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곧사자료44. 이병도란놈은 임둔군을 함경도라 하였지만, 임둔군은 요령성 금주시로보아야한다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2-23

고대사44. 이병도란놈은 임둔군과 동이를 함경도라 주장하였지만, 임둔군은 요령성 금주시(遼寜省) 금주시(錦州市)에 있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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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설치 및 소멸과 추정 위치의 부정확함

사기 조선열전은 사마천(B.C145~86)이 한 무제(B.C 141~87)의 명으로 기록한 중국 최초의 정사로 원문에 보이는 밑줄 친 글자는 사마천이 기록한 글자이고 집해(集解)는 약 560년 후 송나라때(420 - 479) 배인(裴駰)이 추가로 보충 설명한 내용이다.

 

원문에 표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集解] 眞番, 臨屯, 樂浪, 玄菟也.(1909년 판본)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정벌하여 사군을 삼았다.

[집해] (4군은)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이다."라 했다.(1909년 판본)

 

원문을 보면 사기 조선열전을 집필할 당시 사마천은 사군을 삼았다하였으나, 사마천은 사군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한사군(漢四郡)의 이름을 밝힌 것은 560여 년이 지난 후 송나라 때 배인(裵駰)이 집해(集解)를 통해서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 결과 한사군의 위치는 어느 곳이 정확한 지 제대로 모르는 채 2천 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것이며, 한사군 중에서 다만 낙랑(樂浪)의 위치만은 한반도 평양이라는 설과 중국의 갈석산이 있는 창려현(昌黎縣), 진황도시(秦皇島市) 및 산해관(山海關) 일대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병도가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은 왜놈들의 주장을 동조하는 식민사관에 의한 것이며, 낙랑은 갈석산이 있는 창려현, 진황도시 및 산해관 일대라는 기록이 맞는 것이다.

 

또 진번, 임둔, 현도, 대방의 위치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왜놈 사학자들이나 식민사학자, 민족사학자 간에 그 위치의 비정이 제각각인 것이다.

 

이병도의 임둔군 함흥 위치설

임둔군의 위치는반도의 동북해안의 땅으로 지금의 함경남도 전체에 비정하는 이병도(李丙燾)의 주장이다. , 한서무제본기의 4군을 설치한 기사의 끝에 붙인 신질이 인용한 무릉서임둔군치 동이현(東????縣)은 장안으로부터 6,138리이다.”라는 것에 근거해 동이현의 장안으로부터의 거리를 추산한 결과, 그 위치가 대체로 지금의 함경남도 남단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한편, 이병도는 고구려시대 천정군(泉井郡)의 속현인 동허현(東墟縣)이 동이현(東????縣)동이와 음이 비슷하므로 같은 지역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군에 비정하였다. 또한 무릉서에 임둔군의 속현은 15현이라고 한 기록에서 서기전 75년 임둔군을 폐하고 낙랑군에 속한 7현을 각각 함흥·안변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에서 1919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한다.

 

이병도란 자는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서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경로 지역 중에임둔(臨屯)동이(東????)”가 분명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임둔군치 동이현은 장안으로부터 6,138리이다.”라는 것에 근거해 동이현의 장안으로부터의 거리를 추산한 결과, 그 위치가 대체로 지금의 함경남도 남단에 해당된다고 하는 해괘한 소리고 동이를 함경남도 남단이라고 하였고, 고구려시대 천정군(泉井郡)의 속현인 동허현(東墟縣)이 동이현의 동이와 음이 비슷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동이(東????)를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군에 비정하였다.

 

이병도란 자는 소위 역사학자라는 자가 삼국사기에 수양제 침략경로를 반드시 보았을 것이다. 수양제의고구려 침략경로 중 우십이군(右十二軍)1)점선, 2)함자, 3)혼미, 4)임둔(臨屯), 5)후성, 6)제해, 7)답돈, 8)숙신, 9)갈석, 10)동이(東????), 11)대방(帶方), 12)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으므로 우십이군 침략경로 4번째에 임둔(臨屯)이 있고, 10번째 침략경로에 동이가 있음을 분명히 보았을 것임에도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는 주장으로 임둔과 동이가 한경남도 남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도 왜놈들이나 이병도 같이 왜놈 주장을 동조하고 있는 자들은 한사군의 임둔을 함경남도 지방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함경남도 임둔 설치를 주장하는 왜놈들이나 이병도같은 왜놈 추종자들의 XXX적 주장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며, 대륙의 임둔군 설치가 확인되어야 한다.

 

최근 요령성 금서시 태집둔에서 임둔태수의 인장이 발견되었으므로 임둔군은 요령성 금서시 지역으로 확정해야 한다.

 

임둔군은 요하 부근 현도 가까운 지역이었고 수양제의 침략경로이다.

임둔군은 설치된지 불과 25년 만에 폐지되고 그 영역을 현도군(玄菟郡)에 귀속시켰다고 하였고, 후에 낙랑군 동부도위(東部都尉)를 설치하였으며, 그곳에 동이(東????), 불이, 잠대, 화려, 사두매, 전악, 부조 등 7현의 이름이 전한다고 하였다.

 

먼저 임둔군이 폐지되고 소속된 현토군(玄菟郡; 玄菟城)은 삼국사기 보장왕조에 기록되어 있드시 당나라 장수 이적이 고구려 정벌 시 요하를 건너 바로 공격했던 성이 바로 현도성이며, 이곳을 점령하고 다시 진격하여 공격한 성이 요동성 이므로 요하와 요동성 중간에 현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임둔군 역시 요하 동쪽 현도지역 부근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또 영양왕 때 수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는 루트 중에 전술한 바와 같이 우십이군의4번째 침략경로에 임둔이 있었고, 10번째 침략경로에 동이가 있어서이 지역 모두 함경도가 아니라 요하 부근 대륙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병도가 주장하는 임둔과 동이가 있는 함경도를 침략경로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병도란 자는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데, 수나라의 침략경로를 뻔히 알면서도 임둔과 동이가 함경도라는 XXX적 주장을 한 점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요령성 금서시 태집둔에서 발굴된 임둔태수 인장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5&key=20080903.23021211227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508023009&wlog_tag3=naver

 

위에 제시된 2개의 신문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요령성(遼寜省) 금서시(錦西市: 錦州市) 연산구의 태집둔(邰集屯) 옛성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가 발굴되었다. 이 인장은 1993-94년 길림대(吉林大) 박물관과 요령성고문물연구소 조사팀이 공동으로 조사 발굴한 것이다.

요령성 금주시는 요령성의 조양시(朝陽市)와 심양시(沈陽市)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이며, 이곳에서 임둔태수의 인장이 발굴되었으므로 이곳을 임둔(臨屯)의 옛 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남한의 식민사학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도외시하고 계속 이병도 등 사악한 XXX들이 주장하고 있는 임둔군의 함흥지방설, 동이의 함흥설을 계속하고 있으며, 고칠 기미가 없다.

 

이병도란 놈의 사악하고 사악한 XXX 짓인 임둔군과 동이의 함흥설은 반드시 폐기되고, 요령성 금주시 일대를 임둔(臨屯)의 옛 땅으로 고쳐써야할 것이다.

 

***참고: 한무제는 한사군을 설치한 후 이 지역이 중국말을 쓰는 지역이 아니고 한국말을 쓰는 지역이며, 토착인들의 반발이 심하였기 때문에 설치 25년 후 낙랑과 진번을 합쳐서 낙랑군으로 하고, 현도와 임둔을 합쳐서 현도군으로 하였다. 낙랑군은 낙항군 상하운장으로 추정되는 북경지역에서 천진시, 진황도시, 당산시 부근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도군은 요수(지금의 난하)를 건너 요동성(요동성은 2곳이 있었다) 사이에 현도가 있었고, 당태종 당시 이세적이 이곳을 침략한 바 있다. 또 이중 임둔은 금주시 태집둔에서 인장이 발견되었으므로 이곳을 임둔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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