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110. 고구려는 초기에도 요서지방에서 후한과 싸웠고, 고구려 발상지는 압록강이 아닌 요서지방이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26 |
고대사110. 고구려 모본왕과 태조대왕은 요서지방에서 한나라와 싸웠다. 고구려 발상지는 압록강 주변이 아니라, 요서지방이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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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민중왕(閔中王) 4년(AD 47년)에는 “잠우락부의 대가재승 등 1만여 호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2년 후인 제5대 모본왕(慕本王) 2년(AD 49년)에는 “고구려가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기도 하였는데,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함으로 이내 화친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북평은 오늘의 북경(北京)이 한 때 북평(北平)이라고 불렸던 점을 상기하면, 북경 부근일 가능성이 있다. 어양은 지금의 북경시 동쪽이라고 하며, 상곡은 진나라 때 통합된 연(燕)나라의 북부지방이고 사기(史記)에는 탁록 지역이라고도 한다. 또 태원(太原)은 용성(龍城)이라고도 불렸던 지역으로 지금 산시성(山西城)의 성도이며, 북경보다 훨씬 아래에 위치한 타이위엔시(太原市)로 비정되고 있다. 고구려가 한나라와 경계를 이루고 또 싸운 지역은 모두 중국의 북경 부근 지역과 그보다 더 남쪽의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제6대 태조대왕 3년(AD 55년)에는 “요서(遼西)에 10개의 성(城)을 쌓아 한병(漢兵)에 대비하였다.”고 하였다. 요서 지방에 10개의 성을 쌓았다는 것은 고구려가 요서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여 주는 대목이다. 53년(AD 105년)에는 “한(漢)나라의 요동(遼東)에 고구려의 군대를 보내어 6개의 현을 약탈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미 요동과 요서에 고구려의 국경이 있음을 나타낸다.
또 59년(AD 111년)에는 통감(通鑑)을 인용하여 “고구려가 예맥(濊貊)과 더불어 현도를 침구했다.”고 하였고, 66년(AD 118년)에는 “한의 현도에 습격하여 화려성을 공격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고구려의 국경 넘어 한나라를 침략한 내용인 것이다.
태조대왕 69년(AD121년)에는 “한나라의 유주자사 풍환, 현도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하여 예맥의 거수(渠帥)를 격살하고 병마와 재물을 모두 빼앗았다. 이에 고구려 태조대왕은 아우인 수성을 보내어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를 반격하였다. 수성이 사자를 보내서 거짓 항복을 하니 유주자사 풍환 등이 이를 믿었다. 수성은 이를 이용해서 험한 곳에 웅거하면서 대군을 차단하고 몰래 3,000명을 보내어 현도군과 요동군을 치고 그 성곽을 불살랐으며, 2000여 명을 살획하였다.
이어 여름 4월에 태조대왕이 선비의 군사 8000명을 데리고 요대현을 공격하니 요동태수 채풍이 군사를 내어 신창에서 싸우다가 죽었다....또 이해 12월에 왕은 마한(馬韓),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범하니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군사 2만명을 거느리고 한의 군사와 힘을 합쳐서 막아 싸우게 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고구려 군사가 대패하였다. 이듬해인 70년에 왕은 마한∙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범하니 부여왕이 한에 구원병을 보내어 고구려의 군사를 막았다.(마한은 온조왕 27년(AD 9년)에 멸망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 고구려 왕과 더불어 군사 행동을 하였다 하니 멸망 후 다시 일어난 것일까?”
***참고: 고구려 5대 모본왕이나 6대 태조왕이 상곡, 어양, 북평, 요서 등 요서지방에서 싸웠고, 또 태조대왕은 요서지방에 10성을 쌓고 서안평까지 점령하였다고 한 것은 고구려가 압록강 지류가 아니라, 요서지방에 있는 비류수에서 나라를 세우고, 또 나라 초기에 후한(동한)과 요서지방에서 싸워 이기고 따을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비류수 부근에서 도읍을 하고 나라를 세웟는데, 이 비류수는 압록강 지류가 아니라, 요서지방에 있는 비류수로 보아랴 한다.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 침략 당시 비류수에서 크게 싸워 처음에는 대패 했다가, 후에 비류수에서 크게 이기고 고구려를 침략한 것도 압록강 지류에 있는 비류수가 아니라, 요서 지방에 있는 비류수이어서 최소한 난하 이거나, 난하 서쪽 요서 지방의 조백하 등 다른 강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고구려 주몽이 압록강변이 아니라, 요서지방에서 나라릉 세우고 이 지역에서 후한과 싸운 사실을 반드리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참고: 고구려에서 빼앗겼던 옛 땅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다물”이란 말을 썼는데, 이 말은 고구려가 압록강 지유의 비류수를 되찾아서 “다물”이 아니다. 이는 한나라에 빼앗겼던 요서지방의 땅을 되찾았기 때문에 “다물”이란 말을 쓴 ᄀᆞᆺㅇ,러 되찾은 땅 “다물”의 위치에 대해서도 역사적 고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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