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40. 진ㄴ개가 고조선 침략전 고조선은 상곡,어양,우북평,요서 포함 강국이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21 |
〇고대사 40.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하기 전 고조선의 영토는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를 포함한 거대강국이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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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는 7개의 전국 중에서도 가장 약한 나라이었다. 연나라는 동호(東胡: 고조선)에 인질(볼모)로 보내 동호를 섬기는 처지이었다.
이 당시 동호(東胡)는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에 이르는 중국 북부지방과 하북성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강대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약소국인 연(燕)나라는 진개(BC 311-279)를 볼모로 강대국인 조선에 보냈는데, 일설에는 진개를 연나라의 왕자라고 속여서 볼모로 보냈다고도 한다.
그러나 볼모(인질)로 고조선에 와 있던 진개는 고조선 왕의 신뢰를 얻고 사정을 스파이 짓 한 후 연나라로 돌아오자 곧 고조선을 패퇴시키고 1,000여 리의 땅을 빼앗았으며, 그 땅이 지키기 위하여 조양(朝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고(BC 281), 동호(東胡)의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에 이르는 중국 북부지방과 하북성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빼앗은 것이다.
후한서 주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진개는 서쪽의 조양(朝陽)에서 동쪽의 양평(襄平)에 이르는 성을 쌓아 동호(고조선)을 방어했다고 했는데, 양평은 요동의 속현으로 금 평주 노룡현 서남에 있다(後漢書 李賢이 註: 이 글에서 연나라 진개가 성을 쌓은 양평은 노룡현 서쪽 비여현 자리로 본다)”즉 양평은 갈석산 부근 노룡 부근에 위치했던 땅이다.
https://blog.naver.com/joonho1202/221287108337
〇사기 흉노열전(『史記』卷一百十, 匈奴列傳第五十)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후 연나라에 현명한 장수 진개가 있어 호胡에 볼모로 갔는데 호가 매우 신임했다. 돌아와 동호를 습격해 격파하니 동호가 1천여 리를 물러났다. 형가와 함께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진무양이 진개의 손자이다. 연나라 또한 장성을 쌓았는데 조양에서 양평까지이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설치하여 호를 막았다.
(其後燕有賢將秦開,爲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走東胡,東胡卻千餘里.與荊軻刺秦王秦舞陽者,開之孫也.燕亦築長城,自造陽至襄平.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〇사기 조선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조선왕 위만(衛滿)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나라의 전성기로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진이 연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외요(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한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에 복속시켰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위의 기록을 보면 위만과 연의 경계가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패수는 이병도나 한국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청천강이 아니라, 난하(灤河)로 추정되기도 하며, 대릉하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다. 위만은 BC 194년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이는 진개가 죽은 지 85년 후이다. 이때 위만조선과 연나라가 경계로 삼은 패수(浿水)는 난하(灤河)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일부의 학자들은 북경(北京)의 북쪽을 흘러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조백하를 패수로 보기도 한다.
필자의 견해로도 당시의 패수는 조백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패수(浿水)의 정확한 위치 비정은 우리나라 고대사를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이 되므로 많은 학자들이 보다 세밀히 연구하고 정확히 고증되기를 바라고 있다.
〇삼국지 위서(『三國志』卷三十,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 第三十, 韓)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역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가 간하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 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魏略曰: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不攻.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위의 내용에서 진개가 조선의 서쪽지방 2천여리를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고 했는데, 이는 앞서 사기(史記) 흉노전에 기록된 내용에서 1천리의 땅을 빼앗았다고 한 것과 다르다. 신채호는 연나라가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한 것은 요동군 내에 문(汶)과 번한(番汗)이 있었는데, 번한(番汗)은 지금의 개평(蓋平) 등지이므로 만번한(滿番汗)은 지금의 개평(蓋平)과 해성(海城) 부근일 것이라고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BC 104-90년까지 집필된 것이므로 진개의 사망(BC 279)으로부터 189년 후 집필된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 위서(三國志 魏書)는 진나라 무제 태강연간(AD 280-289)에 쓰여진 것이므로 진개 사후 약 460년 후에 쓰여진 것이다. 진개의 침략 지역에 대한 다른 설명은 사기의 기록이 신빙될 수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진개가 고조선의 땅을 처음 빼앗은 것은 고조선의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에 이르는 중국 북부지방 1천 여리 이었고 그 동단은 지금의 하북성 노룡 부근의 양평(襄平)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무제 때 한사군이 설치되고(BC 108년) 진(晉)나라 때까지 한사군 중 낙랑과 대방이 존속되면서 북경지역과 하북성 노룡 부근에서 동쪽까지 땅이 넓어졌으므로 한사군으로 넓어진 땅을 포함하여 2천 여리라고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 경계로 삼은 만번한은 신채호가 주장한 개평과 해성 땅으로 보이며, 그 경계는 당시 구려하로 부르던 지금의 요하(遼河)로 생각한다. 상곡에서 노룡까지는 천여리, 다시 개평 서쪽의 요하까지 포함하면 대략 2천리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고조선이 연나라의 스파이 진개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고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에 이르는 중국 북부지방과 하북성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빼앗겼지만, 진개에게 침략 당하기 전의 고조선은 매우 넓은 땅을 가진 대국이었고, 연나라에서 볼모를 보낼 정도의 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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