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삼국사기 동천왕 때 현도,낙랑은 요수 부근, 평양은 개주시 부근이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8-15 |
삼국사기 동천왕 떼 현도, 낙랑은 요수 부근, 평양은 개주시 부근이었다.
11대 동천왕 20년(AD 267년)에는 “위(魏)가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장수 1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사학자들이 현도를 지금의 무순이라 함은 잘못이다)를 나와 침범하니, 왕은 보기병 2만명을 거느리고 비류수(沸流水) 위에서 역전하여 깨뜨리고 3,0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또 군사를 이끌고 다시 싸워 양맥의 골짜기에서 패배시키니 죽이거나 사로잡은 수가 3000여 명이었다.....
왕이 철기병 5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진격하였는데, 관구검이 진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워 우리 군사가 크게 무너지고 죽은 자가 1만 8천여 명이었다. 겨울 10월에 관구검이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장군 왕기를 보내어 고구려왕을 추격하였다...
밀우가 결사적으로 대항을 하고, 유유가 거짓 항복하면서 적장을 찔러 죽이자 왕은 급히 위군을 공격하여 위군은 낙랑으로 물러갔다....동천왕은 21년(AD 268년) 환도성이 난리로 파괴되어 다시 도읍할 수 없으므로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사직을 옮겼다.”
<*위의 글을 보면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 출발한 곳이 중국 땅의 현도이며, 멀지 않은 곳에 비류수(沸流水)가 있음을 보인다. 현도는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조에 나와 있드시 요수(遼水)와 요동성(遼東城)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현재 주류사학자들이 엉뚱하게도 현도(玄菟)가 압록강 중류와 동가강 유역에 있다가 무순(撫順)으로 옮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또 유유가 거짓 항복하면서 적장을 찔러 죽이자 동천왕은 급히 위군을 공격하였고, 위군은 낙랑으로 물러갔다고 했는데(AD 267년) 위군이 물러간 낙랑이 요동에 있는 낙랑이지, 일부 한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금의 평양에 있는 낙랑이 결코 될 수 없다. 낙랑 평양설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동천왕은 21년(AD 268년) 환도성이 난리로 파괴되어 다시 도읍할 수 없으므로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사직을 옮겼다.”고 했는데, 여기에 표시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지금의 평양은 장수왕 15년(AD 506년)이므로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은 현도군(玄菟郡) 개마현(蓋馬縣) 개마대산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현재 요령반도 중간의 개주(蓋州)시다. 단재 신채호는 ‘평양패수고’에서 개주시 조금 위의 요령성 해성(海城)시를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고 위당 정인보(鄭寅普)도 1946년 ‘조선사연구 상(上)’에서 ‘낙랑군 조선현은 지금 평양과 원래 무관하다’면서 신채호처럼 해성현을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다.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一] 東 濱 大 海; 北 與 挹 婁、夫 余, 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二] 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高句驪) 개마대산(蓋馬大山) 동쪽에 있다.』동쪽으로 큰 바다(海. 河)에 림하고, 북쪽으로 읍루(挹婁)와 부여(夫余)가 있으며, 남으로 예맥(濊貊)이 접하였다. 그 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사방 가히 천리(千里)이다. 땅은 기름지고 좋으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고, 마땅히 오곡이 있고, 밭농사도 좋다.
➡ 注[一] 『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山 :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 은 평양성(平壤城) 서(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왜놈들이 왜곡한 한국의 고대사와 한사군 위치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데 이들 왜놈 추종자들의 역사관은 반드시 폐기되고 올바른 한사군의 위치가 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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