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양제가 스스로 말한 고구려와 수나라 국경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4-02 |
삼국사기의 영양왕조와 보장왕조를 인용하여 수양제가 스스로 자복한 수나라와 고구려의 경계를 고찰한다.
영양왕 22년(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遼東) 예맥(濊貊)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遼西)를 침범하였다....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幽州)와 삭주(朔州)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양제는 고구려가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 요동의 땅을 잠식했고 요서까지 침입하고 있다고 자복(自服)하고 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국경이 이토록 명확히 들어난 기록이 드물 것이다. 또 좌12군의 진격 경로에 있는 북쪽의 누방, 현도, 옥저, 낙랑, 조선 등은 수나라의 공격 루트 중에서 좌측이므로 지리적으로는 북쪽이며, 이중 누방은 낙랑군에 속한 땅이다. 경로 중에 조선이 있다는 것은 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12군의 진격 경로에 있는 임둔, 숙신, 갈석, 대방(帶方) 등은 중국의 우측이므로 지리적으로 남쪽 경로이며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대방이 결코 이병도 등의 주장처럼 황해도나 한강 이북일 수가 없다. 15대 미천왕 14년(AD 313년)에 망했다는 낙랑이 수양제(AD 611) 때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역사가들이 무시해선 안 된다.>
이후 수양제가 113만 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沃沮道)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玄菟道)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 이후 수양제의 대군이 을지문덕에게 패하여 완전 궤멸된 이야기나 이후에도 수양제가 수차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실패한 이야기 등은 생략을 한다.
<*이 삼국사기 기록에서도 우문중은 낙랑도(樂浪道)로 출발해서 나오고, 우익대장군 설세웅은 沃沮道)로 출발해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玄菟道)로 출발해서 나와서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고 했는데, 이 압록수(鴨淥水)는 현재의 압록수(鴨綠水; 鴨綠江)과 달리 한자 표시가 다르고 요동 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지역이다. 전투를 위해서 집결한 지역이므로 고구려 국경의 서쪽 지역이 확실하다. 이병도 등이 주장하는 평양이나 황해도나 함흥평야 같은 지역이 결코 될 수 없다. 탁군태수 최홍승이 출발한 수성도(遂城道) 역시 결코 황해도 지역일 수 없고 요서의 중국지명임이 분명하다. 이병도의 수성연이 황해도 수안이라고 한 사악하고 황당한 주장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보장왕 3년(AD 644) 당태종은 고구려와의 국경지대인 요동과 갈석에서 연개소문의 죄를 묻겠다고 하면서 1차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이듬해(AD 645년) 4월 당의 장수 이세적은 유주에서 출발하여 통정을 거쳐 요수를 건너 바로 현도(玄菟)에 이르렀다. 5월에 이세적은 요동성에 이르고 당태종은 요택에 머물렀다.
<*여기에서도 이세적이 지난 현도(玄菟)는 요수(遼水)를 바로 건넌 곳에 위치해 있고 요동성 바깥의 서쪽이었음을 삼국사기는 확실히 기록하고 있다. 현도(玄菟)가 옥저와 같은 지역이라고 했으므로 결코 함흥평야(옥저)를 지나서 요동성에 다다랐다고 주장하는 식민사학자의 사악하고 황당한 주장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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