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20. 단군왕검에 대한 환단고기 기록을 소개합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12 |
한국고대사 단편적 자료들⑳ 단군왕검에 대한 ‘환단고기’의 기록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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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단군왕검에 대한 『환단고기(桓檀古)』의 기록을 소개합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에 대한 기록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매우 짧고, 단편적이며 신화적인 내용이 혼합되어 있어서 역사적 사실로서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보다 상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역사를 배우는 사람은 물론 많은 국민 들도 고려 말 행촌 이암(杏村 李嵒: 1297-1364)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환단고기』에 기록된 <단군세기>의 국조(國祖) 단군왕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고 싶다.
행촌 이암선생은
“나라를 구하는길은 어디에 있는가? 나라에는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國有史而形有魂). 신시(神市: 환웅천왕 때)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國統:한민족의 역사 전통)이 있어, 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국통으로 인하여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국통과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행촌 이암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 중 국조 ‘단군왕검’에 대한 글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안경전역 『환단고기』92-101p 인용)
〇『단군세기(檀君世紀)』
<국조 단군왕검(재위 93년)>
단군왕검의 탄강과 계천(繼天: 천명을 이으심)
단군왕검의 혈통과 조선의 건국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년(BC 2370년) 5월 2일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태어나시니, 신인(神人)의 덕이 있어 원근 사람들이 모두 경외하여 따랐다.
14세 되던 갑진년(BC 2357년)에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천거하여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 때에 단군(檀國)으로 돌아와 아사달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이르시니, 온 나라의 백성들이 천제(天帝)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구환족(九桓族)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하시고, 신성한 덕위가 멀리까지 미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단군성조께서는 비왕으로 24년, 제왕으로 93년 동안 재위하셨고, 그 수(壽)는 130세 이었다.
단군왕검의 재위 원년은 무진(BC 2333년)년이다. 신시 시대가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사방에서 백성들이 모여들어 산골짜기 곳곳에 퍼져 살았는데, 풀로 옷을 지어 입고 맨발로 다녔다.
배달 신시 개천 1565년(BC 2333년) 10월 3일에 신인 왕검께서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들과 더불어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다.
단군왕검께서는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스러움을 겸한 인자함으로 능히 선대의 환인᠂ 환웅 성조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繼天)하시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진심으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여기고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단군왕검께서 신시 배달의 법도를 되살리고, 아사달(阿斯達: 하얼빈 완달산)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시고 그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셨다.
2. 단군왕검의 8대 강령(綱領)
-(생략)-
3. 황후와 주요 신하
이때에 단군왕검께서 어명을 내려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며,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셨다.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며,
희(羲)에게 괘서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를 담당하게 하셨다.
비서갑(非西岬: 하얼빈)에 사는 하백의 따님(河伯女)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맞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하였다.
<동방의 대홍수 사건과 마리산 첨성대의 유래>
재위 50년 정사년(BC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단군왕검께서 풍백(風伯)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牛首州: 만주 길림성 지역으로 추정, 규원사화)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碑)가 남아 있다.
재위 51년 무오년(BC 2283년)에 단군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 강화도 추정)에 삼랑성(三郎城)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
재위 67년 갑술년(BC 2267년)에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순임금)의 사공(司空: 禹를 말함)과 도산(塗山: 절강성 회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부루태자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五行治水之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니 유주(幽州: 지금의 하북성), 영주(營州: 지금의 산동성)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릴 때 우순(순임금)을 시켜 그 일을 감독케 하셨다.
4. 태평성대의 모습과 단군왕검의 어천
재위 93년(BC 2241년) 단군왕검께서 버드나무로 지은 궁궐에 머무실 때 흙 계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풀이 우거졌으나 베지 않으셨다. 박달나무가 무성한 그늘 밑에서 곰과 호랑이가 더불어 놀고,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 보셨다.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며,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시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익히게 하셨다. 백성들에게 남아도는 물자가 있으면 나라 살림에 보태어 쓰게 하셨다.
10월 상달에는 나라에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上月祭天)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하였다.
이로부터 단군왕검의 덕화(德化)가 온 누리를 덮어 멀리 탐랑(耽浪: 제주도)까지 미쳤고, 성덕(聖德)의 가르침은 점차로 위세를 얻어 널리 퍼져 나갔다.
<삼한관경과 단기(댕기) 풍속의 유래>
이에 앞서 단군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삼한에는 모두 오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재위 93년(BC 2241년) 3월 15일 단군왕검께서봉정(蓬亭)에서 붕어하시니 교외 10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들이 부모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를 받들어 아침 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이에 태자이신 부루(扶婁)께서 즉위하셨다.
***참고: 환단고기에서는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왕검께서 신시 배달의 법도를 되살리고, 아사달(阿斯達: 하얼빈 완달산)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시고 그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셨다.
“재위 67년 갑술년(BC 2267년)에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순임금)의 사공(司空: 禹를 말함)과 도산(塗山: 절강성 회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부루태자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五行治水之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니 유주(幽州: 지금의 하북성), 영주(營州: 지금의 산동성)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릴 때 우순(순임금)을 시켜 그 일을 감독케 하셨다.”고 하여 중국에서 말하는 우(禹)임금의 치수법(治水法)을 부루태자가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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