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82. 고인돌루트의 실체, 단군조선의 고인돌은 유럽으로까지 퍼져나갔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11 |
고대사82. 고인돌 루트의 실체I(단군조선과 고인돌)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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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고인돌의 40% 이상이 한반도에 있지만,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한반도의 북부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이라면서 중국의 식민지이었다고 표시하고 있다.
또 일본은 한반도의 남쪽이“임나일본부”이어서 일본의 영토이었고, 일본의 식민지이었다고 하고 북부는 한사군으로 중국의 식민지이어서 한국의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이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 역사책 뿐 아니고,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까지 한국의 남부를 일본의 식민지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돌이 단군조선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한국의 강단사학자, 식민사학자들은 부정한다. 그 이유는 단군조선이란 국가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청동기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강단사학자,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10세기(3천년 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러므로 기원전 20세기(4천년 전)에 건설되었다는 단군조선은 청동기 문화가 없던 때이어서 가당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국가건설에 청동기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4천년 전 단군시대에는 청동기 문화가 없었고, 국가가 없었으며, 고구려 태조대왕 이전까지는 국가가 아니라 마을공동체, 부족공동체 정도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식민사학자, XXX들의 철밥통같은 주장이었다. 김원룡이란 자는 고구려 태조대왕 이전의 역사는 왕국의 역사가 아니고 마을공동체 정도로 인식하여 “원삼국시대”란 해괴한 용어로 한국사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기원전 20세기(4천년 전)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면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 증명되었다.
식민사학자들의 대부분은 고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마을공동체나 부족공동체 정도로 폄하하고 있으며, 고조선을 인정하고 주장하는 민족사학자들을 “국뽕, 민족주의, 환빠, 유사사학, 국수주의”라는 프레임을 씌어 온갖 카르텔을 동원하여 집중 포화를 한다. XXX들의 민족사학자에 대한 모독은 지금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고인돌이 고조선 문명과 관련있음을 밝히는 기사가 연재되어 이를 펌한다.
○고인돌 루트의 실체I(단군조선과 고인돌)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05
***참고: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한반도에 있으며, 고인돌은 서쪽으로 퍼져서 스페인과 영국을 비록산 여러 지역에 퍼져 있다. 고인돌의 분포와 숫자가 가장 많은 한반도와 제주도, 만주 및 유럽지역의 분포를 볼 때 고인돌의 종주국은 한반도이며, 고조선 당시 설치된 고인돌은 한반도가 중심세력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지나인들은 고인돌을 만들지 않았다. 고인돌의 중심세력이었던 고조선의 세력은 그 범위를 넓혀서 유럽까지 뻗어나갔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돌의 분포 지역은 고조선의 세력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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