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26. 이병도의 패수청천강설은 폐기되어야 하며, 조선현은 평양이 아니라, 노룡현동쪽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15 |
한국고대사 자료들-26. 이병도의 패수 청천강 왜곡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또 조선현은 중국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XXX의 패수(浿水) 청천강 왜곡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또 조선현은 중국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
XXX 이병도는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이 평양이어서 낙랑군과 조선현은 평양이라고 주장했다.
또 패수=청천강북지류,열수=대동강,대수=재령강이란 주장을하고 있다.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는사실상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일본제국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라고 하면서 이병도의 주장은 조선시대 학설의 연장이며,이병도보다 앞선 왜놈들의 주장이나 왜놈들의 주장을 추종한 이병도란 XXX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주장이며,틀림없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왜놈들의 주장이나 XXX 이병도의 주장은 만고불변,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참으로 XXX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 한백겸 | 홍여하 | 한진서 | 증보문헌비고 | 정약용 | 이병도 |
패수 | 청천강 | 청천강 | 대동강 |
| 대동강 | 청천강 |
열수 | 한강 | 한강 | 한강 | 한강 | 한강 | 대동강 |
대수 | 대동강 |
| 임진강 | 임진강 | 임진강 | 재령강 |
낙랑군 | 평양 | 평양 | 평양 | 평양 | 평양 | 평양 |
그러나 영양왕 22년(AD 611년)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2)장잠,3)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10)조선, 11) 옥저(沃沮),12)낙랑(樂浪)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2)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6)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11)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가평양이라고 주장한 낙랑은 평양에 있지 않고 수양제 좌12군12번째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병도라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주장했던조선현의 위치는 수양제의 좌12군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군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군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군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군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군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들은 수양제가 요수(遼水:지금의 난하)를 건너 압록수(鴨淥水:지금의 요하)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수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고구려의 국경지대 땅이고,대륙에 있었던 땅이다.
결코 XXX 이병도가 주장하는 평양이나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치소(治所)의 위치는 바뀌는 것이지만 지명은 XXX들의 주장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수양제 침략군이 평양에 있다는 조선현이나 황해도에 있다는 대방,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XXX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XXX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위만이 건넌 패수는 조백하이며, XXX가 주장하는 청천강이 아니다.
위만조선에 관련된 『사기(史記)』의 기록
『사기』 조선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조선왕 위만(衛滿)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나라의 전성기로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진이 연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외요(遼東外徼: 요동 밖의 순찰지역)에 소속시켰는데, 한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에 복속시켰다.
한나라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위만도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만이의 옷을 입고는 동쪽으로 달아나 변경을 나와 패수를 건너 진시황 진(秦)나라 영토였던 옛 비어 있는(秦故空地) 상하장(上下鄣: 낙랑군 雲鄣)에 거주하면서, 점차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을 도읍으로 정했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 朝鮮蠻夷及故燕, 齊亡命者王之, 都王險.).
***참고: 연나라 전성기에 연나라가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는 것은 연나라의 진개(BC 311-279)가 진번조선을 공격하여 천여리를 점령하였는데, 그 땅은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이었고, 이곳은 모두 예전에 고조선의 땅이었다.
***참고: 위만은 BC 194년 번조선(番朝鮮)의 왕 기준(箕準)을 몰아내고 위만조선을 세운 사람이다. 사기에 조선왕 위만이라는 자(朝鮮王 衛滿者)라고 나오고, 위만이 천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었다고 했는데(魋結蠻夷服), 이는 위만이 본래 조선사람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개(BC 311-279)의 침략과 위만의 왕위에 오름(BC 194년)은 진개가 죽은 후 85년 후이므로, 연나라가 빼앗은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및 요동은 모두 연나라에 빼앗겼어도 조선인이 주로 살았던 땅이다. 그러므로 위만도 이 지역에 살던 조선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 위만이 패수(浿水)를 건너 옛날 진나라의 영토였다가 한나라 때 패수를 경계로 그 동쪽에 조선이 있지만, 비어있던 땅 상하장(上雲鄣 및 下雲鄣)에 머물었다고 했는데, 이 상하장(上下 雲鄣)은 한서지리지에 낙랑의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위만이 건넌 패수(浿水)는 『수경(水經)』에
“패수(浿水)는 낙랑군 루방현(鏤方縣)을 나와서 동남쪽으로 림패현(臨浿縣)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海)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臨浿縣, 東入于海)
패수는 어디인가?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이 패수를 건너와서 위만에게 복속하고 위만이 그들의 왕이 되었다고 했다. 패수는 연나라나 위나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XXX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청천강이 결코 패수(浿水)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청천강은 중국과 조선의 경계가 접했던 지역이 아니고, 중국인들은 알기도 어려운 조선에 있는 강의 이름이다. 어찌 위만이 청천강을 건너와서 기자조선을 멸하고 왕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XXX들의 궤변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연나라와 번한 조선의 국경은 갈석산이 있는 진황도시와 당산시에서 진장성이 시작되었으므로, 진장성 안쪽에 패수(浿水)가 있었다. 한(漢)이 진장성 안쪽의 땅도 멀어서 지키기 어려웠으므로,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에 복속시켰다고 했는데, 이는 조하와 백하를 포함한 조백하(조백하)로 추정함이 마땅할 것이다.
***참고: 고대사 연구가 황순종씨의 『패수(浿水)᠂열수(列水)에 대한 고찰』 논문에 의하면 『사기』 조선열전에 “한나라가 일어나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조선과의) 경계를 삼았다”라고 한 사실과 위만이 패수를 건넜다고 한 패수(浿水)를 요동군과 낙랑군(지금의 북경과 천진)을 지나 발해로 들어간 강이며, 북경 지방을 흐르는 하북성 조백하(潮白河)가 패수라고 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난하(灤河) 또는 대릉하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심백강도 패수는 조백하라고 하였다.
***참고: 한나라 초기 진장성 안쪽 땅을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진장성 안쪽에 있는 요동고새(遼東故塞)를 수리했다고 했으므로 요동고새는 진장성의 안쪽에 있는 성이다.
***참고: 진개는 서쪽의 조양(朝陽)에서 동쪽의 양평(襄平)에 이르는 성을 쌓아 동호(고조선)을 방어했다고 했는데, 양평은 요동의 속현으로 금 평주 노룡현 서남에 있다”(後漢書 李賢이 註)
〇위만의 건넌 패수는 북경 북쪽 조백하, 수성현은 당산시, 왕험성은 진황도시 창려현으로 추정된다.
연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도망치자, 위만이 법령을 업신여기어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머리에 상투를 틀고 만이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벗어나 패수를 건너(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 出塞渡浿水) 진나라의 옛땅이던 공지인 상하장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위만은 점차 진번조선의 만이들과 옛날 연나라 및 제나라 망명자들을 부하로 만들어 왕이 되었고,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
〖집해〗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위소가 말하기를 옛 고을의 이름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는데, 응소가 주를 달기를 지리지의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 신찬이 말하기를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현의 동쪽에 있다.
(〖集解〗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索隱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凟縣 廣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儉城在樂浪郡浿水之東).
위만조선의 수도가 요동군 험독현에 설치되었다고 했는데,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의 험독현(險瀆縣) 조에는 당시 광령현(廣寜縣) 동남쪽의 바다 가까운 곳이라고 하였다(險瀆故城 在今廣寜縣東南.....濱海之地).
***참고: 응소의 집해에서 “창려가 험독현이다”라고 했고, 서광도 “험독이 조선왕의 도읍지이고, 낙랑군 패수(조백하)의 동쪽에 있었다”라고 했다. 대청일통지의 험독의 왕험성도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지역으로 비정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조선현 창려현 서남쪽 노룡현 동쪽 지역임을 나타낸다
조선현(朝鮮縣)
“한나라가 설치했는데 후한과 진나라는 그대로 했다.(괄지지)에 「고려 왕험성이고 즉 고 조선이다.⌟ 왕험성은 지금의 평양이다.
후위가 조선민을 옮겼다는 바로 그곳인데 조선현을 설치했다. 북제 때는 성으로 했는데 옛 성이 지금 직예 노룡현 동쪽에 있다.(漢置. 後漢及晉因之. (括地志)『高麗王險城. 卽古朝鮮』王險城卽今平壤.
後魏徙朝鮮民於此. 置朝鮮縣. 北齊省. 故城在今直隸盧龍縣東)“
사고전서(四庫全書) 권18을 보면
”평주노룡현에 갈석산이 있다(通典)고 하였고, 갈석산의 창려현 서남쪽 50리 떨어져 있고, 바다에서 30리 떨어져 있다(明通志)고 하였는데, 이는 진황도시 창려현에서 서남쪽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고, 평주 노룡현에 속한 지역임을 나타낸 것이다.
○결론
위만이 연나라에서 건너온 패수(浿水)는 북경 북쪽을 흐르는 조백하이며, XXX 이병도나 XXX 이병도를 추종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청천강이 결코 아니다. 패수를 건너 연나라와 제나라 사람도 위만조선으로 피난, 망명하였으며, 조선현과 왕검성은 진황도시 창려현에서 서남쪽 50리 떨어져 있고, 역시 진황도시 노룡현의 동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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