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영화산책 ]
#들어감
완벽에 가까운 고증.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연출. 영화는 현재의 우리를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400년 전 남한산성 안으로 데리고 간다.
지난 2011년, 범죄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아동 성폭행 실태를 고발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킨 황동혁 감독이 이번에는 동명소설 원작 베스트셀러 김훈의 남한산성을 영화로 각색해 화재가 되고 있다. 영화는 잊고 싶은 그날의 비극을 조명하고 데자뷔deja vu처럼 또다시 반복되는 역사 현상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강대국이었던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7년간 파병을 보낸 후 약해져 있는 틈을 타 북방의 여진이 명과의 전쟁을 일으키고 여진이 연이어 승전하면서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마침내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인 황제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도중 조선에도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을 요구했는데 당시 조선은 명과의 의리를 내세워 거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의라는 명분 뒤로 조선 사대부들의 뿌리 깊은 유교 관념이 존재했다.
명은 하늘의 자손인 천자국이며 군사부의 나라이며 외세로부터 조선을 지켜 준 은혜로운 국가라는 부서지지 않는 믿음이 있었고 그에 보답하는 것이 선비의 예였다. 반면 여진은 북방의 오랑캐라 낮춰 부르며 금수만도 못한 미개한 민족이라 여겼다. 그러니 대명제국의 국운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고 해서 글을 중시하는 사대부가 의리를 저버리고 야만스런 오랑캐를 임금으로 섬길 리는 만무했고 결국 청은 인조를 포섭하고 군신의 계약을 맺을 작정으로 1636년 12월 얼어붙은 강을 건너 13만 대군을 이끌고 단 5일 만에 도성 부근까지 들이닥쳤다.
이에 놀란 인조가 두려움에 백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에 이어 세 번째 도망이었다. 그러나 강화도로 가는 피난길마저 청의 부대에 막히자 할 수 없이 급히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되는데 산은 가파르고 성은 단단했지만 산성은 사방이 막힌 고립무원이었다.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립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어 버리자 이를 다시 주워 모으면서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며 둘은 각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양으로서 존재하며 서로를 살리는 상호보완의 관계임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택할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처럼 번갈아 가며 조화롭게 내어쓸 줄 알아야 이들의 진가를 발휘하고 성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자주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사고를 덕목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네가 그렇게 보니까 다그래 보이는 거야라며 모두가 한 가지 의견에 따르도록 조장한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명확히 이해함에 있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양면, 음양의 두 얼굴을 균형 있게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도(道)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순환
병사들은 12월 한파로 동상에 걸려 활시위를 쥐지 못하고 제구실을 못하는 병장기들이 많아 제대로 싸울 수도 없는 내부 상황을 상부에 알리지만 군영 무관은 이를 일체 불평으로 여기고 매질을 했다.
성첩 위에서 추위에 떨던 서날쇠와 칠복은 성안의 가마니를 걷어 군사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위로는 덮어 눈비를 막고 아래로는 깔아 한기를 막을 수 있게 해줄 것과 제구실 못하는 병장기를 대장장이 출신인 자신들이 고칠 수 있게 해달라고 예판 김상헌에게 청하게 된다. 이것이 조정에 보고되고 재가를 얻게 되자 병사들은 추위를 버티면서 제대로 된 무기로 싸움을 벌여 첫 승전을 가져왔다.
세계무대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위대한 아이디어는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기에 사소한 아이디어와 대안을 많이 내고 그 다음 가능한 것부터 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 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내부 소통이 되어갈 때 외부로는 이판 최명길이 청과의 협상을 모색하기 위해 몇 번이나 적진을 뚫고 들어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청은 조선의 세자를 인질로 보내고 화친하자 제안하지만 아들을 잃기 싫었던 인조로 인해 소통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대신들 역시 적진의 상황 정보를 부정하고 김류金瑬는 발밑으로 보던 오랑캐에게 당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청의 부대에 공격을 시도하는데 감정으로 시작된 작전 없는 전쟁은 군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결국 많은 병사들이 무참히 전사하고 만다. 배고픔과 추위는 깊어 가고 상황은 더욱 열세해져 조정은 급기야 군사들의 추위를 막았던 가마니와 민간의 초가와 마루를 뜯어 말먹이와 땔감으로 썼다. 병사와 백성을 말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다. 이제 남은 희망은 인근 진지에 격서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피난 온 무관들이 길을 몰라 작전에 실패하자 예판 김상헌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서날쇠에게 조선의 막중대사 임무를 맡기는데...
격서를 전하기만 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 믿은 서날쇠는 죽을 고비를 넘겨 작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진지에 있던 그들은 반상의 귀천을 따지는 사대부였고 천민이 가지고 온 격서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어명을 어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 서날쇠를 죽여 격서 받은 사실을 은폐하려고까지 시도한다.
#허울 좋은 욕심
조정의 대신들은 김상헌과 최명길로 나뉘어 각자의 정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김상헌이 말하는 정의는 곧 명분과 의리. 사대부들의 정신은 청과의 전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반상의 차별을 만들어 백성을 핍박했다.
임금이 살아서 나가야 백성이 살 수 있고 백성의 삶이 평안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최명길의 주장 역시, 청의 침략에 아녀자들이 겁탈당하고 부모와 자식이 죽어 나가고 없는데 백성을 내팽개치고 자기만 살겠다고 세 번씩이나 도망 온 왕과 신하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사대부가 만든 조선이란, 노비로 태어나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살다가 변절자가 되고 나라가 돌보지 않아 좁쌀 한 줌 얻지 못해 청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먹을 것을 얻으려다 무참히 살해당하는 백성에게는 실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성안에서 정의를 운운하는 와중에도 백성들은 청의 칼날에 맞아 죽고 싸우다 죽고 동상에 걸려서 얼어 죽고 배고파 죽었다. 그들은 모두 임금을 하늘같이 섬기는 충신이었으나 이들이 말하는 정의에는 정작 백성을 살리려는 마음은 없고 허울 좋은 욕심뿐이었다.
#사명감
서날쇠가 꿈꾸었던 세상.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곯지 않는 삶이 세상의 이치이며 진리다. 이것을 목표로 왕과 대신들이 존재하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정의를 내세우며 싸우던 조정이 아니라 천민 신분의 서날쇠 오직 한 명뿐이었다.
사회는 우리 개개인에게 애국심을 강조하고 효와 충 등 정의실현 사회를 만들어갈 의무감을 심으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철을 알고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될수록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를 깨닫고 순박함은 더욱 발전하는 게 당연하건만, 오히려 학교, 회사, 지역, 정부 등 나를 둘러싼 겹겹의 장벽이 눈앞에 보이는 목표와 성과만을 좇게 해 순수함은 처음 어린 시절 한때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구닥다리 선비가 가진 유교의 틀이 나라를 부패하게 한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이 그 시대 어울리는 군사부 문화가 있을진대 오늘날도 여전히 정의롭고 순박할수록 무시하고 꼬장꼬장한 낡은 사회구조가 인재를 보고도 계급이 낮다고 해서 하대하니 현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400년 전 답답한 그날을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순이다!”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순수한 근원이 되어, “나는 환이다! 우리는 태일이다!”라는 환단고기의 가르침대로 각자의 역할에서 빛나고 다 같이 크게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사명이며 애국이며 정의라는 것을.
그 시각, 명과 전쟁 중에 있던 청나라의 왕, 칸이 이들을 직접 심판하러 남한산성으로 오고 있었다.
#사생결단 심판의 때
내가 살자고 세자를 인질로 보낼 수도 없고, 세자를 살리자니 내가 죽게 생긴 왕. 적과 화친을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 달라는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두려웠던 대신들. 인조는 거울처럼 닮아 있는 신하들을 보며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한다.
결국 인조는 왕의 상징인 곤룡포를 벗고 죄인을 상징하는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칸의 앞으로 나가 청나라 신하의 예법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하며 항복했다.
#낙엽
영화는 시종일관 화려한 말의 유희로 양측의 설전을 아름답고 심도 있게 묘사했다. 동시에 정의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도취되어 본분을 깨닫지 못하고 탁상공론만 하고 앉아 있는 선비의 낡은 관념을 역설하고 비꼰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주 열정적으로 살길을 도모하지만, 정작 부패한 자신들이 죽어야 나라와 백성이 사는 길임을,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며 깨닫는다.
#되풀이 되는 역사
원작소설 김훈 작가는 인터뷰에서 당시의 시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예판 김상헌은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 서날쇠를 찾아가 미래의 새 세상을 살아갈 백성 나루를 키워 줄 것을 청하고 서날쇠에게 절을 올린다. 그것은 정의로운 자를 향한 존경이며 본분을 잃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온 김상헌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왕과 대신들은 청나라 죄인 신분이 되어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백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50만 명이 청으로 끌려가 노예로 전락해 비참한 생을 살아야만 했다.
과거의 백성들은 배우지 못해 나라 정세에 무지했고 신분이 천하다 하여 자신의 가치도 천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빛을 잃었고 세상의 가장 그늘진 곳 어둠 속에 있었다. 상극의 이치는 이들을 권력으로 제압했고 독재자를 승리의 길로 인도했다.
보아라. 지난 역사 속 나라와 종교라는 명분으로, 아주 잠시 동안 아주 작은 영역을 누리기 위해 이 땅 위로 흘린 수많은 피와 한 맺힘을 세상은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로 또다시 오늘날 급격한 변혁을 가져왔다.
국민들은 만화가, 방송작가, 운동선수 등 각자의 색깔로 빛을 내며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손가락만 까딱 움직이면 나라와 시대의 장벽까지도 무너뜨리고 과거 성인들만 알았던 비밀도 들춰낸다.
세상 모든 만물은 음양 에너지이며 나는 끌어당기는 에너지장 그 자체라는 것,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에너지를 신이라 부르며 나는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와 진리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준비된 이들은 밝게 깨어져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국민은 하나가 되어 불의를 심판하며, 권력을 고집하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되는 추세이다. 성공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던 권위의 시대가 저물고 세계에는 이제 마음으로 통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대세를 모르는 자는 철 지난 조직과 함께 휩쓸려 가리라.
#도통이 두통이다
※‘어른거려서’- 상제님 대업에 일심을 가질 때 이 말씀의 경계를 잘 느낄 수 있다. 일심으로 취정(聚精)이 되면 마치 도깨비 쌍안경을 눈에 달아 놓은 것처럼 아른거려 처음에는 잠들기조차 어렵다. 그러므로 “대저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2편 45장)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순수하고 의롭게 양심껏 사는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도전 11편 165장 측주)
#끝맺음
왕의 두려움은 남한산성에 고립을 자처했고 고립은 자신과 닮은 정체된 조정을 낳았다. 부패한 조정은 명분과 욕심만 남아 백성을 등한시하며 소통의 단절을 불렀고, 순환이 막힌 군대에게는 의무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전의를 잃은 병사들은 죽음을 불사한 사명감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추위에 떨다 성城안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마치 그들의 왕이 고립 속에서 두려움에 떨다 스스로 멸한 것처럼... 그리고 이들과는 상관없이 백성들은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늘 그래 왔듯이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삶을 계속해 나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혹한의 눈보라가 그치고 그해 봄, 다시 민들레꽃은 피었다.
완벽에 가까운 고증.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연출. 영화는 현재의 우리를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400년 전 남한산성 안으로 데리고 간다.
지난 2011년, 범죄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아동 성폭행 실태를 고발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킨 황동혁 감독이 이번에는 동명소설 원작 베스트셀러 김훈의 남한산성을 영화로 각색해 화재가 되고 있다. 영화는 잊고 싶은 그날의 비극을 조명하고 데자뷔deja vu처럼 또다시 반복되는 역사 현상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생生- 인조, 멸(滅)의 씨앗을 뿌리다
강대국이었던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7년간 파병을 보낸 후 약해져 있는 틈을 타 북방의 여진이 명과의 전쟁을 일으키고 여진이 연이어 승전하면서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마침내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인 황제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도중 조선에도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을 요구했는데 당시 조선은 명과의 의리를 내세워 거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의라는 명분 뒤로 조선 사대부들의 뿌리 깊은 유교 관념이 존재했다.
명은 하늘의 자손인 천자국이며 군사부의 나라이며 외세로부터 조선을 지켜 준 은혜로운 국가라는 부서지지 않는 믿음이 있었고 그에 보답하는 것이 선비의 예였다. 반면 여진은 북방의 오랑캐라 낮춰 부르며 금수만도 못한 미개한 민족이라 여겼다. 그러니 대명제국의 국운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고 해서 글을 중시하는 사대부가 의리를 저버리고 야만스런 오랑캐를 임금으로 섬길 리는 만무했고 결국 청은 인조를 포섭하고 군신의 계약을 맺을 작정으로 1636년 12월 얼어붙은 강을 건너 13만 대군을 이끌고 단 5일 만에 도성 부근까지 들이닥쳤다.
이에 놀란 인조가 두려움에 백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에 이어 세 번째 도망이었다. 그러나 강화도로 가는 피난길마저 청의 부대에 막히자 할 수 없이 급히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되는데 산은 가파르고 성은 단단했지만 산성은 사방이 막힌 고립무원이었다.
장長- 극으로 치닫는 관념, 그리고 욕심
음과 양
청의 기병부대에 남한산성이 포위되고 안에 갇힌 대신들은 임금이 살아야 백성이 살고 백성의 삶이 평안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정의이니 화친하여 목숨을 건지자는 최명길과,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연유로 명이 곤욕을 치르는데 청과 화친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며 끝까지 싸워 명분을 지키는 일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라는 김상헌의 의견이 맞서며 둘로 갈라졌다.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립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어 버리자 이를 다시 주워 모으면서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며 둘은 각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양으로서 존재하며 서로를 살리는 상호보완의 관계임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택할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처럼 번갈아 가며 조화롭게 내어쓸 줄 알아야 이들의 진가를 발휘하고 성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자주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사고를 덕목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네가 그렇게 보니까 다그래 보이는 거야라며 모두가 한 가지 의견에 따르도록 조장한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명확히 이해함에 있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양면, 음양의 두 얼굴을 균형 있게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도(道)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음운동(수렴) 한번은 양운동(발산) 하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한다. (주역 계사전)
#순환
병사들은 12월 한파로 동상에 걸려 활시위를 쥐지 못하고 제구실을 못하는 병장기들이 많아 제대로 싸울 수도 없는 내부 상황을 상부에 알리지만 군영 무관은 이를 일체 불평으로 여기고 매질을 했다.
성첩 위에서 추위에 떨던 서날쇠와 칠복은 성안의 가마니를 걷어 군사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위로는 덮어 눈비를 막고 아래로는 깔아 한기를 막을 수 있게 해줄 것과 제구실 못하는 병장기를 대장장이 출신인 자신들이 고칠 수 있게 해달라고 예판 김상헌에게 청하게 된다. 이것이 조정에 보고되고 재가를 얻게 되자 병사들은 추위를 버티면서 제대로 된 무기로 싸움을 벌여 첫 승전을 가져왔다.
세계무대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위대한 아이디어는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기에 사소한 아이디어와 대안을 많이 내고 그 다음 가능한 것부터 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 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내부 소통이 되어갈 때 외부로는 이판 최명길이 청과의 협상을 모색하기 위해 몇 번이나 적진을 뚫고 들어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청은 조선의 세자를 인질로 보내고 화친하자 제안하지만 아들을 잃기 싫었던 인조로 인해 소통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대신들 역시 적진의 상황 정보를 부정하고 김류金瑬는 발밑으로 보던 오랑캐에게 당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청의 부대에 공격을 시도하는데 감정으로 시작된 작전 없는 전쟁은 군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결국 많은 병사들이 무참히 전사하고 만다. 배고픔과 추위는 깊어 가고 상황은 더욱 열세해져 조정은 급기야 군사들의 추위를 막았던 가마니와 민간의 초가와 마루를 뜯어 말먹이와 땔감으로 썼다. 병사와 백성을 말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다. 이제 남은 희망은 인근 진지에 격서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피난 온 무관들이 길을 몰라 작전에 실패하자 예판 김상헌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서날쇠에게 조선의 막중대사 임무를 맡기는데...
“이 격서를 무사히 전하고 돌아오면 주상 전하께서 네게 큰 상을 내리실 거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주상 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이야,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배곯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입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주상 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이야,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배곯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입니다.”
격서를 전하기만 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 믿은 서날쇠는 죽을 고비를 넘겨 작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진지에 있던 그들은 반상의 귀천을 따지는 사대부였고 천민이 가지고 온 격서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어명을 어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 서날쇠를 죽여 격서 받은 사실을 은폐하려고까지 시도한다.
#허울 좋은 욕심
조정의 대신들은 김상헌과 최명길로 나뉘어 각자의 정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김상헌이 말하는 정의는 곧 명분과 의리. 사대부들의 정신은 청과의 전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반상의 차별을 만들어 백성을 핍박했다.
임금이 살아서 나가야 백성이 살 수 있고 백성의 삶이 평안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최명길의 주장 역시, 청의 침략에 아녀자들이 겁탈당하고 부모와 자식이 죽어 나가고 없는데 백성을 내팽개치고 자기만 살겠다고 세 번씩이나 도망 온 왕과 신하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사대부가 만든 조선이란, 노비로 태어나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살다가 변절자가 되고 나라가 돌보지 않아 좁쌀 한 줌 얻지 못해 청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먹을 것을 얻으려다 무참히 살해당하는 백성에게는 실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성안에서 정의를 운운하는 와중에도 백성들은 청의 칼날에 맞아 죽고 싸우다 죽고 동상에 걸려서 얼어 죽고 배고파 죽었다. 그들은 모두 임금을 하늘같이 섬기는 충신이었으나 이들이 말하는 정의에는 정작 백성을 살리려는 마음은 없고 허울 좋은 욕심뿐이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나니 그런고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어일묵(一語一默)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만일 사람이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좋은 대로 언동하고 가볍고 조급하며 천박하게 처세하면 큰 덕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95)
만일 사람이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좋은 대로 언동하고 가볍고 조급하며 천박하게 처세하면 큰 덕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95)
#사명감
서날쇠가 꿈꾸었던 세상.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곯지 않는 삶이 세상의 이치이며 진리다. 이것을 목표로 왕과 대신들이 존재하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정의를 내세우며 싸우던 조정이 아니라 천민 신분의 서날쇠 오직 한 명뿐이었다.
사회는 우리 개개인에게 애국심을 강조하고 효와 충 등 정의실현 사회를 만들어갈 의무감을 심으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철을 알고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될수록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를 깨닫고 순박함은 더욱 발전하는 게 당연하건만, 오히려 학교, 회사, 지역, 정부 등 나를 둘러싼 겹겹의 장벽이 눈앞에 보이는 목표와 성과만을 좇게 해 순수함은 처음 어린 시절 한때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구닥다리 선비가 가진 유교의 틀이 나라를 부패하게 한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이 그 시대 어울리는 군사부 문화가 있을진대 오늘날도 여전히 정의롭고 순박할수록 무시하고 꼬장꼬장한 낡은 사회구조가 인재를 보고도 계급이 낮다고 해서 하대하니 현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400년 전 답답한 그날을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순이다!”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순수한 근원이 되어, “나는 환이다! 우리는 태일이다!”라는 환단고기의 가르침대로 각자의 역할에서 빛나고 다 같이 크게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사명이며 애국이며 정의라는 것을.
그 시각, 명과 전쟁 중에 있던 청나라의 왕, 칸이 이들을 직접 심판하러 남한산성으로 오고 있었다.
염斂- 정의의 이름으로
#사생결단 심판의 때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 주마.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 주마.
내가 살자고 세자를 인질로 보낼 수도 없고, 세자를 살리자니 내가 죽게 생긴 왕. 적과 화친을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 달라는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두려웠던 대신들. 인조는 거울처럼 닮아 있는 신하들을 보며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한다.
결국 인조는 왕의 상징인 곤룡포를 벗고 죄인을 상징하는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칸의 앞으로 나가 청나라 신하의 예법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하며 항복했다.
#낙엽
이판께서 말씀하시는 삶의 길이란 무엇이오?
살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지요.
그 길은 백성의 길이오 임금의 길이오?
백성과 임금이 함께 걸어갈 길입니다.
나도 그리 생각했소. 하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살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지요.
그 길은 백성의 길이오 임금의 길이오?
백성과 임금이 함께 걸어갈 길입니다.
나도 그리 생각했소. 하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영화는 시종일관 화려한 말의 유희로 양측의 설전을 아름답고 심도 있게 묘사했다. 동시에 정의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도취되어 본분을 깨닫지 못하고 탁상공론만 하고 앉아 있는 선비의 낡은 관념을 역설하고 비꼰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주 열정적으로 살길을 도모하지만, 정작 부패한 자신들이 죽어야 나라와 백성이 사는 길임을,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며 깨닫는다.
#되풀이 되는 역사
원작소설 김훈 작가는 인터뷰에서 당시의 시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스스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지금 우리가 개혁을 말하고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개혁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개혁할 수 없는 거겠죠. 조선이 처한 현실이 그랬던 것 아닌가 싶었어요.”
예판 김상헌은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 서날쇠를 찾아가 미래의 새 세상을 살아갈 백성 나루를 키워 줄 것을 청하고 서날쇠에게 절을 올린다. 그것은 정의로운 자를 향한 존경이며 본분을 잃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온 김상헌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왕과 대신들은 청나라 죄인 신분이 되어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백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50만 명이 청으로 끌려가 노예로 전락해 비참한 생을 살아야만 했다.
장藏- 다시 봄은 오고 민초의 삶은 계속된다
과거의 백성들은 배우지 못해 나라 정세에 무지했고 신분이 천하다 하여 자신의 가치도 천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빛을 잃었고 세상의 가장 그늘진 곳 어둠 속에 있었다. 상극의 이치는 이들을 권력으로 제압했고 독재자를 승리의 길로 인도했다.
보아라. 지난 역사 속 나라와 종교라는 명분으로, 아주 잠시 동안 아주 작은 영역을 누리기 위해 이 땅 위로 흘린 수많은 피와 한 맺힘을 세상은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로 또다시 오늘날 급격한 변혁을 가져왔다.
국민들은 만화가, 방송작가, 운동선수 등 각자의 색깔로 빛을 내며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손가락만 까딱 움직이면 나라와 시대의 장벽까지도 무너뜨리고 과거 성인들만 알았던 비밀도 들춰낸다.
세상 모든 만물은 음양 에너지이며 나는 끌어당기는 에너지장 그 자체라는 것,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에너지를 신이라 부르며 나는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와 진리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준비된 이들은 밝게 깨어져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국민은 하나가 되어 불의를 심판하며, 권력을 고집하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되는 추세이다. 성공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던 권위의 시대가 저물고 세계에는 이제 마음으로 통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대세를 모르는 자는 철 지난 조직과 함께 휩쓸려 가리라.
#도통이 두통이다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도통(道通)이 두통(頭痛)이다, 이놈들아! 어른거려서 못 사느니라.” 하시고
“내 일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해 가지고 들어오나니 너희들은 잘 닦으라.” 하시거늘 성도들이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도통해 볼 욕심을 품고 도통 소리만 하면 태모님께서 “아나, 도통 여기 있다!” 하시고 담뱃대로 사정없이 때리시니라. (도전 11편 165장)
“내 일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해 가지고 들어오나니 너희들은 잘 닦으라.” 하시거늘 성도들이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도통해 볼 욕심을 품고 도통 소리만 하면 태모님께서 “아나, 도통 여기 있다!” 하시고 담뱃대로 사정없이 때리시니라. (도전 11편 165장)
※‘어른거려서’- 상제님 대업에 일심을 가질 때 이 말씀의 경계를 잘 느낄 수 있다. 일심으로 취정(聚精)이 되면 마치 도깨비 쌍안경을 눈에 달아 놓은 것처럼 아른거려 처음에는 잠들기조차 어렵다. 그러므로 “대저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2편 45장)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순수하고 의롭게 양심껏 사는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도전 11편 165장 측주)
#끝맺음
왕의 두려움은 남한산성에 고립을 자처했고 고립은 자신과 닮은 정체된 조정을 낳았다. 부패한 조정은 명분과 욕심만 남아 백성을 등한시하며 소통의 단절을 불렀고, 순환이 막힌 군대에게는 의무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전의를 잃은 병사들은 죽음을 불사한 사명감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추위에 떨다 성城안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마치 그들의 왕이 고립 속에서 두려움에 떨다 스스로 멸한 것처럼... 그리고 이들과는 상관없이 백성들은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늘 그래 왔듯이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삶을 계속해 나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혹한의 눈보라가 그치고 그해 봄, 다시 민들레꽃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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