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34-1 수경에 기록된 패수는 이병도란 자가 말한 청천강이 아니라, 조백하이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17 |
한국고대사 자료들-34-1. 수경에 기록된 패수는 xxx이병도란 자가 말한 청천강이 아니라, 조백하로 보아야 한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수경주(水經注)에 기록된 패수는 이병도가 말하는 청천강이 아니다
○패수(浿水)
[수경]
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臨浿縣, 東入于海.
패수(浿水)는 낙랑군 루방현(鏤方縣)을 나와서 동남쪽으로 림패현(臨浿縣)을 지나 동쪽으로 海로 들어간다
***참고: 수경에서 “패수는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XXX 이병도는 『수경(水經)』에서 “패수가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東入于海)”라는 구절은 “패수가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西入于海)”를 잘못 쓴 것이라고 수경을 왜곡(歪曲) 조작 하면서까지 패수를 한반도 내의 청천강이라는 궤변으로 한국고대사를 팔아먹은 놈이다.
XXX 이병도같은 무리들에 의해서 진장성 부근에 있던 패수, 위만이 건너온 연과 조선의 경계 패수를 한반도 내 청천강이 패수라고 하면서, 이것이 정설(定說)이라고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이 계속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배우는 학생들도 패수가 청천강이라 배우고 있다. 그러나 위만이 건넌 패수는 진개가 침략했던 어양, 우북평, 요서 및 요동이 후에 진장성으로 된 연장성 안에 있었던 것이고, 진이 망하면서 이곳이 공지로 남아 있을 때 고조선이 다시 장악한 것으로 보이며, 패수는 지금의 북경을 흐르는 조백하고 비정함이 마땅하다.
[주]
許慎云..浿水出鏤方, 東入海, 一曰出浿水縣. 十三州志曰..浿水縣在樂浪東北, 鏤方縣在郡東, 盖出其縣南逕鏤方也 昔燕人衞滿 自浿水西 至朝鮮. 朝鮮故箕子國也. 箕子教民以義, 田織信厚, 約以八法, 而下知禁, 遂成禮俗. 戰國時, 滿乃王之, 都王險城, 地方數千里. 至其孫右渠, 漢武帝元封二年, 遣 樓船將軍楊僕 左將軍荀彘 討 右渠, 破渠于浿水, 遂滅之. 若浿水東流, 無渡浿之理. 其地今髙句麗之國治. 余訪蕃使, 言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 逕故樂浪朝鮮縣即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浿水西至增地縣入海, 又漢興以朝鮮為逺, 循遼東故塞, 至浿水為界. 考之今古于事差謬, 盖經誤證也.
허신(許慎)은 말하기를 패수(浿水)는 루방현을 나와 동쪽으로 海로 들어가는데 혹은 패수현을 나온다고 하였다. 십삼주지(十三州志)에서 말하기를 패수현은 낙랑군 동북쪽에 있고 루방현은 낙랑군 동쪽에 있는데 모두 (패수현과 루방현) 그 현을 나와 [남쪽으로, 본문의 南을 而로 쓴 것도 있다] 루방현을 지난다고 하였
옛날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浿水) 서쪽으로부터 조선에 이르렀는데 조선은 옛 기자의 나라이다. 기자는 백성에게 올바름을 가르치고 밭갈기와 옷감짜기를 믿음과 두터움으로 하였으며 8법으로 조약하여 금하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 드디어 예절과 풍속을 이루었다(이하 해석 생략).
***참고: 패수(浿水)는 위만이 연나라에서 건너온 강이며, 연나라와 당시 조선의 경계에 있던 조선의 땅이다. 한(漢)나라에서 진장성(秦長城) 안쪽의 땅이 당시 수도인 장안에서 너무 멀어 상하장(上下雲鄣)의 땅을 버리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였다고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패수 동쪽을 조선에서 다시 수복(修復)한 것을 사기(史記)에서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패수는 조백하(潮白河)로 보이며,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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