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59. 태백이사의 고주몽에 대한 기록, 고주몽은 해모수의 후손이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01 |
고대사59.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고주몽(고추모: 高鄒牟)에 대한 기록. 고주몽은 해모수 후손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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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解慕漱)로부터 나왔는데,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땅(고구려)이다. ...해모수단군께서 처음 내려온 때는 임술(BC 239년)이다. 고리군(槀離郡)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沃沮候)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로로 봉토를 받았다.
불리지가 일찍이 서압록(요하 상류)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기뻐하며 장가를 들어 고주몽을 낳았다. 때는 임인년(BC 79년) 5월 5일이며, 한(漢)나라 왕 불릉(소제)의 원봉 2년이었다.
불리지가 세상을 뜨자 유화부인이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들어가니 지금의 서란(지금의 길림성 서란)이다. 주몽이 장성하여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섭원을 택해 살면서 관가에서 말 기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관가의 미움을 사게 되어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렀다. 마침 부여왕(북부여 6세 고무서단군)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주몽이 마침내 왕의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으시니(BC 58)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
고주몽 성제의 평락(平樂) 11년 (BC 27년) 북옥저를 쳐서 멀하고 이듬해 졸본에서 눌견으로 도읍을 옮기셨다. 눌견은 지금의 주가성자(朱家城子: 지금의 장춘, 북쪽에 朱城子)라는 지명이 남아있다)이다.
***안경전 역 환단고기 558-561p 참고 요약임.
***참고: 광개토대왕능비에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시조의 17대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환단고기의 해모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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