서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교에 깊이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어딘가 매이는 걸 싫어하고 종교 공부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깨우치게 위한 방편이었지 신앙인으로 가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 관계로 이OO 성도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초면에 저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하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증산도 도전 속의 상제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증산도도 사이비가 아닌지 의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아마 제가 과거에 기독교 신앙을 오래 해왔던 터라 더 그랬던 거 같습니다. 어느 날 이 성도님이 증산도 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하였습니다. 평소에 그 성도님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 좋게 봤기에 뭐 한 번은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잠실도장의 첫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침 그 날이 증산도 천도식을 올리는 날이었습니다. 천도식을 진행하는 과정을 쭉 보면서 잠실도장 성도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간절히 정성을 들이고 기도하는 모습 등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그렇게 도장에 두 번 세 번 나가게 되었고, 전해주는 증산도 책자를 받아 읽어보면서 증산도에서 말하는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 자연의 이치대로 세상이 돌아가는구나! 정말 앞으로 개벽이 오는구나! 도전 속에 있는 말씀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본격적인 증산도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제 마음이 열려 지금 입도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치성 때 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증산도에서 말하는 우리나라 역사라든지, 역사 속의 단군 이야기라든지, 삼신할머니 문화라든지, 물을 떠 놓는 정화수 문화라든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증산도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증산도는 우리 역사를 정립해주는 민족종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증산도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상제님의 도전 속에 있는 말씀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닿으면서 이 우주 진리와 사람 살아가는 모든 이치가 너무나 일치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개벽의 말씀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개벽 순간에 깨어있기 위해서는 공부에 더 열심히 정진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성도님이 생판 남이었던 나를 괴로움으로부터 구원해주어 일꾼 노릇을 하게 한 것처럼 저도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을 상제님 진리로 구원하여 살려주는 진정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
김나순(72) / 부천상동도장 / 145년 음10월입도
제 친정집은 8대째 내려온 가톨릭 집안입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22세에 지금 남편과 결혼하고 삼형제를 낳았습니다. 17년 동안 부유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오뚜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도가 몇 번 더 반복되면서 있던 재산 다 없애고, 마지막으로 집을 팔아 정리한 다음 다섯 식구가 월세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항상 우리 가정에 건강 주시고 화목 주시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덧 큰아들이 장성하여 대학원을 무사히 마치고 결혼을 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하향 지원하여 입학하였고, 삼형제 중 가장 똑똑하고 효자였으며, 집안의 자랑이던 큰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장남이 결혼한 지 4년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큰아들을 잃은 상심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지만, 하느님께서 제일 똑똑한 장남을 큰 도구로 쓰시기 위해 먼저 데려 가셨다고 감사하며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저는 이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가슴속에 억눌러 있던 자식을 잃은 상실감과 하느님에 대한 원망이 복받쳤습니다. 그 후 그렇게 마음을 다해 신앙하던 하느님은 제 마음 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정말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연달아 딸 다섯을 낳으시고,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장독대에 청수를 모시고 칠성님께 빌어서 그 정성으로 제 남편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의 등에는 선명하게 칠성모양으로 털이 나 있었습니다. 결혼해 살면서 종교 문제로 남편과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큰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제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접고, 절을 찾아갔습니다.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하며, 신심으로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조상님 천도제도 여러 번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2014년 10월입니다. 남편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는데, 급속도로 통증이 심해져갔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검사한 결과 녹농균에 감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입원해 치료를 하는데, 어떠한 항생제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가락 한 개를 잃어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발가락 절단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통증은 24시간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1개월 만에 종아리까지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잘라 올라가다가 몸으로 전이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란 걸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절의 법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자르지 않고 나을 수 있다는 응답을 받고 퇴원했고, 민간요법을 백방으로 찾으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2주 후 검사 결과 더 나빠지지 않았으니 하던 대로 열심히 하라고 병원 과장님께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열심히 치료하고 두 달 후 검사를 했습니다. 뼈가 녹아내려 결국 절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서울대 병원에서 다시 재검을 해보았지만 역시 절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두 번째 민간요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차츰 통증도 줄어들고 진통제도 줄이고 많이 좋아지고는 있었는데, 상처에서 악취가 지독하게 나서 온 집안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습니다. 아픈 상처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나쁜 피가 고여 있어 악취가 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를 빼야 하는데 방법을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태림연수원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연수원에서 원장님과 상담하고 정혈을 시작했습니다.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정혈을 하러 다니는데, 네 번째 연수원을 방문하는 날은 휠체어 없이, 목발을 짚고 걸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너무 신기하게도 상처가 아물어 가고, 악취가 줄어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원장님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태을주를 읽으면 남편이 완쾌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이비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원장님께서 권하셨던 상생방송을 찾아서 보았습니다. 방송에는 역사 이야기가 나오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와서 사이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정말 일심으로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7번째 정혈 하러 가는 날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9번째 정혈 후 드디어 지팡이도 없이 그냥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병원에 8개월 만에 방문하였습니다. 과장님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동안 궁금했다면서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검사 결과 이전에 시커멓게 나왔던 뼈 사진이 이제는 하얗게 살아난 상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지금까지 하던 대체의학으로 계속 진행을 하라는 당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눈물로 얼룩진 고통과 힘든 과정이 한 번에 씻기는 듯 했습니다. 연수원에 정혈 하러 갈 때마다 원장님은 증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정혈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씩 증산도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태을주 CD와 도전을 주셔서 집에서 틀어놓고, 열심히 들었고, 도전도 읽어나갔습니다. 도전을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깨달음이 왔습니다. 정혈이 휴식에 들어갔을 때도 원장님은 계속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진리공부를 시켜주셨습니다. 줄곧 진리공부를 하면서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치성도 드리고 105배례를 했습니다. 도장에서도 포정님께서 수행을 이끌어 주셔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5일 동안 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장님의 초대로 서울 코엑스 개벽콘서트와 강화도 환단고기 콘서트에도 참석하면서 입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편은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정혈도 휴식이 들어가면서, 일을 알아보기 위해 계속 밖으로 다니느라 진리공부를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제가 증산도를 하는 것에 말없이 협조와 후원을 해줍니다. 워낙 종교와 거리가 먼 남편이 그동안 진리 공부를 한 것도, 이렇게 말없는 후원을 해주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장 신기한 것은 1년 동안 순조롭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민간요법이 연결되면서 태림연수원장님을 만나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상제님의 뜻과 조상 선령님의 음덕이 아닐까 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만 그동안 열심히 신앙해 왔던 불교의 법사님을 등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증산도 쪽으로 기울고, 절의 행사 때마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에 형식적으로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이제 마음이 떠나게 되는 것을 느끼며, 이 또한 조상님의 뜻이고, 저를 인도하심이라 믿습니다. 제가 입도를 앞두고 마음이 아직 불편한 것은 제 여건이 증산도 도장 중심의 신앙생활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함께 살면서 아들 부부를 모두 출근시키고, 셋이나 되는 어린 손자, 손녀를 키우며 모든 집안일을 제가 다 해야 하기에 거의 조금도 개인 생활을 할 여건이 못 됩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미용실을 쉬는 마지막 주 일요일만 도장 치성에 참석할 수 있는 열악한 신앙 환경이어서 입도를 하면서 부디 제가 증산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시길 기도드려봅니다. 저를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게 해주신 김OO 포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近未来にやってくる開闢の時期を心落ち着け迎えたい
오쿠무라 치에코(奥村知恵子, 45) / 일본오사카도장 / 145년 음10월 입도
私は李さんにチュンサンドウの話を教えてもらい、その存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李さんは、私にとってとても大切な人で、信頼もしている人です。その李さんが話からこそチュンサンドウは、納得がいくものでした。特に自然の原理、宇宙の流れなどは、話を聞いていてもうなずけるものでした。しかしながら私は韓国語が話せませんしあまり詳しくないので言葉には大変苦労しました。登場してくる地名、人名、すべてが私にとってはなかなか覚え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今でも一番苦労しているところです。しかしそんな私に李さんは丁寧に根気よくなんども話をしてくださいました。いろんなことに挑戦するのは好きですがそれを継続させるのは苦手な私も李さんのおかげでこのチュンサンドウだけは続けています。
저는 이보순 성도에게 증산도 이야기를 들어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보순 성도는 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며,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보순 성도에게 들은 증산도 이야기는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자연의 섭리, 우주의 흐름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앞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등장하는 지명, 인명 등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아주 외우기 힘든 것들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가장 고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이보순 성도는 친절히 끈기를 가지고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양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잘 지속하지 못하는 저도 이보순 성도 덕분에 증산도만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チュンサンドウをご存知の方ならわかると思うのですが、勉強しても勉強してもゴールが遠い、もしかしたらないぐらい奥が深いのがチュンサンドウです。それをもっともっと勉強してわかるようになりたいなと思ったのが1つ。また、テウルチュを唱え、世界平和や自分の周りの人たちが安心して暮らせるような日常を過ごしたいと思ったのも1つ。近未来にやってくる開闢の時期を心落ち着け迎えたいと思ったのも1つ。
チュンサンドウをすることにより、自分自身を揺らぎない空間におきたいと思ったのも理由の1つです。いろんな理由が重なって、さらに勉強を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した。
증산도 성도님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르침이 깊은 것이 증산도입니다. 그것을 더욱 공부해서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태을주를 외워서, 세계평화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벌어질 개벽 상황을 마음을 가다듬고 맞이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증산도를 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겹쳐져 더 공부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大阪道場でテウルチュを唱えているとかなりの確率で女の人(子)の声が聞こえ、一緒に唱え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あっ、誰かが私のところにきてくれているのだなと感じることができます。夢でも何度か声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とても迷ったことがあるときに天から声が聞こえる夢を見、具体的なアドバイスをしてもらえます。
오사카도장에서 태을주를 읽으면 자주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함께 주송을 하곤 합니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있구나’고 느끼곤 합니다. 꿈에서 몇 번인가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고민이 생겼을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구체적인 조언을 받곤 합니다.
入道後は、やりたいことや願いたいことはたくさんありますが、まずは沢山修行をしたいです。私には娘がおり、娘にも説明できるようになるまでしっかりと、勉強をしたいと思います。
하고 싶은 일이나 기도드리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선 수행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딸이 있는데 딸에게도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Q.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하셨죠?
저는 아홉 살 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주교에 따라다녔습니다. 문답교리를 해야 영세를 준다고 하기에 천주교 교리를 외우기도 했었습니다. 어린 생각에도 영세를 받으면 천주교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세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열세 살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저도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생전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성당에 가자고 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성당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모께서 박태선의 전도관에 가자는 권유를 하시자 아버지는 그때부터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극 정성으로 전도관 신앙을 하셨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따라 5, 6년 전도관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 키우랴 농사지으랴 교회를 한동안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큰 아들을 낳은 후 지금도 잊지 못할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셨는데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양팔이 묶인 채 피를 줄줄 흘리며 울고 계셨습니다. 제가 “왜 우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너를 위해 이 고통을 겪었는데 너는 왜 나를 모르느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후 고향인 금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는 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도 나가고 매일같이 일심으로 새벽기도도 다녔습니다. 이어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도 매주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5년 동안 서울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Q. 따님의 증산도 신앙을 알았을 때는?
저는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던 딸이 증산도에 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어느 날 딸이 밤에 수행을 하는 것을 보고는 불쾌한 마음에 귀신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면서 청수그릇과 상을 치워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교회를 안 가고 증산도에 다니는 딸에 대해 정말이지 못마땅하고 언짢은 마음만 들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딸은 ‘춘생추살’ 책을 내밀면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도전’을 건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전’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허황된 내용으로 느껴져 책을 읽다가 덮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끔씩 딸이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는데, 저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라고만 생각이 들어 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딸은 이따금씩 신도 체험을 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허황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외할머니에 대해 신도 체험한 내용을 생생히 전해 주었는데 정말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제 꿈에도 어머니께서 나타나셔서는 “배가 고프다, 배고파 죽겠다”하시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90평생 교회만 다니던 분이셨고,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기독교 신앙만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모습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 사탄 마귀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에게도 “혜란아! 배가 고프다, 배 고파 죽겠다”고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제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Q. 돌아가신 모친을 만났을 때 느낌은?
저의 어머니께서 ‘해원 천도식’을 해달라고 하셨다는 소리를 듣고는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었습니다. 날을 잡고 보니 천도식까지는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제 마음이 조급하기만 했습니다. 마침 어머니의 살아생전 생신날이 되어서 딸의 도움을 얻어 간소하게 생신상을 차려드렸습니다. 그날 저는 딸과 함께 제사를 모시며 태을주를 읽어 드리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딸의 음성이 어머니 음성 그대로였습니다. 딸에게 응기하신 어머니의 영靈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고맙다. 영례야.”
“내가 니들이 음식 하는 줄 알고 보따리를 갖고 왔다”
“남은 음식 다 싸 갈란다.”
“천상에 있는 새끼들도 맥여야지...”
제가 “그럼 음식이 모자라는디?”하고 얘길 하니까 어머니는
“아껴서 맥여야지”
“내가 상을 또 언제 받을지 모르지만 애껴서 먹어야지” 등등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혜란이가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드렸을 때 니 시아버지는 그때 입도를 했다”
“내가 그때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냐?”
“상제님 진리에 입도를 하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다고”라는 말씀을 하며 서럽게 울기도 하셨습니다.
“니가 마음을 고쳐 먹고 해원 천도식을 올려준다니 고맙기 한량없구나.”라고 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딸에 의하면 그날 어머니께서는 허겁지겁 음식을 드셨고 또 남은 음식을 전부 보자기에 싸시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부모가 죽어도 한낱 귀신이 될 뿐이라고 하여 섬기지 않았는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딸의 인도로 도장에 방문하여 수호사님으로부터 상제님 진리를 공부하고, 도전을 읽었습니다. 도전의 신비스러운 말씀들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증산도에 입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입도식을 올리게 된 소감은?
입도를 위해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하는 첫날이었습니다. 105배례 후에 태을주 수행을 하였습니다. 수행 중에 상제님 어진에서 사람의 혈관처럼 생긴 것들이 빨갛게 얽혀있는 것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태을주 수행 중 뱀이 제 앞으로 기어오는데,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는 뱀을 뒤집어 놓으니까 돌돌 말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날은 왼쪽에서 꺼부정한 남자 노인이 곁눈으로 날카롭게 저를 쳐다보면서 푹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수행 때마다 계속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천상의 어머니께서 오셔서 손에 무엇인가를 조몰락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들어올 곳이 없는데도 찬바람이 불어와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진짜로 머리칼이 쭈삣 서기도 하였습니다. 또 상제님 어진 앞에서 별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딸의 신도체험 이야기가 깨달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신도세계. 그동안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알아왔는데 신도 세계를 가르쳐 주는 상제님 말씀은 너무도 신비로왔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공부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면 마음도 닦고 수행도 많이 해서 허물을 벗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비록 나이가 많아도 포기하지 않고 상제님 일을 끝까지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입도를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선조와 외선조의 천도식을 봉행하여 조상님들이 상제님 진리에 입도를 하실 수 있게 해드려서 자손으로써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65년간의 선천 종교 신앙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상제님 진리에 입도할 수 있게 도와주신 조상 선령님의 음덕에 감사드리고 상제님 진리를 잘 깨달을 수 있도록 공부를 가르쳐 주신 수호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그동안 딸이 증산도 신앙을 하는 것에 탐탁지 않게 여기며 못마땅해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아울러 신도의 세계를 깨닫게 해주고 조상님을 모실 수 있도록 알려준 우리 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태사부님이시여! 사부님이시여! 조상님이시여! 앞으로는 상제님 진리만 따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저의 남은 일생을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보은! ◎
“증산도 동아리에서 세 번 놀랐어요”
이지민(21) / 청주흥덕도장 / 145년 음10월
증산도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학교의 동아리 가두모집 때였습니다. 동아리 홍보와 함께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현장 속을 지나가던 중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퀴즈를 내고 있는 동아리를 발견했습니다. 나름 역사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지라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문제의 내용은 제게 정말 생소했습니다. 배달, 환국 등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죠. 이후 동아리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활동하는지를 간단히 들으면서 저는 수행보다는 역사에 이끌려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숨겨진 역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서 제가 여러 번 놀랐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동아리 방의 바닥에 장판이 깔려 있어 좌식 생활을 하는 증산도 동아리방의 모습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단군 조선 이전 약 5천 년의 역사가 기득권층에 의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태을주 주문을 읊는 방법을 배우면서 세 번 놀랐습니다.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수행은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회원 가입 후 따로 시간을 내서 팔관법 진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실 교육 시간은 즐겁다기보다는 조금은 끌려서 나간다는 기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도장에 방문하여 수행을 본격적으로 해보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팔관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나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팔관법 중 신관 부분이 제 생각과 행동을 고치게 되는데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제는 곁에서 저를 수호하고 인도해 주시는 조상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또한 후천 개벽을 통과하기 위해 조상님들께서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연과도 같았던 만남이 사실은 전부 계획된 필연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입도하기 전 7일 정성 수행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신 최 성도님과 수석포감님, 그리고 동아리에서의 만남으로 인연이 맺어진 다른 성도님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열리게 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의로운 일꾼이 되기 위해 열심히 수행에 정진하겠습니다. ◎
도전 속 말씀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아
강성희(56) / 서울잠실도장 / 145년 음10월
저는 현재 서울 잠실도장에서 신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11월에 입도를 하게 된 과정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도 목사님 말씀이나 기독교 자체에 회의가 들어 10년 전부터 기독교 신앙을 그만두고 2년 동안 불교공부에 매진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여승인데 현직 동국대 교수라 자주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순수하게 불교 교리가 재미있었고 ‘앞으로 미륵부처님이 오시는구나’라는 결론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도 있는데 불교나 기독교 등 모든 종교의 결론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여러 차례 수술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불교공부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에는 제 자신을 돌아보며 자유롭고 싶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 세계의 모든 종교가 같은 길을, 같은 곳을 향해서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교에 깊이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어딘가 매이는 걸 싫어하고 종교 공부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깨우치게 위한 방편이었지 신앙인으로 가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 관계로 이OO 성도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초면에 저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하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증산도 도전 속의 상제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증산도도 사이비가 아닌지 의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아마 제가 과거에 기독교 신앙을 오래 해왔던 터라 더 그랬던 거 같습니다. 어느 날 이 성도님이 증산도 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하였습니다. 평소에 그 성도님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 좋게 봤기에 뭐 한 번은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잠실도장의 첫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침 그 날이 증산도 천도식을 올리는 날이었습니다. 천도식을 진행하는 과정을 쭉 보면서 잠실도장 성도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간절히 정성을 들이고 기도하는 모습 등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그렇게 도장에 두 번 세 번 나가게 되었고, 전해주는 증산도 책자를 받아 읽어보면서 증산도에서 말하는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 자연의 이치대로 세상이 돌아가는구나! 정말 앞으로 개벽이 오는구나! 도전 속에 있는 말씀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본격적인 증산도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제 마음이 열려 지금 입도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치성 때 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증산도에서 말하는 우리나라 역사라든지, 역사 속의 단군 이야기라든지, 삼신할머니 문화라든지, 물을 떠 놓는 정화수 문화라든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증산도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증산도는 우리 역사를 정립해주는 민족종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증산도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상제님의 도전 속에 있는 말씀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닿으면서 이 우주 진리와 사람 살아가는 모든 이치가 너무나 일치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개벽의 말씀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개벽 순간에 깨어있기 위해서는 공부에 더 열심히 정진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성도님이 생판 남이었던 나를 괴로움으로부터 구원해주어 일꾼 노릇을 하게 한 것처럼 저도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을 상제님 진리로 구원하여 살려주는 진정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
모든 것이 상제님의 뜻이고 조상님의 음덕
김나순(72) / 부천상동도장 / 145년 음10월입도
제 친정집은 8대째 내려온 가톨릭 집안입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22세에 지금 남편과 결혼하고 삼형제를 낳았습니다. 17년 동안 부유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오뚜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도가 몇 번 더 반복되면서 있던 재산 다 없애고, 마지막으로 집을 팔아 정리한 다음 다섯 식구가 월세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항상 우리 가정에 건강 주시고 화목 주시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덧 큰아들이 장성하여 대학원을 무사히 마치고 결혼을 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하향 지원하여 입학하였고, 삼형제 중 가장 똑똑하고 효자였으며, 집안의 자랑이던 큰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장남이 결혼한 지 4년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큰아들을 잃은 상심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지만, 하느님께서 제일 똑똑한 장남을 큰 도구로 쓰시기 위해 먼저 데려 가셨다고 감사하며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저는 이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가슴속에 억눌러 있던 자식을 잃은 상실감과 하느님에 대한 원망이 복받쳤습니다. 그 후 그렇게 마음을 다해 신앙하던 하느님은 제 마음 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정말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연달아 딸 다섯을 낳으시고,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장독대에 청수를 모시고 칠성님께 빌어서 그 정성으로 제 남편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의 등에는 선명하게 칠성모양으로 털이 나 있었습니다. 결혼해 살면서 종교 문제로 남편과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큰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제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접고, 절을 찾아갔습니다.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하며, 신심으로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조상님 천도제도 여러 번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2014년 10월입니다. 남편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는데, 급속도로 통증이 심해져갔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검사한 결과 녹농균에 감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입원해 치료를 하는데, 어떠한 항생제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가락 한 개를 잃어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발가락 절단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통증은 24시간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1개월 만에 종아리까지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잘라 올라가다가 몸으로 전이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란 걸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절의 법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자르지 않고 나을 수 있다는 응답을 받고 퇴원했고, 민간요법을 백방으로 찾으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2주 후 검사 결과 더 나빠지지 않았으니 하던 대로 열심히 하라고 병원 과장님께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열심히 치료하고 두 달 후 검사를 했습니다. 뼈가 녹아내려 결국 절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서울대 병원에서 다시 재검을 해보았지만 역시 절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두 번째 민간요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차츰 통증도 줄어들고 진통제도 줄이고 많이 좋아지고는 있었는데, 상처에서 악취가 지독하게 나서 온 집안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습니다. 아픈 상처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나쁜 피가 고여 있어 악취가 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를 빼야 하는데 방법을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태림연수원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연수원에서 원장님과 상담하고 정혈을 시작했습니다.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정혈을 하러 다니는데, 네 번째 연수원을 방문하는 날은 휠체어 없이, 목발을 짚고 걸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너무 신기하게도 상처가 아물어 가고, 악취가 줄어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원장님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태을주를 읽으면 남편이 완쾌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이비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원장님께서 권하셨던 상생방송을 찾아서 보았습니다. 방송에는 역사 이야기가 나오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와서 사이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정말 일심으로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7번째 정혈 하러 가는 날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9번째 정혈 후 드디어 지팡이도 없이 그냥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병원에 8개월 만에 방문하였습니다. 과장님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동안 궁금했다면서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검사 결과 이전에 시커멓게 나왔던 뼈 사진이 이제는 하얗게 살아난 상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지금까지 하던 대체의학으로 계속 진행을 하라는 당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눈물로 얼룩진 고통과 힘든 과정이 한 번에 씻기는 듯 했습니다. 연수원에 정혈 하러 갈 때마다 원장님은 증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정혈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씩 증산도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태을주 CD와 도전을 주셔서 집에서 틀어놓고, 열심히 들었고, 도전도 읽어나갔습니다. 도전을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깨달음이 왔습니다. 정혈이 휴식에 들어갔을 때도 원장님은 계속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진리공부를 시켜주셨습니다. 줄곧 진리공부를 하면서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치성도 드리고 105배례를 했습니다. 도장에서도 포정님께서 수행을 이끌어 주셔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5일 동안 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장님의 초대로 서울 코엑스 개벽콘서트와 강화도 환단고기 콘서트에도 참석하면서 입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편은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정혈도 휴식이 들어가면서, 일을 알아보기 위해 계속 밖으로 다니느라 진리공부를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제가 증산도를 하는 것에 말없이 협조와 후원을 해줍니다. 워낙 종교와 거리가 먼 남편이 그동안 진리 공부를 한 것도, 이렇게 말없는 후원을 해주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장 신기한 것은 1년 동안 순조롭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민간요법이 연결되면서 태림연수원장님을 만나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상제님의 뜻과 조상 선령님의 음덕이 아닐까 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만 그동안 열심히 신앙해 왔던 불교의 법사님을 등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증산도 쪽으로 기울고, 절의 행사 때마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에 형식적으로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이제 마음이 떠나게 되는 것을 느끼며, 이 또한 조상님의 뜻이고, 저를 인도하심이라 믿습니다. 제가 입도를 앞두고 마음이 아직 불편한 것은 제 여건이 증산도 도장 중심의 신앙생활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함께 살면서 아들 부부를 모두 출근시키고, 셋이나 되는 어린 손자, 손녀를 키우며 모든 집안일을 제가 다 해야 하기에 거의 조금도 개인 생활을 할 여건이 못 됩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미용실을 쉬는 마지막 주 일요일만 도장 치성에 참석할 수 있는 열악한 신앙 환경이어서 입도를 하면서 부디 제가 증산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시길 기도드려봅니다. 저를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게 해주신 김OO 포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近未来にやってくる開闢の時期を心落ち着け迎えたい
다가올 개벽상황을 마음을 가다듬고 맞이하고 싶어
오쿠무라 치에코(奥村知恵子, 45) / 일본오사카도장 / 145년 음10월 입도
私とチュンサンドウの出会い。
私は李さんにチュンサンドウの話を教えてもらい、その存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李さんは、私にとってとても大切な人で、信頼もしている人です。その李さんが話からこそチュンサンドウは、納得がいくものでした。特に自然の原理、宇宙の流れなどは、話を聞いていてもうなずけるものでした。しかしながら私は韓国語が話せませんしあまり詳しくないので言葉には大変苦労しました。登場してくる地名、人名、すべてが私にとってはなかなか覚え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今でも一番苦労しているところです。しかしそんな私に李さんは丁寧に根気よくなんども話をしてくださいました。いろんなことに挑戦するのは好きですがそれを継続させるのは苦手な私も李さんのおかげでこのチュンサンドウだけは続けています。
증산도와의 만남
저는 이보순 성도에게 증산도 이야기를 들어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보순 성도는 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며,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보순 성도에게 들은 증산도 이야기는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자연의 섭리, 우주의 흐름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앞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등장하는 지명, 인명 등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아주 외우기 힘든 것들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가장 고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이보순 성도는 친절히 끈기를 가지고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양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잘 지속하지 못하는 저도 이보순 성도 덕분에 증산도만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入道したいと思ったきっかけ
チュンサンドウをご存知の方ならわかると思うのですが、勉強しても勉強してもゴールが遠い、もしかしたらないぐらい奥が深いのがチュンサンドウです。それをもっともっと勉強してわかるようになりたいなと思ったのが1つ。また、テウルチュを唱え、世界平和や自分の周りの人たちが安心して暮らせるような日常を過ごしたいと思ったのも1つ。近未来にやってくる開闢の時期を心落ち着け迎えたいと思ったのも1つ。
チュンサンドウをすることにより、自分自身を揺らぎない空間におきたいと思ったのも理由の1つです。いろんな理由が重なって、さらに勉強を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した。
입도하고자 한 계기
증산도 성도님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르침이 깊은 것이 증산도입니다. 그것을 더욱 공부해서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태을주를 외워서, 세계평화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벌어질 개벽 상황을 마음을 가다듬고 맞이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증산도를 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겹쳐져 더 공부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不思議な体験
大阪道場でテウルチュを唱えているとかなりの確率で女の人(子)の声が聞こえ、一緒に唱え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あっ、誰かが私のところにきてくれているのだなと感じることができます。夢でも何度か声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とても迷ったことがあるときに天から声が聞こえる夢を見、具体的なアドバイスをしてもらえます。
신비한 체험
오사카도장에서 태을주를 읽으면 자주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함께 주송을 하곤 합니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있구나’고 느끼곤 합니다. 꿈에서 몇 번인가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고민이 생겼을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구체적인 조언을 받곤 합니다.
これからの覚悟
入道後は、やりたいことや願いたいことはたくさんありますが、まずは沢山修行をしたいです。私には娘がおり、娘にも説明できるようになるまでしっかりと、勉強をしたいと思います。
앞으로의 각오
하고 싶은 일이나 기도드리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선 수행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딸이 있는데 딸에게도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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