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퀸의 탄생과 성공스토리 - 불모지에서 열린 기적의 열매
[기고]
“김연아 선수, 나는 이 세상천지에서 당신을 가장 존경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처럼 압도적으로 세상을 제패한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워 거의 언제나 참패했고
아주 가끔 가까스로 이겨 보았다.
“우리 김연아 선수는 옥상에서 홀로 우아하게 노니는데
세상 모든 떨거지는 지하실에서 헤매고 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뚝 섰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
우리나라에서 그처럼 압도적으로 세상을 제패한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워 거의 언제나 참패했고
아주 가끔 가까스로 이겨 보았다.
“우리 김연아 선수는 옥상에서 홀로 우아하게 노니는데
세상 모든 떨거지는 지하실에서 헤매고 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뚝 섰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
박정연 / 본부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경기가 끝났을 때, 전세계 언론과 팬들은 들썩거렸다. 모두가 예상했던 결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김연아의 것이라 여겼던 금메달은 러시아 소녀가 차지했다. 진짜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만약 금메달을 뺏긴 주인공이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었을까? 전 세계 피겨 전문가들이나 피겨팬들이 마치 자신이 당한 일처럼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연아가 진정한 피겨퀸이라는 사실이 또 한번 증명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금메달을 빼앗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아가 어떻게 세계인들이 동경하는 피겨퀸의 자리에 올랐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피겨환경이 너무도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김연아는 올타임 레전드로서 피겨퀸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의 성공 역정이 일꾼의 신앙과 삶에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영웅은 이렇게 탄생했다
중국 무협 영화나 소설이 즐겨 그리는 이야기 중 하나는 영웅 이야기이다. 중국 대륙이 커서 그런지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천하天下’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 천하를 쥐는 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한다. 나라의 기운이 쇠퇴해 조정은 통제력을 잃고, 온갖 군웅들이 일어나 세력을 다투어 온 세상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민중들이 고통을 받는 난세亂世에, 하늘이 점지한 영웅은 나타난다. 영웅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하늘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모든 군웅들을 굴복시키고 천하를 평정하게 된다.
이런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와 같은 영웅 스토리를 지닌, 드라마틱한 감동과 삶의 교훈을 동시에 안겨주는 한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선수이다.
피겨스케이팅 세계를 하나의 천하로 대입해 보면, 피겨스케이팅 세계에 나타난 김연아 선수의 등장과 그녀가 만들어 온 피겨의 역사가 이런 영웅 스토리와 너무도 흡사함을 알게 된다. 김연아의 이야기는 이 시대가 바라는 신新영웅 스토리라 평가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강한 임팩트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1장 천하天下 -100년사
피겨스케이팅(이하 ‘피겨’라 칭함)의 시작은 18세기 중엽이라고 한다. 피겨(figure도형, 모형)는 스케이트로 얼음 위에 도형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이고 1928년 제1회 동계올림픽이 생겼을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피겨는 점프, 스핀, 스텝 등의 스케이팅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이지만 음악에 맞추어 얼음 위에서 춤을 추는 예술성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피겨는 동계올림픽의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고, 또 그 가운데서도 여자 개인전(여자 싱글)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린다. 올림픽 역사학자 데이비드 왈레친스키David Wallechinsky가 말하듯 “여자 피겨 올림픽 챔피언은 전 세계 누구나 알게 된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피겨는 꼭 보았다. 그 가운데서도 얼음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던 카타리나 비트Katarina Witt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피겨는 내 눈에 어디까지나 서구인들의 스포츠였다. 우리나라에 피겨선수가 있는지 여부조차 몰랐으니.. 아마 필자만 그런 것은 아닐 게다.
실제로 피겨는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 동안 내내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피겨가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연습을 할 수 있는 링크장(만드는 데도 돈이 많이 들지만 유지하기가 더 어려움)이 있어야 하고, 가르칠 수 있는 코치(피겨의 역사가 있어야 함)가 있어야 하며, 배울 수 있는 돈(1년에 몇천만원이 든다고 함)이 필요하다. 이걸 인프라(infrastructure,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구조)라고 하는데, 인프라가 갖추어지는 데는 또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있어야 한다. 역사가 빈약하고 관심도 적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에선 이렇다 할 피겨스타가 등장하지 못했다.
여기에 제일 먼저 눈을 돌린 것이 일본이었다. 항상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에 편입됨)를 꿈꾸는 일본은 피겨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바로 서구의 선진국만이 피겨스타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피겨스타를 배출하는 나라는 서구의 선진국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선다는 뜻이다. 일본은 피겨에서의 위상을 높여 아시아 속의 유럽이라는 입지를 굳히고자 하였다. 그런 목적으로 일찍부터 피겨에 과감한 투자를 해온 일본은 1980년대 이토 미도리Ito Midori라는 선수로 1차 결실을 맺게 된다. 서구만의 잔치였던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종목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얻게 된다.
여기서 가능성을 엿본 일본은 더더욱 과감한 투자를 하게 되는데, 일명 ‘얼음폭풍 프로젝트’라는 선수양육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린 시절부터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을 선발, 후원, 코치해주면서 양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10여년이 지나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아라카와 시즈카Arakawa Shizuka 선수가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일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였다. 그야말로 투자의 결실을 맺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시즈카 선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카타리나 비트 선수 같은 피겨스타를 만들어 일본이 서구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바라던 스타상에 딱 어울리는 선수가 한 사람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사다 마오Asada Mao이다.
2장 난세亂世 -20년
한편 서구의 피겨세계는 1994년 동계올림픽 이후로 이렇다 할 스타가 등장하지 않으면서 피겨의 위상과 인기가 서서히 하락하고 있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때 우승후보로 꼽혔던 미국의 피겨스타 미쉘 콴Michelle Kwan(세계선수권 6회 우승)을 나이 어린 15세의 타라 리핀스키Tara Lipinski가 이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이후 미국의 강자 콴 선수와 러시아의 강자 이리나 슬루츠카야 선수가 세력을 양분하면서 오랫동안 피겨계를 지배했는데, 그 다음 올림픽에서는 뜻하지 않게 무명의 사라 휴즈Sarah Hughes 선수에게 뒷덜미를 잡힌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는 또 어땠는가. 콴의 뒤를 이은 미국의 피겨스타 사샤 코헨 선수와 러시아의 슬루츠카야 선수가 우승후보로 점쳐졌으나 또다시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Arakawa Shizuka 선수에게 금메달이 돌아가고 말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 전 세계인의 눈도장을 받아 그야말로 퀸의 자리로 올라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겨계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우승후보들이 금메달을 놓치고 스타라고 할 수 없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 싱글의 왕좌는 계속 자리를 비운 채 그 자리를 탐하는 군웅할거들의 춘추전국시대가 계속되어 온 것이다.
3장 김연아의 등장
피겨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변방국이다. 중국에서는 첸 루라는 선수가 올림픽 동메달을 딴 전력이 있고, 일본에서도 이토 미도리, 아라카와 시즈카 선수 등이 아시아의 위상을 높여 주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남의 잔치를 구경만 하는 신세였다.
게다가 일본에선 여자 선수는 뛰기 힘들다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고 러시아의 베테랑 이리나 슬루츠카야Irina Slutskaya를 이기는 15세 선수의 등장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었다. 그 선수가 아사다 마오Asada Mao였다. 두 달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2006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올림픽이 열리는 이전 해 15년 7월생까지 가능) IOC(세계올림픽위원회)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고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 총리까지 나서서 여론을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일본 여론을 들끓게 하는 천재소녀에게 세계의 이목이 맞추어졌다. 과연 세계피겨를 지배할 천재소녀의 등장인가?
2006년 토리노올림픽의 금메달이 일본 선수에게 돌아가고 한달 후, 올림픽에 참가했다면 금메달이 확실시 된다던 아사다 마오 선수는 웬 무명의 한국 선수에게 져서 주니어 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놓치게 된다. 아니 놓친 정도가 아니라 무려 25점이 넘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무너졌다.
그녀는 아사다 마오 선수와 동갑내기로 20일 먼저 태어난 한국의 김연아金姸兒 선수였다. 김연아가 누구인가? 그동안 단 한번도 올림픽 10위권 내에 이름도 올려보지 못한 피겨의 변방국 한국 출신이다. 그런 선수가 차세대 여왕이라고 칭송되는 아사다 마오 선수를 25점이나 차이를 내며 이기다니?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장기의 바탕이 된 중국 천하통일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초나라의 항우는 춘추전국시대를 끝낼 희대의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세력도 가장 컸다. 그러나 그런 항우는 시장바닥에서 술이나 얻어먹고 살던 백수건달 유방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내어주었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기나긴 춘추전국시대의 막이 내리고 통일제국 한나라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 비교하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연아의 등장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여왕 자리는 비어있다. 그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여왕 후보들이 치열하게 싸웠지만 이렇다 할 승자가 없는 와중에 마치 천하를 제패할 듯한 인물이 일본에서 나왔는데, 그녀를 단숨에 제압해버린 이름 없는(피겨계에서 그렇다는 거다) 변방국 출신의 승자.
일본은 여왕이 나올 만한 배경이 있었다. 수많은 국가적인 투자를 했고 역사와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서구의 피겨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형국이고 그 기세가 아시아, 특히 일본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정작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김연아였다.
4장 여왕 김연아
2006년 주니어 월드에서 우승한 김연아가 모든 걸 갖춘 토탈 패키지형 선수로 등장했다는 것 또한 판타지와 같은 감흥을 안겨준다. 토탈 패키지total package가 무엇인가. 외모면 외모, 기술이면 기술, 예술이면 예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가 토탈 패키지형 선수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대로 이런 선수가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어느 외국 코치의 말을 빌리자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가 김연아다.
기술은 세대를 거치면서 발전하게 되어 있다. 카타리나 비트가 1980년대의 전설적인 선수라지만 지금 이 시대에 온다면 경쟁이 안 된다. 그러니 세대를 뛰어넘어 기술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절대적 비교는 가능하다. 카타리나 비트가 그 당시 다른 선수들보다 기술이 월등했는가? 아니었다. 기술로는 데비 토마스(미국)나 이토 미도리(일본)선수가 훨씬 우수했다. 예술성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피겨계의 여왕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보다 그 유명한 아사다 마오 선수가 기술이 더 뛰어난게 아닌가? 남자만의 전유물이라는 트리플 악셀 점프를 뛰어댄다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아사다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내세우지만 정작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 김연아 선수는 스케이팅의 기초부터 모든 점프가 일정한 표준 방식 그대로의 정석定石이다. 정석이라 하면 쉬운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게 정석이다. 정석으로 뛰려면 너무나 힘들게 훈련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선수가 뛰기 쉬운 자신만의 방식으로 뛰는 요행을 부린다.
김연아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정석으로 배우고 훈련했다. 그래서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리운다.
바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점프가 높고 비거리(뛰어서 날아가는 거리)가 길다. 자세가 흔들리지 않고 깨끗한 에지(스케이트날)로 뛰고 착지한다. 정석으로 뛰는 선수가 김연아 뿐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석으로 뛰는 선수 자체가 드문데 거기에 김연아는 그 모든 기술의 원형을 구현한다. (한마디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다)
“기술이 완성되면 예술이 시작된다”고 한다. 완벽한 기술에 예술성 또한 그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아티스트artist의 경지에 올랐다고 피겨의 전문가들이 극찬하고 있다. 딱 한 가지만 부언하자면, 서구의 피겨가 발레를 접목했다면 김연아는 여기에 더해 한국적인 선을 덧입혔다. 누구도 전엔 볼 수 없었던 선이다. 물 흐르듯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척추부터 이어진 선이 손 끝으로, 또 머리와 시선이, 그와 더불어 다리와 발이 온 몸 전체의 한 선으로 이어져 음악을 표현한다. 어느 외국 해설자는 “그녀의 스케이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무엇인가? 그건 전 세계가 꿈에서나 그릴 듯한 완벽한 피겨의 구현체가 눈앞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어느 해설자는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마치 꿈속에서나 보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피겨의 팬들은 그녀를 피겨 여왕을 넘어서 피겨의 여신이라고까지 칭송해 마지않는다. 혹은 피겨의 신이 직접 내려왔다고 한다. 어느 해설자는 “그녀는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어찌 여왕에 등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변방국 출신으로서 무수한 견제와 압박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그 눈물겨운 분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 그녀는 무수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여왕의 자리에 올랐고, 이번 마지막 소치올림픽에서는 판정과 관련된 세계적인 관심과 논란을 남긴 채 은메달로써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경기 후 김연아 선수가 남긴 말처럼 ‘올림픽 2연패’니 ‘금메달’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김연아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와 상황 속에서 다른 선수가 금메달을 가져가더라도 이미 김연아는 선수로서의 능력과 정신적 측면에 있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업과 성숙한 품격을 갖추고 있고 만천하에 공인을 받은 진정한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왕, 살아있는 전설(living legend)이라는 칭호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5장 김연아와 그녀의 성공 노하우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배경에서 나온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소녀가 전 세계 피겨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만화에서나 볼 법한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그녀의 피겨 인생은 위대한 설계자가 쓴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천하를 쥘 인물은 하늘이 낸다고 했던가.
‘어째서 하늘은 이런 인물을 피겨 선진국인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불모지에 태어나게 하셨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재미있는 상象이 보이지 않을까?
김연아가 피겨계의 지배자가 되는 과정은 마치 도전道典 속에서 말하는 천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출발하여 불굴의 개척 의지와 일심을 통해 마침내는 뜻을 이루리라는 희망의 표상이다. 그녀의 성공비결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기술을 향상시켰다. 세계를 상대로 한국선수가 1등이 될 수 없을 거라던 주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석定石기술을 연마했다. 상제님께서 “바둑도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모르는 공부’를 하고 기다리라.”도전 6:72:1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둘째, 기초를 중시하는 정도正道를 걸었다. 경쟁상대선수가 화려한 기술을 내세우며 세계에 이름을 떨칠 때에도 외양보다는 내실을 키우며 때를 기다렸다. 기초를 튼튼히 하며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외국 코치가 그녀를 보며 “보통 선수들이 기술이 조금 향상되었다 싶으면 기초는 무시하고 화려한 기술에 목매는 것과 달리, 김연아 선수는 항상 스텝, 스핀 등 기초를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잘못된 것이 없는지 묻곤 했죠. 저에게는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트레이시 윌슨)”고 했을 정도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죽나니 깊이깊이 파야 하느니라.”도전 5:262:1는 말씀이 상기되지 않는가.
세째, 조화를 중시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피겨는 스포츠이면서 예술이다. 다른 선수들은 기술이 좋으면 점수 쌓는데 용이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부분은 뒤로 미루기 일쑤다. 그저 음악은 배경이 되고 표현은 적당히 팔만 휘젓는 수준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김연아는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였다. 피겨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그런 부분이 결국 그녀를 역대 최고의 선수로 만든 것이다. 우리도 태을주 수행, 기도가 포교기술과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일꾼 신앙인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네째, 성실함과 끈기이다. 김연아는 피겨를 시작한 7살 시절부터 성실함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그만 꼬마가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훈련을 끝끝내 같이 하며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세계챔피언이 된 뒤에도 태릉훈련장에서 후배들보다도 더 늦게까지, 심지어는 훈련장의 불이 꺼질 때까지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어떤 명사가 “어떤 분야이건 매일 2시간씩 10년을 꾸준히 연마하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다.”라고 했는데, 김연아는 매일 6~8시간씩 17년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마를 해왔으니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다섯째, 경쟁심과 열정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자서전인 『김연아의 7분드라마』에서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는다고 한다. 100도가 되어야 끓기 시작한다. 그 1도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늘 열심히 해도 마지막 1도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그것은 물이 끓느냐 끓지 않느냐 하는 아주 큰 차이다. 열심히 노력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포기해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기는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건, 마지막 1분 그 한계의 순간이 아닐까.”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한 경쟁심과 더불어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매듭을 짓는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김연아를 전설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일꾼들에겐 비전이 있다. 그러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의 길이 버티고 있다. 시련이 닥친다고 너무 힘들다고 도중에 포기하면 시작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다. 태상종도사님께서도 “나는 ‘갱신히(간신히)’와 더불어 어려운 맛으로 사네.” “지금 우리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이 아리랑 고개를 잘 넘기자. 어렵지 않고 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힘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고 노력하다 보면 성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피겨 여왕 김연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성공 노하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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