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교과서 논쟁 가열, 역사교육은 어디로…
[지구촌개벽뉴스]
한국사교과서 논란
친일·독재 미화와 표절 의혹에 휩싸인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역사왜곡 서술이 300건에 달하고 한글맞춤법 오류가 1000개 이상이라는 주장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진보성향 단체들은 “역사왜곡에 심각한 사실기술 오류까지 중요한 것만 지적해도 298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교학사 교과서 이념의 뿌리는 2011년 5월 만들어진 한국현대사학회다. 이 학회는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 연구를 지양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한다”는 입장을 표방했다. 보수우익 성향이 강한 이 단체의 학자들이 바로 문제의 교과서 편집진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 장관은 ‘수정 및 보완을 통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 수정·보완 조치를 단행했으나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교학사뿐만 아니라 한국사교과서 8종에 대해 무려 829건에 달하는 수정·보완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일각에선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국정교과서로의 회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한국사교과서의 역사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는 광복 후 1973년까지 검정 시스템으로 발행됐다. 중·고교 11종씩 나오던 국사교과서는 1974년 민족주체사관을 세운다는 목적으로 박정희대통령 시절 단 한권의 국정교과서로 전환됐다. 30여년간 유지돼 오던 국정체제는 이후 정권을 정당화하고 역사의식을 일률적으로 주입한다는 시민사회와 역사학계의 지적에 의해 검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3년 고교 선택과목〈 한국 근·현대사〉등이 검정제로 발행되면서부터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국사교과서(이후 한국사·역사 등으로 이름 바뀜)도 국정에서 검정제로 전환됐다. 2010년과 2011년에는 (현재 필수과목이 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도 각각 검정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초·중·고 교과서는 국가가 개발한 국정도서, 민간이 개발해 검정심사를 통과한 검정도서, 시도 교육감이 인정한 인정도서 등 세 종류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국가 정체성 및 이념 편향성 논란의 우려가 있는 국어·사회·역사·도덕 교과서는 검증을 받도록 돼 있으며,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검증을 담당하고 있다. 집필진을 출판사가 섭외해 교과서를 만든 다음 정부의 심의만 받는 검정과 달리 국정은 정부가 집필진을 선정하고 내용 감수, 발행까지 한다.
여전히 관심 밖인 한국상고사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일제가 조작한 역사의 잔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한의 뿌리역사인 환국과 배달에 대한 기록은 아예 없다. 단지 족장이 다스리던 부족사회가 있었다고만 서술되어 있다. 고조선 건국에 대해서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다”라고 게재돼 있다. 그러면서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앞뒤 잘라버리고 밋밋하게 끝나버리는 이 서술조차도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2009년에 겨우 개정됐다. 그 전까지는“ 건국되었다고 한다” 또는“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여 남의 나라 역사를 말하듯이,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서술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공무원 수험서, 육·해·공군의 역사 교재, 아동용 역사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역사책에는 일제가 조작하고 왜곡한 한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부시의 ‘악의 축’에 북한이 들어간 이유
2001~2008년까지 재임하면서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었던 부시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 9.11테러(2001)를 계기로 테러범과 독재국가를 본격적으로 손보기 시작한 부시행정부는 악의 축 발언, 아프가니스탄 폭격과 이라크 침공, 북한 선제공격 시나리오, 주한미군 재배치 등 중동과 한반도에 긴장과 불안을 야기했다.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20년 이상 백악관을 취재했던 피터 베이커 뉴욕타임스 기자의『 불의 날들Days of Fire: 백악관의 부시와 체니』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얽힌 뒷얘기가 다수 등장해 눈길을 끈다.‘ 악의 축’ 발언, 6자회담, 핵미사일 실험 등 북한 관련 사건이 많았던 부시행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힌‘ 악의축’에는 당초 이라크만 포함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까봐 북한과 이란을 덤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또 당초‘ 증오의 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악(evil)’이라는 단어를 워낙 좋아해 막판에 연설담당 보좌관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바꿨다고 한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부시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쟤네들 이 정도밖에 못 만들어?” 핵실험을 예고하며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던 북한의 기술력이 예상보다 너무 뒤떨어지자 부시대통령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북한 핵기술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핵실험 1시간 전 중국으로부터 실시 예정 통보를 받은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중국에 창피한 날이다. 김정일이 완전 당신을 무시한 것”이라며 쓴소리를 던졌다. 그러면서“ 북한에 더 따끔하게 (도발을 못하도록) 얘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북한이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과정을 TV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부시대통령에게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냉각탑 폭파는 시각적 효과에 불과하며 다시 냉각탑을 지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부시대통령은 폭파장면을 지켜보며 “저게 바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야”라고 말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책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의 냉랭한 관계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다. 2001년 부시대통령은 취임 후 첫 통화에서 김대통령이 5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장황하게 설명하자“ 뭐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어” 하며 보좌관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에 대한 보고서를 즉시 만들어 올리도록 지시했다. 김대통령에 대한 부시대통령의 부정적 인상은 이날 5분간의 통화로 완전히 굳어졌다. 부시 대통령은 1기에는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으로 북한에 강경하게 나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여파로 ‘전쟁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2기에는 라이스 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등 유화책으로 전환했다. 체니부통령이 반발할 때마다 부시대통령은“ (유화 조치들이) 사실 알맹이 없는 것들”이라며 달래기에 바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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