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대사자료10. 황하문명보다 수천년 앞선 홍산문명은 중국인(하화족)이 아니라 한국인(동이족)의 조상이 만든 것이다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2-04

한국고대사의 단편적 자료들황하문명보다 수 천년 이상 앞선 홍산문명을 중국인은 자기 조상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한국사학자나 고고학자는 한마디도 제대로 말 못한다.

https://cafe.daum.net/buddhistforest/3EFj/1020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이번에 제기하는 홍산문명(紅山文明)은 황하문명(BC 5000) 보다 3000년이나 앞선 요령성 선양시의 신락문화(新樂文化)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중국인들은 화하족(華夏族: 漢族)의 문명이 아닌 이 문명을 자기들 조상의 문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한국의 역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은 이 문명이 동이족(東夷族)의 문명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지 못하고 한마디도 제대로 말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안경전역 환단고기에 실린 홍산문화의 내용

먼저 홍산문명에 대해서 안경전역 환단고기에 실린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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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BC 4700BC 2900년 경까지 약 1800년간의 문명이다. 1954년 중국 학자 인다(尹達), 철광석으로 뒤덮여 산 전체가 붉게 보이는 홍산(紅山)’에서 이름을 따서 이 문화를 홍산문화라 명명하였다. 이형구는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라는 글에서 이 홍산문화를 발해연안문명으로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형구는 동이족이 발해연안에서 창조한 문명은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 내는 젖줄이었다라고 밝혔다.

 

홍산문화는 1979년 객좌현 동산취촌(東産嘴村) 발굴과 1983년 그 인근 우하량촌(牛河梁村) 발굴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동산취에서 엄청난 제사 유적이 발견되고, 우하량에서 돌무덤(), 신전(), 제단()이 한꺼번에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형구 교수는 총단을 인류의 정신문화를 가능케 하는 3요소라 하였다. 3요소가 모두 나온 것은 다른 신석기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우하량의 16개 유적지 가운데 13곳이 돌무덤, 즉 적석총 유적지이다. 적석총은 고대로부터 삼국시대 때까지 계속 나타나는 동이족의 대표적인 묘제(墓制)로 황하지역의 화하족(華夏族: 중국 한족의 조상)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주검을 묻거나 관을 묻는 형식의 널무덤(土壙墓)을 지었다. 산악과 평지가 공존하는 요서 지역에 살던 동이족은 주로 돌무덤을 지었다. 우하량의 돌무덤은 약 5,500년 전5,000년 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BC 4천 년대에 요서에서 돌무덤을 짓고 문명을 일군 동이족은 바로 배달의 백성이다.

 

이 대형 무덤군 바로 옆 자리에 원형으로 쌓은 적석총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원형 제단(祭壇)으로 홍산인의 정신문화를 보여주고 있다....그런데 반지하식 구조로 지은 우하량의 여신묘 터에서 여신상(女神像)과 함께 홍산인의 토템 신앙을 보여주는 곰 소조상과 새 소조상이 발굴되었다. 곰 소조상은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족(熊族)을 나타내며, 홍산문화는 환단(환국과 배달)의 문화로 볼 수 밖에 없다.

 

6천여 년 전에 벌써 국가 단계의 복잡한 문명을 일구었다는 사실도 인류의 창세사를 다시 쓸 만큼 충격적인 일이지만, 홍산문화가 세계인을 정말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정교하고 다양한 옥() 문화이다.... 요컨대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의 것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문화이다. 오히려 그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환단 시대 배달 동이족의 독자적 문화이다.(중략)

 

현재 중국은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소개하면서 중국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보다 앞서는 세계 최고 문명국으로 내세우고 있다. 환단 시대의 한민족 문화를 중국인 자신들의 문화로 둔갑시켜 이제 경제대국에서 문화대국까지 꿈꾸는 것이다.

 

중국이 미래의 중심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때, 환단시대(환인시대-배달시대-고조선시대)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강단사학자 들은 홍산문명에 대해 침묵하거나 우리 역사와 관계없는 것으로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민족,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거짓 역사의 미몽에서 깨어나 잃어버린 시원 역사와 문화를 되찾자 그것만이 역사의 정의를 회복하는 대도의 길이다. (안경전역 환단고기 258265p 요약 인용)

 

***참고: 지금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홍산문화가 동이족의 문화이고 우리 한민족 조상이 만든 문화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홍산문명이 자기 조상들이 만든 문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우하량에서는 BC 3,500(5,500년 전)까지 올라가는 적석총(), 여신묘(), 대형 제단()을 모두 갖춘 동북아 최고의 문명이다. 이는 5,500여년 전에 이미 종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의 국가 조직을 갖춘 고대문명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 문명은 인류의 4대문명이라는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 및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2천년 앞선 문명이다.

 

위키백과에 실린 홍산문화-중국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요하문명을 중국문명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산문화(紅山文化)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B%99%EC%82%B0_%EB%AC%B8%ED%99%94

 

홍산 문화, 발해 연안 문명(홍산 문화, 중국어 간체자: 红山文化, 정체자: 紅山文化, 병음: hóngshān wénhuà)은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遼寜城)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이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 조양 시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큰 특징인 빗살무늬 토기와 적성총, 옥기(玉器)는 한반도 강원도 고성군 패총에서 출토된 옥 귀걸이(7천 년 전)와 전남 여수 안도리(6천 년 전) 등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 귀걸이와 유사점이 있어 고조선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기원전 4700~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지금까지 츠펑(赤峰, 발견 당시엔 열하성), 링위안(凌源), 젠핑(建平), 차오양(朝陽) 500여곳의 유적을 찾아내어 발견 지역은 옌산 산맥의 북쪽 랴오허 지류의 서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다. 홍산 문화는 옥() 문명(文明)으로 유명하며 홍산 문명이라고도 한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싱룽와 문화(興隆窪文化), 훙산 문화, 자오바오거우 문화(趙寶溝文化), 신러 문화(新樂遺跡)등으로 이어지는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문화(culture)의 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civilization)으로 간주하여 '랴오허 문명'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신석기/청동기 요령지역 문화와 주요 유적

***참고: 신락(新樂)문화, 소하서(小河西)문화, 흥륭와(興隆洼)문화, 부하(富河)문화는 BC 8000BC 5000년의 문화이어서 황하문명(BC 50003000)보다도 최고 3000년 정도 앞선 문명이다.

 

기원전 8000~ 기원전 7000년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신낙 문화 유적(모계씨족의 정주 취락) 新樂 文化(신러) 랴오닝성 선양시 북부 지역

 

기원전 7000~ 기원전 6500년 신석기시대 소하서 문화 유적 小河西 文化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지역

 

기원전 6200~ 기원전 5200년 신석기시대 흥륭와 문화 유적 興隆洼 文化(싱룽와)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지역

 

기원전 5200~ 기원전 5000년 신석기시대 부하 문화 유적 富河 文化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부하 유역

 

기원전 5000~ 기원전 4400년 신석기시대 조보구 문화 유적 趙宝溝文化(자오바오거우) 내몽골 난하 계곡과 요서 북부

 

기원전 4500~ 기원전 3000년 신석기시대 훙산 문화 유적 紅山文化(훙산) 내몽골, 요동, 요서

 

기원전 3000~ 기원전 2000년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 소하연 문화 유적 小河沿 文化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소하연 유역

 

기원전 2000~ 기원전 1500년 초기 청동기시대 하가점 하층 문화 유적 夏家店 下層 文化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맹극하(孟克河) 유역

 

연대 인상과 평가

중국에서는 요하 유역에서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도리이 류조의 처음 발견 당시의 추정보다 연대가 훨씬 오래된 기원전 8000년까지 인상되었다면서, 광의의 홍산 문화에 기원전 8000년경의 신러 문화(新樂 文化)까지를 포함시켜 '요하 문명'으로 간주하여 홍산 문화가 황하문명의 원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중국 학자들은 랴오허 지역의 사람들이 남하하여 황화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참고: 황하문명은 BC 5000년 경 시작되었으므로 신락문화(新樂文化)는 이보다 3000년 정도 앞선다.

 

중화인민공화국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시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공정 연구의 일환으로, 20036월부터의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하여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랴오허문명(遼河文明)을 중화문명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하 생략)

 

***참고: 중국은 중화문명 탐원공정을 통하여 황하문명(BC 50003000)보다 빠른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무위키의 홍산문화 중 고조선 관련성 설명

나무위키에서는 홍산문화와 고조선 관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고조선과의 관련성

홍산 문화를 한국 사학계에서 주시하는 이유는 고조선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특히 홍산문화가 곰을 신성시 여기고 여신 조각상이 출토되는 등의 특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설화에도 꽤 잘 맞물리기 때문. 게다가 중국이 동북공정과 관련해 이 고고문화를 중화제1, 중화시조취락 등 중화시조 마을로 내몽골 및 요하 일대에 널리 분포한 홍산문화를 이른바 요하문명론으로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어 주시하고 있다.

 

한편, 고조선은 홍산문화를 포함해 본 문서에서 다루는 신락 하층 문화~소하연 문화보다는 그 이후의 하가점 하층 문화(BC 2000~1500), 하가점 상층 문화(BC 1500~1000)과 오히려 관련이 더 높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하가점 하층 문화에 속하는 내몽고 적봉시 유적인 삼좌점(三座店) 석성은 그 형식이 고구려의 축성 형식과 매우 유사하며 1. 평지성+산성 이중구조 2. 육합쌓기(축성시 돌 하나에 돌 6개가 맞물리게 지어 견고성을 높이는 방식) 3. 옹성의 전신인 ''(평지성에서 15, 산성에서 10개 발견) 4. 들여쌓기(지상 5~6m 정도는 사선으로 여러 겹(3겹 내외)을 쌓고 그 위로는 수직으로 쌓는 축성방식) 4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하가점 상층 문화 지역에서는 고조선을 상징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비파형 동검이 대다수(국내 소장량보다도 훨씬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보면 중국발 하플로그룹 검사결과가 퉁구스네 몽골이네 적혀있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고대 미라가 발견된 것이 아니며 출처가 불분명하고 하플로그룹은 알 수 없다.

 

***참고: 내몽골 적봉시(赤峯市) 맹극하(孟克河) 유역의 하가점 상층문화(BC 1500~1000)과 지역에서는 고조선을 상징하는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대다수(국내 소장량보다도 훨씬 많이) 발견되어 이 지역이 고조선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요하 지역의 주인공이었던 한민족이 세운 단군조선과 한민족 최초의 나라였던 배달국을 부정합니다.

 

출처: https://gdlsg.tistory.com/3122

 

 

한국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불행히도 홍산문화나 하가정하층문화에 대해서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http://lyuen.egloos.com/5475091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하가점 상층문화의 종족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미 수년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실체는 모호하지만 고고학적인 추정연대가 마구 올라가면서도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중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사의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고고학적 유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대중적인 기대가 적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나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거의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가점 하층, 소하연, 홍산문화에 대해서 그것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애당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산융, 동호, 선비, 거란계 종족의 활동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잠정적으로 Proto-Korean으로 명명하자)이 이 지역에 한 때 거주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먼저 입증 해야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참고: 한국의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은 변명으로 일관하지 말고 홍산문명이 하화족(중국인)이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족의 문명임을 밝힐 수 있도록 모두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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