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방군과 속현은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가 아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8-30 |
대방군과 속현은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가 아니다
○晉書에 나타난 한사군은
낙랑군에 속한 1) 朝鮮조선, 2) 屯有둔유, 3) 渾彌혼미, 4) 遂城수성, 5)鏤方누방, 6) 駟望사망의 6개 현이 있었고
7) 帶方대방군 소속의 현에는 8)列口열구, 9) 長岑장잠, 10) 提奚제해, 11) 含資함자. 12) 冥海명해, 13)呑列탄열 6개 현이 있었다.
영양왕 22년(AD 611년) 수양제는 고구려 침략시에
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또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遂成)으로 나아가 고구려 평양으로 진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는 수성(遂成: 수나라 탁군태수 최홍승의 진격로)을 황해도 수안(遂安)과 앞글자 “수(遂)“자가 같아서 수성(遂成)이 황해도 수안이라고 왜곡하여 갈석산 만리장성 시발점을 황해도 수안으로 끌어들였다. 참으로 이병도란 자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 고등예과(高等豫科)를 거쳐 1919년 문학부 사학급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를 졸업했다.한국사 연구의 필요성을 통감해,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당시 교수였던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와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에게 학문적 영향을 받았으며,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로부터는 훗날까지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이병도란 자는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했는데, 수양제 침략 전격로에 진서(晉書)에 기록된치소인 대방군(帶方郡: 우 12군의 11번째)을 비롯하여 장잠(좌12군 2번째), 제해(우12군 6번째), 함자(우12군 2번째), 명해(좌12군 3번째) 군현들이 모두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고구려 땅에 있어서 대방을 비롯한 그 속현 들이 대륙에 있었음이 확실함에도 전혀 엉뚱하게 대방을 황해도라고 하였다.
이병도란 자는 “은율군은 고구려 시대의 ‘율구(栗口)’ 혹은 ‘율천(栗川)’이니 율구(栗口)는 열구(列口)와 음이 거의 같고 율천(栗川)도 열수(列水)의 이사(異寫)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구현이 오늘의 은율 부근이라 함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진번군의 위치는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과 황해도 등지에 있었다는 주류사학계의 남방설이 있다.
이병도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이 <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故)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쪽)라고 극찬했다.
이병도같은 한국사매국노나 왜놈 역사왜곡자들 그리고 이병도같은 역사매국노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자들은 아직도 대방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맹렬히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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