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대사자료95. 이덕일이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이 궤변이라는 팔xx닉의 매국노적 주장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3-19

고대사95. 이덕일의 실언,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것이 재야의 궤변이란 팔xx닉의 주장(대방은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었고, 대방황해도설은 한국사매국노의 주장이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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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닉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0(246) 조에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현도를 침범해서 낙랑으로 퇴각했다가 아니고

 

동천왕 20(246) 가을 8월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만명을 거느리고 현도를 나와 침입하였다....(중략)....마침내 나라(樂浪, 고구려를 말함)에서 물러갔다이다.

https://blog.naver.com/hsg8689/222495787600

 

위의 팔xx닉이 주장하는 것을 요약하면, 한사군이 대륙에 있다고 주장한 이덕일은 궤변이고 이같은 주장을 하는 재야사학자들도 궤변이며, 팔공산이란 사람의 낙랑는 나라이고, 낙랑은 고구려이었으며,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것이 정당한 주장이란 것이 이 팔xx 닉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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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쓴 팔xx의 글을 실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살펴보면

 

고구려 11대 동천왕 20년 추팔월에 위나라가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군대 일만명을 거느리고 현도(玄菟)를 출발하여 내침하였다. 동천왕이 보병과 기병 2만명으로 비류수(沸流水)에서 역습하자 위군이 패했으며, 위군 삼천여명의 머리를 베었다(二十年 秋八月 魏遣 幽州刺史 毌丘儉 將萬人 出玄菟 來侵 王 將步騎 二萬人 逆戰於 沸流水上 敗之 斬首三千餘級)

...(중략)....

 

유유가 음식 그릇에 칼을 숨기고 적장에게 나아가 칼을 빼어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찔러 살해하고 그와 함께 죽었다. 위나라 군이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타서 고구려 동천왕이 군사를 3길로 나누어 급습하였다. 위나라 군사들이 큰 혼란 속에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마침내 스스로 낙랑(樂浪)으로 퇴각하였다.(紐由 隱刀食器 進前 拔刀刺魏將胸 與之俱死 魏軍遂亂 王分三軍 爲三道 急擊之 魏軍 擾亂 不能陣 遂自 樂浪而退)“란 삼국사기(三國史記) 기사의 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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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닉은 魏軍 擾亂 不能陣 遂自 樂浪而退(위나라 군사가 큰 혼란 속에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마침내 스스로 낙랑으로 퇴각하였다)“는 기사에서 낙랑(樂浪)이 갈석산(碣石山)과 진황도시(秦皇島市) 부근 지역에 있던 낙랑(樂浪)으로 패퇴한 사실을 숨기고 낙랑(樂浪)나라라고 하느니, ”고구려라고 하느니 하는 해괴한 논리로 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xx닉이란 자가 왜 낙랑을 ”“나라라고 하느니, “고구려라고 하느니 하는 해괴한 거짓말을 늘어놓을까? 팔공산이란 자는 관구검의 군대가 저들이 주장하는 평양의 낙랑으로 패퇴하였다고 하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며, 또는 갑자기 평양에 있는 낙랑에서 패퇴하여 물러갔다고 해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묻는다. 팔공산이란 자가 말한 낙랑(樂浪)이 고구려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팔공산은 관구검이 낙랑으로 물러갔다고 해야 하는 것을 굳이 남을 속이는 말로 낙랑이 고구려이고 낙랑(고구려)에서 물러갔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팔공산이란 자는 손톱만큼의 양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남들을 속이려 드는 사람이다.

 

현도를 압록강 중.상류라고 주장한 XXX 이병도와 그 추종의 무리들

XXX 이병도는 현도를 압록강 중.상류라고 하였고, 이병도를 추종하는 XXX 무리들은 지금도 현도를 압록강 중.상류라고 책자에 버젓이 그려놓고 있다. 그런데 관구검이란 자가 고구려 11대 동천왕 때 압록강 중.상류에 있는 현도를 출발해서 고구려를 공격했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 고구려가 있을 자리에 현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즙안을 통과해서 압록강 중류에서 합쳐지는 비류수(沸流水)에서 고구려와 싸웠다는 것도 XXX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하여 XXX들은 현도가 압록강 중.상류에서 무순(撫順)으로 옮겨갔다는 해괴한 논리를 조작해서 또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현도(玄菟)는 지금의 진황도시(秦皇島市) 남쪽을 흐르고 있는 난하(灤河)를 건너 바로 현도가 있었으므로 지금의 진황도시 부근이 바로 현도이었다.

 

고구려 보장왕조를 보면,

 

보장왕 4(AD 645) 1월 이세적군이 유주(幽州: )에 이르렀고, 3월에는 당태종이 정주(定州: 河北)에 이르렀으며, 이세적군이 유성(柳城: 지금의 熱河)를 출발하였다.(寶藏王 四年 春正月 至幽州 三月帝至定州....李世勣軍 發柳城)

 

또 여름 사월에는이세적이 스스로 통정(通定)에서 요수(遼水: 지금의 灤河)를 건너 현도(玄菟)에 이르니 고구려의 성읍 주민들이 크게 놀라 성문을 닫고 수비에 들어갔다.....오월에 이세적이 나아가 요동성 아래에 이르렀다(夏四月 世勣自通定 濟遼水 至玄菟 我城邑大駭 皆閉門自守.....五月李世勣 至遼東城下)

 

당나라 이세적이 요수(遼水: 지금의 灤河)를 건너 바로 고구려와 싸운 땅이 현도이었다.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출발한 지점도 바로 지금의 난하 부근에 위치해 있던 현도이며, 물러간 곳 낙랑(樂浪)XXX들이 말하는 평양이 아니다.

 

더군다나 낙랑이 평양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손톱만큼 양심을 보이려고 낙랑(樂浪)나라라느니, 또는 낙랑이 고구려라느니 하는 해괴한 조작을 해서 남들을 또 속이려 드는 팔공산닉은 아마도 손톱만큼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진다.

 

***참고: 낙랑과 대방에 속했던 각 현은 한반도에 있지 않고, 수양제가 고구려 평양을 공격하기 위한 침략루트에 80% 이상이 들어있다. 이는 침략루트에 기록되지 않은 속현들도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앞으로 한국사학계는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표시된 지명에 대한 정확한 위치만 확인해 보더라도 낙랑군이나 대방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고 대륙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양제는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점제현),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후 수양제가 113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沃沮道)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玄菟道)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낙랑과 대방에 속한 여러 속현들이 거의 대부분80% 이상 수양제의 좌12, 12군 및 친위 6군에 기록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사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이같은 분명한 기록을 외면한 채 한반도 내 한사군이 있었다는 이병독 같은 놈의 주장을 추종해선 안된다. 반드시 한사군 대륙존치설로 바꾸어야 한다.

 

***첨고: 대방은 수양제 우12군의 11번째 침략경로에 있어서 이병도란 놈이나 이병도란 놈을 추종하는 사이비사학자들이 말하는 황해도가 아니라, 고구려 서쪽 국경지대에 있었다. 이를 부정하는 놈들은 한국사매국노들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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