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증산도 신앙을 되찾아준 상생방송 외
[입도수기]
정윤주(37세) | 부산온천도장 | 2013년 음력 8월 입도
다시 예전의 도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내 기억의 봉인이 해제되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내 기억은 처음 증산도를 알게 되었던 때로 거슬러간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오오라Aura촬영 체험을 한다는 인터넷카페 행사에 겁도 없이 혼자 갔다(원래 모르는 사람들 있는 곳에 혼자서 가지 않는데…). 누구한테 얘기하지도 않았고 별 의심도 없었던 것 같다. 카페에서 처음 만난 그 분은 자그마한 체구에 동글동글 하얀 얼굴을 하고, 단정한 모습에 열정 가득한 맑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도장엘 가서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 수행을 했었던 것과 다시 도장에 나갈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야 태전 태을궁에 갔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도장에서 처음으로 만난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좋아서, 집으로 달려가 엄마께 얘기해 드렸다. 의심이라곤 없었다. 집에 와서 책도 읽고, 서투르지만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쁨으로 떠들었던,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진리는 날카로운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 날아왔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증산도와 관련된 책들, 선물로 받은 단주, 노트, 청수 그릇. 그 어떤 것도 하나 남지 못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날, 밭두렁에 서서 어룽어룽한 눈물 속에 책들이 찢겨지고 불에 타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했다. 멍이 들게 맞으면서 버티기를 여러 날, 증산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끝이 났다. 거짓말처럼 조용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접어지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접고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정말 거짓말같이, 그렇게 반대하셨던 엄마 덕분에 도장엘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나오지 않던 채널이었는데, 몇년 전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처음으로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즐겨보셨고,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증산도를 접하게 되셨다. “네가 하려했던 것이 이거였냐! 그때 네가 한다고 할 때 말리지 말 걸 그랬다.” 하시면서, “엄마가 몰라서 그랬다… 미안하다. 너는 증산도 신앙해야 할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분이 이 일은 ‘기적’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종교가 뭐냐 묻는데 어머니께서 망설임 없이 “증산도 합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엄마의 변화를 보면서, 뜬금없이 ‘때’라는 것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조상님의 음덕과 삼생의 인연이 ‘이때’를 위해 둥글어져왔나 싶었다. 이제 시간이 없구나, 그래서 빨리 가라 그러시는구나. ‘약속’했기 때문에 떨쳐내지도 못하고 신앙하지도 못하는, 반푼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던 걸까. (죄송하게도) 다른 분들의 굳건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내게는 부족하여, 엄마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것 같다. 도장에 가지 못하는 못난 자손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을 조상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사실 지금도 내가 왜, 증산도에 이렇게 이끌리는지 알지 못한다. ‘조상님의 간절함과 삼생의 인연’이라는 학습의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너무 멀리 돌아, 어렵게 다시 만나게 된 증산도 신앙을 이번만은 놓치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조급하게 입도시켜 달라고 포정님께 매달리는 마음으로 부탁을 드렸다. 매일 수행하고, 입도공부를 하면서 ‘나는 정말 부족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인데, 괜찮을까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여쭈어보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제 마음이 딴딴하게 바로 설 때까지 진리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기도에 대한 답일까. 입도를 위해 정성수행과 팔관법을 공부하면서 상제님 태모님을 알게 되고, 자연의 조화섭리인 우주변화 원리를 배우고 가을개벽기에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개벽기에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사실보다 내 가슴을 때렸던 것은, 가치관에 관한 것이었다. 안드로메다 어디에 있는 듯 멀게만 느껴지는,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관한 것. 그리고 잇따른 생각은, ‘나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였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에는 작은 불이 켜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조상님의 손길)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지금 이 생각은 내 의지였다. 이 조그만 불빛은 깜깜한 밤에 나아갈 방향을 비춰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불현듯 마음속에 울림이 지나갔다. ‘지금 이 “때”를 맞이하여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구나!’ 어제 밤까지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밤새 헤매다녔던 문제의 답이 조금은 보인다. 이 또한 조상님들의 애타는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디까지가 내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조상님들의 간절한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문득 마음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내 마음을 잡아주시는 조상님들께서 10년이 지나도록 포기하지 않고 나를 꼭 붙들고 계셨다는 것이다.
내 발길을 여기로 이끌어주신, ‘보이지 않는 조상님의 손길과 정성(10년 전 처음 만난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을 그분의 마음도 있을 것)으로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 마음에 절절하게 사무치는 날이 와서, 머리로 받아들이는 감사함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실로 감사함이 우러나고, 보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안수빈(15세) | 익산신동도장 | 2013년 음력 7월 입도
제가 처음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6살 때였습니다. 그때는 어렸을 때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멋모르고 엄마 따라 도장에 갔습니다. 제가 살던 고창은 도장이 없어서 엄마가 동생을 등에 업고 저랑 함께 정읍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빠가 신앙 반대를 하셔서 엄마 따라 몰래 갔다 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제가 방에서 뭔가 무서운 것을 봐서 방에서 뛰쳐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에 북어포와 과일, 막걸리 등 상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태을주를 함께 읽자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태을주를 읽을 때 무엇인가 머리에 들어와서 등쪽으로 뭔가가 빠져나가면서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상님께서 직접 몸에 들어오셔서 척신을 빼 가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상님들께서 오셔서 막걸리도 드시고, 얼씨구 하시면서 춤을 추셨습니다. 그리고 엄마한테 “고맙다” 하시고 창문 쪽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인지 잘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1분 도공을 하게 되었을 때 눈앞에 금가루가 휘날리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였어도 저는 진리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증산도 이야기도전』만 읽었고 진리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고 몇년 동안을 지내왔습니다. 엄마가 가끔 『도전』 내용이나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6학년 때 엄마와 밤에 배례도 하면서 40분씩 태을주도 읽었으나 그렇게 약 한달 정도 수행하다가 안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2년 6.3대천제 때 입문을 하였습니다. 2013년에는 익산으로 이사를 왔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하셔서, 이번 여름방학에 매일 도장에 가서 진리공부와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입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진리공부를 하면서 다른 것들도 놀라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가 9천년이 넘고 이렇게 넓은 땅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아가며, 우리 역사가 위대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왜곡된 역사에 대해 하나씩 바르게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친구에게 우주일년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증산도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저는 저와 친구들이 평소에 갖는 관심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증산도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진리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저는 입도를 준비하면서 조상님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추첨을 해서 배정받은 중학교가 익산신동도장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고창에 살 때는 버스를 타고 도장에 다녀야 했는데, 익산으로 이사 오면서 학교와 도장이 가까운 곳에 있게 되어 우연 같지만 제가 신앙을 잘할 수 있게 조상님들께서 돕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진리와 수행공부를 하는데, 다른 할 일들이 많아 바빴는데, 개학일이 며칠 연기되어 조상님들께서 입도준비와 수행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도움의 손길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전』과 『환단고기』를 꾸준히 읽고 수행과 도공 공부도 열심히 하여 포교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조상님들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황덕운(15세) | 진주도장 | 2013년 음력 7월 입도
여름 한동안 날씨가 덥더니만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마 여름 내내 더위에 찌들어 스트레스가 심했을 하늘과 땅! 이 천지에 내리는 비는 분명 단비일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처럼, 저도 상제님 진리교육을 다시 받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는 이번 입도가 단비와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태어나고 백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까마득한(?) 옛날에 저는 입도(유아입도)를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전에서 살 때까지는 매일저녁 봉청수도 모시고 주문도 읽곤 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 먹기 전 식고도 매일매일 하고 살았습니다. 또 모든 주문을 다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정반대로 봉청수도 잘 안하고 주문도 잘 안 읽고, 무엇보다도 주문을 다 까먹고 식고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옛날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냥 부모님께서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었습니다. 제 의지로 한 것이 아니니까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수행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물론 그때 당시에는 저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했겠지만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외적으로도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도 눈에 보일 정도로 성숙해져서 그런지 주변 어른들께서는 더 심층적인 진리에 대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이번에 입도교육을 받음으로써 이제 그 기본 틀이 조금은 다잡아졌습니다. 왜 신앙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일전에 포감님께서 지금처럼 그저 부모님 따라 오는 도장, 부모님 따라 믿는 증산도는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입도면접에서도 포정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증산도는 가족이라도 각자 자기신앙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좋아서 해야 한다고. 일심으로 믿으며 신앙하는 것, 그것이 참 신앙이니까요.
저는 지금 정식으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늘 미루고만 살았는데 이제야 하다니…. 뭔가 다행스럽긴 하지만 부끄럽기도 합니다. 왜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과도 맞서야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맞서는 것이 두려웠을 테지만 이제는 이상하게 별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번 입도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예감입니다.
엄마 아빠도 이제 우리 집에 신앙인이 한명 더 늘어났으니 저와 함께 신앙을 더 열심히 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깨어나는 우리 가족! 이번 저의 입도를 계기로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벽기에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우리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
다시 예전의 도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내 기억의 봉인이 해제되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내 기억은 처음 증산도를 알게 되었던 때로 거슬러간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오오라Aura촬영 체험을 한다는 인터넷카페 행사에 겁도 없이 혼자 갔다(원래 모르는 사람들 있는 곳에 혼자서 가지 않는데…). 누구한테 얘기하지도 않았고 별 의심도 없었던 것 같다. 카페에서 처음 만난 그 분은 자그마한 체구에 동글동글 하얀 얼굴을 하고, 단정한 모습에 열정 가득한 맑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도장엘 가서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 수행을 했었던 것과 다시 도장에 나갈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야 태전 태을궁에 갔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도장에서 처음으로 만난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좋아서, 집으로 달려가 엄마께 얘기해 드렸다. 의심이라곤 없었다. 집에 와서 책도 읽고, 서투르지만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쁨으로 떠들었던,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진리는 날카로운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 날아왔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증산도와 관련된 책들, 선물로 받은 단주, 노트, 청수 그릇. 그 어떤 것도 하나 남지 못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날, 밭두렁에 서서 어룽어룽한 눈물 속에 책들이 찢겨지고 불에 타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했다. 멍이 들게 맞으면서 버티기를 여러 날, 증산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끝이 났다. 거짓말처럼 조용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접어지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접고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2013년 대반전 이야기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정말 거짓말같이, 그렇게 반대하셨던 엄마 덕분에 도장엘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나오지 않던 채널이었는데, 몇년 전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처음으로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즐겨보셨고,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증산도를 접하게 되셨다. “네가 하려했던 것이 이거였냐! 그때 네가 한다고 할 때 말리지 말 걸 그랬다.” 하시면서, “엄마가 몰라서 그랬다… 미안하다. 너는 증산도 신앙해야 할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분이 이 일은 ‘기적’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종교가 뭐냐 묻는데 어머니께서 망설임 없이 “증산도 합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엄마의 변화를 보면서, 뜬금없이 ‘때’라는 것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조상님의 음덕과 삼생의 인연이 ‘이때’를 위해 둥글어져왔나 싶었다. 이제 시간이 없구나, 그래서 빨리 가라 그러시는구나. ‘약속’했기 때문에 떨쳐내지도 못하고 신앙하지도 못하는, 반푼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던 걸까. (죄송하게도) 다른 분들의 굳건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내게는 부족하여, 엄마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것 같다. 도장에 가지 못하는 못난 자손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을 조상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나는 사실 지금도 내가 왜, 증산도에 이렇게 이끌리는지 알지 못한다. ‘조상님의 간절함과 삼생의 인연’이라는 학습의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너무 멀리 돌아, 어렵게 다시 만나게 된 증산도 신앙을 이번만은 놓치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조급하게 입도시켜 달라고 포정님께 매달리는 마음으로 부탁을 드렸다. 매일 수행하고, 입도공부를 하면서 ‘나는 정말 부족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인데, 괜찮을까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여쭈어보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제 마음이 딴딴하게 바로 설 때까지 진리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기도에 대한 답일까. 입도를 위해 정성수행과 팔관법을 공부하면서 상제님 태모님을 알게 되고, 자연의 조화섭리인 우주변화 원리를 배우고 가을개벽기에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개벽기에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사실보다 내 가슴을 때렸던 것은, 가치관에 관한 것이었다. 안드로메다 어디에 있는 듯 멀게만 느껴지는,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관한 것. 그리고 잇따른 생각은, ‘나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였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에는 작은 불이 켜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조상님의 손길)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지금 이 생각은 내 의지였다. 이 조그만 불빛은 깜깜한 밤에 나아갈 방향을 비춰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불현듯 마음속에 울림이 지나갔다. ‘지금 이 “때”를 맞이하여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구나!’ 어제 밤까지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밤새 헤매다녔던 문제의 답이 조금은 보인다. 이 또한 조상님들의 애타는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사실, 어디까지가 내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조상님들의 간절한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문득 마음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내 마음을 잡아주시는 조상님들께서 10년이 지나도록 포기하지 않고 나를 꼭 붙들고 계셨다는 것이다.
내 발길을 여기로 이끌어주신, ‘보이지 않는 조상님의 손길과 정성(10년 전 처음 만난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을 그분의 마음도 있을 것)으로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 마음에 절절하게 사무치는 날이 와서, 머리로 받아들이는 감사함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실로 감사함이 우러나고, 보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위대한 우리 역사에 흠뻑 빠졌어요
안수빈(15세) | 익산신동도장 | 2013년 음력 7월 입도
엄마와 함께했던 신앙 기억들
제가 처음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6살 때였습니다. 그때는 어렸을 때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멋모르고 엄마 따라 도장에 갔습니다. 제가 살던 고창은 도장이 없어서 엄마가 동생을 등에 업고 저랑 함께 정읍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빠가 신앙 반대를 하셔서 엄마 따라 몰래 갔다 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제가 방에서 뭔가 무서운 것을 봐서 방에서 뛰쳐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에 북어포와 과일, 막걸리 등 상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태을주를 함께 읽자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태을주를 읽을 때 무엇인가 머리에 들어와서 등쪽으로 뭔가가 빠져나가면서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상님께서 직접 몸에 들어오셔서 척신을 빼 가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상님들께서 오셔서 막걸리도 드시고, 얼씨구 하시면서 춤을 추셨습니다. 그리고 엄마한테 “고맙다” 하시고 창문 쪽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인지 잘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1분 도공을 하게 되었을 때 눈앞에 금가루가 휘날리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였어도 저는 진리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증산도 이야기도전』만 읽었고 진리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고 몇년 동안을 지내왔습니다. 엄마가 가끔 『도전』 내용이나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6학년 때 엄마와 밤에 배례도 하면서 40분씩 태을주도 읽었으나 그렇게 약 한달 정도 수행하다가 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지난 2012년 6.3대천제 때 입문을 하였습니다. 2013년에는 익산으로 이사를 왔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하셔서, 이번 여름방학에 매일 도장에 가서 진리공부와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입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진리공부를 하면서 다른 것들도 놀라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가 9천년이 넘고 이렇게 넓은 땅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아가며, 우리 역사가 위대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왜곡된 역사에 대해 하나씩 바르게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친구에게 우주일년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증산도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저는 저와 친구들이 평소에 갖는 관심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증산도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진리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저는 입도를 준비하면서 조상님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추첨을 해서 배정받은 중학교가 익산신동도장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고창에 살 때는 버스를 타고 도장에 다녀야 했는데, 익산으로 이사 오면서 학교와 도장이 가까운 곳에 있게 되어 우연 같지만 제가 신앙을 잘할 수 있게 조상님들께서 돕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진리와 수행공부를 하는데, 다른 할 일들이 많아 바빴는데, 개학일이 며칠 연기되어 조상님들께서 입도준비와 수행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도움의 손길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전』과 『환단고기』를 꾸준히 읽고 수행과 도공 공부도 열심히 하여 포교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조상님들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의 신앙으로 우뚝 서고파
황덕운(15세) | 진주도장 | 2013년 음력 7월 입도
유아적 입도와 신앙
여름 한동안 날씨가 덥더니만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마 여름 내내 더위에 찌들어 스트레스가 심했을 하늘과 땅! 이 천지에 내리는 비는 분명 단비일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처럼, 저도 상제님 진리교육을 다시 받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는 이번 입도가 단비와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태어나고 백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까마득한(?) 옛날에 저는 입도(유아입도)를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전에서 살 때까지는 매일저녁 봉청수도 모시고 주문도 읽곤 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 먹기 전 식고도 매일매일 하고 살았습니다. 또 모든 주문을 다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정반대로 봉청수도 잘 안하고 주문도 잘 안 읽고, 무엇보다도 주문을 다 까먹고 식고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옛날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냥 부모님께서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었습니다. 제 의지로 한 것이 아니니까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수행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물론 그때 당시에는 저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했겠지만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외적으로도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도 눈에 보일 정도로 성숙해져서 그런지 주변 어른들께서는 더 심층적인 진리에 대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스스로 다시 서는 신앙
이번에 입도교육을 받음으로써 이제 그 기본 틀이 조금은 다잡아졌습니다. 왜 신앙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일전에 포감님께서 지금처럼 그저 부모님 따라 오는 도장, 부모님 따라 믿는 증산도는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입도면접에서도 포정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증산도는 가족이라도 각자 자기신앙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좋아서 해야 한다고. 일심으로 믿으며 신앙하는 것, 그것이 참 신앙이니까요.
저는 지금 정식으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늘 미루고만 살았는데 이제야 하다니…. 뭔가 다행스럽긴 하지만 부끄럽기도 합니다. 왜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과도 맞서야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맞서는 것이 두려웠을 테지만 이제는 이상하게 별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번 입도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예감입니다.
엄마 아빠도 이제 우리 집에 신앙인이 한명 더 늘어났으니 저와 함께 신앙을 더 열심히 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깨어나는 우리 가족! 이번 저의 입도를 계기로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벽기에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우리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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