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지구촌개벽뉴스]

I can’t breathe! Black Lives Matter!
인종차별과 불의에 반대하는 시위 전 세계로 이어져



미국 전역이 “I can’t breathe.”라는 구호와 ‘8분 46초간’의 추모기도 열풍에 휩싸였다. 지난 6월 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전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최대 규모의 평화 시위가 열렸다. 주요 언론들은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도심에 집결해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라는 구호가 적힌 패널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런던과 베를린, 파리, 코펜하겐, 밀라노, 리우데자네이루, 더블린, 오클랜드, 토론토 등 세계 곳곳에서도 한 흑인의 억울한 죽음에 공감하는 연대 시위가 일어났다.

사건은 지난 5월 25일 미국의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후 8시경 미니애폴리스 경찰관들은 위조지폐 사용이 의심되는 46세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했다. 당시 체포 과정을 보여주는 페이스북 라이브 생방송 동영상이 퍼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지나가는 행인이 찍은 영상에서는 48세 백인계 미국인 경찰관 데릭 쇼빈이 플로이드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으로 목을 누르는 모습이 찍혔다. 플로이드는 쇼빈에게 계속 “please!(제발요)”,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 행인은 플로이드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 플로이드는 말과 행동이 없어졌다.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쇼빈은 구급대가 플로이드를 들것으로 옮기기 전까지 무릎을 치우지 않았다. 8분 46초간 목을 눌린 플로이드는 병원에 옮겨지는 과정에서 숨지게 된다.

시위는 5월 26일 정오 무렵부터 미니애폴리스에서부터 시작됐다.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많은 가게들이 약탈, 습격을 당하고 불에 태워졌다. 경찰서가 불타고 시위가 격화되자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주방위군이 출동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언론들도 심각성을 깨닫고 사건 닷새 뒤 5월 30일부터 부랴부랴 사건을 1면 톱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트럼프는 29일 자신의 SNS에 ‟약탈하면 발포할 것”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고, “연방군 투입”을 의미하는 트윗을 올렸다. 이는 주위 참모들을 당혹케 하는 동시에 시위대의 분노 게이지를 더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은 물론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과거에도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유사한 흑인 차별 사건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된 이유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 때문에 흑인들의 분노와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흑인 코로나19 누적 환자는 백인의 4.5배에 달한다. 사망률은 백인의 2.6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의료보험이 없는 흑인 노동자는 전체 흑인 수의 12.3%에 달한다. 이 수치는 백인 노동자(7.5%)에 비해 훨씬 높은 비중이다. 경제적 타격 역시 흑인들에 집중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인의 44%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었거나 임금 손실을 경험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로 좌절한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을 당하면서 불평등과 관련한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소득불평등 등 다양한 분노와 좌절이 이번 시위에서 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은 그 뿌리가 깊다. 노예해방 때문에 일어난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1965년까지 100년간 미국에서는 ‘인종분리’가 합법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5~1870년 사이에 노예제 폐지와 동등 보호조항, 투표권 보장 등을 수정헌법 13·14·15조에 명시했지만, 이러한 헌법 수정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지역의 차별까지 없애지 못했다. 링컨 대통령 암살 이후 남부의 주들은 교묘하게 흑백 분리 법안을 제정해 차별을 법제화·제도화했다. 남부 주들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수 없도록 서로 구역을 분리하는 법, 이른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을 줄줄이 입법했다. 이렇게 100년 이상 지속되던 흑백 분리 법안은 1954년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에 흑백 학생이 함께 다닐 수 없도록 한 주법을 불법으로 판결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1955년 ‘로자 파크스Rosa Louise McCauley Parks 사건’ 이후 사문화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지금도 미국의 유색인종은 헌법·법률상으로만 백인과 평등할 뿐 실제 미국의 사회적 인종차별과 분리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종을 떠나 차별 없고 공정한 세상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서 희망의 다리를 건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