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118. 동북공정으로 한강 이북땅이 모두 고대중국 땅으로 되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30 |
고대사118. 동북공정에 따라 한강 이북 땅이 모두 고대 중국땅으로 되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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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라 한강 이북 땅이 모두 고대 중국땅으로 되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라 한강 이북의 땅을 모두 고대 중국의 땅으로 표시하고 있는 바이두백과(百度百科)의 지도를 보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중국의 동북공정 사진을 보고도 그냥 지나칩니까? 한국의 역사학자란 놈들은 인간적 양심도 없는 놈들입니까? 어째서 이병도 같은 국사XXX의 대방군=황해, 경기도설이 지금껏 그대로 신봉되고 있습니까? 낙랑은 평양이 아니라, 갈석산이 있는 중국에 존재했던 것을 한국의 역사학을 하는 놈들은 왜 외면만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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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aehansarang.org/post/5664
■ 중국의 한나라 시대 동북 공정 내용입니다
중국이 만든 바이두백과에 있는 연5군과 현도군 낙랑군 위치 지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무지와 무식인 중국 고대사서고찰없이
북한 평양에 위만조선, 한사군, 낙랑군이 있었다고엉터리로 주장한 결과로 역사왜곡의 참사입니다
[질문]어떤 느낌인가요? 그리고어떤 대응방법이 있을까요?
출처 :西汉图片_百度百科 (baidu.com)
■ 내용이 이렇게 심각한데...
1) 사마천 사기나 한서지리지 고찰없이
2)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내용으로
중국 동북 공정에 대응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 사마천 사기나 한서지리지로 정확한 위치를 고찰해야..
중국이 그래도 약간은 양심에 찔지지 않겠는지요?
위치에 대한 진실과 사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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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에 대한 설명 요약
한나라 무제는 고조선을 침략한 후 BC 108-107년 고조선 옛 땅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4군 설치하고 관리를 직접 파견해 다스렸다. 한사군은 토착세력의 지속적 저항을 받자 한은 25년 후인 BC 82년에 진번과 임둔의 2군을 폐했고 현도군도 위축되었다.
이에 한은 한사군 설치 25년 후인 BC 82년에 4군 가운데 진번과 임둔의 2군을 폐하고 진번의 속현들은 낙랑군에, 임둔의 속현들은 현도군에 속하여 관할받도록 했다.
결국 313년에는 낙랑군이, 314년에는 대방군이 고구려에 멸망함으로써 한반도 내의 중국 군현은 소멸되었다.
따라서 수현(首縣)인 조선현(朝鮮縣: 괄리지에 노룡현 동쪽에 있었다고 기록됨. 식민사학자들의 평양이 아니다)을 비롯해 염한현·패수현(浿水:현재의 조백하 부근 지역으로 비정됨)·점제현(점제, 점선현 수양제의 우12군 첫 번째 침략경로이며, 평안도 평강이 아니다) ·수성현(遂成: 갈석산에 수성현이 있었으며, 이병도의 수안이 아니다)·증지현(增地)·사망현(駟望)·둔유현(屯有: 후에 대방이 설치된 지역으로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었으며, 이병도가 주장하는 황해도가 아니다)·누방현(鏤方: 수양제의 좌12군 첫 번째 침략경로이며, 수경 기록은 요서에 있었고, 한반도가 아니다)·혼미현(渾彌)·탄열현(呑列) 등 11현으로 출발했던 낙랑군은 진번군(眞蕃郡: 낙랑군과 인접해 있어 낙랑군에 통합되었으며, 난하 서쪽으로 비정된다)의 속현 15개를 추가로 관할하게 되어 외형상 군세(郡勢)가 크게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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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진번군의 속현들을 한사군 설치 25년 후 낙랑군에 통합한 것을 보면 낙랑군과 진번군은 인접헤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임둔군의 속현들도 한사군 설치 25년 후 현도군에 통합한 것을 보면 임둔군은 현도군과 인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낙랑군은 고대사자료 7. 및 8. 등에서 누차 설명한 바와 같이 진황도시, 당산시 및 북경의 만리장성인 팔달령 부근 지역을 포함한 위치에 있었으며, 그 동쪽은 요수(遼水: 현재의 난하)까지 포함되었을 것으로 비정된다. 현도는 당태종의 이세적 군대가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를 건너 바로 진격한 곳이 바로 현도(玄菟)이며, 난하와 요동성의 중간에 현도가 있었으므로 임둔군도 난하 동쪽인 이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비정할 수 있다.
***참고: 낙랑군에 속하였다는 점제현은 일본인이나 왜색사학자 이병도가 말하는 평안도 평강군이 아니라,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 우12군 첫번째에 위치한 수나라와 고구려 변경지역의 고구려 땅이었다. 점제현이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인 점을 보면 점제현은 최초 한사군에 속해 있었지만, 당시에는 고구려에 속한 땅이었다. 한국사학자들은 왜놈들이 쉽게 찾아낸 점제현의 위치를 지금이라도 바로 찾아내어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필자 주: 낙랑은 위만이 터를 잡았던 낙랑 상하운장, 지금의 북경부근을 비록하여, 천지시, 진황도시, 당산시 부근 지역으로 추정된다.현도는 임둔을 합병하였고, 당태종 침략시 이세적이 지금의 난하이 요수를 건넌 곳이 현도이었으며, 요동성(요동성은 2곳이 있었다)과 난하 사이가 현도이므로 이곳이 현도와 임둔의 지역이었다. 최근 중국 금주시 태집둔에서 임둔태수 인장이 발련되었으므로 이 지역이 임둔군으로 추정된다. 또 대방은 낙랑군 둔유현 남쪽의 공터이므로 요서지역이었고,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대방군이 있었다.
대방군은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 우12군 11번째 경로에 위치해 있었다. 대방군에 속한 속현들도 탄열을 제외한 모든 속현이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었으며, 이병도란 놈이 말한 황해도가 아니라, 수양제 침략경로인 요서지바에 대방군이 있었다.
대방군의 위치는
https://cafe.daum.net/buddhistforest/3EFj/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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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낙랑과 대방에 속했던 각 현은 한반도에 있지 않고, 수양제가 고구려 평양을 공격하기 위한 침략루트에 80% 이상이 들어있다. 이는 침략루트에 기록되지 않은 속현들도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앞으로 한국사학계는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표시된 지명에 대한 정확한 위치만 확인해 보더라도 낙랑군이나 대방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고 대륙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양제는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점제현),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후 수양제가 113만 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沃沮道)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玄菟道)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낙랑과 대방에 속한 여러 속현들이 거의 대부분80% 이상 수양제의 좌12군, 우12군 및 친위 6군에 기록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사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이같은 분명한 기록을 외면한 채 한반도 내 한사군이 있었다는 이병독 같은 놈의 주장을 추종해선 안된다. 반드시 한사군 대륙존치설로 바꾸어야 한다.
***첨고: 대방은 수양제 우12군의 11번째 침략경로에 있어서 이병도란 놈이나 이병도란 놈을 추종하는 사이비사학자들이 말하는 황해도가 아니라, 고구려 서쪽 국경지대에 있었다. 이를 부정하는 놈들은 한국사매국노들이 분명하다.
**참고: 압록수 역시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수군이 고구려를 침략하기 전에 집결한 난하보다 서쪽의 강으로 조백하의 하류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인들의 역사왜곡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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