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천왕이 빼앗은 낙랑군은 요하부근 지명이며 평양이 아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7-11 |
○미천왕이 빼앗은 낙랑군은 요하부근 지명이지 평양이 아니다.
미천왕 14년(AD 313년) 미천왕이 빼앗은 낙랑(樂浪)을 왜인(倭人)사학자 및 식민사학자, 한국사매국노들이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낙랑(樂浪)은 298년 후인 영양왕 2년(AD 611년) 수양제가 고구려 침략을 위해 고구려로 진격하는 길목에 있는데, 수양제의 좌12군의 12번째 진격로가 바로 낙랑이다. 어찌 수양제가 평양을 지나 평양으로 향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했겠는가? 삼국사기에도 명백히 기록되어 있드시 낙랑(樂浪)은 요하지방에 있던 고구려 땅이며, 평양일 수는 결코 없는 것을 이병도같은 식민사학자, 한국사매국노들이 교묘하헤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낙랑의 위치는 수양제가 평양을 향해 좌12군의 12번째 진격로에 대방이 있었고, 이곳은 요하 부근의 고구려 땅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통전에 “갈석산은 한나라 때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해 있고, 만리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되며, 지금의 장성은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지나 고구려 땅으로 들어간다(喝石山 在漢樂浪郡 遂成縣 長城起於此山 今驗長城 東裁遼水 而入高麗 遺址猶存)이라고 했는데, 낙랑은 갈석산 수성현 부근에 위치해 있던 지명이 확실하다.
○갈석산은 어디인가?
당시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었다는 갈석(喝石)은 하북성 창려현(昌黎縣) 현성 북쪽. 연산(燕山)산맥의 줄기로 주봉인 선대정(仙臺頂)은 해발 695m이고 발해(渤海)에서 15km 거리에 있으며 해안을 의지한 산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봉우리의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비석 같은 모양이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산 정상의 석벽에 ‘갈석(碣石)’이라는 두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몸이 하늘에 닿는 듯하며, 발해 바다의 도도한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곳은 고금을 통해 바다를 관망하는 명승지가 되었다. 207년 조조가 오환(烏桓)을 정벌하고 개선하면서 이곳에 이르러 ‘동쪽으로 갈석에 이르러 푸른 바다를 바라보네(東臨碣石, 以觀滄海)’라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갈석편(碣石篇)」이라는 명시는 바로 이때 탄생했다
○ 낙랑 평양석이나 대방 황해도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수성현(遂城縣)이 황해도 수안(遂安)이라고 주장한 이병도
“수성현(遂城縣)은 진(秦) 나라의 만리장성 동쪽 끝이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遂安)의 경게에서 시작했고.....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의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고 조선사편수위의 책임자 중 하나이던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가 「낙랑군 수성현 및 진 장성 동단에 관한 고찰(樂浪郡 遂城縣と秦 長城 東端に 關する 考察)에서 주장을 하였고, 당시 조선사편수의의 촉탁(囑託; 常勤임시직)이었던 이병도는 그의 스승 이나바 이와기치의 견해를 무조건 추종해서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병도와 그의 스승인 이바나 이와기치의 주장인 중국 땅 수성(遂城)과 황해도 수안(遂安)의 동일설은 중국의 만리장성 동쪽 끝이 황해도 수안까지 이어졌다는 해괴한 주장이며, 이 주장은 현재 중국의 역사서 및 역사지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진나라 때의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이어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같은 왜곡된 역사서와 역사지도는 지금 중국의 모든 학생들은 물론 중국사를 연구하는 모든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다.
왜놈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계속 왜곡되고 있는 낙랑 평양설이나 대방황해도설은 반드시 폐기되고 요하부근 낙랑과 대방의 위치가 진정한 사학자들에 의해서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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