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93. 고조선 평양왕검성의 위치가 개평이었다는 신채호와 KBS 주장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18 |
고대사93. 고조선의 평양왕검성(王儉城) 위치가 개평(蓋平: 蓋州市)이라는 신채호와 KBS 주장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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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평양왕검성을 개평지역이라고 신채호 등은 주장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평양왕검성이 진황도시 부근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왕검성이 여러 곳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신채호는 환도성(丸都城)이 안시성(安市城)이고, 개평(蓋平: 개주시) 동북 70리 고허라고 하였다.(**참고: 일부 논자는 왕검성을 난하 서쪽에 있었다고도 함)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박기봉 옮김, 240p)에 기록된 ‘환도성’과 ‘안시성’에 대한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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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에서 “安市城 或云 丸都城(안시성은 달리 말하기를 환도성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하였으며, “安市城, 舊安守忽(안시성은 옛날의 안수홀이다)”라고 하였으니, ‘丸都(환도)’나 ‘安市(안시)’나 ‘安守’는 모두 다 ‘아리’로 읽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같은 한 지방, 곧 지금의 개평(蓋平: 개주시) 동북 70리 고허(故墟)가 명백하다. 그런데도 후인들은 전후 세 환도(丸都)를 구별하지 못하고 한 곳에서만 찾았으므로, 아무리 고증에 노력하였다고 하더라도 환도의 위치는 여전히 애매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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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조선상고사』(박기봉 옮김, 192p)에서 위만조선의 만번한(滿藩汗), 패수(浿水), 왕검성(王儉城) 등 위씨(衛氏: 衛滿)의 근거지가 지금의 해성(海城), 개평(蓋平) 등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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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조선상고사』(박기봉 옮김, 108p)에서 대단군의 삼경(三京: 세군데 수도, 王儉城)은 그중 하나는 지금의 하얼빈(哈爾濱)이니 고사(古史)에 부소갑(扶蘇岬), 비서갑(非西岬) 혹은 아사달(阿斯達)로 기록된 곳이며,
그 두 번 째는 지금의 해성(海城), 개평(蓋平) 등지로서 고사(古史)에 오덕지(五德地), 혹은 오비지(五備地) 혹은 안지홀(安地忽) 혹은 안시성(安市城)으로 기록된 곳이며(**참고: 개마대산 동쪽의 왕검성은 이곳 개평일 것이다. 필자 註), 세 번 째가 지금의 평양(平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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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고조선이 수도는 어디였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rK0k8q3hOw8
- 고조선 유물은 왜 요서 지역에 나타나는가?
고조선 사람들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비파형동검은 요서지역, 특히 대릉하 상류인 조양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할 수 있는 대형 고인돌도 평양이 아닌 요동반도의 개성, 해주 인근에 분포하고 있다.
이는 대형 석조건축물 고인돌의 시기에, 단군이 평양이 아닌 요동벌판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 요하 하구에 왕검성이 있었다?
중국사료(사기조선전주석)에는 "요동의 험독현에 왕험성이 있는데 조선왕의 옛 도읍지다"라는 기록이 있다. 평양을 고조선의 수도로 정하기 이전에 조선은 요동 반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험독현은 어디인가? 자치통감은 요하와 태자하 혼하, 이 세 강이 합쳐지는 황수가에 험독현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황수는 바로 요하하구. 요하를 해자로 삼고 천산산맥을 등진 자리에서 고조선은 요동벌판과 요서, 한반도를 지배했던 것이다.
- 고조선은 왜 평양으로 천도했나?
고조선은 사방 수 천리의 나라라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요동에 수도를 두고 요서지역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고조선. 30만 강병을 자랑하던 전국칠웅 연나라를 치려다 도리어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공격받아 서쪽땅 2,000리를 상실한다.
그 타격으로 고조선은 평양으로 천도하게 되는데...바로 이 평양을 중심으로 이후 200여 년간 후기고조선의 역사가 펼쳐진다.
- 평양에서 꽃피운 화려한 문명, 쌍두마차
최근까지 북한은 800여기의 단장목곽묘라는 후기고조선무덤을 발굴했는데, 놀랍게도 800여기의 무덤 중 남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모든 무덤에서 청동마차부속구가 출토되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고고학과 오카우치 교수는 "평양지역의 청동마차부속구는 중국에서는 단 한 점도 출토되지 않는 고조선 독자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고조선은 화려한 청동쌍두마차가 평양거리를 줄지어 질주했던 그런 시대인 것이다.
HD역사스페셜 4회 – 첫나라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나 (2005.5.27.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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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2019. 7. 19자 방영된 내용으로 고조선의 초기 중심이 개주시(蓋州市: 蓋平)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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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wBzBdnAshE&list=PLXU9_O6coqxVFbFsbXgn_8MPsYPkIcl7i
○요동반도 개주시와 해성시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고인돌이 있다.
북한 대동강 유역에는 일만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이런 고인돌에서 다양한 종류의 청동기부장품이 발굴돼 고조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요동반도 개주 석붕산 고인돌은 남한 지역 고인돌과 달리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도구를 이용해 잘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뚜껑돌의 길이가 8.6미터, 폭이 5.6미터로 요동반도와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정교하다. 개주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위치한 해성시에도 대형고인돌이 있다.
웅장한 모습에 축조기술까지 뛰어나 요녕지역에서 손꼽히는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 역시 자연석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화강암의 표면을 가공해 사용했다.
개주와 해성 일대에는 이 외에도 상당수의 대형고인돌이 분포돼 있다. 고인돌의 분포에 따르면 초기 고조선의 지배층은 요동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평양왕검성의 위치는 진황도시의 동쪽 부근 지역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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