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구멍(The Hole in the Universe)』 (2001), 리뷰 (1)
[칼럼]
한재욱 / 본부도장
『우주의 구멍(The Hole in the Universe)』을 저술한 K. C. 콜(K. C. COLE)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과학 칼럼니스트columnist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수학(The Universe and the Teacup)』으로 1995년 미국물리학회 우수과학저술상을 수상했으며, 『먼저 구름을 만들어 보세요(First You Build a Cloud)』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방면을 아우르는 유능함과 재기 발랄한 감각으로 미국 과학 저술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린다. 현재 UCLA에서 강의하고 있다.
『우주의 구멍』이라는 책 속에는 ‘무無’에 대한 수많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모아 둔 과학적이며, 시적인 수많은 표현들을 그냥 읽어보기만 해도 우주의 바탕인 무극無極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에 대한 과학적이며 문학적이며 역사적인 좋은 표현들을 마치 한 편의 시를 감상하듯 읽어 보기만 해도 진리적인 감성을 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일부金一夫 대성사는 우주 조화의 근원을 ‘무극無極’, 우주의 만물 창조의 본체를 ‘태극太極’, 창조⋅변화를 주재하여 만물을 성숙으로 이끄는 우주 운동의 본체를 ‘황극皇極’이라고 하였다.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기준으로 보면 『우주의 구멍』에서는 그 구멍, 즉 무無의 개념을 무극으로 말했다가 태극으로 말하기도 하는 등 혼동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상제님 진리로 보면 허虛는 무극, 공空은 태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數로 표현하면 허는 0, 공은 1이다. 그런데 과학은 무라는 단어에 뭉뚱그려 놓았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우주의 근원인 무에 대해 과학, 수학, 문학, 예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풍부한 글 사냥을 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10장으로 구성된 『우주의 구멍』 책 내용 중 앞부분 5장까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보려 한다.
무에 대한 표현들이 능소능대하다. 이 책의 무를 우주의 두 분 조물주이신 삼신 망량三神魍魎님과 상제上帝님으로 대체하고 읽어 보면 조물주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무를 무극 또는 무극제라는 단어로 바꾸어 보자. 17쪽의 본문은 ‘무극제이신 상제님이 우주의 주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주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다.’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이 파트의 소제목이 ‘달콤한 무’인데 읽을수록 진리의 고소함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다.
수학에서 0은 표시를 하든 안 하든 모든 수식의 배경에 있다. 0을 표시해 곱하는 순간 모든 수는 0으로 수렴돼 버린다. 존재가 자기가 왔던 본체로 되돌아간다. 나눗셈을 하는 순간 모든 수는 어떤 크기든 간에 무한이 된다. 문학적인 표현을 곁들이면 모든 수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고 할까. 그 수를 돌멩이나 인간으로 대체해도 마찬가지이다. 수행의 궁극 목적은 무극과 하나 되어 영원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수식의 표현이 그와 비슷하다.
이 문장은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라는 『도전道典』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우주도 사람이 없으면 의미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무를 유로, 유를 무로’라는 표현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 빈 공간은 온갖 입자粒子(particle)와 에너지 마당을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생산자이기에 더 특별하다.
이 표현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무극의 조화 기운이 압축 공약되면, 무극은 충만한 공空의 상태가 됩니다. 이 공空 자리는 일견 텅 비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우주의 진기眞氣(순수 에너지)로 충만한 만물 창조의 본체 자리입니다. 이 공(진공眞空)에서 물[水]이 창조되면서 우주의 생명 창조 운동이 시작됩니다.”라고 했다.
‘무가 변했을 때’, 이것은 “무극의 조화 기운이 압축 공약되면”과 같은 상황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에서 말한 ‘가짜 진공’을 무극無極으로 본다면 얼어붙은 현재의 진공은 공空, 즉 태극太極의 자리라고 배치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무도 진화進化한다는 개념이다. 무극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처음에 말했듯이 현대 과학은 무와 공을 구분하지 못한다. 종도사님께서는 실제적인 만물을 창조하는 본체인 공을 ‘우주 창조의 본체’라 하고, 만물 창조 운동의 시작이자 만물 생성의 뿌리인 물을 우주 창조의 ‘생명의 본체’라 하셨다.
이 파트는 소제목 자체가 ‘두 얼굴의 무’이며, 무의 이중성二重性에 대한 얘기이다. 무의 이중성이란 말은 무극의 두 자리, ‘0무극’과 ‘10무극’에 대해 연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이렇게 우주 변화의 원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무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등장한다.
무극은 음양 분화 이전의 시원 자리이므로 부호로는 ‘0’, 상수象數로는 ‘0零’으로 나타낸다. 이를 본체 무극(0무극)이라 한다. 그리고 이와 구분하여 현실 우주의 순환 질서 속에서 작용하는 무극을 상수로 ‘10’무극수로 나타낸다. 이를 현상 무극이라 한다. 현실 속에서 우주 만유를 통일 수렴하는 가을철의 천지조화 기운이 바로 ‘10무극’이다. 이 ‘10무극’은 10토土(未土)가 주재한다. 이 자리에 계시는 분이 상제님이시다.
무극無極은 대립을 넘어서 경계가 없는 조화의 지극한 극치를 의미한다. 무극대도無極大道는 우주 만유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부리는, 상제님의 대도를 말한다. 그런데 무극의 궁극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주 만물의 기원과 시초를 이루는 것이자 통일 성숙시키는 조화의 근거다. 무극은 우주 만유의 시원이며 또한 완성, 목적인 셈이다.
「천부경天符經」은 일태극경一太極經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하나는 무에서 왔다. 이 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좀 더 의미가 깊어진다. 종도사님께서는 Nothing과 Nothingness의 차이를 말씀해 주셨다.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우주의 순수 음양인 율려律呂를 ‘영적 에테르ether’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우주의 구멍』 책에는 에테르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모욕과 화려한 부활을 겪었는지 그 현주소가 자세히 그려지고 있어서 『증산도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에테르에 대한 고민이다. 사람들은 텅 빈 진공을 에테르가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에테르에 불가사의한 성질을 부여했고, 이것을 ‘제5 원소’라고 불렀다. 에테르는 무게가 없으며 일종의 ‘천상의 안개’로 우주의 높은 곳에서 모든 형상과 질료를 만들고, 신들이 노는 곳을 채우는 순수한 호흡이라고 보았다. 철학자 데카르트도 에테르가 별을 민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에테르를 확고하게 믿었다. 뉴턴 시대와 그 이후 물리학자들은 빛의 파동이 전달되려면 에테르가 있어야 된다고 인식했다.
이것을 정리하면 에테르는 강철 같은 탄성을 가지면서도 거의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쯤 되자 에테르를 탐지하고 싶어 한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1880년대 마이컬슨Michelson과 몰리Morley가 그들이다. 지구가 에테르 사이를 지나가면 마치 달리는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키듯 행성은 그 운동에 의해 에테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았고, 이들은 이 바람을 탐지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그런데 이 탐지 실험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마이컬슨은 죽을 때까지 에테르에 대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1927년 발표문에서 ‘사랑스러운 에테르’라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도 에테르를 물리학의 문제아라고 불렀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신성모독인 것처럼 ‘에☓르 문제’(e-r problem)라고 표현했다. 이 책 『우주의 구멍』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에테르를 최종적으로 문 밖으로 추방하고 문에다 못질까지 해 버렸다.”(64쪽)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후기 저작에서 4차원 시공간이 새로운 종류의 에테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렇게 제안했다.
『증산도의 진리』에는 “과학자들이 이 에테르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이 나타나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주의 구멍』에 그 과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놀랍게도 오늘날 어떤 물리학자들은 가장 최근에 부활한 에테르가 우주의 에너지 70%를 떠맡는다고 생각한다.”라고 정리한다. 물리학자 윌첵은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를 부정했고 그로 인해 이후의 과학은 에테르를 무시하게 됐다는 오해를 바로잡는 말을 했다.
실제로 최신 현대 과학은 새로운 에테르 후보를 발견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 입자’(힉스 마당)라고 기술한다.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2012년 7월 4일 “힉스 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힉스 장場’(Higgs field)이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장으로, 힉스 장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입자는 질량을 얻게 된다. 이 힉스 장엔 힉스 입자가 존재하며, 바로 이 힉스 입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다. 질량을 갖게 된 입자들은 온갖 물리 법칙 생성에 참여하게 된다.
필자는 이것을 ‘신의 입자인 힉스가 입자들에게 존재감을 부여했다.’고 표현해 보려 한다. 현대 과학은 이렇게 다시 에테르에 접근해 가고 있다.
대자연의 혼이 율려이고 이것이 영적 에테르라면, 과학의 발전사에서 에테르를 수천 년 동안 받들어 오다가 결국 이를 무시하고 부정하며 백안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최근 들어 과학의 중심 위치에 놓게 된 과정은 아주 특별해 보인다.
과학은 그 교만으로 인해 대자연의 혼인 율려, 영적 에테르를 부정하고 무시했다. 이에 따라 자연과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오늘날 인류는 길을 잃었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는 에테르를 다른 의미에서 과학의 중심으로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가을개벽을 앞둔 현시점에서 과학이 다시 근원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대 과학과 진리 개념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순 없겠지만, 비슷하게 기술하는 표현들을 비교해 보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에테르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Luminiferous aether라고 부른다. 이것은 빛나는 에테르, 발광성 에테르라는 의미인데,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 자체가 빛의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종도사님께서는 이 대우주의 빛을 몸에 채우는 것이 도통의 관건이라고 하셨다. 이 책의 저자 K. C. 콜은 수행 문화까지는 모르고 있지만, 어쩌면 무에 대해서 과학보다도 수행자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는 무를 과학적 도구로 따지고 들어가서 아는 것보다 ‘느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책의 곳곳에 동양의 수행 문화와 깨달음의 방식으로 접근할 만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마치 시집을 읽듯 열린 마음으로 필독하시길 추천드린다. 다음 호에는 『우주의 구멍』 책 6~10장의 핵심 내용을 흥미롭게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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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멍(The Hole in the Universe)』을 저술한 K. C. 콜(K. C. COLE)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과학 칼럼니스트columnist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수학(The Universe and the Teacup)』으로 1995년 미국물리학회 우수과학저술상을 수상했으며, 『먼저 구름을 만들어 보세요(First You Build a Cloud)』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방면을 아우르는 유능함과 재기 발랄한 감각으로 미국 과학 저술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린다. 현재 UCLA에서 강의하고 있다.
『우주의 구멍』이라는 책 속에는 ‘무無’에 대한 수많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모아 둔 과학적이며, 시적인 수많은 표현들을 그냥 읽어보기만 해도 우주의 바탕인 무극無極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에 대한 과학적이며 문학적이며 역사적인 좋은 표현들을 마치 한 편의 시를 감상하듯 읽어 보기만 해도 진리적인 감성을 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일부金一夫 대성사는 우주 조화의 근원을 ‘무극無極’, 우주의 만물 창조의 본체를 ‘태극太極’, 창조⋅변화를 주재하여 만물을 성숙으로 이끄는 우주 운동의 본체를 ‘황극皇極’이라고 하였다.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기준으로 보면 『우주의 구멍』에서는 그 구멍, 즉 무無의 개념을 무극으로 말했다가 태극으로 말하기도 하는 등 혼동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상제님 진리로 보면 허虛는 무극, 공空은 태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數로 표현하면 허는 0, 공은 1이다. 그런데 과학은 무라는 단어에 뭉뚱그려 놓았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우주의 근원인 무에 대해 과학, 수학, 문학, 예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풍부한 글 사냥을 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10장으로 구성된 『우주의 구멍』 책 내용 중 앞부분 5장까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보려 한다.
놀라운 무無
모든 것은 없음, 즉 무無라는 바탕 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다는 것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무 없는 우주는 무대 없는 극장이다. 무는 모든 이야기가 쓰여지는 빈 노트이다. - 책 13쪽
무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그것은 엄청난 활력으로 팽창하고, 폭발하고, 증식하고, 요동하고, 뻗어 나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고, 찢어지고, 잦아들고, 물체들을 뒤흔들면서 온갖 일에 참견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때보다도 더 알기 힘들어져서 우주의 중심에 도사리고 있는 카멜레온 같다. - 14쪽
무에 대한 표현들이 능소능대하다. 이 책의 무를 우주의 두 분 조물주이신 삼신 망량三神魍魎님과 상제上帝님으로 대체하고 읽어 보면 조물주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무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스탠퍼드 대학 물리학자 서스킨드L.Susskind)
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수 체계數體系를 창조하였고, 물질과 우주를 만들었으며,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을 만들어 내는 주역이 되었다. - 16쪽
무가 진화하여 우주의 주역이 된 것은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큰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만하다. - 17쪽
무를 무극 또는 무극제라는 단어로 바꾸어 보자. 17쪽의 본문은 ‘무극제이신 상제님이 우주의 주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주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다.’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이 파트의 소제목이 ‘달콤한 무’인데 읽을수록 진리의 고소함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다.
무, 즉 없음은 인간의 뇌에서 나온 가장 풍부한 개념이다. - 17쪽
무의 후손들 중 아마 가장 오래된 것이며 ‘영’, ‘공’, ‘빵’이라고도 불리는 단순한 동그라미 0을 보자.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자리 표시인 0은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상한 일을 저지른다. 0이 개입하면 좌변과 우변에서 엉뚱하고 혼란스러운 역설이 벌어진다. 0을 곱하면 무엇이든 0이 되어 버린다. 나눗셈은 더욱 나빠서, 0으로 나누면 어떤 값이든 구름처럼 모호한 무한대가 된다. 한편으로 0은 음수, 허수, 그리고 너무나 덧없어서 한때 ‘유령’이라고 거부당했던, 무한소無限小와 같은 새로운 수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 17쪽
진짜로 골치 아픈 것은 0을 0으로 나누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나누면 1이 된다. 하지만 0은 그렇지 않다. 0을 0으로 나누면 어떤 값이든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정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너무 많이 만들어 낸다. 0에 0을 나누면 무한대의 답이 나온다. - 71쪽
수학에서 0은 표시를 하든 안 하든 모든 수식의 배경에 있다. 0을 표시해 곱하는 순간 모든 수는 0으로 수렴돼 버린다. 존재가 자기가 왔던 본체로 되돌아간다. 나눗셈을 하는 순간 모든 수는 어떤 크기든 간에 무한이 된다. 문학적인 표현을 곁들이면 모든 수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고 할까. 그 수를 돌멩이나 인간으로 대체해도 마찬가지이다. 수행의 궁극 목적은 무극과 하나 되어 영원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수식의 표현이 그와 비슷하다.
0의 발견은 알라딘의 거인을 램프 속에서 불러낸 사건이었다. - 18쪽
무無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무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무無와 유有
사르트르Sartre는 …… 무無라는 개념은 유有라는 개념과 동전의 양면임을 확실히 했다. “무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빌려온 존재성만을 가질 수 있고, 존재로부터 존재성을 얻을 수밖에 없다. …… 존재를 없애면 무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 32쪽
이 문장은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라는 『도전道典』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우주도 사람이 없으면 의미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어찌 보면 물리학의 역사는 무를 유로 바꾸고 유를 무로 바꾸어간 과정의 역사이다. 우리는 물질을 단단하고 형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자는 대부분이 빈 공간이다. - 33쪽
‘무를 유로, 유를 무로’라는 표현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 빈 공간은 온갖 입자粒子(particle)와 에너지 마당을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생산자이기에 더 특별하다.
우리의 우주가 기대고 있는 진공眞空은 태초의 진공과 다르다. 현재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지금은 붕괴되고 없는 가짜 진공에서 온 것이다. 현재의 진공은 그러한 가짜 진공이 얼어붙은 상태이다. 따라서 무도 진화한다. - 34쪽
무는 그 불변성으로 인해 우주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가 된다. - 28쪽
무가 변하면,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했다. - 29쪽
이 표현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무극의 조화 기운이 압축 공약되면, 무극은 충만한 공空의 상태가 됩니다. 이 공空 자리는 일견 텅 비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우주의 진기眞氣(순수 에너지)로 충만한 만물 창조의 본체 자리입니다. 이 공(진공眞空)에서 물[水]이 창조되면서 우주의 생명 창조 운동이 시작됩니다.”라고 했다.
‘무가 변했을 때’, 이것은 “무극의 조화 기운이 압축 공약되면”과 같은 상황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에서 말한 ‘가짜 진공’을 무극無極으로 본다면 얼어붙은 현재의 진공은 공空, 즉 태극太極의 자리라고 배치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무도 진화進化한다는 개념이다. 무극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처음에 말했듯이 현대 과학은 무와 공을 구분하지 못한다. 종도사님께서는 실제적인 만물을 창조하는 본체인 공을 ‘우주 창조의 본체’라 하고, 만물 창조 운동의 시작이자 만물 생성의 뿌리인 물을 우주 창조의 ‘생명의 본체’라 하셨다.
현재의 진공은 가짜 진공이 얼어붙은 상태이다. 따라서 무도 진화한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했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했다.
무의 이중성
무의 강력한 힘과 호소력은 부분적으로 그 명백한 이중성에서 나온다. 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어떤 때는 단순한 결핍이고, 어떤 때는 풍부한 함축과 가능성을 가진 여백이다. - 22쪽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없는 것이 무이므로, 무는 완벽하다. - 29쪽
이 파트는 소제목 자체가 ‘두 얼굴의 무’이며, 무의 이중성二重性에 대한 얘기이다. 무의 이중성이란 말은 무극의 두 자리, ‘0무극’과 ‘10무극’에 대해 연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이렇게 우주 변화의 원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무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등장한다.
무극은 음양 분화 이전의 시원 자리이므로 부호로는 ‘0’, 상수象數로는 ‘0零’으로 나타낸다. 이를 본체 무극(0무극)이라 한다. 그리고 이와 구분하여 현실 우주의 순환 질서 속에서 작용하는 무극을 상수로 ‘10’무극수로 나타낸다. 이를 현상 무극이라 한다. 현실 속에서 우주 만유를 통일 수렴하는 가을철의 천지조화 기운이 바로 ‘10무극’이다. 이 ‘10무극’은 10토土(未土)가 주재한다. 이 자리에 계시는 분이 상제님이시다.
무극無極은 대립을 넘어서 경계가 없는 조화의 지극한 극치를 의미한다. 무극대도無極大道는 우주 만유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부리는, 상제님의 대도를 말한다. 그런데 무극의 궁극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주 만물의 기원과 시초를 이루는 것이자 통일 성숙시키는 조화의 근거다. 무극은 우주 만유의 시원이며 또한 완성, 목적인 셈이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는 만물이 비롯된 시작이나 무에서 비롯된 하나이다. 여기서 무는 없다는 뜻이 아니라, 텡그리Tengri(천신天神)의 생명을 뜻한다. 하나에서 온 우주가 비롯됐다. 하나에서 모든 생명이 비롯됐다. 인간은 하나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나를 체험하기 위해서, 하나의 경계에 머무르기 위해서 오늘도 숨을 쉬고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이 텡그리의 마음, 수학적 표현으로는 일심一心이다. 하늘과 땅, 만물,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카자흐스탄 편
「천부경天符經」은 일태극경一太極經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하나는 무에서 왔다. 이 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좀 더 의미가 깊어진다. 종도사님께서는 Nothing과 Nothingness의 차이를 말씀해 주셨다.
서양의 수학, 과학에서 nothing은 영(zero)과 무無의 의미이다. ‘텅 비어 있다. 아무것도 없다.’ 등 많은 뜻을 가진다. 그에 비해 nothingness는 특별한 뜻을 가진다. “너 뭐 가지고 있냐.”고 물었을 때 “I have nothing.”이라 말하면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가 된다. 그런데 “I have nothingness.”라 말하면 “나는 모든 것을 다 비웠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내 마음에 채울 수 있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보면 천부경의 무는 Nothingness라고 하는 것이 더 멋진 의미가 된다. - 종도사님 말씀
무의 강력한 힘과 호소력은 이중성에서 나온다.
무는 텡그리Tengri(천신天神)의 생명을 뜻한다.
무는 텡그리Tengri(천신天神)의 생명을 뜻한다.
에테르의 역사 총정리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우주의 순수 음양인 율려律呂를 ‘영적 에테르ether’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우주의 구멍』 책에는 에테르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모욕과 화려한 부활을 겪었는지 그 현주소가 자세히 그려지고 있어서 『증산도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리학과 무의 상호 관계에서 가장 큰 위기는 에테르 때문에 일어났다. 에테르는 진공을 채우는 물질로 생각되었지만, 아인슈타인Einstein이 등장하여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탐지할 수 없다고 입증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때까지 진공 위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상대론의 빗자루로 싹 쓸어 버렸다. 동시에 그는 수동적인 바탕이었던 공간을 능동적인 배우로 만들었다. …… 물질 입자는 진동하는 마당의 덩어리이고, 에너지가 얼어붙어서 응축된 상태라는 것이 알려졌다. 입자들은 20세기의 에테르라고 할 수 있는 힉스 마당을 만나 질량을 얻고, 이 질량에 의해 덩어리의 성질을 갖는다. 그러나 힉스 마당 자체도 진공의 일부여서 …… 물리학자 윌첵Wilczek 같은 이는 힉스 입자를 낡은 진공에서 튀어나온 조각이라고 부른다. - 34쪽
이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에테르에 대한 고민이다. 사람들은 텅 빈 진공을 에테르가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에테르에 불가사의한 성질을 부여했고, 이것을 ‘제5 원소’라고 불렀다. 에테르는 무게가 없으며 일종의 ‘천상의 안개’로 우주의 높은 곳에서 모든 형상과 질료를 만들고, 신들이 노는 곳을 채우는 순수한 호흡이라고 보았다. 철학자 데카르트도 에테르가 별을 민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에테르를 확고하게 믿었다. 뉴턴 시대와 그 이후 물리학자들은 빛의 파동이 전달되려면 에테르가 있어야 된다고 인식했다.
에테르가 가져야 하는 성질은 얼마나 이상한가! 빛이 있는 곳에는 에테르가 있어야 한다. 빛은 어디든 갈 수 있으므로, 에테르는 우주의 구석구석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 에테르는 빛과 똑같은 빠르기로 진동해야 한다. 빛처럼 빠르게 진동하려면 뉴턴의 계산에 따라 공기보다 탄성이 4억 9천만 배나 커야 한다. 그러면서도 행성들이 에테르 사이를 아무 저항 없이 지나가야 하므로, 공기보다 밀도가 최소한 10억 배 이상 낮아야 한다. - 61쪽
이것을 정리하면 에테르는 강철 같은 탄성을 가지면서도 거의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쯤 되자 에테르를 탐지하고 싶어 한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1880년대 마이컬슨Michelson과 몰리Morley가 그들이다. 지구가 에테르 사이를 지나가면 마치 달리는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키듯 행성은 그 운동에 의해 에테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았고, 이들은 이 바람을 탐지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그런데 이 탐지 실험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마이컬슨은 죽을 때까지 에테르에 대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1927년 발표문에서 ‘사랑스러운 에테르’라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도 에테르를 물리학의 문제아라고 불렀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신성모독인 것처럼 ‘에☓르 문제’(e-r problem)라고 표현했다. 이 책 『우주의 구멍』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에테르를 최종적으로 문 밖으로 추방하고 문에다 못질까지 해 버렸다.”(64쪽)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후기 저작에서 4차원 시공간이 새로운 종류의 에테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렇게 제안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에테르가 없는 공간을 생각할 수 없다. 에테르가 없는 공간에서는 빛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며 …… 물리적인 의미의 시공간 간격이 생겨날 근거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에테르를 시험할 수 있는 매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 64쪽
『증산도의 진리』에는 “과학자들이 이 에테르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이 나타나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주의 구멍』에 그 과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놀랍게도 오늘날 어떤 물리학자들은 가장 최근에 부활한 에테르가 우주의 에너지 70%를 떠맡는다고 생각한다.”라고 정리한다. 물리학자 윌첵은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를 부정했고 그로 인해 이후의 과학은 에테르를 무시하게 됐다는 오해를 바로잡는 말을 했다.
수많은 대중적인 설명과 교과서는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를 박물관으로 보냈다고 생각하는 신화를 유포한다. 그러나 …… 아인슈타인은 에테르 개념을 정화해서, 왕관을 씌워 주었다. 20세기가 진행되면서 에테르의 역할은 커져 갔다. 에테르는 현재 이름을 바꾸고 알기 힘든 가면을 쓴 채, 물리 법칙들을 지배하고 있다. - 65쪽
실제로 최신 현대 과학은 새로운 에테르 후보를 발견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 입자’(힉스 마당)라고 기술한다.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2012년 7월 4일 “힉스 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힉스 장場’(Higgs field)이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장으로, 힉스 장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입자는 질량을 얻게 된다. 이 힉스 장엔 힉스 입자가 존재하며, 바로 이 힉스 입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다. 질량을 갖게 된 입자들은 온갖 물리 법칙 생성에 참여하게 된다.
필자는 이것을 ‘신의 입자인 힉스가 입자들에게 존재감을 부여했다.’고 표현해 보려 한다. 현대 과학은 이렇게 다시 에테르에 접근해 가고 있다.
에테르가 없는 공간을 생각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에테르 개념을 정화해서 왕관을 씌워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에테르 개념을 정화해서 왕관을 씌워 주었다.
빛나는 에테르
그것은 바로 대자연의 혼魂이라 불리는 ‘율려律呂’입니다. 우주생명의 혼인 율려는 만유 생명의 근원적, 궁극적인 실재로서 현상계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영적 에테르입니다. 천지의 1년 정역수인 129,600년을 주기로 천지일월이 선천 생장生長과 후천 염장斂藏 운동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 음양 기운을 율동律動(+)시키고 여정呂靜(-)시키는 운동의 본체로 작용하는 순수 음양생명입니다. - 『증산도의 진리』
대자연의 혼이 율려이고 이것이 영적 에테르라면, 과학의 발전사에서 에테르를 수천 년 동안 받들어 오다가 결국 이를 무시하고 부정하며 백안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최근 들어 과학의 중심 위치에 놓게 된 과정은 아주 특별해 보인다.
과학은 그 교만으로 인해 대자연의 혼인 율려, 영적 에테르를 부정하고 무시했다. 이에 따라 자연과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오늘날 인류는 길을 잃었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는 에테르를 다른 의미에서 과학의 중심으로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가을개벽을 앞둔 현시점에서 과학이 다시 근원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대 과학과 진리 개념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순 없겠지만, 비슷하게 기술하는 표현들을 비교해 보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에테르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Luminiferous aether라고 부른다. 이것은 빛나는 에테르, 발광성 에테르라는 의미인데,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 자체가 빛의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율려 조화권을 내 몸에 가져오는 것이 도통의 관건입니다. 우리가 도통 세계에 들어갈 때, 이 율려를 인식하고 체험하고 그 기운을 몸에 가져옵니다. 우주의 율려를 내 몸에 채워 주는 신의 2대 여의주如意呪는 시천주주侍天主呪와 태을주太乙呪입니다. 이것은 인류 문명사에서 얻은 깨달음의 최종 결론입니다.
- 2022. 11. 12 종도사님 도훈
- 2022. 11. 12 종도사님 도훈
참선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어쩌면 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6쪽
종도사님께서는 이 대우주의 빛을 몸에 채우는 것이 도통의 관건이라고 하셨다. 이 책의 저자 K. C. 콜은 수행 문화까지는 모르고 있지만, 어쩌면 무에 대해서 과학보다도 수행자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는 무를 과학적 도구로 따지고 들어가서 아는 것보다 ‘느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책의 곳곳에 동양의 수행 문화와 깨달음의 방식으로 접근할 만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마치 시집을 읽듯 열린 마음으로 필독하시길 추천드린다. 다음 호에는 『우주의 구멍』 책 6~10장의 핵심 내용을 흥미롭게 다루고자 한다.
율려는 영적 에테르입니다.
참선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선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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