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70. 단단대령은 난하동쪽 칠로도산이며, 졸본은 지금의 승덕이다(펌)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3-06 |
고대사 70. 단단대령은 지금의 난하(灤河) 동쪽에 있는 칠로도산(七老圖山)이고, 졸본은 지금의 승덕(承德)이다(펌)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아래는 펌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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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history/110083587373
○단단대령은 칠로도산
전한말 고구려가 차지한 낙랑군 영동칠현(嶺東七縣)에 대해서는 [후한서]와 [삼국지] 예․동옥저전에 상세히 나온다.
이 ‘領(嶺)’은 單單大領(단단대령)을 가리키는데, 그 비정조건으로〈전한시 동부도위 설치 이후의 낙랑군 영역 내에까지 산맥이 뻗쳐 있어야 하고, 후한서의 낙랑군(천진~난하)과는 인접해야〉하므로, 난하 일대 낙랑군의 북쪽이자 적봉의 서쪽에, 서북에서 동남으로 약간 기울어져 비스듬히 달리는 지금의 七老圖山(칠로도산)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위의 상황에서 후에 이맥의 침입으로 舊진번지역에서 밀려난 현도군은 난하(古압록수) 서쪽으로만 국한되게 되었고, 다시 漢은 舊진번지역까지 아우른 난하 동편의 7개현을 묶어 낙랑군에 편입시키게 된다.
영동칠현은 단단대령의 동에 있는 7현인데 그 중 화려와 불이가 동예였고 나머지 5현은 옥저였다.
그 후 화려와 불이에서 고구려가 일어난 것을 보면 舊진번지역을 침공했던 이맥이 바로 고구려건국세력임을 알 수 있다. 華麗(화려)는 고구려의 최초수도 졸본으로 지도3에서 承德市의 동남에 있는 舊승덕이며 不而(불이)는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곳이고 지도3에서 관성이 그곳이다. (*참고: 승덕시, 承德市 무령산(2116m) 동쪽 난하에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는 예맥고지(하북성 중동부, 북부) 중에서도 가장 동쪽의 난하(古압록수) 중류 동편의 동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전한말 고구려가 차지한 낙랑군 영동칠현(嶺東七縣)에 대해서는 [후한서]와 [삼국지] 예․동옥저전에 상세히 나온다.
이 ‘領(嶺)’은 單單大領(단단대령)을 가리키는데, 그 비정조건으로〈전한시 동부도위 설치 이후의 낙랑군 영역 내에까지 산맥이 뻗쳐 있어야 하고, 후한서의 낙랑군(천진~난하)과는 인접해야〉하므로, 난하 일대 낙랑군의 북쪽이자 적봉의 서쪽에, 서북에서 동남으로 약간 기울어져 비스듬히 달리는 지금의 七老圖山(칠로도산)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도4; 전한 4군(BC108년 조선구지에 최초로 설치된 한사군)
영동칠현은 단단대령의 동에 있는 7현인데 그 중 화려와 불이가 동예였고 나머지 5현은 옥저였다.
그 후 화려와 불이에서 고구려가 일어난 것을 보면 舊진번지역을 침공했던 이맥이 바로 고구려건국세력임을 알 수 있다. 華麗(화려)는 고구려의 최초수도 졸본으로 지도3에서 承德市의 동남에 있는 舊승덕이며 不而(불이)는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곳이고 지도3에서 관성이 그곳이다.
고구려는 예맥고지(하북성 중동부, 북부) 중에서도 가장 동쪽의 난하(古압록수) 중류 동편의 동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단단대령은 칠로도산
전한말 고구려가 차지한 낙랑군 영동칠현(嶺東七縣)에 대해서는 [후한서]와 [삼국지] 예․동옥저전에 상세히 나온다.
이 ‘領(嶺)’은 單單大領(단단대령)을 가리키는데, 그 비정조건으로〈전한시 동부도위 설치 이후의 낙랑군 영역 내에까지 산맥이 뻗쳐 있어야 하고, 후한서의 낙랑군(천진~난하)과는 인접해야〉하므로, 난하 일대 낙랑군의 북쪽이자 적봉의 서쪽에, 서북에서 동남으로 약간 기울어져 비스듬히 달리는 지금의 七老圖山(칠로도산)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도4; 전한 4군(BC108년 조선구지에 최초로 설치된 한사군)
지도5; 전한 2군(BC82년 낙랑과 현도 2군으로 통폐합)
@ 위의 상황에서 후에 이맥의 침입으로 舊진번지역에서 밀려난 현도군은 난하(古압록수) 서쪽으로만 국한되게 되었고, 다시 漢은 舊진번지역까지 아우른 난하 동편의 7개현을 묶어 낙랑군에 편입시키게 된다.
영동칠현은 단단대령의 동에 있는 7현인데 그 중 화려와 불이가 동예였고 나머지 5현은 옥저였다.
그 후 화려와 불이에서 고구려가 일어난 것을 보면 舊진번지역을 침공했던 이맥이 바로 고구려건국세력임을 알 수 있다. 華麗(화려)는 고구려의 최초수도 졸본으로 지도3에서 承德市의 동남에 있는 舊승덕이며 不而(불이)는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곳이고 지도3에서 관성이 그곳이다. (*참고: 승덕시, 承德市 무령산(2116m) 동쪽 난하에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는 예맥고지(하북성 중동부, 북부) 중에서도 가장 동쪽의 난하(古압록수) 중류 동편의 동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단단대령은 칠로도산
전한말 고구려가 차지한 낙랑군 영동칠현(嶺東七縣)에 대해서는 [후한서]와 [삼국지] 예․동옥저전에 상세히 나온다.
이 ‘領(嶺)’은 單單大領(단단대령)을 가리키는데, 그 비정조건으로〈전한시 동부도위 설치 이후의 낙랑군 영역 내에까지 산맥이 뻗쳐 있어야 하고, 후한서의 낙랑군(천진~난하)과는 인접해야〉하므로, 난하 일대 낙랑군의 북쪽이자 적봉의 서쪽에, 서북에서 동남으로 약간 기울어져 비스듬히 달리는 지금의 七老圖山(칠로도산)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도4; 전한 4군(BC108년 조선구지에 최초로 설치된 한사군)
영동칠현은 단단대령의 동에 있는 7현인데 그 중 화려와 불이가 동예였고 나머지 5현은 옥저였다.
그 후 화려와 불이에서 고구려가 일어난 것을 보면 舊진번지역을 침공했던 이맥이 바로 고구려건국세력임을 알 수 있다. 華麗(화려)는 고구려의 최초수도 졸본으로 지도3에서 承德市의 동남에 있는 舊승덕이며 不而(불이)는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곳이고 지도3에서 관성이 그곳이다.
고구려는 예맥고지(하북성 중동부, 북부) 중에서도 가장 동쪽의 난하(古압록수) 중류 동편의 동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출처]한사군의 바른 위치|작성자산책
***참고: 단단대령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갈석산 부근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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