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를 읽으며 무한한 성령의 조화를 느껴 외(권재남, 이영일, 이영이, 윤은영)
[입도수기]
태을주를 읽으며 무한한 성령의 조화를 느껴
권재남(여, 52) / 구리수택도장 / 146년 음9월 입도
1990년대 초반 길에서 우연히 어떤 사모님으로부터 『이것이 개벽이다』 상, 하권을 선물 받고 그 당시 서울신촌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받아 읽으면서 그 당시의 느낌으로 ‘세상이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자녀를 기르다 보니 잊고 지냈습니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막연히 ‘인간으로 태어나서 진정으로 성공하는 길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TV채널을 만지작거리던 중에 무궁화 꽃이 피어 있는 상생방송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20년 전에 읽었던 ‘개벽’ 책 내용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내심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짬짬이 가족들 몰래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태을주를 암송하고 다녔습니다. 일하면서도 그냥 읽어 보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혼자서 소리 내어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하면서 읽을 때는 호흡이 조절되고 태을주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힘든 일도 아주 쉽게 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놀랐으며 주위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태을주를 읽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은 후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에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이때 비몽사몽간에 이런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득히 먼 허공에서 옥색 옷을 곱게 입으신 어떤 여성분이 운거雲車를 타고 우리 집 주차장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저를 한번 쳐다보더니 주변을 시찰하듯이 살피고 홀연히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때 벌떡 일어나서 저도 그분을 따라 나섰습니다. 잠시 후 그분의 행방이 묘연하여 방금 나가신 여성분이 어디로 갔느냐고 경비실에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경비실에서는 그런 분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정신을 차려 보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경계에서 체험했던 참 신이한 일이었습니다. 또 태을주를 읽으며 2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남편이 약을 잘못 먹어서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저도 모르게 운장주를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쾌차를 빌었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 한밤중이 되었습니다. 붉은 옷을 입으신 분이 홀연히 제 앞으로 다가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고 놀라 그분 앞에 엎드려 ‘아버지’ 하고 외치면서 절을 올렸습니다. 앞의 여성분은 태모님이시고 뒤에 뵈었던 분은 상제님이시라는 것을 도장에 모셔져 있는 상제님과 태모님의 어진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에서 태을주를 혼자 읽지 말고, 도장에서 태을주를 제대로 읽어야 된다고 했고 기도를 잘못하면 욕급선령辱及仙靈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안 되는가 보다 여기고 때를 살펴서 도장을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와서 포정님과 팔관법을 공부하였습니다. 진리공부를 하기 전에 105배례와 태을주 수행과 도공을 하였습니다. 이때 체험한 내용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은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공중에서 어떤 동물이 보였습니다. 그 동물이 입으로 붉은색의 둥근 공을 물고 정중앙으로 저에게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회색 같은 안개 속 위에 드러난 회색 한옥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어떤 여성분이 분홍빛 우아한 옷을 입고 금 왕관을 쓴 채로 분주하게 지휘하는 모습과 아늑한 S자의 구불구불한 길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북을 치면서 행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또 그 다음 날은 동자 2명이 금색 옷을 입고 금색 복건을 쓰고 금색 버선인지 신발인지는 구분이 안 되지만 그걸 신고서 금색 시소를 타고 노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는 평상시 꿈도 안 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체험을 하면서 태을주와 운장주, 칠성경 등 주문 속에 담긴 무한한 성령의 조화를 느껴 보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세계, 후천 선경세계를 알게 되었으니 우주의 인간농사를 짓는 이때에 인간 참 종자로서 꼭 남고 싶습니다. 흔들림 없고 성경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허락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 그리고 조상선령님께 보은하는 참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증산도를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이영일(남, 54) / 수원영화도장 / 146년 음9월 입도
제가 증산도를 만난 것은 지인과 함께 광교산을 갔다가 하산하던 길에서였습니다. ‘역사찾기 서명’을 해 달라는 이은영, 류미희 도생님을 만나 서명을 하고 연락처를 남겨 놓고 오면서부터였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역사세미나’를 한다고 문자가 오는데 왠지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정자사거리’에서 세미나를 한다고 해서 가까운 분당에 있는 정자사거리인 줄 알고 자세한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수원이라고 해서 멀어서 곤란하다고 했더니 그래도 한번 와 보라고 권유하여 수원영화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역사 강의를 듣는데 한 말씀 한 말씀이 가슴에 팍팍 꽂히면서 그동안 가져 왔던 역사에 대한, 특히 고대사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맛있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서 포정님의 진리 말씀을 들었는데 그동안 제가 생각하고 있던 가치관과 신기하게도 잘 맞았습니다. 조상님들께서 60년 공을 들여야 자손 하나가 증산도를 접할 수 있다는 말씀에 어떤 사명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무신론자로서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벽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집이 성남이기에 수원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성남에 있는 도장을 검색해서 성남태평도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찾아간 날이 성남도장에서 천도식을 하는 날이었는데 조상님들의 원한을 달래고 해원시켜 주는 행사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이은영 도생님이 성남에 오신다고 연락이 와서 성남태평도장 포정님과 같이 만나 도담을 나누면서 21일 수행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한 날에 아침수행을 포정님과 같이 하였으며, 그날 이은영 도생님으로부터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와서 남편분인 이인희 수호사님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증산도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인 정문정님과 같이 수행할 수 있도록 수원영화도장에서 아침수행을 하자고 하여 그 다음 날부터 한 달 넘게 수행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수행을 하고 나면 교육을 해 주시는데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갖은 정성을 다해 교육해 주시고 꼭 아침을 챙겨 주시는 모습에 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평소 종교에 관심은 많았지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들과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말, 그리고 종교가 세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종교가 사라져야만 진정 평화가 온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증산도는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하지도 않으며 어떤 궁금한 사항이 있어 물어보아도 명확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천지의 이치를 논리적, 과학적으로 풀어 주어서 더 이상의 의문점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수원영화도장을 찾은 지도 몇 달이 지나고 점점 저의 생각이 확고해지는 상황에서 포정님이 10월 29일 입도식을 한다고 하셔서 ‘아!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증산도를 안 할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서 입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입도를 하게 되면 신도5대수칙을 잘 지키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일꾼 역할을 하기 위해서 진리 공부를 열심히 하여 상제님의 참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저를 인도하여 주신 이은영, 류미희, 한정순 도생님, 한승철 포정님! 항상 신경을 써 주시는 이인희 수호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
모든 욕심 다 버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렵니다
이영이(여, 60) / 익산신동도장 / 146년 음9월 입도
저는 전북 김제군 황산면(현 김제시 황산동) 쌍감리 52번지에서 3남 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저를 낳자마자 어머니께서는 몹쓸 병에 걸려서 저는 젖을 못 먹고 자랐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옆 동네 사는 새우젓 장수 아주머니께서 가끔씩 집에 들러 젖을 먹이기도 하고 가마솥의 밥물을 미음처럼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배가 너무 고파서 칭얼대면 기적처럼 새우젓 아주머니께서 오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3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정성으로 어머니께서는 병석에서 일어나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집안 살림살이도 조금씩 좋아져 동네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는데 그 시절에는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가고 쌀을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외상값 좀 받아 오너라”고 하시면 두말도 안하고 그 집에 가서 외상값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쌀을 주면 어린 제가 고개에 이고 한참을 걸어 집으로 오곤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쌀밥을 먹기 위해 힘들어도 어머니 말씀을 잘 들었던 거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을 지나 부모님 몰래 장사 돈을 훔쳐 무작정 전주로 갔습니다. 오갈 데 없이 방황하다가 저녁이 되어 배가 너무 고파서 전주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이 “구직하러 왔냐? 잘 왔네, 우리가 종업원이 없어서 구하려던 참인데” 하면서 반가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사실은 밥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갈 곳도 없고 해서 “예”라고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한 번도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너무 힘들 때마다 집 생각이 간절히 났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기에 월급을 받으면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찾아다닐까’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는 집에 전화도 없고 연락하려면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어 편지를 보냈습니다. 며칠 후 어머니가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몇 달 잘 지내다 이번에는 아주 멀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광주행 버스를 탔습니다. 김제는 광주 가는 버스가 없었던 때라 전주에서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서는 어렵게 직장을 구하고 돈도 꽤 많이 벌었는데 나쁜 사람들을 만나 돈도 다 빼앗기고 고생고생하다가 세월이 다 지나고 나이도 성인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때부터 마음 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목포로 놀러 갔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사고가 2번이나 났는데 우리가 탄 택시만 괜찮았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에 신문을 봤는데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다쳐서 광주 조선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누가 연락을 했는지 어머니께서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2개월 동안 병간호를 해 주셨는데 집에 한 번도 못 가셨습니다. 퇴원수속을 하려고 창구를 가려던 차에 전보가 왔다고 간호사가 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전보였습니다. 퇴원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동네에 들어섰는데 위독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동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는 동안 식사는 거르시고 술만 드셨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메어 옵니다. 내가 왜 그렇게 철없이 살았는지 왜 그렇게 불효를 했는지 참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23살 되던 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생활도 평탄치 못해 딸 둘을 낳고 14년 만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리저리 혼자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작년에 남편 몰래 땅을 사려고 대출을 받으려다 사기를 당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제가 지은 죗값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정으로 진 빚을 갚으려고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옆 건물에 무속인이 들어왔습니다. 신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잘 맞춘다고 하여 점을 봤더니 작년보다 내년이 더 안 좋다고 굿을 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식당에 자주 오는 손님이 계셨는데 내가 사실 이야기를 전하니까 도장에 한번 나와서 수행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수행이 무엇인지, 도장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대답을 했습니다. 드디어 9월 1일부터 익산신동도장의 새벽수행에 참여를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도 이제는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저를 도장으로 인도해 주신 김윤순 포감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음 변치 않고 상제님의 딸로 거듭나서 끝까지 잘 믿고 따르며 올바르게 살겠습니다. 예전에 갖고 있던 모든 욕심과 허영을 다 버리고 아기처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어리석고 어리석은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상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조상선령신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도를 잘 닦아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보은 ◎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바로 세우다
윤은영(여, 35) / 청주우암도장 / 146년 음9월 입도
저는 중학교 교사로서 8년간 근무한 후, 두 딸을 낳아 현재 육아휴직 중입니다. 평소 중학교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면서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부분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모순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이 있기에 최선의 선택이란 없을 수도 있지만, 평소 뚜렷한 삶의 기준이 있다면 삶이 더 행복하고 평안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육아휴직 기간 중 지인의 권유로 작년 이맘때쯤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신의 말씀대로 인생을 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평소 알고 지내던 하민석 선생님으로부터 3권의 책을 받아 『생존의 비밀』부터 읽게 되었습니다.
하민석 선생님께서 카카오톡으로 보내 주신 여러 글들과 건내 주신 책을 읽고, 〈환단고기 북콘서트〉 동영상을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성경 공부를 하며 갖게 된 의문점을 해소하고 제가 배운 관점과 다른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며 이해의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그리고 증산도에 기존 종교를 초월하는 도道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증산도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참하나님을 만나고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자!! 참된 신앙을 하자!”는 선생님의 권유에 약 6개월 정도 지속해 오던 성경 공부를 중단하고 하 선생님과 도장에서 팔관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나올 때에는 친정 엄마께 둘째 딸을 맡기고 나와야 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공부해 오던 터라, 사실 공부하기 쉬운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장에서 공부할 때만큼은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집에서 거의 매일 아침마다 주문수행을 하고 배례를 올리며 기도드렸습니다. 주문수행을 할 때면 마음이 정화되고 삿된 기운이 사라짐을 느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상제님도, 태모님도, 조상님도 저와 저의 가족을 보살펴 주시고 저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계심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조상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신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가슴 속에 자리 잡으면서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육아에만 집중하면서 잃었던 나를 찾아가며, 삶의 풍요로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신사理神事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깨닫게 되면서, 평소 작은 일에도 걱정하고 근심하고 일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시나리오를 그리며 전전긍긍하던 저의 나쁜 습관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로 옆에서 저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앙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선생님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앞두고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지만, 아직 팔관법도 제대로 모르고 도전 또한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라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입도 후에도 ‘신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는 저의 소망대로, 일단 제대로 ‘신의 말씀’을 알고 공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에도 더 힘쓸 것입니다. 저부터 바르게 일어선 후, 우리 두 딸들이나 학교 현장에서 만나게 될 많은 제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훌륭한 엄마이자 훌륭한 교사로 거듭날 것입니다. 보은!!◎
[인도자 수기]“스치는 인연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기를
하민석(남, 37) / 녹사장, 청주우암도장
윤은영 도생을 처음 만난 곳은 제가 일하는 응급실이었습니다. 화상 치료 초진기록지를 떼러 응급의학과 외래에 왔었습니다. 당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순수하고 예의 바르고, 고마워할 줄 아는 태도. 보은의 심법을 온전히 갖춘 모습이 맘에 쏙 들었습니다. 자연스레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일꾼으로 반드시 키우리라.’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아 꾸준히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그로부터 7년. 그 사이에 전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었고, 중등 교사였던 윤 도생은 두 딸을 키우며 육아휴직 기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정성공부를 이어 오던 어느 날, 배례 기도 중에 결심이 섰습니다. ‘윤은영 도생을 이젠 도문에 들여야겠다.’ 올해 초 모처럼 만나 진리 서적 3권 『생존의 비밀』과 『다이제스트 개벽』 그리고 『한민족과 증산도』를 안겨 주었습니다. 때마침 성경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성경을 탐독한다며 진리에 사로잡힌 면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눈높이에 맞춰 그녀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고 진리 공부를 격려한 뒤,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한계를 압축적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곤 카카오톡을 통해 각종 자료와 도훈 말씀, 북콘서트 영상 등을 줄기차게 공유했습니다.
『생존의 비밀』부터 찬찬히 보고 있다던 어느 봄날,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성경 공부 막바지로 ‘요한계시록’에 돌입하는데, 약간 이상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녀를 훈육하던 단체는 신천지 교회였습니다. 도장에 방문했던 신천지 소속 상생방송 시청자를 통해 청주 지역의 그 교회 실태를 소상히 숙지하고 있었던 터라,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그 단체의 불의와 허상을 깨줄 수 있었습니다. 못 마친 성경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윤 도생에게 똑 부러지게 전했습니다. “이젠 도장에서 정식으로 무극대도를 공부하자. 참 하나님의 말씀과 행적을 탐구해 보자.” 팔관법 공부에 돌입하면서, 제가 매일 이어 가고 있는 천일 기도 수행법을 공유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윤 도생은 지극히 당연하게, 스스럼없이 정성공부를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 키우느라 짬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시간을 활용해서라도 수행 미션을 완수하는 일심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거의 매일 공유하는 태사부님 사부님 도훈에는 이런 반응을 보여주곤 합니다.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말씀을 전해 들을 때면, ‘어떻게 이런 말씀들을 하실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정말 도의 깊이가 깊으신 분 같아요. 감사해요.” 입도를 앞둔 윤은영 도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초립동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싶다는 포부를 다부지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 살릴 생자 공부를 통해 다시금 확신합니다. 상제님 진리의 완전무결한 절대성, 일심 정성의 무한한 조화권, 그리고 꾸준한 인맥 관리의 중차대함, 스치는 인연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인존 천지일월의 강력한 말씀을 일상 속에서 서슴없이 내어 쓰면 선천의 묵은 기운에 갇힌 참사람들을 얼마든지 새 생명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언제 어디서나 일꾼들을 지켜보시고 지켜 주시는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께 윤 도생의 초심을 빌어 감사 인사 올립니다. 보은!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