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과 정성으로 신앙하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道紀 132년 5월 26일(일), 청주순방군령 도훈 발췌

개벽기에 사람 살리는 진리


상제님 진리는 개벽 진리, 개벽 사상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문화권에서 기복祈福 신앙을 했다. 천 년 전 사람도 그랬고, 천 년 후 사람도 그랬다. 현재 신앙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만나지이다.” 하고 많은 역사적 종교에서 각색 신도가 그렇게 구복求福 신앙을 했다.

지나간 세상은 개벽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없던 봄여름 세상이다. 그러니 어떻게 신앙하든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게 신앙해서는 안 된다. 상제님 진리는 그런 진리가 아니다. 상제님 진리는 개벽 진리이기 때문에 개벽기에 사람을 살리는 진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제님은 이 세상에 사람을 살리러 오신 분이지, 잘 믿어서 무슨 복 받으라는 말 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상제님 사업은 새판이다


내가 상제님 성구로 말씀을 전하면 “선천개벽 이후로 수재水災와 한재旱災와 전쟁의 겁재劫災가 서로 번갈아서 세상을 진탕하였으나 아직 큰 병겁은 없었다. 이 세상의 큰 겁재는 다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을 전하여 주니 오직 비열한 듯한 의통을 알아두라.”(道典 7:33)라고 하셨다.

또 “앞으로 괴병이 돌 때는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 죽어서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 밀리듯 한다.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을 잡아 끌어낼 겨를도 없다.”라고 하셨다.

우리 신도들 보고는 “육임을 꼭 짜라.”고 하셨다. “나를 잘 믿는 자에게는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라.”라고도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라고 하셨다. 천하창생이라 할 것 같으면 60억 인류를 지칭한 말씀이다. ‘60억 인류의 죽고 사는 것은 다만 너희들 수중에 달려 있다. 60억 인류를 죽이고 살리는 게 다만 신도들의 활동 여하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씀하시기를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道典 8:33)라고 하셨다. ‘너희들이 잘하면 가능한 한계 내에서 많이도 살릴 수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절규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춰내서 자꾸 말하기가 거북스러워 안 할 뿐이지 『도전道典』을 보고 다 같이 공감하고 있을 것 아닌가. 일사一死면 도무사都無事라, 한번 죽으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아니 죽고 나서 무엇이 있는가?

상제님은 강씨 집안에서 벼슬할 때 받은 첩지, 공명첩 이런 것을 다 가져다가 불태워 버리셨다. “이런 것 다 소용없다. 내게서부터 새로 된다.”라고 하셨다. 상제님 사업은 새판이다. 판도가 새판이다. 대오각성大悟覺醒, 크게 깨닫고 크게 각성을 하라.

상제님 일은 죽을 각오로 해야


상제님 말씀이 들어있는 『도전』은 이 세상이 둥글어 가는 비결이다. 우리가 신앙하는 참 하나님, 상제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둥글어가게 만들어 놓으셨다. 내가 지금 실속 있는 이야기만 하느라 세세한 내용을 다 뺐는데, 이 세상은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틀 짜놓으신 대로, 판을 짜놓으신 대로만 둥글어가고 있다. 전혀 머리털만큼도 틀리지 않는다. 하늘도 상제님의 하늘이고, 땅도 상제님의 땅이고, 이 세상 지구상에 사는 60억 인류도 다 상제님 사람이다. 우리가 우로지택雨露之澤으로 그냥 사는 것 같지만 다 상제님 조화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억만 분지 1%도 거짓이 없다. 우리는 상제님 진리를 똑같이 공유하고 있잖은가. 이건 꼭 해야만 되는 진리다. ‘나 자신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겠다’ 하고서 우리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해야 된다.

생사보다 더 중차대한 것은 없잖은가. 이건 꼭 해야 되는 일이고, 소원하다가 못 다한 일이 있으면 그건 다음으로 다 미루고, 지금은 사람 살리는 일에 다 바쳐서 일해야 한다.

‘태산절정泰山絶頂에 갱진일보更進一步’라는 문구가 있다. 태산의 끊어진 이마에서 다시 한 걸음을 더 나가라는 것이다. 태산은 저 산동성에 있는 산인데, 그 산정山頂에서 한 걸음을 내딛으면 그냥 떨어져서 죽을 것 아닌가. 그런 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 활동하지 않으면, 다 바치는 정성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을 하지 못한다.

상제님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가셨다


상제님이 인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하고 가셨는가? 상제님은 성부聖父님, 성모聖母님도 제대로 못 모셨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에서 진지 드시고, 서쪽에 가서 잠을 주무셨다. 여름철에는 지나가시다가 바위 밑에 가서도 주무시고, 겨울에는 초빈草殯한 곳에서 이엉이나 두어 개비 덮고 주무시기도 했다.

상제님은 이 세상에서 봉사를 하고 가셨다. 전 인류를 위해서, 후천 5만 년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고 가신 것이다. 전 인류는 앞으로 5만 년 동안 상제님의 은총을 입고 살 것이기 때문에, 그 은총을 갚느라고 상제님을 받드는 것이다. 사실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하늘 땅 생긴 이후로 수많은 성자들도 봉사 정신으로 살았거늘, 세속 중생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세상 사람들, 듣거라.” 하고 오만할 수 있는가. 봉사가 무엇이냐 하면 받들 봉奉 자,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지나간 세상의 성자들도 세상을 받들어 모시다가 갔다. 그 대가로 성자로 추앙을 받고 대우를 받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 신도들은 진짜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뒷세상 사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절대로 봉사 정신을 가져라


봉사 정신이 결여돼서 공연스레 거만하고, 자존자대自尊自大, 스스로 높고 스스로 크다면 그것은 당치도 않은 것이다. 그건 자가중상自家重傷, 자살행위다. ‘거상이교즉망居上而驕則亡이라’,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거만하면 망하는 것이다. 사람은 겸허하고 겸손해야 한다. 내가 꽉 찼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빌 허虛 자, 자기를 비워야 하는 것이다. 봉사 정신을 가져라. 봉사 정신. 거만하고, 자존심 갖고 하면 절대로 성공을 못 한다. 포교도 못 한다. 사람을 접촉하면서 다정다감多情多感, 정이 넘쳐흐르고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정성을 가져야 한다.

하늘땅만 한 복을 쥐어준다고 하더라도 우선 사람하고 서로 이지理智가 맞아야 이야기도 들어주고 하지, 사람이 싫은데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있는가. 진리 이전에 사람이다.

포교를 하려면 우선 남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믿는 신도’가 될 때까지 봉사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평생을 봉사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봉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 패배 당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다 봉사하다가 가는 것이다. 봉사란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잘난 척 해야 소용없다. 최후의 승리는 봉사하는 데 있다. 우리 신도들은 절대로 봉사 정신을 가져라.

모든 것은 일심에 있다


결론적으로, 상제님께서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천추에 혈식을 누리는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에 혈식을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그 신명들이 하나같이 다 ‘일심에 있습니.’ 하고 대답을 한다.”(道典 6:83:4~5)고 하셨다

상제님이 “인간의 복록을 내가 맡았으나 태워줄 곳이 없음을 한하노라.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一心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질 것 같으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하셨다. 일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이 일심에 있다. “심야자心也者는 대어천지大於天地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천지보다도 크다.

일심을 가져야 포교도 된다


상서相書에도 “사주四柱가 불여상不如相이요, 상불여심相不如心이라.” 사람 사주팔자가 인상만 못하고, 인상이 아무리 잘 생겼다 하더라도 심법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심사心思가 비뚤어질 것 같으면 아무짝에 소용없다. 심사가 비뚤어져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남을 음해하고 살인하고 강도하면 그걸 가만히 두나 말이다. 국가에는 기강도 있고, 사회도덕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라 하는 것은 마음의 자취다. 우리 신도들이 포교를 하지 않는 것은 일심이 안 됐다는 소리다. 심혈心血이 경주傾注되는, 마음과 피가 함께 기울어지는 일편단심一片丹心! 옛날 충신, 열사들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죽어져서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라고 노래한 그런 일편단심! 붉을 단丹 자, 속고갱이, 진짜배기 빨간 정성, 그 정성은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썩지 않고, 돌에 놓고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다.

우리 신도들이 그런 일편단심만 가질 것 같으면 세상에 못 되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든 것은 심법心法이다. 우리 신도들이 포교를 못 한다는 것은 신앙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밖에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