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35. 열수는 중국 난하이며, 이병도란 놈이 말한 황해도율천은 아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18 |
한국고대사 자료들-35. 열수는 중국 난하이며, 이병도란놈이 말한 황해도 율천이 아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열수(列水)는 중국의 난하이며, 이병도가 말하는 황해도 율천이 아니다.
○산해경에 기록된 조선과 열수에 대한 이병도의 역사왜곡
『산해경 해내북경(산해경 海內北經)』의 조선에 대한 기록
산해경(山海經)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4세기 전후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해경 해내북경(山海經 卷12 海內北經)에는,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는 조선과 천독이 있는데 그들은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 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또 “조선은 열양(列陽: 列水 와 造陽)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이고, 산의 남쪽이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주1. 조선(朝鮮)은 지금의 낙랑현(樂浪縣)으로 기자가 봉해진 땅이다.
*주2. 열양(列陽)은 지금의 대방 유구현(大方有口縣)이 이것이다. 열(列)은 물이름(列水)이다.
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으로 기자가 봉해진 곳이다. 열은 또한 물 이름이며 지금의 대방에 위치하고 대방에 열구현이 있다.
(朝鮮今樂浪縣箕子所封地 列亦水名也今在帶方 帶方有列口縣) <곽박郭璞의 주석註釋>
지리지에 이르기를 낙랑군 조선이 있고 탄열과 여산을 가르며 열수가 나와 서쪽으로 점선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다시 이르기를 함자에서 대수(帶水)가 서쪽으로 대방(大方)에서 바다에 들어간다. 또한 대방(大方)과 열구(列口)가 함께 낙랑군에 속한다. 진서지리지에 열구는 대방군에 속한다.
(案地理志云 樂浪郡朝鮮 又呑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蟬入海 又云 含資帶水西至帶方入海 又帶方列口並屬樂浪郡 晋書地理志 列口屬帶方郡) <학의행郝懿行의 주注>
***참고: 산해경의 동해는 황해(黃海)를 지칭한 것이며, 북해(北海)는 발해만 지역을 말한 것이다. 낙랑은 진장성 부근에 위치한 곳이며, 대방도 마찬가지이다.
낙랑과 대방은 XXX 이병도나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평양이나 황해도가 결코 아니다. 수양제가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 중 낙랑은 좌12군의 12번째, 대방은 우12군의 11번째 침략경로에 위치한 땅이었다.
***참고: 열(列)은 물이름 열수(列水)라고 했는데, XXX 이병도는 열수(列水)를 황해도의 율천(栗川)이라 하였고, 또 열구(列口)를 황해도 은율이라고 하여 한국 고대사를 극도로 왜곡하였다. 이병도는
<진서(晉書)>에는 대방군에 소속된 7개 현의 이름이 나온다. ‘대방·열구(列口)·남신(南新)·장잠(長岑)·제해(提奚)·함자(含資)·해명(海冥)’현이 그것이다. 이 중 중국 고대 사서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현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열구현인데 이병도는 이를 황해도 은율(恩栗)로 비정했다. 다시 그 논리를 보자.
“은율군은 고구려 시대의 ‘율구(栗口)’ 혹은 ‘율천(栗川)’이니 율구(栗口)는 열구(列口)와 음이 거의 같고 율천(栗川)도 열수(列水)의 이사(異寫)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구현이 오늘의 은율 부근이라 함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진서(晉書)에 대방군으로 기록된 7개현은 수나라와 고구려 국경지대에 있었다.
역사를 배우고 가르쳤다고 하는 XXX 이병도가 율천(栗川)을 열수(列水)라고 하고, 은율군(殷栗郡)을 열구(列口)라고 왜곡하여 한국고대사를 팔아먹고 한국고대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사실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병도란 XXX는,
이병도라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주장했던 조선현의 위치는 수양제의 좌12군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군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군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군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군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군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어찌하여 한국사를 배우고 가르쳤다는 놈이 이토록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고, 한국고대사에서 중국에 있는 대방군을 황해도라고 속이는 짓을 서슴치 않고 했을까?
XXX가 주장한 대방의 땅은 수양제가 요수(遼水:지금의 난하)를 건너 압록수(鴨淥水:지금의 요하)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수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고구려의 국경지대 땅이고,대륙에 있었던 땅이었다. 결코 XXX 이병도가 주장하는 평양이나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사기조선열전史記朝鮮列傳 집해集解의 위魏 장안張晏 주注>에는,
조선에는 습수와 열수와 산수의 세 강물이 있어 열수에 합쳐진다. 생각건대 낙랑조선의 이름이 그래서 얻은 듯하다.
(朝鮮有濕水洌水汕水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라고 하였다.
<통전通典 권185 변방1 조선 조條의 장화張華 주注> 에도,
조선에는 천수와 열수와 산수의 세 강물이 있어 열수에 합쳐진다. 생각건대 낙랑조선의 이름이 그래서 얻은 듯하다.
(朝鮮有泉水洌水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라고 하여, 장안이 말한 습수(濕水)를 천수(泉水)라고 바꾸어 말하고 있다.
<낙랑군樂浪郡 탄열현呑列縣에 대한 안사고顔師古 주注> 에는
탄열현에 열수列水가 있는데 강의 길이가 820리이다.
[후한서군국지後漢書郡國志*지명대사전地名大辭典]에서는,
한漢이 열인列人들이 살던 곳에 열인현(列人縣-거록군鉅鹿郡)을 두었고 북제北齊가 없앴는데 고성(故城-열인성列人城)이 하북성河北省 비향현肥鄕縣 동북東北 15리에 있다고 한다.
지리지에 이르기를 낙랑군 조선이 있고 탄열현의 분여산에서 열수가 나와 서쪽으로 점선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다시 이르기를 함자에서 대수가 서쪽으로 대방에서 바다에 들어간다. 또한 대방과 열구가 함께 낙랑군에 속한다. 진서지리지에 열구는 대방군에 속한다.
열수熱水는 곧 열수列水로서 하북성河北省 울현蔚縣 서쪽에 있다 하였고 다른 명칭 또한 [기이수祈夷水-동방족이 신성시 하는 물]로서 단군조선계 예족(濊族-열족列族)들의 지표강수指標江水임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상건하桑乾河로 합쳐지는 걸 보여준다.
<학의행(郝懿行)의 주(注)>에는,
案地理志云 樂浪郡朝鮮 又呑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蟬入海 又云 含資帶水西至帶方入海 又帶方列口並屬樂浪郡 晋書地理志 列口屬帶方郡
<수경주(水經注) 유수(濡水)의 주(注)>에는,
새외에서 흘러나와 동남으로 요서 영지현 북쪽을 지난다...[주석 유수는 다시 동남으로 흘러 무열수에 들어간다. 이 강은 세 개의 줄기가 합쳐진다. 원 줄기는 오른쪽에서 계수 혹은 서장수라 하는데 동남으로 흘러 계에서 나와 반천수와 합친다.
샘이 고을의 15리 지점에서 솟아나와 동으로 90리 흘러 서장수에 들어간다. 동남으로 다시 흘러 동장수에 들어간다...[중략]...동남으로 흘러 무열계라고 하는 곳을 지나면서 무열수라 한다...]
(從塞外來 東南過遼西令支縣北...[註釋 濡水又東南流武列水入焉 其水三川派合 西源右爲溪水亦曰西藏水 東南流出溪 與蟠川水合 泉發州東15里 東流90里東注西藏水 西藏水又東南流 東藏水注之...[중략]...又東南流逕武列溪謂之武列水...]
***참고: 수경주에서는 유수(濡水)의 하류(下流) 이름이 무열수(武列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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