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17. 신용하교수의 고조선 후예들에 의한 유럽진출 1-7회를 소개합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10 |
〇한국고대사 자료들-⑰ 신용하교수님의고조선 후예들에 의한 유럽진출자료 1-7회분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석학 신용하교수님께서 고조선에 관련된 주옥같은 글들이 문화일보에 2019. 5. 14부터 2020. 9. 23까지 20회에 걸쳐 연재하시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우리의 조상 고조선에 대해서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000년 정도 앞서고, 인더스문명보다 앞선 문명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 다음 3번째의 문명이 바로 고조선문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를 해 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내용은고조선이 분열 및 붕괴된 후 그 후예들이 유럽으로 퍼져서 각종 유럽의 국가와 문명을 이룩한 내용이 중앙선데이에1-7회에 걸처 연재되었습니다.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1∼7회분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우리의 조상 고조선에 대해 한국의 석학이신 신용하교수님이 상세히 밝혀주신 내용은 참으로 귀중한 자료입니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연구하는 사람들,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신용하교수님의 주장에 대해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일반인들도 신용하교수님의 글을 읽고 우리의 위대한 조상 고조선에 대해 보다 깊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1〉-고조선 후예‘훈 제국’세워…유럽 민족 대이동‘폭풍’불러–라는 글에서는,
“고조선 문명의 후예인 훈족(Huns, 중국 호칭 흉노족)이 4세기 후반에 유럽에 들어가서 거대한 ‘훈 제국’을 세우고, 유럽 민족 대이동을 일으키며 결국 거대한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켰다면 아마 대부분 놀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훈족이 고조선의 지배를 받던 민족 중 하나임을 밝히셨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2〉-‘훈족 제왕’아틸라,동·서로마 무너뜨려 유럽 지형 리셋–이라는 글에서는,
“유럽 전체를 떨게 한 훈족의 황제 ‘아틸라’는 여러 번 동로마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항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AD 452년 아틸라는 훈족 기병 10만을 인솔하고 방어가 약한 서로마 제국 본국(지금의 이태리 반도)으로 진군했다. 서로마 황제는 갈리아 총독·군사령관 아네티우스에게 긴급방어 출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에티우스는 서로마 황제에게 긴급히 안전한 동로마 제국에 피란할 것만 권고하고 출병하지 못했다. 아직 ‘카탈루니아 대결투’의 손실을 회복하지 못해 출정해도 참패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아틸라의 기병부대는 첫 방어선 아퀼레이아에서 약간의 저항을 받았을 뿐, 나머지 도시들은 거의 무혈 입성하였다. 당시 수도 베로나도 마찮가지였다. ‘아틸라’는 바티칸의 교황 레오1세의 굴욕적 비밀협약을 받아내고 철수하기도 하였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3〉-고조선 후예 아발족,유럽에 대제국 세워 금속 기술 전파-에서는,
“아발족은 독립을 결의하고 판노니아 평원으로 가서 567년 그곳에 살고 있던 게르만계 게피드(Gepid)족을 몰아냈다. 100년 전 훈족이 그랬던 것처럼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에 정착해 ‘아발 제국’을 수립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했고 수공업·목축업·농업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북부여에서 살던 부족인데, ‘주몽’ 세력이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한 오녀산성이 있는 곳으로, 지금의 환인현 일대에 살던 부족이다. ‘아발족’과 ‘위구루족’은 ‘우구려’(우구루)에서 기원하였다”고 하여 한때 유럽에서 거대한 국가를 이루었던 아발족이 고조선의 후에라고 하였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4〉-스페인 바스크족,고조선 후예‘아발족’의 한 갈래–라는 글에서는,
“나바르 왕국은 바스크족의 호걸 산초 3세(Antso Ⅲ, 재위 1004~1035) 때에 가장 강성하였다. 산초 3세는 동시에 카스티아(Castile) 왕국, 아라곤(Aragon) 왕국, 바르셀로나(Barcelona) 백작령의 군주를 겸하여 오늘날의 스페인 지역을 사실상 통일하고, 1034년 스페인 황제로 호칭하였다. 이것이 스페인 왕국과 오늘날 스페인 성립의 기초가 되었다.
나바르왕국을 세운 바스크족의 거주 지역에 유연(아발족)이 속했던 고조선 문명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면, 잘변하지 않는 무덤 양식으로 피레네 산맥 기슭에 고인돌 무덤이 현재도 남아 있다.”라고 하여 한 때 스페인에서 큰 세력을 떨쳤던 바스크족이 고조선의 후예임을 지적하고 있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5〉-‘노래 혁명’에스토니아인,고조선 후예 아발족 피 흐른다-라는 글에서는,
“핀란드의 남쪽, 소련의 북서쪽에 위치한독립국‘에스토니아’는 우랄어를 쓰는 민족이었고, ‘발마’(Valma,아발 마을)의 한 무덤에서는 토기와 함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토기는‘빗살무늬토기’였고,인골은 최신기술로 복원해 보니‘동아시아인’이었다. ‘에스티’(Eesti)라는 민족 이름 자체가 원래 ‘동방인’의 뜻이었다. 빗살무늬토기는 아발족 정착지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고대 또는 중세 초기에도 고조선 문명 후예 이주민 계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널리 애용되었다.
이들은 소련에서 독립하기 위해 ‘노래혁명’을 한 민족으로 유명한데, 이는 고조선의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성과 관련이 있다.”라고 하였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6〉-고인돌1140개 불가리아,부여족 후예‘불가르족’이 세워-라는 글에서는,
“블가르족 귀족의 무덤은 주로 고조선식 고인돌 무덤이다.토닌(Dimitar Tonin)씨가 현재의 불가리아에서 지표조사 보고한 것만도 무려1140여개나 된다. 이 고인돌은 철기시대의 것이어서, 입구에 돌을 잘 다듬어 사각형의 상징적 출입문을 만든 발전된 특징이 보인다. 기본구조는 그들 조상의 고조선문명 고인돌 양식을 계승했다. 불가리아 제1제국을 동방의 불가르(불리지)족이 민족 이동해 들어가 세웠음은 명백한 사실이다.”라고 하여 불가리아가 부여족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끝〉-헝가리 세운‘마자르족’조상은 부여계 기마민족-이라는 글에서는,
“현대 헝가리의 직접 조상은 멀리 동방에서 출발하여 AD 895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에 영구히 정착해서 헝가리 왕국을 세운 고조선·부여 후예 ‘마자르’(Magyars)족이었다.
고조선과 고중국의 국경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 영정하(永定河)와 간하(干河) 일대였을 때, 고조선의 간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산융(훈족)과 ‘불도하’였고, 영정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불리지’와 ‘고죽’이었다.
헝가리인의 조상 마자르족 언어는 아발족(우구르족)언어와 가까운 친족 관계이다.이것은 고조선 언어가 부여·아발어·말갈어·마자르어의 조어(祖語)이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 펴내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학술원 회원인 원로 사회사학자 신용하(81) 서울대 명예교수가 '고조선문명의 사회사'(지식산업사)를 펴냈다. 신 교수가 2000년대 들어 집중적으로 탐구해 온 고조선 연구 3부작의 마지막 저서다. 그는 고조선을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각각 조명한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2010년), '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 연구'(2017년)를 출간한 바 있다.
신용하교수는 최근 중국이 황하문명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요하문명(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맥족(貊族)이었고,고중국 동해안에 정착한 고조선 이주민이 황하문명의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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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신용하교수님의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1-7회분에 관한 인터넷 글을 소개합니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96429
고조선 후예 ‘훈 제국’ 세워…유럽 민족 대이동 ‘폭풍’ 불러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20218
‘훈족 제왕’ 아틸라, 동·서로마 무너뜨려 유럽 지형 리셋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43824
고조선 후예 아발족, 유럽에 대제국 세워 금속 기술 전파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64993
스페인 바스크족, 고조선 후예 ‘아발족’의 한 갈래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81976
‘노래 혁명’ 에스토니아인, 고조선 후예 아발족 피 흐른다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01369
고인돌 1140개 불가리아, 부여족 후예 ‘불가르족’이 세워
■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26923
헝가리 세운 ‘마자르족’ 조상은 부여계 기마민족
■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 펴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8/2018080800019.html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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