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의 꿈을 이루는 참일꾼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 135년 4월 3일, 증산도교육문화회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다시 한 번 대자연 질서가 순환무궁하며 둥글어가는 틀을 교육하려고 한다. 만유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대자연 질서 속에서 생성을 한다. 우주질서라 하는 것은 만유의 생명의 틀이 되기 때문에 모든 가지가 다 그 안에 들어있다. 그것을 앎으로써만 세상만사가 해결되기 때문에 이걸 얘기하는 것이다.
대우주 자연섭리에 의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천태만상이 표출된다. 천지의 목적이라 하는 것은 묶어서 춘생추살(春生秋殺)이다. 봄에는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는 길러서 가을철에는 매듭을 짓는다. 다시 말해 결실을 한다, 알캥이를 맺는다, 통일을 한다. 춘생추살,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열매기를 맺는 것, 그 춘생추살이 우주 질서가 둥글어가는 틀이다. 가을철에는 유형도 무형도 다 알캥이를 맺는다.
유형문화라고 할 것 같으면 기계문명, 물질문명 같은 것이고 무형문화라고 할 것 같으면 정신문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문화와 무형문화가 통일된 총체적인 결실문화, 이것을 위해서 천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다시 묶어서 상제님 말씀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때는 천지성공(天地成功) 시대다.”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는 말이다. “서신이 사명을 해서 만유를 지배해서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그 개벽은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사람 알캥이를 추리는 개벽이면서 또한 인류의 역사문화를 총체적으로 결실하는 개벽이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만유의 생명체 중에서도 주체가 된다. 사람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정기를 전부 다 타고 나서 만유의 생명을 지배한다. 심위만령지주(心爲萬靈之主)라. 사람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생장염장, 봄에는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는 기르고 가을철에는 결실을 하고 겨울에 가서는 폐장을 하고 다시 또 새봄이 오면 새싹을 낸다.
이 시대는 바로 하추교역기,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전 6만 4800년, 후 6만 4800년 해서 하추교역기,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다. 여름철에 초목이 만지편야(滿地遍野)해서 발 디딜 틈도 없이 풀뿌리가 무성해지는 것과 같이, 지금 이 지구상에 인종이 그렇게 많이 번식이 돼서 사람 살 땅이 모자라는 세상이다. 이제는 우주년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 때를 맞이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철 인간 추수기를 맞이했다. 상제님께서는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라고 하셨다. 천지의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농사를 짓는 것인데, 우주년의 봄철에 사람 씨를 뿌려서 여름철에 키워서 가을철에 참사람을 결실한다. 그것과 같이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짓는데, 이번에는 혈통 좋은 사람들의 후손들, 바르게 산 사람들의 자손들, 3천년, 4천년, 5천년 전 조상부터 자자손손 계계승승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서 바르게 산 사람들의 혈통만 추려진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한다.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하면서 내려 왔다. 그리고 천지이법이 봄여름 세상은 상극(相克)이 사배한 세상이다. 지구년도 우주년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상극의 역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이 하늘땅 사이에 가득히 찼다. 상제님께서 그걸 매듭을 지어서, 다시 말하면 해원을 시켜서 새 세상을 여셨다. 원신과 역신을 해원을 시키지 않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신명정부를 조직하셨다. 거기에서 앞 세상 둥글어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셨다. 바꿔서 말을 하면 조화정부를 짜셨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일이 상제님께서 신명정부, 조화정부에서 천지공사로 이 세상 둥글어가는 프로그램을 짜놓은 그대로만 표출된다.
우리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집행한 그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알 것 같으면 세계정세가 어떻게 둥글어간다는 것을 손금 보듯이 알 수가 있다. 글자 아는 사람이 글자로 표시한 것하고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봄여름 세상이라 하는 것은 상극이 사배한 세상이다. 봄여름은 공기도 덥다. 양(陽)의 세상이다. 하지만 가을겨울은 음(陰)의 세상이다.
봄여름은 양 세상이 돼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된다. 남자는 생겨먹은 것부터도 키도 크고 힘도 세다. 여자에게다 대면 강하고 우직하지 않은가. 그래서 삼양이음(三陽二陰)이다. 양이 음보다 하나 더 많고, 음이 양보다 하나 더 적다. 그러다 보니 상극이 사배해서 음은 양의 부속품밖에 안 됐다. 사람도 그렇잖은가.
헌데 가을겨울이라 하는 것은 음 세상이다. 음기가 많아서 음산하고 춥다. 양 기운이 음 기운한테 치인다. 삼음이양(三陰二陽)으로 뒤집어져 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만 되어진다. 싸움도 나가서 남자가 하고 여러 일도 남자가 하는데 여자가 우위가 된다. 또 여자들은 자연 키도 커진다. 진리가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존남비(女尊男卑)는 안 되고 남녀동권시대가 된다. 아녀자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남자의 권리를 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정도까지 된다.
지나간 선천 세상은 상극이 사배한 세상이고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상생의 세상이다. 선천에는 상극이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상생이다. 상극을 해원시켜서 앞으로 상생의 세상이 열려진다.
지금까지 발전한 인류문화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 모든 각색 부문이 다 분리돼 있다. 헌데 원 알캥이 진리라 하는 것은 하나인 문화권, 정치, 종교, 경제, 문화, 사회 등 각색 부문이 하나인 문화권에서 전부 표출되는 이른바 통일문화, 결실문화다.
가을이 되면 사람도 진짜 좋은 종자만 알캥이를 맺는다. 개벽철에는 좋은 씨종자, 그런 혈통만 살아남는다. 인류문화도 유형문화와 무형문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하나인 총체적인 통일문화권이 형성된다. 그 하나인 진리권 속에서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모든 것이 하나인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상제님 진리로 얘기하면 그게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이번 개벽을 하는 세상에는 상제님 진리권으로 살아남는다. 천지에서 개벽을 한다는 것은, 입에 붙이기가 흉하지만 상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천하창생의 생사, 60억 내지 70억 인구가 죽고 사는 것이 다만 증산 상제님을 믿는 신도들의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잘할 것 같으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잘못하면 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도 못 살 수도 있다.
상제님 진리로써 살고,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고, 상제님 세상이 된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셨기 때문에 하늘도 상제님의 하늘이요, 땅도 상제님의 땅이요, 사람도 상제님의 사람이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신 후부터는 이 세상은 상제님의 대이상향에서 둥글어간다.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모르든지 우주질서라 하는 것은 그렇게 짜여져 있다. 이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걸 꼭 알아야만 된다.
대우주 정신에서 볼 때 사람은 그저 만유의 생명체 중에서 주체가 되는 것뿐이다. 저를 위해 대우주 천체권, 우주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 자기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왔다가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만 된다.
다시 말을 하면 지천하지세자(知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생기(有天下之生氣)하고, 천하의 대세를 아는 자는 천하의 살아날 기운이 있고, 암천하지세자(暗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사기(有天下之死氣)라, 천하의 대세에 어두운 자는 천하에 죽는 도리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철을 모르면 죽는다. 철부지(節不知), 백 살을 먹었어도 철을 모르면 안 된다. 알기 쉽게 일 년에도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있고 또 소서(小暑) 대서(大暑)도 있잖은가. 철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때다.
천지에서 개벽을 하면 사람만 개벽을 하는 게 아니다. 문화도 개벽을 한다. 생활문화, 물질문화라 하는 것은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 편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헌데 물질문화라 하는 것은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단추 누르는 기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컴퓨터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또 휴대폰이 없는데 무슨 통화를 할 수가 있는가. 그건 다만 물질문명, 기계문명, 과학문명일 뿐이다. 그저 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문명일 뿐이다.
그러면 정신문화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위만령지주(心爲萬靈之主)하고,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령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신위음양조화지택(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몸뚱이라 하는 것은 천변만화를 하는 집이 되는 것이다. 사람 몸뚱이를 가지고 호풍환우도 하고 축천축지도 하고, 두 내외 잠자리를 하면 사람도 만들어 내고, 별스런 걸 다 할 수 있다. 이 몸이라 하는 것은 천변만화를 하는 집도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한다. 인류역사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해서 이렇게 물질문화가 발달을 했다. 정신문화의 극치라 하면 우리 증산 상제님 주문으로 묶어서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니 영세만년토록 만사 아는 것을 잊지 못한다’라고 하는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나오는 것이다. 가을철에 가야 그런 정신문화, 도통문화, 결실문화,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유형문화라 하는 것은 인간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정신문화라 하는 것은 백성도 자기가 백성 노릇할 만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 내가 “다음 세상의 틀은 군사부(君師父)”라고 했다. 상제님 세상, 다가오는 오만년 새 세상 둥글어가는 틀이 바로 군사부다. 상제님 진리로써 죽는 세상에,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세상에 살아남으니 상제님이 부모다. 죽는 세상에 살아남았으니, 그 절대자 상제님을 배반하라고 해도 배반을 하지 않는다. 또 배반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또 상제님 진리로써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됐으니 말할 것도 없이 상제님은 군주(君主), 황제다. 상제님 진리를 신앙하고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사니 천지이치로써 정해진 군사부다. 후천 오만 년 동안 군사부 문화의 틀을 벗어나려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금 세상은 정치체제로 말하면 민주주의다. 헌데 그걸 벗어나려고 “더 좋은 거 없나?” 하고 찾았지만, 여태까지 발전한 게 민주주의다. 내가 먼저도 한번 얘기했지만 민주주의는 2,500여 년 전부터도 있는 것이다. “천하는 천하지천하(天下之天下)요 비일인지천하(非一人之天下)라. 천하는 천하 사람의 천하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세상 사람의 세상이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세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상은 좋았다. 그러나 이론만 그렇지 세상이 그렇게 허용을 안 했다. 통제경제와 시장경제, 그 두 체제가 양존을 하다가 통제경제보다는 시장경제, 자유경제체제가 더 좋았던 모양이다. 헌데 그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도 흠이 그렇게 많다. 부익부빈익빈. 그러다보니까 경제전쟁 세상이 됐다. 국제경제라는 것도 경제전쟁이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수출을 해야 자국민이 잘 산다. 헌데 나라든, 개인이든 부익부빈익빈 해서 경제망으로 옭아매고, 또 노동력도 착취한다.
앞으로 상제님 세상은 군사부라는 틀 속에서 살아간다. 무슨 부패하고, 억강부약(抑强扶弱)을 하는 게 전혀 없다. 산무도적(山無盜賊)하고, 산에는 뭘 뺏어가려고 하는 도둑놈이 없고, 야불습유(野不拾遺)하고, 들에는 흘린 것을 주워가지 않는다. 먹을 게 풍부하고 입을 게 풍부해서 제 것도 주체를 못 하는데, 그런 걸 주워다가 뭘 하겠는가.
이번 개벽을 할 때에 틀이 한번 짜지면, 그 틀 짜진 그대로 후천 오만년 세상을 내려간다. 참 너무 심하다고나 할까? 헌데 어째서 그러냐? 천지이법이라는 것이 가을에 열매 맺을 때 한 번 결실을 하면 그만이다. 또 결실은 두고 두고 하는 게 아니다. 10월 달에도 결실하고, 동짓달에도 결실하고, 섣달에도 결실하는 게 아니다. 가을철, 득신(得辛)철에 결실을 못하면 영원히 열매를 못 맺는다. 30% 여무는 놈도 있고, 50% 여무는 놈도 있고, 70% 여무는 놈, 또 빈 쭉정이만 되는 놈도 있다. 빈 쭉정이, 빈집만 지어놓은 걸 학술용어로 태세(太歲)라고 한다. 클 태(太) 자, 콩 태(太) 자, 해 세(歲) 자.
예를 들어 콩깍지만 만들어놓고 알캥이는 없는 놈이 있다. 그걸 태세라고 한다. 쌀도 겉껍데기, 왕겨를 태세라고 한다. 알캥이 없는 껍데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실을 하는 것은 제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생물이라면 천지에서 다 결실을 시켜준다. 불모이동(不謀而同)으로 자기가 결실하고 싶지 않아도 그냥 결실을 시켜준다. 대자연 섭리, 대자연의 이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대자연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다 이루어지도록 하나도 빠짐이 없이 균등한 기회를 준다. 그렇게 천리라 하는 것은 지공무사하다. 지극히 공변되고 절대로 사(私)가 없다. 만유의 생명체는 다 제 필요에 의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바늘보다도 더 작은 풀도 씨가 있다. 천년 전도, 만년 전도 지금까지도 그 풀도 알캥이, 종자를 여물어서 명년에 또 그것이 생겨난다. 그게 바로 대자연의 질서요 이법이다.
천지의 이법이라는 것은 그걸 위해서 생장염장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둥글어간다. 봄에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 기르고, 가을철에는 매듭을 짓고, 겨울에는 폐장을 하고, 새봄이 오면 다시 또 새싹이 난다. 생장염장, 그걸 밑바탕으로 해서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천년도 만년도 십만년도 그렇게 둥글어간다.
“세상이야 어떻게 됐든지 나는 안 죽는다. 천지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그런 망령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이 대우주 천체권, 자연질서, 자연이법이 둥글어가는 데에 따라 그저 더불어 그 이치 속에서 왔다가는 것이다. 내가 늘 말을 했지만 승평시대, 편안한 세상, 봄여름이 둥글어 갈 때 같으면 신앙생활을 안 해도 괜찮다. 오히려 속박당하지 않으니까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허나 지금은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 금화교역기, 화운(火運)에서 금운(金運)으로 넘어가는 때다. 이 때 일어나는 개벽은 그 무엇으로써도 피할 수 없다. 천지대도가 그렇게 둥글어가는 데 무슨 도리가 있는가.
그때는 천지를 개벽하는 우주의 주재자, 절대자, 천계와 지계와 인계를 마음대로 주재할 수 있는 절대자께서 인간으로 오신다. 그분이 누구냐. 예수가 얘기한 ‘내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 사도요한이 얘기한 ‘백보좌 하나님’, 묶어서 기독사회에서 말한 그 하나님이 바로 그분이다. 또 불가 석가모니는 3천여 년 전에 “내가 아닌 미륵이 온다.”고 했다. 또 유가에서는 옥황상제를 찾았다. 그렇게 각색 종교에서 ‘하나님, 백보좌 하나님, 미륵님, 옥황상제님’을 찾았는데, 바로 그 분이 결실철에 매듭을 짓는 절대자, 주재자를 말한 것이다. 개벽철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절대자가 오시게 되어져 있다.
헌데 마테오 리치 신부가 유불선의 어느 성자보다도 가장 공이 많은 절대자다. 그분은 또 격으로도 그 중 나았던 분이다. 그분이 인간세상을 위해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든지 사람 사는 데에 좀 도움을 주자.”라는 생각을 하고, 천상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별짓을 다 해 봐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역사적인 신성 불보살들을 전부 찾아다니면서 상의를 해 봐야 아무런 방법이 없다. 많은 회의도 해봤을 것 아닌가. 그래서 역사적인 신성 불보살들을 불러 모아 하늘나라에 계신 주재자, 절대자, 옥황상제, 백보좌 하나님, 미륵님에게 등장을 해서, “우리 능력으로써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 당신께서 친히 지상에 내려오셔서 이 세상을 상제님의 대이상향에 따라 요리를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오기는 싫지만, 리치신부가 신성 불보살들을 전부 거느리고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하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오게 됐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나간 우주년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오는 다음 우주년도 그렇다. 천지가 둥글어가는 절대이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알기 쉽게 초목농사를 짓는 지구년도, 작년도, 5년 전도, 10년 전도, 앞으로 10년 후도, 5년 후도, 백년 후도 역시 그렇게 금년과 같이 둥글어간다. 대자연의 질서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천지를 상징해서 제각기 생겨져 있는 것이다. 다만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이 오행정기를 각기 달리 타고 났다는 것만 다르다.
알기 쉽게 예를 들면 ‘소’는 북방 수기를 타고 성질이 느긋하다. 음양오행으로 볼 때 소는 음이다. 그래서 성질도 느긋한 것이다. 양은 하나고 음은 두 쪽이다. 소의 발을 보면 주먹 두 개를 합한 것하고 같다. 소는 북방 수기를 타고 났기 때문에 그렇다. 헌데 말은 남방 삼이화(三離火) 정기를 타고 나서 발굽이 통굽이다. 말의 성질이 얼마나 급한가? 잠도 서서 잔다. 말은 양(陽)이다. 화기를 타고 나서 양이다.
그러고 개는 서방 금기(金氣)를 타고 나서, 개국은 아무리 뜨겁게 먹어도 목이 데이지 않는다. 개국을 먹다가 목구멍을 데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목병, 인후, 목젖이 있잖은가. 그 목젖이 붓거나 염증이 생기면 개기름을 자글자글 끓여서 그놈으로 지져버린다. 딴 걸로 그렇게 하면 목젖에 화상이 생겨 큰일 난다. 하지만 개기름으로 지지면 낫는다. 삼복(三伏) 더위에는 으레 개국을 먹는다. 왜? 개국의 성질은 차가운 거니까, 퇴서(退署)를 하느라고 그런다. 더워서 헐떡거리는데 개국을 먹으면 퇴서를 한다. 그렇게 개는 서방 금기를 타고 났다.
초목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나무 같은 것은 양 기운을 타고 나서 이파리가 세 이파리 아니면 다섯 이파리다. 헌데 저 소나무 같은 것은 꼭 솔잎이 요렇게 두 개씩 붙어가지고 있다. 여태 그걸 모르는 사람은 내일쯤 가서 솔잎 좀 한번 따서 확인해 봐라. 그거 다 자세히 얘기하려면 한도 없다. 이렇게 음양오행 원리를 떠날 것 같으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 물질문명에만 의존해서 사는 세상을 내가 조금 평할 테니 들어 보아라. 우선 사람을 다루는 의사들은 엑스레이에 사진에 표출되는 걸 봐야 진단을 한다. 지구상에 있는 의학박사들, 아마 수십만 명은 될 텐데, 그 사람들 중 음양오행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직종이 무엇이든 사람이라면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라고 하는 건 알아야 될 것 아닌가. 그걸 모르면 얘기가 안 된다.
왜 그런가. 그건 음양오행 원리의 아주 기본이다. 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이 음양의 이치를 떠날 수 없다. 하나 예를 들어서, 수컷은 자지가 이렇게 한쪽으로 되어져 있다. 사람도 그렇고, 소도 말도 다 그렇다. 저 기어 다니는 곤충도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하지만 암컷의 음부는, 사람이든 소든 돼지든 개든, 짝수로 되어져 있다. 그래서 홀수는 양수(陽數)고, 이 짝수 우수(偶數)는 음수(陰數)다. 홀수 짝수, 이게 바로 음양이다. 그게 천지이치다. 그건 꼭 알아야 되는 것이다. 이 학문, 지식이라 하는 것이 동서양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진리의 뿌리가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다. 이걸 모르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왜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느냐? 또 어째서 금화교역, 하추교역을 할 때는 개벽이 일어나느냐? 이걸 꼭 알아야 된다.
그런데 이걸 알고서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인간 세상에는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들 않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나를 만나려 할 것 같으면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 전생(前生)과 이 세상을 사는 현생(現生)과 앞으로 오는 내세(來世),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하셨다. 또 “나를 만나려면 조상부터 위해라. 조상의 음덕으로써 나를 만나게 된다.”고도 하셨다.
다시 말해서 “적덕가(積德家)의 자손이 들어왔다가 나가려 할 것 같으면 ‘너는 여기를 떠나면 죽느니라.’ 하고 뒤통수를 쳐서 집어넣고, 적악가(積惡家)의 자손이 들어오면 ‘너는 여기 못 있을 데니라.’ 하고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라고 하셨다.
여러 천년을 내려오면서 그 조상들과 같이 한 세상을 산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 때 사회생활을 좋지 않게 한 사람들, 남을 못살게 하고 남의 것 빼앗고 갖은 못된 짓을 하던 사람들에게 해악을 당한 신명들이 “네 조상 몇 대 조 할아버지, 몇 대 조 할머니가 이렇게 내게 몹쓸 짓을 했다. 네까짓 놈이 어떻게 개벽 세상에 살아남으려고 하느냐.”하고 쫓아내 버린다. 그렇게 척신에 걸려서 쫓겨나고 만다.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적덕가의 자손이 들어왔다가 나가려 할 것 같으면, 그네들의 조상들과 한 세상을 좋게 산 신명들이 “너는 여기 떠나면 죽는다. 그러니까 못 나간다.” 하고 옹호를 해서 못 나가게 감싸준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불의를 뿌리 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진리다.
이번에는 천지도 그렇고, 각개 인간도 그렇고 전부 마무리를 해서 후천 새 세상이 열린다. 다행히도 상제님 진리를 만나 살아서 앞 세상으로 넘어갈 것 같으면, 후천 오만 년 행복을 구가해 가면서 자자손손 전지자손해서 잘살 수가 있다.
그 세상은 다만 일방적으로 좋기만 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는 그른 것이라고는 전혀 있들 않다.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무슨 선거를 하고 그런 것도 없다. 이번에 한 번 정해지면 오만년 동안 그 틀 짜진 그대로만 둥글어간다. 이런 걸 얘기하면 안 되지만 천지이법이기 때문에 한마디 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가을에 알캥이를 맺을 때, 결실할 때 한 번 결실되면 더도 덜도 없다. 알캥이가 많이 여물어졌다고 거기서 덜어내는가. 아니면 알캥이가 덜 맺어졌다고 거기다가 더 보태지는가. 그건 덤도 안 되고 덜어내지도 못하고, 한 번 틀로 짜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
후천에는 유형문화 무형문화가 합일된 종극적인 극치의 문명이 열린다. 온 인류가 마칠 종(終) 자, 극진 극(極) 자, 극치의 문명을 구가한다. 태모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은 상수(上壽)는 천이백 살을 살고, 중수(中壽)는 구백 살을 살고, 암만 일찍 죽는 하수(下壽)라도 칠백 살을 산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오래 산다. 왜 천이백 살만 사는가. 딴 얘기로 하면 못 알아들을 테니, 요새 줄기세포 같은 것 연구하는 걸 봐라. 그 학자들이 줄기세포를 키워서 거기다 씨만 던져놓으면, 그놈이 커져서 간(肝)도 새로 생겨나고, 폐(肺)도 새로 생겨나고, 이빨도 새로 생긴다. 백발(白髮)이 환흑(換黑)하고 낙치(落齒)가 부생(復生)이라. 흰 터럭이 다시 새까매지고 빠진 이빨이 새로 난다. 그런 건 어제 오늘 하는 말도 아니다.
하니까 앞으로는 인간의 수명도 무제한이 된다. 그렇게 참 오래오래 산다. 무슨 신문쟁이 같은 것도 지금처럼 필요하지 않다.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열려 다 알아버리는데 그게 필요하겠는가.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좋은 세상이 된다.
그동안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번에 부귀영화가 다 아주 정해져 버린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에 한꺼번에 매듭, 결실을 하고서 만다. 한마디로 묶어서 이번에 오만 년 결실을 하는 것이다. 앞 세상에서는 부귀영화를 탐내야 되어지지도 않는다. 또 앞 세상에는 반역이라는 게 없다. 반역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반역을 하고 싶어도 되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신체, 이 오장육부(五臟六腑)는 이 대우주 천체권을 상징해서 생겨져 있다. 이렇게 누워서 눈감고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이 지구상에는 산소라는 게 있다. 그 산소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유 생명이 산소가 없으면 다 죽어버린다. 이걸 적응해서 만유의 생명체가 다 생겨났다.
헌데 사람은 이 지구에서 산소 호흡을 하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가. ‘호출(呼出)은 심여폐(心與肺)요’ 후~ 하고 이렇게 숨을 내쉬는 것은 심장과 폐장이 하는 것이고, ‘흡입(吸入)은 신여간(腎與肝)이라’ 흡~ 하고 들이 숨을 쉬는 것은 신장과 간장이 한다.
위(胃)는 신지구(腎之口)요, 위라 하는 것은 신장의 입이요, 신(腎)은 위지근(胃之根)이라, 신장이라 하는 것은 위의 뿌리다. 이 오장육부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렇게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이 짜여져 있다.
우리 인간은 초 단위로 들이쉴 숨, 내쉴 숨을 쉬는, 그 호흡을 역동적으로 해야 생명체를 유지하게 되어져 있다. 사람이 그걸 계획해서 하려면 귀찮아서도 안 되니까, 저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그냥 열리고 닫히고, 열리고 닫히게 그렇게 되어져 있다. 간심비폐신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있다. 자면서도 들이쉴 숨 쉬고, 내쉴 숨 쉰다. 또 누구하고 얘기하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자동적으로 호흡이 되어진다.
생물체는 이것은 부정을 못 하잖는가. 또 부정할 필요도 없잖은가. 그걸 부정하려면 숨을 안 쉬려고 코 틀어막고 입 틀어막아야 되는데, 그러면 어려웁고 종국적으로는 죽는 수밖에 없다.
헌데 누구도 죽으려고 하지 않잖는가. 후천 세상에 반역을 하면 “나는 군사부(君師父) 제도가 싫다. 나는 군(君)도 싫고 부(父)도 싫고 사(師)도 싫다. 이놈의 군사부 세상, 그 틀이 난 싫다.” 하고 부정을 하는 것인데, 그건 사람이 호흡을 하지 않겠다고, 숨을 안 쉬겠다고 “들이쉴 숨도 내쉴 숨도 싫다.”고 거부하는 것하고 같다.
앞 세상은 말로써 그 좋은 것을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좋은 세상이다. 그냥 150% 그냥 좋기만 한 세상이다. 거짓말 같이 좋은 세상이다. 그 세상은 지구가 전부가 다 꽃동산이 돼 버린다. 그렇게 행복을 구가하면서, “과연 좋구나.” 하고 전지자손 해가면서 오만년 동안 그런 세상을 산다.
그것을 묶어서 지상선경이라고 한다. 할 일이 없으니까 지구를 꽃동산으로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이기어 다 먹을 수도 없고, 또 의복이 너무 많아서 이기어 다 입을 수 없는 현실선경이다. 지구상이 그렇게 아름다웁고 좋은 세상이 된다. 집 짓는 걸로 말하면 지구를 다 전부 좋게 조경을 한다. 앞 세상은 그런 지상선경, 현실선경이다.
또 사람이 다 도통을 해서 호풍환우(呼風喚雨)하고 축천축지(縮天縮地)하는 조화선경이 된다. 그 세상은 양심을 속이는 사람도 없다. 양심을 속이면 그 사람은 그 세상에서 끝이 나고 만다. 서로 다 환하게 같이 알아서 아는 것을 만인이 공유를 한다. 서로 다 같이 알아버리니까, 양심을 속이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속이려고도 않는다.
천지의 목적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의 결론적인 목적, 생장염장이라는 틀 속에서 천지가 종국적으로는 그런 결실을 맺는다. 우주원리의 결론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 매듭정신을 “그만하면 알겠습니다.” 하는 신도들 손 좀 들어봐라. 이렇게 매듭이 지어지지? (예)
그게 우주정신이다. 자연이법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게 되어져 있다. 대우주 천체권이라 하는 것은 그걸 거듭한다. 다음 우주년도 또 마찬가지다. 지구년이 작년도, 금년도, 명년도, 5년 전도, 5년 후도 똑같은 방법으로 주이부시해서 천년 만년 그것을 거듭하듯이, 우주년도 사람농사를 짓는데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렇게 알면 더도 덜도 없다. 그러면 증산도 지도자는 그 세상을 살아봤냐? 지나간 세상도 살아봤냐? 그런 반문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 건 다만 따지개질 하기 위한 추궁일 뿐이다. 지구년에서는 누구도 다 같이 작년을 살아봤잖은가. 또 5년 전도, 10년 전도 작년과 똑같지 않았는가. 그것과 같이 금년도 작년과 같을 게고, 5년 후도 역시 같을 게다. 그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건 누구도 다 수긍할 것 아닌가. 천지의 이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건 머리털만큼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하추교역기에는 누가 부정을 하든 말든, 알고 모르고 간에 천지에서 개벽을 한다. 그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 세상 둥글어가는 걸 강증산 상제님이 짰다는 건 어떻게 인정을 하는가.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처음 쫓아온 사람이라도 한 10시간이나 스무 시간은 누구도 다 공부를 했을 것이다. 이건 거짓이 없는 우주원리, 천지가 둥글어가는 이법이다. 그 동안에 산 경험으로 해서도 그렇고, 지혜로 해서도 그렇고, 무엇으로든지 이건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그건 누가 속이려야 속일 수도 없다.
이 세상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서 틀을 짜 놓은 그대로, 머리털만큼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둥글어간다. 나는 왜 그런지 상제님 진리를 그렇게 무섭게, 뜨겁게 조르르 꿰고 있다. 그건 그렇게만 되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나간 세상의 역사 재료를 가지고 “앞 세상 둥글어가는 틀을 짜거라.”라고 하면, 누구에게 맡겨도 상제님께서 틀 짜놓은 그대로밖에는 안 된다. 그게 지극히 다 한 설계다. 지의진의(至矣盡矣)다. 그 재료를 가지고서는 그렇게 설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설계를 해야 그 신명들이 해원을 한다. 한마디로 상제님 진리는 바로 우주원리요, 우주원리가 상제님 진리다.
또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 그대로를 신앙을 해야 된다. 진리대로 신앙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믿을 게 없다. 이번에는 상제님께서 우주원리를 집행하셨다. 다시 말해서 대자연의 조화정부, 생장염장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해서 천지조화를 잡아 돌리는 이법, 그게 바로 상제님의 진리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천지의 대역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신앙을 해라. 천지는 말도 없고 수족도 없잖은가. 상제님께서 틀을 짜놓으시고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일을 맡기셨다.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모사,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설계해서 틀을 짜놓으시고, 그걸 집행하는 것은 신도에게 맡기셨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틀을 짜 놨으니 너희들은 요렇게 집행을 해라.” 하고.
그럼 어떻게 집행을 하느냐. 아까도 내가 말을 했지만, 상제님께서는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추려야 되지 않겠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가을 숙살지기가 내리쳐서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듯하게 다 죽인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구 일 년의 초목개벽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매듭지어 놓고, 알캥이를 여물어 놓고, 결실을 해놓고서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다 죽여 버린다.
천하창생이라고 할 것 같으면 65억 인류를 말하는 것이다. “65억 인류의 생사가, 65억 인류를 살리고 죽이고 하는 것이, 아무런 방법이 없고, 다만 나를 믿는 신도,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차차소자(嗟嗟小子) 경수차서(敬受此書)하라.” ‘이 어린 소자들아, 조심스레 나의 명령을 받으라. 내 말을 잘 받들어라.’라는 말씀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절규(絶叫), 끊어질 절(絶) 자, 부르짖을 규(叫) 자, 절규. 입 구(口) 옆에 말 두(斗) 하면 부르짖는다는 규(叫) 자다. 그런 절규를 하셨다.
사람이라면, 신앙을 하는 신도라면, 돈도 좋고 지위도 좋고 세상에 참 좋은 것도 많을 테지만,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이때에 사람 살리는 것 그 이상 무엇이 있는가.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 말씀을 안 믿는다? 우주를 주재하신 상제님의 대이상향에서 요리한 그 진리를 안 믿는다? 그러면 무엇 하러 이 자리에 있는가.
증산도 종도사는 다만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할 뿐이다. 천지가 여름과 가을을 바꾸는, 천지질서가 판을 달리하는 이때에 상제님을 신앙하는 건 인류역사를 바꾸는 일이 아닌가.
이번에는 물건을 내서 키우는 봄여름의 질서가 종식되고, 열매를 맺어서 폐장하는 가을겨울 질서로 바꿔진다. 상극의 세상에서 상생의 세상으로 질서가 바꿔진다. 상극의 세상을 종식하고 상생의 새 세상이 열린다.
선천 세상은 상극 세상이어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도 다 천부적으로 자유를 향유하면서 한 세상을 살려고 태어났다. 헌데 자기 몸뚱이를 가지고 자기 자의대로 살아본 사람이 없다. 타의에 의해서 전쟁에 끌려 나가고, 타의에 의해서 망하고, 타의에 의해서 잘못 살고 말았다.
하지만 앞 세상은 상생의 세상이다. 누구나가 다 행복을 구가하고 안락을 구가하고 안녕질서를 구가하는 그런 무제무한 좋은 세상이다.
상제님을 잘 믿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죽는 세상에 살아남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써 남도 살려줘라. 상제님 말씀과 같이 “공(功) 중에 가장 큰 공은 천지에 쌓는 그 공이 가장 크다.” “장사는 뿌리장사가 가장 이(利) 남는다.” 상제님 사업은 후천 오만년 복을 구하는 일이다. 자기 양심에 호소해서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천지이법은 공명정대한 것이다. 남의 팔매에 밤 주워 먹으려고 해도 안 되고, 또 자기가 쌓은 공을 누가 뺏어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진리는 무슨 밑천 가지고서 하는 것도 아니다. 밑천은 오직 일심이다. 일심!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다.” 일심에 호소를 해라. 아까 내가 집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서 증언자 몇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다 일심이다. 상제님 말씀으로도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천추에 혈식을 받는 그 혈식군자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에 혈식을 받을 수가 있냐’ 하고서 물어보니까 그 신명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일심에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또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내가 천하의 복록을 가졌으나 일심 가진 사람이 적어서 태워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니 일심 가진 자만 나타날 것 같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고루 태워준다.”는 그런 말씀도 하셨다. 일심! 다시 말해서 성경신(誠敬信)! 잘살고 못사는 것도 성경신이요,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성경신에 달려 있다. 부귀영화, 수명과 복록이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믿느냐’ 하는 성경신, 일심에 매여 있다. 그 정성, 그 일심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만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세상만사가 전부 다 일심기운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일심이 없이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나? 일심!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심야자(心也者)는 대어천지(大於天地)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천지보다도 크다.”고 하셨다. 천지와 동참을 하는 게 바로 일심이다.
상제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 전만고의 참하나님이요 후만고의 참하나님이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오직 한 분이신, 대우주 천체권을 지배하시는 그런 절대자, 참하나님이다. 지나간 세상의 참하나님이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참하나님이다. 그런 참하나님을 잘 믿어서 개벽하는 세상에 살고, 더불어 남도 좀 살려줘라. “나 살고 남 산 그 뒷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 이게 바로 참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해서 전지자손해서 후천 오만 년 세상 행복을 구가해 가면서 잘 살라는 덕담을 내가 하는 것이다. 억지로 강권하는 것도 아니다. 싫으면 그만둬라.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우리 일은 잘살고 복 받고,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일, 하늘땅 생긴 이후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전만고에도 이렇게 크고 비전 많은 일이 없었고, 후만고에도 이렇게 크고 비전 많은 일이 없다. 우리 상제님 사업은 하늘땅 생긴 이후로 하늘땅이 마칠 때까지 금번 우주년에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운유기운(運有其運)하고 시유기시(時有其時)하고 인유기인(人有其人)이라.” 운은 그 운이 있고 때는 그 때가 있고 사람은 그 사람이 있다. “그 운 그 때 그 사람이 돼서 바로, 하나님이 재사모사를 해서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이루는 바로 그때 그 사람, 천지를 대신하는 그런 역군, 그런 절대자가 돼서 복 받으라.”는 말이다. 이상.
[말씀요약] 만유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대자연 질서 속에서 생성을 한다.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열매기를 맺는 춘생추살春生秋殺이 우주 질서가 둥글어가는 틀이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철 인간 추수기를 맞이했다. 천지의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농사를 짓는 것인데, 우주년의 봄철에 사람 씨를 뿌려서 여름철에 키워가지고서 가을철에 참사람을 결실한다. 이번에는 혈통 좋은 사람들의 후손들, 바르게 산 사람들의 자손들만 추려진다. 인류문화도 유형문화와 무형문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하나인 총체적인 통일문화권이 형성되는데 그게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상제님 진리로써 개벽을 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니 상제님이 부모이고, 상제님 진리로써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됐으니 상제님은 군주君主이며, 상제님 진리를 신앙하고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사니 상제님이 스승도 되는 것이다. 이번 개벽을 할 때에 틀이 한번 짜지면, 그 틀 짜진 그대로 후천 오만년 세상을 내려간다. 이번에는 자기가 결실하고 싶지 않아도 천지에서 그냥 결실을 시켜준다. 이번에 매듭, 결실을 하는데 한꺼번에 되고서 만다. 한마디로 묶어서 이번에 오만년 결실을 하는 것이다. 우주원리의 결론, 천지의 목적, 자연이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번 하추교역기에는 누가 부정을 하든 말든, 알고 모르고 간에 천지에서 개벽을 한다. 이 세상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서 틀을 짜놓은 그대로, 머리털만큼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둥글어간다. 그러니까 상제님 진리는 바로 우주원리요, 우주원리가 상제님 진리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 그대로를 신앙해야 된다. 진리대로 신앙을 하지 않으려 할 것 같으면 믿을 게 없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가 천지의 대역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신앙을 해라. 천지는 말도 없고 수족도 없잖은가.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상제님께서 틀을 짜놓으시고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일을 맡기셨다.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이때에 사람 살리는 것 그 이상이 무엇이 있는가. 천지가 여름과 가을을 바꾸는, 천지질서가 판을 달리하는 이때에 상제님을 신앙하는 건 인류역사를 바꾸는 일이 아닌가. 상제님을 잘 믿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죽는 세상에 살아남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써 남도 살려줘라. 자기 양심에 호소해서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천지이법이라는 것은 공명정대한 것이다. 밑천은 오직 일심이다. 다시 얘기해서 성경신誠敬信! 잘살고 못사는 것도 성경신이요,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성경신에 달려 있다. 부귀영화, 수명과 복록이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믿냐’하는 그 성경신, 일심에 매여 있다. 그 정성, 그 일심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만사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천지와 동참을 하는 게 바로 일심이다. 우리 상제님 사업은 하늘땅 생긴 이후로 하늘땅이 마칠 때까지 금번 우주년에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하나님이 재사모사를 해서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이루는 바로 그 때 그 사람, 천지를 대신하는 그런 역군, 그런 절대자가 돼서 복을 받으라.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 그대로를 신앙해야 된다. 진리대로 신앙을 하지 않으려 할 것 같으면 믿을 게 없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가 천지의 대역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신앙을 해라. 천지는 말도 없고 수족도 없잖은가.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상제님께서 틀을 짜놓으시고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일을 맡기셨다.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이때에 사람 살리는 것 그 이상이 무엇이 있는가. 천지가 여름과 가을을 바꾸는, 천지질서가 판을 달리하는 이때에 상제님을 신앙하는 건 인류역사를 바꾸는 일이 아닌가. 상제님을 잘 믿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죽는 세상에 살아남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써 남도 살려줘라. 자기 양심에 호소해서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천지이법이라는 것은 공명정대한 것이다. 밑천은 오직 일심이다. 다시 얘기해서 성경신誠敬信! 잘살고 못사는 것도 성경신이요,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성경신에 달려 있다. 부귀영화, 수명과 복록이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믿냐’하는 그 성경신, 일심에 매여 있다. 그 정성, 그 일심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만사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천지와 동참을 하는 게 바로 일심이다. 우리 상제님 사업은 하늘땅 생긴 이후로 하늘땅이 마칠 때까지 금번 우주년에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하나님이 재사모사를 해서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이루는 바로 그 때 그 사람, 천지를 대신하는 그런 역군, 그런 절대자가 돼서 복을 받으라.
우주질서가 둥글어가는 틀, 춘생추살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다시 한 번 대자연 질서가 순환무궁하며 둥글어가는 틀을 교육하려고 한다. 만유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대자연 질서 속에서 생성을 한다. 우주질서라 하는 것은 만유의 생명의 틀이 되기 때문에 모든 가지가 다 그 안에 들어있다. 그것을 앎으로써만 세상만사가 해결되기 때문에 이걸 얘기하는 것이다.
대우주 자연섭리에 의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천태만상이 표출된다. 천지의 목적이라 하는 것은 묶어서 춘생추살(春生秋殺)이다. 봄에는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는 길러서 가을철에는 매듭을 짓는다. 다시 말해 결실을 한다, 알캥이를 맺는다, 통일을 한다. 춘생추살,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열매기를 맺는 것, 그 춘생추살이 우주 질서가 둥글어가는 틀이다. 가을철에는 유형도 무형도 다 알캥이를 맺는다.
유형문화라고 할 것 같으면 기계문명, 물질문명 같은 것이고 무형문화라고 할 것 같으면 정신문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문화와 무형문화가 통일된 총체적인 결실문화, 이것을 위해서 천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다시 묶어서 상제님 말씀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때는 천지성공(天地成功) 시대다.”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는 말이다. “서신이 사명을 해서 만유를 지배해서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그 개벽은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사람 알캥이를 추리는 개벽이면서 또한 인류의 역사문화를 총체적으로 결실하는 개벽이다.
이때는 인간 추수기
사람이라 하는 것은 만유의 생명체 중에서도 주체가 된다. 사람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정기를 전부 다 타고 나서 만유의 생명을 지배한다. 심위만령지주(心爲萬靈之主)라. 사람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생장염장, 봄에는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는 기르고 가을철에는 결실을 하고 겨울에 가서는 폐장을 하고 다시 또 새봄이 오면 새싹을 낸다.
이 시대는 바로 하추교역기,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전 6만 4800년, 후 6만 4800년 해서 하추교역기,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다. 여름철에 초목이 만지편야(滿地遍野)해서 발 디딜 틈도 없이 풀뿌리가 무성해지는 것과 같이, 지금 이 지구상에 인종이 그렇게 많이 번식이 돼서 사람 살 땅이 모자라는 세상이다. 이제는 우주년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 때를 맞이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철 인간 추수기를 맞이했다. 상제님께서는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라고 하셨다. 천지의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농사를 짓는 것인데, 우주년의 봄철에 사람 씨를 뿌려서 여름철에 키워서 가을철에 참사람을 결실한다. 그것과 같이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짓는데, 이번에는 혈통 좋은 사람들의 후손들, 바르게 산 사람들의 자손들, 3천년, 4천년, 5천년 전 조상부터 자자손손 계계승승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서 바르게 산 사람들의 혈통만 추려진다.
앞 세상 둥글어가는 이정표, 천지공사
사람이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한다.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하면서 내려 왔다. 그리고 천지이법이 봄여름 세상은 상극(相克)이 사배한 세상이다. 지구년도 우주년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상극의 역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이 하늘땅 사이에 가득히 찼다. 상제님께서 그걸 매듭을 지어서, 다시 말하면 해원을 시켜서 새 세상을 여셨다. 원신과 역신을 해원을 시키지 않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신명정부를 조직하셨다. 거기에서 앞 세상 둥글어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셨다. 바꿔서 말을 하면 조화정부를 짜셨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일이 상제님께서 신명정부, 조화정부에서 천지공사로 이 세상 둥글어가는 프로그램을 짜놓은 그대로만 표출된다.
우리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집행한 그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알 것 같으면 세계정세가 어떻게 둥글어간다는 것을 손금 보듯이 알 수가 있다. 글자 아는 사람이 글자로 표시한 것하고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상극에서 상생의 세상으로
봄여름 세상이라 하는 것은 상극이 사배한 세상이다. 봄여름은 공기도 덥다. 양(陽)의 세상이다. 하지만 가을겨울은 음(陰)의 세상이다.
봄여름은 양 세상이 돼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된다. 남자는 생겨먹은 것부터도 키도 크고 힘도 세다. 여자에게다 대면 강하고 우직하지 않은가. 그래서 삼양이음(三陽二陰)이다. 양이 음보다 하나 더 많고, 음이 양보다 하나 더 적다. 그러다 보니 상극이 사배해서 음은 양의 부속품밖에 안 됐다. 사람도 그렇잖은가.
헌데 가을겨울이라 하는 것은 음 세상이다. 음기가 많아서 음산하고 춥다. 양 기운이 음 기운한테 치인다. 삼음이양(三陰二陽)으로 뒤집어져 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만 되어진다. 싸움도 나가서 남자가 하고 여러 일도 남자가 하는데 여자가 우위가 된다. 또 여자들은 자연 키도 커진다. 진리가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존남비(女尊男卑)는 안 되고 남녀동권시대가 된다. 아녀자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남자의 권리를 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정도까지 된다.
지나간 선천 세상은 상극이 사배한 세상이고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상생의 세상이다. 선천에는 상극이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상생이다. 상극을 해원시켜서 앞으로 상생의 세상이 열려진다.
지금까지 발전한 인류문화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 모든 각색 부문이 다 분리돼 있다. 헌데 원 알캥이 진리라 하는 것은 하나인 문화권, 정치, 종교, 경제, 문화, 사회 등 각색 부문이 하나인 문화권에서 전부 표출되는 이른바 통일문화, 결실문화다.
가을이 되면 사람도 진짜 좋은 종자만 알캥이를 맺는다. 개벽철에는 좋은 씨종자, 그런 혈통만 살아남는다. 인류문화도 유형문화와 무형문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하나인 총체적인 통일문화권이 형성된다. 그 하나인 진리권 속에서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모든 것이 하나인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상제님 진리로 얘기하면 그게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이번 개벽을 하는 세상에는 상제님 진리권으로 살아남는다. 천지에서 개벽을 한다는 것은, 입에 붙이기가 흉하지만 상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천하창생의 생사, 60억 내지 70억 인구가 죽고 사는 것이 다만 증산 상제님을 믿는 신도들의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잘할 것 같으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잘못하면 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도 못 살 수도 있다.
상제님 진리로써 살고,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고, 상제님 세상이 된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셨기 때문에 하늘도 상제님의 하늘이요, 땅도 상제님의 땅이요, 사람도 상제님의 사람이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신 후부터는 이 세상은 상제님의 대이상향에서 둥글어간다.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모르든지 우주질서라 하는 것은 그렇게 짜여져 있다. 이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걸 꼭 알아야만 된다.
대우주 정신에서 볼 때 사람은 그저 만유의 생명체 중에서 주체가 되는 것뿐이다. 저를 위해 대우주 천체권, 우주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 자기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왔다가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만 된다.
다시 말을 하면 지천하지세자(知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생기(有天下之生氣)하고, 천하의 대세를 아는 자는 천하의 살아날 기운이 있고, 암천하지세자(暗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사기(有天下之死氣)라, 천하의 대세에 어두운 자는 천하에 죽는 도리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철을 모르면 죽는다. 철부지(節不知), 백 살을 먹었어도 철을 모르면 안 된다. 알기 쉽게 일 년에도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있고 또 소서(小暑) 대서(大暑)도 있잖은가. 철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때다.
천지에서 개벽을 하면 사람만 개벽을 하는 게 아니다. 문화도 개벽을 한다. 생활문화, 물질문화라 하는 것은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 편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헌데 물질문화라 하는 것은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단추 누르는 기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컴퓨터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또 휴대폰이 없는데 무슨 통화를 할 수가 있는가. 그건 다만 물질문명, 기계문명, 과학문명일 뿐이다. 그저 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문명일 뿐이다.
그러면 정신문화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위만령지주(心爲萬靈之主)하고,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령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신위음양조화지택(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몸뚱이라 하는 것은 천변만화를 하는 집이 되는 것이다. 사람 몸뚱이를 가지고 호풍환우도 하고 축천축지도 하고, 두 내외 잠자리를 하면 사람도 만들어 내고, 별스런 걸 다 할 수 있다. 이 몸이라 하는 것은 천변만화를 하는 집도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한다. 인류역사라 하는 것은 창조의 경쟁을 해서 이렇게 물질문화가 발달을 했다. 정신문화의 극치라 하면 우리 증산 상제님 주문으로 묶어서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니 영세만년토록 만사 아는 것을 잊지 못한다’라고 하는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나오는 것이다. 가을철에 가야 그런 정신문화, 도통문화, 결실문화,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유형문화라 하는 것은 인간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정신문화라 하는 것은 백성도 자기가 백성 노릇할 만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다음 세상의 틀, 군사부
그런데 아까 내가 “다음 세상의 틀은 군사부(君師父)”라고 했다. 상제님 세상, 다가오는 오만년 새 세상 둥글어가는 틀이 바로 군사부다. 상제님 진리로써 죽는 세상에,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세상에 살아남으니 상제님이 부모다. 죽는 세상에 살아남았으니, 그 절대자 상제님을 배반하라고 해도 배반을 하지 않는다. 또 배반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또 상제님 진리로써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됐으니 말할 것도 없이 상제님은 군주(君主), 황제다. 상제님 진리를 신앙하고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사니 천지이치로써 정해진 군사부다. 후천 오만 년 동안 군사부 문화의 틀을 벗어나려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금 세상은 정치체제로 말하면 민주주의다. 헌데 그걸 벗어나려고 “더 좋은 거 없나?” 하고 찾았지만, 여태까지 발전한 게 민주주의다. 내가 먼저도 한번 얘기했지만 민주주의는 2,500여 년 전부터도 있는 것이다. “천하는 천하지천하(天下之天下)요 비일인지천하(非一人之天下)라. 천하는 천하 사람의 천하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세상 사람의 세상이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세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상은 좋았다. 그러나 이론만 그렇지 세상이 그렇게 허용을 안 했다. 통제경제와 시장경제, 그 두 체제가 양존을 하다가 통제경제보다는 시장경제, 자유경제체제가 더 좋았던 모양이다. 헌데 그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도 흠이 그렇게 많다. 부익부빈익빈. 그러다보니까 경제전쟁 세상이 됐다. 국제경제라는 것도 경제전쟁이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수출을 해야 자국민이 잘 산다. 헌데 나라든, 개인이든 부익부빈익빈 해서 경제망으로 옭아매고, 또 노동력도 착취한다.
앞으로 상제님 세상은 군사부라는 틀 속에서 살아간다. 무슨 부패하고, 억강부약(抑强扶弱)을 하는 게 전혀 없다. 산무도적(山無盜賊)하고, 산에는 뭘 뺏어가려고 하는 도둑놈이 없고, 야불습유(野不拾遺)하고, 들에는 흘린 것을 주워가지 않는다. 먹을 게 풍부하고 입을 게 풍부해서 제 것도 주체를 못 하는데, 그런 걸 주워다가 뭘 하겠는가.
이번 개벽을 할 때에 틀이 한번 짜지면, 그 틀 짜진 그대로 후천 오만년 세상을 내려간다. 참 너무 심하다고나 할까? 헌데 어째서 그러냐? 천지이법이라는 것이 가을에 열매 맺을 때 한 번 결실을 하면 그만이다. 또 결실은 두고 두고 하는 게 아니다. 10월 달에도 결실하고, 동짓달에도 결실하고, 섣달에도 결실하는 게 아니다. 가을철, 득신(得辛)철에 결실을 못하면 영원히 열매를 못 맺는다. 30% 여무는 놈도 있고, 50% 여무는 놈도 있고, 70% 여무는 놈, 또 빈 쭉정이만 되는 놈도 있다. 빈 쭉정이, 빈집만 지어놓은 걸 학술용어로 태세(太歲)라고 한다. 클 태(太) 자, 콩 태(太) 자, 해 세(歲) 자.
예를 들어 콩깍지만 만들어놓고 알캥이는 없는 놈이 있다. 그걸 태세라고 한다. 쌀도 겉껍데기, 왕겨를 태세라고 한다. 알캥이 없는 껍데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실을 하는 것은 제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생물이라면 천지에서 다 결실을 시켜준다. 불모이동(不謀而同)으로 자기가 결실하고 싶지 않아도 그냥 결실을 시켜준다. 대자연 섭리, 대자연의 이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대자연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다 이루어지도록 하나도 빠짐이 없이 균등한 기회를 준다. 그렇게 천리라 하는 것은 지공무사하다. 지극히 공변되고 절대로 사(私)가 없다. 만유의 생명체는 다 제 필요에 의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바늘보다도 더 작은 풀도 씨가 있다. 천년 전도, 만년 전도 지금까지도 그 풀도 알캥이, 종자를 여물어서 명년에 또 그것이 생겨난다. 그게 바로 대자연의 질서요 이법이다.
천지의 이법이라는 것은 그걸 위해서 생장염장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둥글어간다. 봄에 물건을 내고, 여름철에 기르고, 가을철에는 매듭을 짓고, 겨울에는 폐장을 하고, 새봄이 오면 다시 또 새싹이 난다. 생장염장, 그걸 밑바탕으로 해서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천년도 만년도 십만년도 그렇게 둥글어간다.
인간을 건지기 위해 오신 상제님
“세상이야 어떻게 됐든지 나는 안 죽는다. 천지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그런 망령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이 대우주 천체권, 자연질서, 자연이법이 둥글어가는 데에 따라 그저 더불어 그 이치 속에서 왔다가는 것이다. 내가 늘 말을 했지만 승평시대, 편안한 세상, 봄여름이 둥글어 갈 때 같으면 신앙생활을 안 해도 괜찮다. 오히려 속박당하지 않으니까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허나 지금은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 금화교역기, 화운(火運)에서 금운(金運)으로 넘어가는 때다. 이 때 일어나는 개벽은 그 무엇으로써도 피할 수 없다. 천지대도가 그렇게 둥글어가는 데 무슨 도리가 있는가.
그때는 천지를 개벽하는 우주의 주재자, 절대자, 천계와 지계와 인계를 마음대로 주재할 수 있는 절대자께서 인간으로 오신다. 그분이 누구냐. 예수가 얘기한 ‘내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 사도요한이 얘기한 ‘백보좌 하나님’, 묶어서 기독사회에서 말한 그 하나님이 바로 그분이다. 또 불가 석가모니는 3천여 년 전에 “내가 아닌 미륵이 온다.”고 했다. 또 유가에서는 옥황상제를 찾았다. 그렇게 각색 종교에서 ‘하나님, 백보좌 하나님, 미륵님, 옥황상제님’을 찾았는데, 바로 그 분이 결실철에 매듭을 짓는 절대자, 주재자를 말한 것이다. 개벽철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절대자가 오시게 되어져 있다.
헌데 마테오 리치 신부가 유불선의 어느 성자보다도 가장 공이 많은 절대자다. 그분은 또 격으로도 그 중 나았던 분이다. 그분이 인간세상을 위해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든지 사람 사는 데에 좀 도움을 주자.”라는 생각을 하고, 천상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별짓을 다 해 봐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역사적인 신성 불보살들을 전부 찾아다니면서 상의를 해 봐야 아무런 방법이 없다. 많은 회의도 해봤을 것 아닌가. 그래서 역사적인 신성 불보살들을 불러 모아 하늘나라에 계신 주재자, 절대자, 옥황상제, 백보좌 하나님, 미륵님에게 등장을 해서, “우리 능력으로써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 당신께서 친히 지상에 내려오셔서 이 세상을 상제님의 대이상향에 따라 요리를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오기는 싫지만, 리치신부가 신성 불보살들을 전부 거느리고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하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오게 됐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나간 우주년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오는 다음 우주년도 그렇다. 천지가 둥글어가는 절대이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알기 쉽게 초목농사를 짓는 지구년도, 작년도, 5년 전도, 10년 전도, 앞으로 10년 후도, 5년 후도, 백년 후도 역시 그렇게 금년과 같이 둥글어간다. 대자연의 질서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진리의 뿌리, 음양오행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천지를 상징해서 제각기 생겨져 있는 것이다. 다만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이 오행정기를 각기 달리 타고 났다는 것만 다르다.
알기 쉽게 예를 들면 ‘소’는 북방 수기를 타고 성질이 느긋하다. 음양오행으로 볼 때 소는 음이다. 그래서 성질도 느긋한 것이다. 양은 하나고 음은 두 쪽이다. 소의 발을 보면 주먹 두 개를 합한 것하고 같다. 소는 북방 수기를 타고 났기 때문에 그렇다. 헌데 말은 남방 삼이화(三離火) 정기를 타고 나서 발굽이 통굽이다. 말의 성질이 얼마나 급한가? 잠도 서서 잔다. 말은 양(陽)이다. 화기를 타고 나서 양이다.
그러고 개는 서방 금기(金氣)를 타고 나서, 개국은 아무리 뜨겁게 먹어도 목이 데이지 않는다. 개국을 먹다가 목구멍을 데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목병, 인후, 목젖이 있잖은가. 그 목젖이 붓거나 염증이 생기면 개기름을 자글자글 끓여서 그놈으로 지져버린다. 딴 걸로 그렇게 하면 목젖에 화상이 생겨 큰일 난다. 하지만 개기름으로 지지면 낫는다. 삼복(三伏) 더위에는 으레 개국을 먹는다. 왜? 개국의 성질은 차가운 거니까, 퇴서(退署)를 하느라고 그런다. 더워서 헐떡거리는데 개국을 먹으면 퇴서를 한다. 그렇게 개는 서방 금기를 타고 났다.
초목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나무 같은 것은 양 기운을 타고 나서 이파리가 세 이파리 아니면 다섯 이파리다. 헌데 저 소나무 같은 것은 꼭 솔잎이 요렇게 두 개씩 붙어가지고 있다. 여태 그걸 모르는 사람은 내일쯤 가서 솔잎 좀 한번 따서 확인해 봐라. 그거 다 자세히 얘기하려면 한도 없다. 이렇게 음양오행 원리를 떠날 것 같으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 물질문명에만 의존해서 사는 세상을 내가 조금 평할 테니 들어 보아라. 우선 사람을 다루는 의사들은 엑스레이에 사진에 표출되는 걸 봐야 진단을 한다. 지구상에 있는 의학박사들, 아마 수십만 명은 될 텐데, 그 사람들 중 음양오행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직종이 무엇이든 사람이라면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라고 하는 건 알아야 될 것 아닌가. 그걸 모르면 얘기가 안 된다.
왜 그런가. 그건 음양오행 원리의 아주 기본이다. 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이 음양의 이치를 떠날 수 없다. 하나 예를 들어서, 수컷은 자지가 이렇게 한쪽으로 되어져 있다. 사람도 그렇고, 소도 말도 다 그렇다. 저 기어 다니는 곤충도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하지만 암컷의 음부는, 사람이든 소든 돼지든 개든, 짝수로 되어져 있다. 그래서 홀수는 양수(陽數)고, 이 짝수 우수(偶數)는 음수(陰數)다. 홀수 짝수, 이게 바로 음양이다. 그게 천지이치다. 그건 꼭 알아야 되는 것이다. 이 학문, 지식이라 하는 것이 동서양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진리의 뿌리가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다. 이걸 모르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삼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이 있어야
이번에는 왜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느냐? 또 어째서 금화교역, 하추교역을 할 때는 개벽이 일어나느냐? 이걸 꼭 알아야 된다.
그런데 이걸 알고서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인간 세상에는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들 않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나를 만나려 할 것 같으면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 전생(前生)과 이 세상을 사는 현생(現生)과 앞으로 오는 내세(來世),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하셨다. 또 “나를 만나려면 조상부터 위해라. 조상의 음덕으로써 나를 만나게 된다.”고도 하셨다.
다시 말해서 “적덕가(積德家)의 자손이 들어왔다가 나가려 할 것 같으면 ‘너는 여기를 떠나면 죽느니라.’ 하고 뒤통수를 쳐서 집어넣고, 적악가(積惡家)의 자손이 들어오면 ‘너는 여기 못 있을 데니라.’ 하고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라고 하셨다.
여러 천년을 내려오면서 그 조상들과 같이 한 세상을 산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 때 사회생활을 좋지 않게 한 사람들, 남을 못살게 하고 남의 것 빼앗고 갖은 못된 짓을 하던 사람들에게 해악을 당한 신명들이 “네 조상 몇 대 조 할아버지, 몇 대 조 할머니가 이렇게 내게 몹쓸 짓을 했다. 네까짓 놈이 어떻게 개벽 세상에 살아남으려고 하느냐.”하고 쫓아내 버린다. 그렇게 척신에 걸려서 쫓겨나고 만다.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적덕가의 자손이 들어왔다가 나가려 할 것 같으면, 그네들의 조상들과 한 세상을 좋게 산 신명들이 “너는 여기 떠나면 죽는다. 그러니까 못 나간다.” 하고 옹호를 해서 못 나가게 감싸준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불의를 뿌리 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진리다.
이번에 오만 년 결실을 한다
이번에는 천지도 그렇고, 각개 인간도 그렇고 전부 마무리를 해서 후천 새 세상이 열린다. 다행히도 상제님 진리를 만나 살아서 앞 세상으로 넘어갈 것 같으면, 후천 오만 년 행복을 구가해 가면서 자자손손 전지자손해서 잘살 수가 있다.
그 세상은 다만 일방적으로 좋기만 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는 그른 것이라고는 전혀 있들 않다.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무슨 선거를 하고 그런 것도 없다. 이번에 한 번 정해지면 오만년 동안 그 틀 짜진 그대로만 둥글어간다. 이런 걸 얘기하면 안 되지만 천지이법이기 때문에 한마디 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가을에 알캥이를 맺을 때, 결실할 때 한 번 결실되면 더도 덜도 없다. 알캥이가 많이 여물어졌다고 거기서 덜어내는가. 아니면 알캥이가 덜 맺어졌다고 거기다가 더 보태지는가. 그건 덤도 안 되고 덜어내지도 못하고, 한 번 틀로 짜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
후천에는 유형문화 무형문화가 합일된 종극적인 극치의 문명이 열린다. 온 인류가 마칠 종(終) 자, 극진 극(極) 자, 극치의 문명을 구가한다. 태모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은 상수(上壽)는 천이백 살을 살고, 중수(中壽)는 구백 살을 살고, 암만 일찍 죽는 하수(下壽)라도 칠백 살을 산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오래 산다. 왜 천이백 살만 사는가. 딴 얘기로 하면 못 알아들을 테니, 요새 줄기세포 같은 것 연구하는 걸 봐라. 그 학자들이 줄기세포를 키워서 거기다 씨만 던져놓으면, 그놈이 커져서 간(肝)도 새로 생겨나고, 폐(肺)도 새로 생겨나고, 이빨도 새로 생긴다. 백발(白髮)이 환흑(換黑)하고 낙치(落齒)가 부생(復生)이라. 흰 터럭이 다시 새까매지고 빠진 이빨이 새로 난다. 그런 건 어제 오늘 하는 말도 아니다.
하니까 앞으로는 인간의 수명도 무제한이 된다. 그렇게 참 오래오래 산다. 무슨 신문쟁이 같은 것도 지금처럼 필요하지 않다.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열려 다 알아버리는데 그게 필요하겠는가.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좋은 세상이 된다.
그동안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번에 부귀영화가 다 아주 정해져 버린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에 한꺼번에 매듭, 결실을 하고서 만다. 한마디로 묶어서 이번에 오만 년 결실을 하는 것이다. 앞 세상에서는 부귀영화를 탐내야 되어지지도 않는다. 또 앞 세상에는 반역이라는 게 없다. 반역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반역을 하고 싶어도 되어지지 않는다.
군사부 문화는 자연 섭리
사람의 신체, 이 오장육부(五臟六腑)는 이 대우주 천체권을 상징해서 생겨져 있다. 이렇게 누워서 눈감고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이 지구상에는 산소라는 게 있다. 그 산소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유 생명이 산소가 없으면 다 죽어버린다. 이걸 적응해서 만유의 생명체가 다 생겨났다.
헌데 사람은 이 지구에서 산소 호흡을 하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가. ‘호출(呼出)은 심여폐(心與肺)요’ 후~ 하고 이렇게 숨을 내쉬는 것은 심장과 폐장이 하는 것이고, ‘흡입(吸入)은 신여간(腎與肝)이라’ 흡~ 하고 들이 숨을 쉬는 것은 신장과 간장이 한다.
위(胃)는 신지구(腎之口)요, 위라 하는 것은 신장의 입이요, 신(腎)은 위지근(胃之根)이라, 신장이라 하는 것은 위의 뿌리다. 이 오장육부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렇게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이 짜여져 있다.
우리 인간은 초 단위로 들이쉴 숨, 내쉴 숨을 쉬는, 그 호흡을 역동적으로 해야 생명체를 유지하게 되어져 있다. 사람이 그걸 계획해서 하려면 귀찮아서도 안 되니까, 저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그냥 열리고 닫히고, 열리고 닫히게 그렇게 되어져 있다. 간심비폐신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있다. 자면서도 들이쉴 숨 쉬고, 내쉴 숨 쉰다. 또 누구하고 얘기하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자동적으로 호흡이 되어진다.
생물체는 이것은 부정을 못 하잖는가. 또 부정할 필요도 없잖은가. 그걸 부정하려면 숨을 안 쉬려고 코 틀어막고 입 틀어막아야 되는데, 그러면 어려웁고 종국적으로는 죽는 수밖에 없다.
헌데 누구도 죽으려고 하지 않잖는가. 후천 세상에 반역을 하면 “나는 군사부(君師父) 제도가 싫다. 나는 군(君)도 싫고 부(父)도 싫고 사(師)도 싫다. 이놈의 군사부 세상, 그 틀이 난 싫다.” 하고 부정을 하는 것인데, 그건 사람이 호흡을 하지 않겠다고, 숨을 안 쉬겠다고 “들이쉴 숨도 내쉴 숨도 싫다.”고 거부하는 것하고 같다.
앞 세상은 말로써 그 좋은 것을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좋은 세상이다. 그냥 150% 그냥 좋기만 한 세상이다. 거짓말 같이 좋은 세상이다. 그 세상은 지구가 전부가 다 꽃동산이 돼 버린다. 그렇게 행복을 구가하면서, “과연 좋구나.” 하고 전지자손 해가면서 오만년 동안 그런 세상을 산다.
그것을 묶어서 지상선경이라고 한다. 할 일이 없으니까 지구를 꽃동산으로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이기어 다 먹을 수도 없고, 또 의복이 너무 많아서 이기어 다 입을 수 없는 현실선경이다. 지구상이 그렇게 아름다웁고 좋은 세상이 된다. 집 짓는 걸로 말하면 지구를 다 전부 좋게 조경을 한다. 앞 세상은 그런 지상선경, 현실선경이다.
또 사람이 다 도통을 해서 호풍환우(呼風喚雨)하고 축천축지(縮天縮地)하는 조화선경이 된다. 그 세상은 양심을 속이는 사람도 없다. 양심을 속이면 그 사람은 그 세상에서 끝이 나고 만다. 서로 다 환하게 같이 알아서 아는 것을 만인이 공유를 한다. 서로 다 같이 알아버리니까, 양심을 속이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속이려고도 않는다.
우주원리가 곧 상제님 진리
천지의 목적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의 결론적인 목적, 생장염장이라는 틀 속에서 천지가 종국적으로는 그런 결실을 맺는다. 우주원리의 결론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 매듭정신을 “그만하면 알겠습니다.” 하는 신도들 손 좀 들어봐라. 이렇게 매듭이 지어지지? (예)
그게 우주정신이다. 자연이법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게 되어져 있다. 대우주 천체권이라 하는 것은 그걸 거듭한다. 다음 우주년도 또 마찬가지다. 지구년이 작년도, 금년도, 명년도, 5년 전도, 5년 후도 똑같은 방법으로 주이부시해서 천년 만년 그것을 거듭하듯이, 우주년도 사람농사를 짓는데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렇게 알면 더도 덜도 없다. 그러면 증산도 지도자는 그 세상을 살아봤냐? 지나간 세상도 살아봤냐? 그런 반문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 건 다만 따지개질 하기 위한 추궁일 뿐이다. 지구년에서는 누구도 다 같이 작년을 살아봤잖은가. 또 5년 전도, 10년 전도 작년과 똑같지 않았는가. 그것과 같이 금년도 작년과 같을 게고, 5년 후도 역시 같을 게다. 그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건 누구도 다 수긍할 것 아닌가. 천지의 이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건 머리털만큼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하추교역기에는 누가 부정을 하든 말든, 알고 모르고 간에 천지에서 개벽을 한다. 그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 세상 둥글어가는 걸 강증산 상제님이 짰다는 건 어떻게 인정을 하는가.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처음 쫓아온 사람이라도 한 10시간이나 스무 시간은 누구도 다 공부를 했을 것이다. 이건 거짓이 없는 우주원리, 천지가 둥글어가는 이법이다. 그 동안에 산 경험으로 해서도 그렇고, 지혜로 해서도 그렇고, 무엇으로든지 이건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그건 누가 속이려야 속일 수도 없다.
이 세상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서 틀을 짜 놓은 그대로, 머리털만큼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둥글어간다. 나는 왜 그런지 상제님 진리를 그렇게 무섭게, 뜨겁게 조르르 꿰고 있다. 그건 그렇게만 되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나간 세상의 역사 재료를 가지고 “앞 세상 둥글어가는 틀을 짜거라.”라고 하면, 누구에게 맡겨도 상제님께서 틀 짜놓은 그대로밖에는 안 된다. 그게 지극히 다 한 설계다. 지의진의(至矣盡矣)다. 그 재료를 가지고서는 그렇게 설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설계를 해야 그 신명들이 해원을 한다. 한마디로 상제님 진리는 바로 우주원리요, 우주원리가 상제님 진리다.
진리 그대로를 신앙하라
또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 그대로를 신앙을 해야 된다. 진리대로 신앙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믿을 게 없다. 이번에는 상제님께서 우주원리를 집행하셨다. 다시 말해서 대자연의 조화정부, 생장염장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해서 천지조화를 잡아 돌리는 이법, 그게 바로 상제님의 진리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천지의 대역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신앙을 해라. 천지는 말도 없고 수족도 없잖은가. 상제님께서 틀을 짜놓으시고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일을 맡기셨다.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모사,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설계해서 틀을 짜놓으시고, 그걸 집행하는 것은 신도에게 맡기셨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틀을 짜 놨으니 너희들은 요렇게 집행을 해라.” 하고.
그럼 어떻게 집행을 하느냐. 아까도 내가 말을 했지만, 상제님께서는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추려야 되지 않겠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가을 숙살지기가 내리쳐서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듯하게 다 죽인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구 일 년의 초목개벽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매듭지어 놓고, 알캥이를 여물어 놓고, 결실을 해놓고서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다 죽여 버린다.
천하창생이라고 할 것 같으면 65억 인류를 말하는 것이다. “65억 인류의 생사가, 65억 인류를 살리고 죽이고 하는 것이, 아무런 방법이 없고, 다만 나를 믿는 신도,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차차소자(嗟嗟小子) 경수차서(敬受此書)하라.” ‘이 어린 소자들아, 조심스레 나의 명령을 받으라. 내 말을 잘 받들어라.’라는 말씀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절규(絶叫), 끊어질 절(絶) 자, 부르짖을 규(叫) 자, 절규. 입 구(口) 옆에 말 두(斗) 하면 부르짖는다는 규(叫) 자다. 그런 절규를 하셨다.
사람이라면, 신앙을 하는 신도라면, 돈도 좋고 지위도 좋고 세상에 참 좋은 것도 많을 테지만,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이때에 사람 살리는 것 그 이상 무엇이 있는가.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 말씀을 안 믿는다? 우주를 주재하신 상제님의 대이상향에서 요리한 그 진리를 안 믿는다? 그러면 무엇 하러 이 자리에 있는가.
증산도 종도사는 다만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할 뿐이다. 천지가 여름과 가을을 바꾸는, 천지질서가 판을 달리하는 이때에 상제님을 신앙하는 건 인류역사를 바꾸는 일이 아닌가.
이번에는 물건을 내서 키우는 봄여름의 질서가 종식되고, 열매를 맺어서 폐장하는 가을겨울 질서로 바꿔진다. 상극의 세상에서 상생의 세상으로 질서가 바꿔진다. 상극의 세상을 종식하고 상생의 새 세상이 열린다.
선천 세상은 상극 세상이어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도 다 천부적으로 자유를 향유하면서 한 세상을 살려고 태어났다. 헌데 자기 몸뚱이를 가지고 자기 자의대로 살아본 사람이 없다. 타의에 의해서 전쟁에 끌려 나가고, 타의에 의해서 망하고, 타의에 의해서 잘못 살고 말았다.
하지만 앞 세상은 상생의 세상이다. 누구나가 다 행복을 구가하고 안락을 구가하고 안녕질서를 구가하는 그런 무제무한 좋은 세상이다.
밑천은 오직 일심
상제님을 잘 믿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죽는 세상에 살아남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써 남도 살려줘라. 상제님 말씀과 같이 “공(功) 중에 가장 큰 공은 천지에 쌓는 그 공이 가장 크다.” “장사는 뿌리장사가 가장 이(利) 남는다.” 상제님 사업은 후천 오만년 복을 구하는 일이다. 자기 양심에 호소해서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천지이법은 공명정대한 것이다. 남의 팔매에 밤 주워 먹으려고 해도 안 되고, 또 자기가 쌓은 공을 누가 뺏어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진리는 무슨 밑천 가지고서 하는 것도 아니다. 밑천은 오직 일심이다. 일심!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다.” 일심에 호소를 해라. 아까 내가 집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서 증언자 몇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다 일심이다. 상제님 말씀으로도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천추에 혈식을 받는 그 혈식군자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에 혈식을 받을 수가 있냐’ 하고서 물어보니까 그 신명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일심에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또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내가 천하의 복록을 가졌으나 일심 가진 사람이 적어서 태워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니 일심 가진 자만 나타날 것 같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고루 태워준다.”는 그런 말씀도 하셨다. 일심! 다시 말해서 성경신(誠敬信)! 잘살고 못사는 것도 성경신이요,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성경신에 달려 있다. 부귀영화, 수명과 복록이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믿느냐’ 하는 성경신, 일심에 매여 있다. 그 정성, 그 일심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만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세상만사가 전부 다 일심기운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일심이 없이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나? 일심!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심야자(心也者)는 대어천지(大於天地)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천지보다도 크다.”고 하셨다. 천지와 동참을 하는 게 바로 일심이다.
천지를 대신하는 역군이 되라
상제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 전만고의 참하나님이요 후만고의 참하나님이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오직 한 분이신, 대우주 천체권을 지배하시는 그런 절대자, 참하나님이다. 지나간 세상의 참하나님이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참하나님이다. 그런 참하나님을 잘 믿어서 개벽하는 세상에 살고, 더불어 남도 좀 살려줘라. “나 살고 남 산 그 뒷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 이게 바로 참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해서 전지자손해서 후천 오만 년 세상 행복을 구가해 가면서 잘 살라는 덕담을 내가 하는 것이다. 억지로 강권하는 것도 아니다. 싫으면 그만둬라.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우리 일은 잘살고 복 받고,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일, 하늘땅 생긴 이후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전만고에도 이렇게 크고 비전 많은 일이 없었고, 후만고에도 이렇게 크고 비전 많은 일이 없다. 우리 상제님 사업은 하늘땅 생긴 이후로 하늘땅이 마칠 때까지 금번 우주년에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운유기운(運有其運)하고 시유기시(時有其時)하고 인유기인(人有其人)이라.” 운은 그 운이 있고 때는 그 때가 있고 사람은 그 사람이 있다. “그 운 그 때 그 사람이 돼서 바로, 하나님이 재사모사를 해서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이루는 바로 그때 그 사람, 천지를 대신하는 그런 역군, 그런 절대자가 돼서 복 받으라.”는 말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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