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57. 태백일사, 안시성은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었고, 태조대왕 10성의 위치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01 |
고대사 57. 태백일사에 안시성은 개평부 동북쪽 70리 밖에 있는데, 지금의 탕지보(당산)이고 또 태조대왕이 쌓은 요서 10성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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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안시성 싸움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안시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아서 그 위치의 비정이 혼동되고 있다.
제5대 모본왕(慕本王) 2년(AD 49년)에는 “고구려가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기도 하였는데,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함으로 이내 화친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제6대 태조대왕 3년(AD 55년)에는 “요서(遼西)에 10개의 성(城)을 쌓아 한병(漢兵)에 대비하였다.”고 하였다. 요서 지방에 10개의 성을 쌓았다는 것은 고구려가 요서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여 주는 대목이다. 53년(AD 105년)에는 “한(漢)나라의 요동(遼東)에 고구려의 군대를 보내어 6개의 현을 약탈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미 요동과 요서에 고구려의 국경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요서 10성(遼西十城)의 위치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추정이 곤란하였다.
그러나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안시성의 위치가 명확히 탕지보 지역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태조대왕이 쌓은 요서 십성의 위치에 대해서도 북경 및 석가장시 부근으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잃어버린 역사의 위치를 정확히 고증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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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전 역 『환단고기 태백일사』607-609쪽 기록 요약>
고려진(高麗鎭)은 북경(北京: 지금의 북평) 안정문 밖 60리 쯤에 있다(*고구려가 북경 지역에 진출해 있음을 보인다). 안시성(安市城)은 개평부(開平府) 동북쪽 70리에 있는데, 지금의 탕지보(蕩池堡: 당산) 지역이다. 고려성(高麗城)은 하간현(河間縣) 서북쪽 12리에 있다(*1991년 중국 교포가 석가장 동북쪽에 있는 하북성 하간현을 답사한 결과 성터를 발견하였고, 주민들은 그곳이 고려성터라고 함).
모두 고구려의 6대 태조무열제(태조대왕)께서 쌓으신 것이다.....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조 융무 3년(제6대 태조대왕 무열제 3년 AD 55년)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침략에 대비하셨다. 그 10성은 이러하다.
첫째는 안시성(安市城)이니 개평부 동북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둘째는 석성(石城)이니 건안성(建安城)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셋째는 건안성(建安城)이니 안시성에서 남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넷째는 건흥성(建興城)이니 난하(灤河)의 서쪽에 있고,
다섯째는 요동성(遼東城)이니 창려(昌黎)의 서남쪽 경계에 있고,
여섯째는 풍성(豐城)이니 안시성에서 서북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일곱째는 한성(韓城)이니 풍성(豐城)에서 남쪽으로 20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여덟째는 옥전보(玉田堡)이니 옛날의 요동국(遼東國)으로 한성에서 서남쪽으로 6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아홉째는 택성(澤城)이니 요택성(遼澤城)에서 서남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열째는 요택성(遼澤城)이니 황하의 북류 왼쪽 언덕에 있었다.
융무 5년(태조대왕 5년: AD 57) 봄 정월에 또 백암성(白岩城)과 용도성을 쌓으셨다.
***참고: 지도는 인터넷의 다음 주소에서 인용함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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