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 을지문덕은 낙랑을 지나 유주를 점령, 통치하였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10-14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의 을지문덕은 낙랑을 지나 유주를 점령, 통치하였다.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석다산 사람이다. 일찍이 입산하여 수도하고 꿈에 천신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3월 16일 마리산으로 달려가 공물하며 경배하고 돌아오고, 10월 3일이면 백두산에 올라가 제천했다. 제천은 곧 신시의 옛 풍속이다.
홍무 23년 수군 130여만이 바다와 산으로 나란히 공격해왔다. 을지문덕은 능히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이를 초적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러 마침내 이를 대파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수륙 양군이 무너져 살아서 요동성(遼東城)(지금의 하북성 창려)로 돌아간 자는 겨우 2천 7백여명이었다.
양광(수양제)이 사신을 보내어 구걸하였으나 을지문덕은 듣지 않았고, 태열제(太烈帝: 영양왕)이 또한 추격하도록 엄한 명을 내리셨다.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와 더불어 승리의 기세를 타고 곧바로 몰아붙여 한갈레는 현도(玄菟: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柳城, 지금의 요령성 朝陽과 盧龍 사이에 현도가 있었다고 한다)의 길로 태원(太原: 중국 山西省의 首府가 있는 곳, 석가장 부근)에 이르고, 한 갈레는 낙랑(樂浪: 하북성의 진황도시, 천진시 및 갈석산 부근)의 길로 나아가 유주(幽州: 중국 하북성 일대를 총괄하던 州名)에 이르러 그곳의 주와 현에 들어가서 다스리고, 떠도는 백성들을 불러모아 안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건안, 건창, 백암, 창려의 제진은 안시(安市)에 속하게 하고 창평, 탁성, 신창, 용도의 제진은 여기(如祈)에 속하게 하고 고노, 평곡, 조양, 누성, 사구을은 상곡(上谷: 朝陽 부근 동쪽에 있다)에 속하게 하고 화룡, 분주, 환주, 풍성, 압록은 임황(臨潢: 서압록 쪽 파림좌기의 땅)에 속하게 했다. 모두 옛 제도에 따라 관리를 두고 다스렸다. 이에 이르러 강한 군사가 백만으로 강토는 더욱 더 커졌다.
양광은 임신의 오랑캐 출신이다(*선비족 출신이다). 처음 처들어 올 때의 출사가 성대하기로는 예전에는 그 예가 없었다. 그런데 조의(皁衣) 20만 인을 가지고 모조리 그 군을 멸망시켰는데 이는 을지문덕 장군 한 사람의 힘이 아니겠는가? 을지공과 같은 분은 곧 만고에 세상의 흐름을 만드는 한 성걸이다.
후에 문충공 조준이 명나라 사신 축맹(祝孟)과 함께 백상루에 올라 이렇게 시를 읊었다.
살수는 탕탕하게 흘러 푸른 빛을 띠는데,
수나라 병사 백만은 물고기 밥이 되었구나.
지금도 어부와 나무꾼에게 그때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명나라 사신은 언짢아 한 번 웃고 마는 구나.
옛 역사(舊史)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영양수원호태열제(26대 영양왕, A.D.590~617)의 홍무 9년 제는 서부대인 연태조(淵太祚: 연개소문의 아버지, 그의 손자 泉南生의 묘지명에 그 할아버지를 太祚라 하였다)를 보내 등주를 토벌하고 총관(總菅) 위충(韋沖)을 사로잡아 죽이셨다.
이보다 앞서 백제(百濟)는 병력으로써 제(齊)나라, 노나라, 오(吳)나라, 월(越)나라 등지를 평정한 후 관서를 설치하여 호적을 정리하고, 왕작을 분봉하여 험난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정벌한 곳의 세금을 고르게 부과하여 모든 것을 내지(內地)에 준(準)하게 하였다.
***안경전 역 환단고기 580-585p 와
https://cafe.daum.net/masterleeyooreep/DFxa/1
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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