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전安耕田 증산도 종도사 甲午(2014)년 신년사
[종도사님 말씀]
갑오년을 맞이하며
되돌아보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한해는 동북아의 정세가 더욱 강렬한 대결구도로 자리잡혔다. 국제적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런 한편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문화를 선도하면서 새로운 장르로 파급되고 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하여 한반도의 굴레를 벗어나 세계로 비상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치열한 국제경쟁 속의 생존게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가정과 나라의 번영, 세계의 평화, 그리고 인류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전망은 지나간 학문과 안이한 대처로는 바로 볼 수가 없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전 국민의 단합과 민족적 각성이 촉구된다. 미래는 현재보다 먼저 온다. 앞으로 닥치는 거센 파도에 지혜롭게 맞서야 할 것이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지금 동북아에는 소리없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이미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중국이 사마천 시대부터 역사를 왜곡해왔던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사마천의 『사기』 첫 장부터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왜곡이 벌어진다. 4,700년 전 우리 배달동이족의 치우천황에게 한 지방제후인 헌원이 도전하였다. 치우천황의 천자天子 지위를 차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치우천황은 10년 탁록전쟁 끝에 헌원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사마천은 헌원이 ‘금살치우擒殺蚩尤’, 곧 치우를 잡아 죽였다고 기록했다. 역사책에 버젓이 써넣은 ‘금살치우’ 네 글자는 동방 한민족에 대한 중국의 오랜 역사왜곡을 상징한다.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있는 역사도 뒤틀어가면서, 열등한 역사를 감추고 날조하면서까지 역사전쟁을 벌여왔고 벌이고 있다. 그만큼 인류역사와 시원문명을 개창한 주인공, 한민족은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 역사의 주인행세를 하고 나선다. 이런 까닭에 동북아의 역사는 한마디로 배반背反의 역사요, 배은망덕한 불의不義의 역사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어떠한가? 역사전쟁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그 이론에 동조하고 있다. 외세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깨어야 한다. 식민사학으로 스스로의 뿌리를 잘라내고 사대주의로 가지마저 쳐버린 강단사학은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대한의 역사를 재건해야 할 것이다. 인류 4대문명을 뛰어넘는 홍산문명에서 한민족 상고시대의 참된 진실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왜곡된 역사의 발목에 잡힌 과거에 살고 있으나
우리는 이제 광명의 미래를 열려 하나니
그들은 불의의 과거사를 옹호하나
우리는 그 불의의 역사를 무너뜨리려 하나니
이제, 뿌리역사 말살의 무지의 사슬을 진리의 칼날로 끊어야 하리라.
우리는 이제 광명의 미래를 열려 하나니
그들은 불의의 과거사를 옹호하나
우리는 그 불의의 역사를 무너뜨리려 하나니
이제, 뿌리역사 말살의 무지의 사슬을 진리의 칼날로 끊어야 하리라.
역사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뿌리시대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오늘의 한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개벽이 오는 길목에서
과연 이 역사전쟁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한국은, 중국과 일본은, 나아가 세계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가. 그 해답은 놀랍게도, 이미 150여년 전에 나왔다. 묵은 세상의 모든 혼란과 고통을 일거에 해소하고 새 세상을 활짝 여는 ‘개벽이 온다’는 선언이 그것이다.
개벽이란 하늘과 땅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변화는 반드시 문명과 역사의 변화를 선도한다. 현대는 끊임없는 대홍수, 지진, 기후변화가 극에 이르렀고, 지금 우리는 너무나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부터 지진과 화산폭발 등 자연의 문제는 결코 자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개벽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19세기가 저물어가는 때, 인류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열강이 앞 다투어 칼날을 높이 들고, 조정의 부패와 제국의 침탈로 한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1871년, 뿌리와 역사를 잃어버린 한민족의 땅, 한반도에 삼계우주를 주재하시는 천상의 상제님께서 몸소 강세하셨다. 세상에 오시기 전 상제님은 먼저 동학을 통해 최수운에게 “세상에 널리 개벽소식을 알리라”는 천명을 내리셨다.
동학은 상제님을 모신다는 시천주사상을 근본으로 새 세상을 여는 개벽운동으로 불타올랐지만 일본제국과 조선조정의 탄압으로 결국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학의 개벽선언은 그 이전과 그 이후를 확연히 구별짓는, 진정한 근대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동학은 새로운 시천주시대를 연 것이다.
동학이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자 상제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셨다. 인간으로 오신 증산상제님은 무궁한 조화의 권능으로 우주의 질서가 바뀌고 문명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는 새 세상을 열어주셨다. 장차 지구촌 문명이, 역사가, 인류가 나아갈 길을 미리 마련해주신 것이다. 이를 천지공사天地公事라 한다.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이제 천지와 대자연의 질서가 바뀌고(자연개벽), 상극의 문명에서 상생의 새로운 문명이 열리고(문명개벽), 사람과 신명이 소통하며 함께 어울리는(인간개벽) 세상이 열린다. 증산상제님이 마련하신 역사의 운로運路를 따라 인류는 새 세상을 건설해 나간다. 그것이 상생과 조화의 신세계인 후천선경이다. 그러나 후천선경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개벽이라는 큰 시련과 고비를 넘어야 한다. 개벽은 절망이 아니라 인류가 도약하여 상생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과정이다. 상극의 시대에서 조화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는 전환의 과정이다.
상극을 넘어 상생으로
우주원리적으로 볼 때 지금은 우주의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선천의 말대이다.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우주의 변화에 눈떠야 한다.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낳고, 기르고, 추수하고, 긴 휴식에 들어가는 변화의 리듬을 알아야 현실과 미래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풀어나갈 수 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지만 선천여름과 후천가을의 순환원리에 무지한 현대인은 늘 자연과 세상의 변화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상제님께서는 “천하의 대세를 아는 자에게는 살 기운이 붙어 있다”고 하셨다. 지구1년의 시간처럼 우주에도 1년이 있다는 것, 그 우주는 129,60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것, 우주1년에서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를 가을개벽기라고 한다는 것 등을 알 때 영원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지금 우리는 선천여름과 후천가을의 교차기에 살아가고 있다. 선천 말, 상극의 대립과 투쟁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은 모두 원한으로 병이 들었다. 역사전쟁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지금은 그 상극의 기운이 막바지에 이른 선천여름 말기이다. 극極하면 반返한다고 했던가. 자연은 스스로 물질과 사리에만 충실한 현대문명과 불의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다.
상극을 넘어 새롭게 열리는 세상이 바로 상생의 세상이다. 우주가 상생의 운으로 돌아갈 때 우리 인간의 삶도 상생을 지향해야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상생은 단순히 나눔과 화합의 의미로 제한되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알려주신 상생의 도는 우주원리이면서 삶의 이념이다. ‘서로 살림’이라는 그 뜻에서 볼 때 상생은 생명과 구원의 법도이다. 개벽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 우주가 변해가는 법칙을 깨달아야 한다. 상생의 대도로 가을철에 생명의 열매를 맺어 성숙한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 상생은 가을천지가 정한 가장 숭고한 가치다.
근본으로 돌아가라
개벽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가을철 변화의 정신을 바르게 깨달아 일상 속에서 이를 실천하는 새 삶을 사는 것이다. 가을의 변화정신, 그것은 바로 ‘시원을 되살펴서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원시반본이다. 즉 봄여름의 탄생과 성장을 마무리짓고 물질과 정신의 근원으로 돌아가 성숙한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원시반본이다. 이것은 ‘가을에는 뿌리로 돌아가야 생존한다’는 상제님의 숭고한 명령이자 천지의 절대법칙이다.
봄여름 동안 생명체를 키워내던 모든 기운은 가을이 되면서 뿌리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열매를 맺어 생명을 이어간다. 조상과 자손의 관계도 이와 같다. 안운산安雲山 증산도 태상종도사님은 “조상은 자손의 뿌리요, 자손은 조상의 숨구멍”이라 하셨다. 명이 다한 것 같은 천년 고목나무도 숨구멍이 하나라도 붙어있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개벽기, 단 하나의 자손이라도 개벽의 시련을 넘으면 그 부모와 조상들 모두가 새 세상, 새 운수를 맞는다.
한민족은 동서고금에서 부모와 선령을 가장 잘 모셔온 제례祭禮의 종주국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상을 박대하고 제사를 우상시하고 부모와 가정을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 역사회복으로 문명의 주도국이 되는 것은 가을의 정신, 원시반본으로 무장해 내 뿌리, 내 조상, 내 부모를 소중히 보듬고 받드는 데서 시작된다.
미래를 밝히는 대한의 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변혁과 혁신, 창조가 강조되는 때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때를 개벽시대, 천지성공시대라고 진단해주셨다. 상극의 대립과 투쟁이 지배하던 선천여름철 문화는 가을추수기를 맞아 조화와 평화와 통일의 시대, 상생의 운수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이때는 자연과 문명과 인간의 묵은 틀이 벗겨지고 가을하늘의 상생의 새 질서로 거듭 태어나는 대개벽기이다.
한민족은 9천년 역사를 가진 창세민족이다. 앞으로 한민족에게는 지구촌 인류가 모두 대한大韓이 되어 세계일가世界一家 문명을 이뤄내야 하는 중차대한 과업을 안고 있다.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는 우주의 전환기, 문명의 대전환기인 개벽기를 맞아 우리는 무엇보다 뿌리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되찾아야 한다. 이는 무조건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정체성과 문화의 혼을 되찾자는 것이다. 이제 열리는 상생의 시대는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행복이 창출되는 조화의 시대이며 통일의 시대이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더욱 굳건히 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근원이요, 뿌리이다. 내 뿌리, 내 역사, 내 조상을 돌아보고 그것에 기대야 개벽 너머 영광의 미래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모두가 원시반본의 정신으로 내 뿌리, 내 역사를 되찾아 바로 세우고 거기서 넘쳐나는 생명력과 창조력으로 개벽 너머 새 시대를 준비할 때다. 하늘의 광명(=환桓)과 땅의 광명(=단檀)이 온 누리에 깃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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