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다시보기 | 한국의 성씨 - 16회 평택 임씨

[STB하이라이트]
는 상생방송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프로그램과 회차는 《한문화중심채널 STB상생방송》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소개


〈한국의 성씨〉는 나의 존재의 근원이자 근본 뿌리인 성씨姓氏에 대해 그 기원과 틀을 바르게 알아보고 자신의 뿌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방영 정보
시청등급 : 일반 / 방송시간 : 30분 / 제작국가 : Korea / 담당PD : 김내연 / 제작 : STB 2020

16회 평택 임씨


임林씨는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많은 성씨로 약 82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임씨 중에서 뿌리가 되는 ‘#평택 임씨平澤林氏#’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임씨는 현재 30여 본이 전해집니다. 이 중 만 명 이상인 본관은 ‘평택 임씨’와 ‘나주 임씨羅州林氏’를 비롯해 8본이 있습니다.

중국 은나라 말기 충신이었던 비간比干의 아들 임견林堅을 득성조得姓祖로 하여 모두 한 뿌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임씨는 나주 임씨를 제외하면 모두 당나라 말기에 정치적인 화를 피해 신라로 망명한 #임팔급林八及#을 도시조都始祖로 모시고 있습니다.

임林씨의 주요 본관


평택 임씨, 나주 임씨, 부안 임씨, 예천 임씨, 조양 임씨, 울진 임씨, 선산 임씨, 은진 임씨

평택 임씨 현황



시조 임팔급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망명하여 정착한 곳이 ‘평택현 용포리龍浦里*’이기 때문에 평택 임씨는 경기도 평택을 본관으로 삼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2만 5천여 명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데, 평택 임씨에서 분적한 임씨를 모두 포함한다면 54만 6천여 명으로 전제 임씨 중 66%나 차지합니다.
*평택현 용포리龍浦里 : 현 평택시 팽성읍


임林씨의 본관별 비율
나주 임씨 33.7%, 평택 임씨 27.4%, 부안 임씨 9.2%, 예천 임씨 8.1%, 조양 임씨 5.2%, 울진 임씨 2.9%, 선산 임씨 1.7%, 은진 임씨 1.4%, 기타 10.4%


<이미지 8>

그리고 평택 임씨는 전객령계典客令系충정공계忠貞公系, 두 계통이 있습니다. 시조 이후 세계가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으므로 서로 다른 중시조를 모시고 각각 1세 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전객령계는 고려 말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을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1세 조로 하고 있고, 충정공계는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오른 임언수林彦脩를 1세 조로 합니다.

또, 각 계파를 살펴보면 전객령계는 참판공파와 판서공파를 비롯해서 7개의 주요 계파가 있고 그 아래엔 다수의 파로 나누어져 있으며, 충정공계는 부사공파府使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삼청당공파三淸堂公派를 비롯해 총 21개 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택 임씨 전객령계 주요 계파
참판공파, 판서공파, 승지공파, 병사공파, 정량공파, 전적공파, 갈곡공파


평택 임씨 계파
부사공파府使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삼청당공파三淸堂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영광공파靈光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금호공파錦湖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평성군파平城君派, 송현공파松峴公派, 만죽공파晩竹公派, 송담공파松潭公派
송산공파松山公派, 송주공파松州公派, 송당공파松塘公派, 영해공파靈海公派
관해공파觀海公派, 대호군파大護軍派, 현감공파縣監公派, 거은공파居隱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평택 임씨 집성촌



집성촌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경치리’를 비롯해서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특히,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 ‘물안이 마을’은 평택 임씨의 집성촌인데 일명 독립지사 마을입니다. 불과 25여 호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열두 분의 독립지사를 배출하여 전국에서도 사례가 드문 마을입니다.

평택 임씨 시조, 임팔급林八及



평택 임씨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으로, 우리나라 임씨의 도시조이며 당唐나라 말 신라로 귀화한 8학사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요?

기록을 보면 당나라 덕종 시기에 심한 폭정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폭정을 피해 8명의 학자들이 우리나라로 동도同度하게 됐습니다. 동도 시기는 여덟 문중마다 다릅니다. 강릉 유씨 종중에서 묘소를 정비하다 지석이 나왔는데 그 지석에 동도 시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782년, ‘건중병자년建中丙子年’이라고 나왔는데 건중은 당나라 9대 황제인 덕종의 연호입니다. 평택 임씨 족보에는 약 780년경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종중에는 850년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8학사들이 오셔서 각 지역으로 분포되었고 평택 임씨는 임팔급이 평택 용주방龍株坊으로 동도同度해 그곳에 토성을 쌓고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임팔급은 장보고 선단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에 정착했습니다. 팽성에는 임팔급이 축성했다고 하는 농성農城이 남아있는데 높이 4미터 안팎에 둘레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작은 토성입니다.


@8학사八學士

우리나라 임씨의 도시조이면서 평택 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이 신라로 망명할 때 동료 7학사도 함께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들을 모두 8학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라로 함께 망명한 8학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당에서 신라로 망명한 8학사는 이 땅에 정착하여 각 성씨의 뿌리가 되는데 이 중 임팔급은 평택 임씨의 시조가 되고 유전劉荃은 유劉씨의 도시조, 송규宋奎는 남양 송宋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이외 5명의 학사는 후손이 누구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후손이 드러난 세 가문에서 밝힌 동도 연대와 한반도 상륙 해안이 서로 상이한 부분이 있어 과연 8학사가 같은 배를 타고 동도한 것인지 의심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8학사가 배를 타고 동쪽으로 건너올 때 심경을 읊은 한시漢詩 한 줄씩을 남기는데 일명 ‘팔현동도八賢東渡’라는 시입니다.

이 시가 평택 임씨와 강릉 유씨 족보에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8학사가 함께 배를 탔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8학사의 한 명인 ‘유전’이 남긴 「죽간일집竹諫逸集」이라는 문집을 봐도 이와 같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죽간일집」에는 동료 7학사를 위한 시문도 한 수씩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도한 8학사
임팔급林八及, 유전劉荃, 송규宋奎, 설인경薛仁敬, 허동許董, 최호崔冱, 권지기權之奇, 공덕수孔德狩


평택 임씨의 인물


신라 말 8학사의 동래와 함께 시작된 평택 임씨는 이후 한국의 10대 성씨 안에 들어가는 큰 성씨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평택 임씨 종문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요?

①임성미林成味, 임견미林堅味, 임제미林齊味
중시조 임언수林彦脩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는데 이 중 뛰어난 인물로 임성미林成味, 임견미林堅味, 임제미林齊味가 있습니다. 임성미는 고려 우왕 때 진포鎭浦에 침입하여 각지를 횡행하면서 만행을 저지르던 왜구를 이성계와 함께 선주善州에서 물리쳐 삼사우사三司右使에 오른 인물입니다.

임견미는 1361년 10만여 명의 홍건적이 침략하여 수도 개경까지 함락됐을 때 왕을 호종하여 1등 공신이 되고 ‘제주 목호의 난’과 왜구를 물리쳐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이 되어 문하시중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임제미는 현재의 서울시장 격인 판개성윤判開城尹을 지낸 인물입니다.

②임경업林慶業

병자호란의 명장 임경업林慶業 장군은 임진왜란 중인 1594년 충주 대림산 기슭, 달천達川에서 태어났습니다. 25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1624년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두각을 드러내면서 전라도 낙안군수를 거쳐 정주목사, 청북방어사 겸 영변부사, 의주부윤 등 주로 북방에서 복무하며 국방에 전념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도 장군은 끝까지 명明과 합세해 청淸에 대항했으나, 결국 청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어 국내에서 일어난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송환된 장군은 심한 추국을 받다가 1646년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임경업은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난 숙종 23년(1697)에 신원 복관되어 충렬사에 제향되었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그의 고향인 대림산 서쪽 기슭에는 ‘단월대丹月臺’라 불리는 벼랑이 있는데 임경업이 소년 시절에 무예를 닦던 곳이라 전해집니다. 그가 날마다 절벽을 세 발짝에 뛰어내렸다고 하여 ‘삼초대三超臺’라 불리기도 합니다. 청년 시절에는 인근 속리산에서 무예를 익혔는데 대표적인 장소가 ‘경업대慶業臺’입니다. 또한, 경업대 건너편 해발 1,000m 산허리에 곧추선 ‘입석대立石臺’가 있는데, 임경업이 7년 수도 끝에 내공을 과시하기 위해 누워 있던 바위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합니다.

③임병찬林炳瓚

구한말 의병장으로 임병찬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천자문을 읽었으며 글을 한번 읽어 내려가면 바로 외울 정도였는데, 부친이 재주가 지나칠까 두려워하여 가르치기를 그쳤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기 낙안군수 겸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 등을 역임한 임병찬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이듬해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순창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돼 쓰시마섬에 유배되어 2년 만에 돌아오게 됩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다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1912년 고종의 밀명으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전라남도 순무대장巡撫大將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1914년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해 대한독립의군부를 만들고 대규모 의병 전쟁을 준비하지만,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전라남도 거문도에 유배된 임병찬은 2년 뒤 1916년 그곳에서 향년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임씨의 기원


우리나라의 임씨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수풀 임林 자를 쓰는 임씨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요?

임씨의 뿌리는 고대의 왕국인 은殷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夏나라에 이어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당대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게는 숙부이면서 충신인 비간比干이 있었는데 주왕의 폭정을 만류하며 직간합니다. 그러자 주왕은 “예로부터 충신의 염통에는 구멍이 아홉 개 있다고 했는데 진실로 충신이라면 염통에 구멍이 아홉 개 있을 것이다.” 하면서 비간을 죽였습니다.

이때 비간의 정부인正夫人 진씨陳氏가 임신 중에 장림산長林山으로 피신하여 살다가 아들을 낳아 천泉이라 했습니다. 후에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되자 무왕武王은 비간의 아들 천을 찾아 임林씨 성과 견堅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는데 이로부터 임씨 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평택 임씨를 비롯한 임씨의 시원은 고대의 왕국인 은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한, 장림산長林山에 은거했기 때문에 수풀 임林 자로 성을 쓰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임씨 중에서 뿌리가 되는 평택 임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시간, <한국의 성씨>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