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 24개 지역은 고구려땅으로 추정된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6-21 |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 24개 지역은 고구려 땅으로 추정된다
○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
영양왕 22년(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위에서 수양제는 고구려가 발해와 갈석을 점령해 있다고 자복한다. 또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다고 하며, 말갈의 무리와 요서(遼西)까지 침범하였다고 분개한다.>
○수나라 좌12군의 진격로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누방), 2) 장잠(장잠), 3) 명해(명해), 4) 개마(개마), 5) 건안(건안), 6) 남소(난소), 7) 요동(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夫餘), 10) 조선(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좌 12군은 수나라 군대가 좌측인 북쪽 경로를 통해서 침략한 길이다. 여기에 8번 현토(玄菟), 11번 옥저(沃沮), 12번 낙랑(樂浪)은 모두 예전에 한사군에 속했던 땅으로 수나라에서 출발해서 고구려 평양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지명의 이름이다. 만약에 수나라 땅(서울)에서 고구려 서울(백두산)을 가는 길에 개성도, 춘천도, 철원도, 강능도를 거쳐서 간다고 하면 모두 수나라 땅이 아닌 고구려 땅에 이들 8번의 현도, 11번의 옥저, 12번의 낙랑이 있다.
여기에 수나라 군대 진격로에 있던 12번의 낙랑은 결코 왜인들이나 식민 사학자들이 말하는 평양이 아니다. 평양으로 진격하는 중간에 낙랑이 있는 것이다. 낙랑이라는 지명은 함부로 평양이다가 요동이다가 북경으로 되는 등의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경주가 청주이다가 평양이다가 함흥으로 지명이 바뀌어서 사용될 수 없음과 같다.
8번 현도(玄菟)는 왜인(倭人)들이나 이병도 같은 자들이 평북 산악지방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푸순(撫順)으로 옮겼다는 개소리를 하는데, 삼국사기 보장왕조를 보면 당나라 장수 이적이 요하를 건너 처음 고구려 군을 공격한 성이 현도성이고, 현도성을 함락한 후 요동성을 공격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요하와 요동의 중간에 현도성이 분명히 위치해 있는 것이다.
11번의 옥저는 왜인들이나 이병도 같은 사악한 자가 함경남도에서 간도지방에 이르는 지역이라고 비정하였다고 하는데 한서지리지의 다음 기록은 한국의 개마고원이 아니라 만주에 있는 개마(蓋馬)의 큰 산 동쪽이어서 결코 수나라 군대가 함경도를 지나서 평양으로 진격한 것이 아니고,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지역 중에 옥저가 있었던 것이다.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一]東 濱 大 海; 北 與 挹 婁、夫 余, 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二]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高句驪) 개마대산(蓋馬大山) 동쪽에 있다.』동쪽으로 큰 바다(海. 河)에 림하고, 북쪽으로 읍루(挹婁)와 부여(夫余)가 있으며, 남으로 예맥(濊貊)이 접하였다. 그 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사방 가히 천리(千里)이다. 땅은 기름지고 좋으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고, 마땅히 오곡이 있고, 밭농사도 좋다.
➡ 注[一] 『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山 :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서(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
○ 수나라 우 12군의 진격로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점선), 2) 함자(함자), 3) 혼미(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후성), 6) 제해(제해), 7) 답돈(답돈), 8) 숙신(숙신), 9) 갈석(갈석), 10) 동이(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 12군의 진격로는 수나라의 군대가 남쪽 지방을 경유하여 고구려를 침략한 경로이다. 이 중에는 4번 임둔(臨屯), 11번 대방(帶方)이 포함되어 있다. 4번 임둔은 이병도란 자가 함경남도 전체를 임둔군이라고 비정하였는데,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수양제가 어떻게 함경남도를 지나서 평양을 공격한단 말인가?
“이병도는 임둔군을 반도의 동북해안의 땅으로 지금의 함경남도 전체에 비정한 것이 이병도(李丙燾)의 주장이다. 즉, 『한서』 무제본기의 4군을 설치한 기사의 끝에 붙인 신질이 인용한 『무릉서』에 “임둔군치 동이현은 장안으로부터 6,138리이다.”라는 것에 근거해 동이현의 장안으로부터의 거리를 추산한 결과, 그 위치가 대체로 지금의 함경남도 남단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한편, 고구려시대 천정군(泉井郡)의 속현인 동허현(東墟縣)이 동이현의 ‘동이’와 음이 비슷하므로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군에 비정하였다. 또한 『무릉서』에 임둔군의 속현은 15현이라고 한 기록에서 서기전 75년 임둔군을 폐하고 낙랑군에 속한 7현을 각각 함흥·안변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위와 같은 이병도란 자의 주장은 임둔군이 장안으로부터 6,138리라고 해서 함경도란 궤변을 했는데, 6,138리는 추정컨대 함경도가 아닌 동해 바닷속에 위치할 것이다. 동이현이 고구려의 동허현(東墟縣)과 같다는 것도 궤변이다. 수양제의 우 12군 10번째 칠략 경로가 동이현인데, 어찌 이곳 동이현 함경남도 덕원군과 같다는 궤변을 할 수 있겠는가?
수양제의 우 12군 침략 경로에 있는 대방군(帶方郡) 역시 수나라 국경에서 고구려 평양으로 향하는 진로 중에 위치한 곳인데 어찌 이병도같은 사악한 자의 주장인 황해도가 될 수 있는가? 수양제가 평양을 공격하기 위해서 황해도를 먼저 공격하고 평양을 다음에 공격한단 말인가? 이병도란 자는 역사를 너무 왜곡한 매우 사악한 자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어서 수양제의 군대는 진격을 계속하였는데, 좌익위 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로 출동하고, 위익위 대장군 우중문은 낙랑으로 출동하고, 좌효위 대장군 형원항은 요동으로 출동하고, 우익위 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로 출동하고, 우둔위 대장군 신세웅은 현도로 출동하고, 우어위 장군 장근은 양평으로 출동하고, 우무후 장군 조효재는 갈석으로 출동하고, 탁군태수 검교 좌무위 장군 최홍승은 수성으로 출동하고, 검교우어위 호분 낭장 위문승은 중지로 출동하여 모두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였다.
이 밖에도 전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에 관련된 25개 현이 있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다. 조선(朝鮮), 남함, 패수, 함자(含資), 점제,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방, 해명(해명), 열구, 장잠(長岑), 둔유, 소명, 누방, 제해(提奚), 혼미(渾彌), 탄렬, 동이(東이), 불이, 잠대, 화려, 야두매, 전막, 부조 등이라고 한다.
위에서 표시된 낙랑군과 관련된 25개 현 중에서 낙랑, 조선, 함자, 수성, 중지, 대방, 장잠, 제해, 혼미, 동이 등 10개 군현이 모두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 경로에 있으므로 이들 모두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 부근 고구려 땅인 것이다. 낙랑이 평양일 수 없고, 수성이 황해도 수안일 수 없으며, 대방이 황해도와 경기도 땅일 수 없고, 동이가 함경도 덕원일 수는 더더욱 없다.
왜인들이나 이들에게 아부하여 역사 왜곡을 서슴치 않았던 이병도 같은 자들은 위의 낙랑군 25개 현 중에 한 곳으로 나타난 점제현이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었다고 날조한 후 이를 이병도란 자가 1970년도 대 그가 발간한 한국 역사서에서 점제현 신사비가 평안남도 용강군에 위치해 있고, 점제현이 평강군이므로 낙랑은 평양이 확실하다는 논조로 지금까지 낙랑 평양설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찌 수양제가 평양을 향해 공격한 루트 중에 있는 낙앙이 평양일 수 있겠는가?
○ 결론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수나라에서 고구려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좌 12군의 12개 지역과 우 12군의 12개 지역 합계 24개 지역이 고구려와 수나라 중에서 어느 곳에 속하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매우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서울(수나라)에서 백두산(평양)을 가는 길에 개성으로 가는 길, 춘천으로 가는 길, 철원으로 가는 길, 강능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 이는 모두 출발지인 수나라(서울)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평양 가는 중간의 지역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은 모두 고구려 땅이다. 또 이마니시류(今西龍)이 평안남도 평강군에서 점제현 신사비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점제현이 낙랑군에 속해 있었으므로 낙랑군은 반드시 평양이라고 왜인들은 물론 이병도란 자까지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 경로에는 낙랑을 비롯한 조선, 함자, 수성, 중지, 대방, 장잠, 제해, 혼미, 동이 등 10개 군현이 한반도 아닌 만주지역에 있으므로 낙랑군 평양설은 반드시 폐기되고 낙랑군과 이에 속한 지역의 위치도 다시 정밀한 연구로 밝혀져야 한다. 한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은 수양제의 침략 경로나 당태종과 이적의 고구려 침략경로에서 볼 수 있드시 요하 부근에 있는 지명이며, 결코 이병도 같은 사악한 자들의 주장과 같이 한반도에 있던 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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