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50. 수양제가 자복한 수나라와 고구려국경은 발갈지간이었다. 역사교과서를 바르게 고쳐써야한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25 |
고대사50. 수양제가 자복한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은 발갈지간까지 였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바르체 고쳐써야 한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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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경지도
https://cafe.daum.net/buddhistforest/3EFj/998
영양왕 22년(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
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
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제(煔蟬: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양제는 ”고구려가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다“고 하였는데, 갈석산은 진나라 장성이 시작되는 진황도시(秦皇島市) 부근이고, 발해 역시 부근의 지역이다. 또 ”요동의 땅을 잠식했다“고 했는데 요동은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라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이며, 난하지역까지 점령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 ”요서(遼西)를 침범하였다“고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요서는 요수(遼水: 灤河)인 지금의 난하 서쪽에 있는 땅을 말하는 것이다.
좌12군과 우12군의 진격로에 있는 지점은 모두 수나라의 땅이 아니고, 수나라가 고구려 평양을 향해 진격하는 진격로에 있는 고구려 땅이다. 수나라에서 고구려 평양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고구려 땅의 지명을 기록한 것이다. 좌12군 중에 요동, 현도, 조선, 옥저, 낙랑 등 한사군의 명칭과 같은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우십이군 진격로 중에도 점제(煔蟬, 점선: 점제현 신사비가 있었던 땅)를 비롯하여 임둔, 갈석, 동이, 대방 등 한사군과 관련된 지명이 들어있다. 이들의 지역은 지금 한국사학자들이 말하는 한반도 내 한사군 명칭이 아니라, 수양제가 이들 고구려 지역을 통과하여 압록수(鴨淥水: 지금의 요하)에 집결한 것이다.
낙랑(樂浪)은 한국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평양이 아니라, 15대 미천왕이 중국에서 빼앗은 땅이며, 역시 요수(지금의 난하)를 지나 고구려에 속해 있던 지명이다. 갈석산 부근에 낙랑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결코 지금의 평양이 낙랑이 될 수 없다.
15대 미천왕 14년(AD 313년)에 망했다는 낙랑이 수양제 때도 살아있을 수 없고, 평양으로 진격하는 진격로에 낙랑이 있었다면 그곳은 평양이 결코 아니다>
이후 수양제가 113만 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
이후 수양제의 대군이 을지문덕에게 패하여 완전 궤멸된 이야기나 이후에도 수양제가 수차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실패한 이야기 등은 생략을 한다.
<***이 글에서도 나오는 수양제의 침략경로 중 낙랑이나 현도, 옥저, 대방, 점제 임둔 등의 지명은 모두 압록수 서쪽에 있는 땅이며, 결코 평양(樂浪)이나 황해도(帶方)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이들의 땅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하는 반도 내 한반도설을 정설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 그림네도 한반도 내 한사군으로 그려놓고 있다.>
지금 한국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고루려의 최대 국경을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으로 그려놓고 있는데, 이는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투에서 볼 수 있드시 잘못된 지도이며, 고구려의 영토는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 서쪽인 요서(遼西)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다. 중고들학교 교과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이다.
아래의 사이트에 표시된 주소는 오늘날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요하 동쪽의 고구려를 그려놓은 것과,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 동쪽인 요서(遼西)까지 진출했던 지도를 그려놓은 것인데, 식민사학자들이 그려놓은 요하 동쪽의 고구려 지도는 잘못된 것이며, 폐기해야 마땅하다.
**지도 출처: https://blog.naver.com/ju123ran/220164103751
https://blog.naver.com/chois7401/220132979115
***참고: 필자는 고구려가 발갈지간을 숭점하고 있다는 수양제의 자복 교서를 볼 때 그 서쪽이 지금의 발해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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