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라는 플러스코리아 기사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1-07-13 |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라는 플러스코리아 기사
[단독]북한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
미래사적으로 일제의 만행에서 벗어남에도 학계는 왜이러나?
플러스코리아 | 기사입력 2009/11/12 [11:18]
https://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3363§ion=section78
본지는 북한 국보급 문화재인 ‘점제현신사비(黏蟬縣神祠碑)’가 가짜라는 주장들이 인터넷 상에서 회자되어 그 진위여부를 추적해 보았다.
(* 점제현신사비(黏蟬縣神祠碑)는 평안남도 온천군(溫泉郡) 성현리(城峴里)에 있는 낙랑시대 고비(古碑)로 1913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의 금서룡(今西龍)에 의해 조사된 것으로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16호로 알려짐. 한사군 재 한반도설의 가장 중심되는 유물.)
이같은 주장은 1990년 1월 17일 손보기 박사가 (사)한배달과의 대담에서 ‘현재 북한의 국보급 유물인 점제현신사비는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1913년에 중국에서 가져와 날조한 날조품’이라고 증언한 것이 9월호 한배달 잡지에 실리면서 처음 알려졌다.
(* 손보기 : 연세대 석좌교수, 연세대 박물관장, 단국대 박물관장)
▲ 한배달 잡지에 소개된 1990년 대담내용 기사 ©플러스코리아
손보기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파내어 한반도 평남 온천군으로 배로 실어 가져와 한반도내 한사군설을 조작하는데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동경로를 보면 아래와 같다. (*사진생략)
▲ 하북성 갈석산에서 평남온천으로 비문을 이동한 경로
손보기 교수는 ‘갈석산에 보면 신사비 크기의 바위를 쪼아낸 자국이 있으며 신사비의 돌을 조금 떼어내고, 갈석산의 돌을 떼어서 맞추어 보면 딱 맞아요. 일본인들이 배로 실어다가 10리 밖에 못와서 그곳에 뉘어놓고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배경으로 비의 사진을 찍어서 그곳이 낙랑의 점제현이다'라고 날조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래 사진이 1913년 당시 찍은 사진이다.(*사진 생략)
▲ 평남 온천 앞바다에 10리를 이동해 해안가에서 찍은 사진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지가 이미 소개한바있는 '사기조선열전'에 나오는 한사군의 위치가 중국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한반도내로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다.
* 본지 2009. 10. 22자 <'한사군' 한반도 아닌 중국대륙에 있었다!> 기사 참조 :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3138§ion=section78§ion2=상고사/고대사
그런데 이미 중앙일보 1995년 5월 8일자 북한뉴스 기사를 보면 북한역사학자들은 그동안 ‘낙랑군 평양설’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돼 온 ‘점제현신사비’가 일제의 날조품이었다는게 밝혀졌다고 설명하고 있다.(*사진 생략)
▲ 중앙일보 보도내용
도서출판 중심에서 2001년 4월 3일 발간된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라는 책을 보면 ‘북한 사회과학원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사진 생략)
▲ 북한 사회과학원 논문
“해방전 일제 어용사가들은 강점기간 동안 평양인근 100여기의 무덤을 파헤쳐 한의 낙랑유물로 변조하여 ‘한나라 낙랑군 재 평양설’을 날조 하였지만, 북한은 이후 30배가 많은 3천여기의 무덤을 발굴 정리한 결과 평양일대 유적은 고조선을 이어 받은 ‘최씨의 낙랑국 유적’으로 밝혀졌으며 중국의 유물과는 현저히 다른 아니 오히려 앞선 유물로 판명되었다.“
즉 “한나라 낙랑군 재평양설은 일본놈들과 반동사가들, 일부 대국주의사가들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수많은 날조의 증거들이 있지만 ‘점제현 신사비’를 증빙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생성년대에서는 흑운모를 시료로 하여 ‘핵분렬 흔적법’으로 측정한데 의하면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2천 9백만 년±1천 3백만 년이고, 온천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4백만 년±1천 2백만 년, 오석산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백만 년±1천 2백만 년, 마영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7백만 년±1천 2백만 년이다.
이처럼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온천과 룡강일대의 화강암 생성년대보다 2천 8백만 년~2천 2백만 년이다 더 오래다. 이것은 점제비 화강암이 그 근방의 화강암과는 돌 나이에서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지방의 화강암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중략)
이상의 사실은 점제비는 온천과 그 근방의 화강암이 아닌 다른 지방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온천과 그 근방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으며 평양일대에서는 그것을 많이 리용하고 있다. 그러면 왜 자기 지방의 석재로 만들지 않은 점제비가 온천 땅에서 나타났는가? 그것은 다른 지방에서 만든 것을 온천지방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상기내용을 종합해보면 중국 하북성에 있었던 비석을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한반도로 가져와 ‘한낙랑군 재평양설’을 날조하는데 이용하였으며, 북한학자들은 이미 그것이 날조품이라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는데 우리나라 학자들만 아직도 이 비문을 근거로 ‘한낙랑군 재평양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35동안 이땅에 ‘단군신화론’과 ‘반도사관’을 날조하는데 노력을 하였는데, 바로 금서룡(今西龍)이 조선사편수회에서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상기 내용들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우리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치지 못하는가? 참으로 궁금하다. 아래 한반도내 한사군 지도가 64년째 교육되고 있는데 사기조선열전의 내용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지 않다. 이제 진실을 교육할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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