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논문을 구입하였습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10-24 |
○“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논문을 구입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신용카드로“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논문을 구입하였습니다.
구입비용은 9,100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거나 가르치거나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 논문을 꼭 구입하여 읽어보시기 권고 드립니다.
이 논문은 수서(隨書: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 수나라 멸망 18년 후 기록된 책)에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에 대해서 상세하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근 현대에 고구려-수(隋)나라의 전쟁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헌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중 하나는 1982년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中國歷史地圖集』이었다.
필자는 이를 상세히 연구하여
첫째, 고구려-수(隨)의 국경은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닌 난하(灤河)임을 밝혔고,
둘째, 요동군(遼東郡)의 위치는 난하(灤河) 서쪽에 있었으며,
셋째, 연군(燕郡: 생략), 넷째, 유성군(柳城郡: 생략),
다섯째, 북평군(北平郡)을 난하 동쪽에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은 역사기록에 맞지 않고 북평군의 속현인 노룡군은 난하 서쪽에서 북경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었다.
여섯째, 압록수(鴨綠水)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라, 명백히 현재의 요하(遼河)이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대동강을 패수(浿水)라고 했는데, 수서(隨書)에는 이를 저강(沮江)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태자하(太子河)로 본다.
또 살수(薩水)는 지금의 혼하(渾河)이다.
일곱째, 평양(平壤)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고, 태자하(太子河) 부근에 있었다.
이상의 1982년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中國歷史地圖集』오류에 대해서 이 논문은 상세하고 명확히 그 위치를 비정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 논문의 일부를 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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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국학연구 제24집 2020년)
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中國歷史地圖集』의 612년 지도 비판 및 재구성-
임찬경([사]국학연구소 연구원
1. 서론
2. 『중국역사지도집』 612년 고구려-수(隋) 관련 지도의 사실 왜
곡 비판
1) 『중국역사지도집』 612년 고구려-수(隋) 관련 지도의 일곱
가지 왜곡
2) 『중국역사지도집』 612년 고구려-수(隋) 관련 지도의 사실
왜곡 원인 분석
3. 612년 고구려-수(隋) 전쟁 관련 지명의 올바른 위치 탐색
1) 612년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난하(灤河)이다
2) 612년 요동성(遼東城)의 위치
3) 612년의 압록수(鴨綠水)는 지금의 요하(遼河)이다
4) 612년 살수(薩水)의 위치
5) 평양의 위치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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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본문에서 “탁군의 임삭궁에서 612년 정월 초에 출발한 수군(隋軍) 중의 9개 군은 [지도 4]의 A(탁군)→요수(L)를 건너)→C(유성)→H(압록수) 서쪽에 이르는 행군 및 전투를 벌이며, 6월에 H 지점의 압록수 즉 지금의 요하에 도착한 것이다.
수양제의 어영(御營)과 좌우24군의 일부는 A(탁군: 임삭궁)에서 바로 L의 요수 즉 지금의 난하에 3월 15일 이전에 도착하여, 고구려군과 요수(L) 서쪽에서 전투를 치르고, 4월 15일에야 요수(L)를 건너 요동성(B)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래(K)에서 출발한 해군은 6월에 M 지점의 저강(沮江)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려 육로로 평양을 향해 북상하는 중이었다.”라고 서술했다. 이 부분이 과연 역사 사실(史實)에 맞는지, 본문의 [지도 4]에 나타난 612년 관련 지명의 위치 비정이 사실(史 實)에 맞는지 학계의 검토와 비판이 뒤따르길 희망한다.
본문에서 『중국역사지도집』의 612년 관련 지도가 지닌 사실 왜곡에 대해 비판했는데, 실은 한국의 역사학계가 내놓은 612년 관련 지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로,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교육 지표로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정 국사교과서의 관련 지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도 생략 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 국학연구 제24집 2020년 - 195 - [지도 5] 『중학교 국사』55)(왼쪽)와 『고등학교 국사』56)(오른쪽) 고구려 전성기 지도 |
위의 본문에서 『중국역사지도집』의 편찬자들이 ’중국‘의 지도를 만들면서 당연히 고대 ’중국‘을 재현시키려 했는데, 또한 고대 ’중국‘의 역사관도 그들이 작성한 지도에 역시 그대로 담겨있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런데 위의 [지도 5]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고대의 역사관을 제대로 극복했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고대에 ’중국‘을 대국으로 하고 그 동쪽의 고구려 등을 소국으로 하는 ’중국‘의 ’화이관‘이 ’중국‘에 있었고, 고려 중기 이후와 조선시대에는 ’사대(事大)‘와 ’소중화(小中華)‘를 명분으로 ’화이관‘을 스스로 내재화(內在化)한 적도 있었다.
위의 [지도 5]는 그런 시대적 산물인가? 전통시대(傳統時代)를 철저하게 단절 및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아직도 대한민국은 [지도 5]와 같은 지도로 역사를 교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학자들이 『중국역사지도집』을 그렸고, 그 속의 지도에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612년 고구려-수(隋) 관계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는데, 대한민국은 그 자신이 위의 [지도 5]와 같이 스스로 자신의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는 ’자학적(自虐的)‘인 현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본고의 결론에서 최종적으로 다시 강조하는 것은, 『중국역사지도집』의 612년 고구려-수(隋) 관계 지도는 분명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물론 중국의 역사학계가 이 왜곡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 및 논의 해보고, 왜곡을 시정해나가는 노력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이 연구의 부족한 부분은 이후의 탐색으로 계속 보충하고자 한다.
참고문헌(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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