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쿠르드족 장기 休戰 돌입, 쿠르드의 獨立, 국제 관심사로 떠올라

[지구촌개벽뉴스]

주변국의 배신으로 번번이 獨立國 기회 놓쳐
중동과 유럽·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세계 최대 流浪民族에게 서광 비치나



터키와 쿠르드족 休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23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터키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사이에 ‘영구적(permanent)’ 휴전이 있을 것”이라며 “터키에 부과한 모든 제재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22일) 러시아 소치에서 진행한 정상회담을 통해 터키 접경의 시리아 내 ‘안전지대’로부터 쿠르드 민병대를 철수시키고, 터키·러시아 양국 군이 합동 순찰하기로 합의하면서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사태는 일단락됐다.

터키와 쿠르드족이 휴전에 합의한 것은 미군 철수가 시발점이 됐다. 미국은 10월 6일부터 시리아 북부지역에 있던 1,000명의 병력을 이라크 북부로 이동시켰다. 이는 쿠르드인들을 배신감으로 분노케 만들었다. #시리아에 있던 쿠르드족은 민병대를 결성하여 지난 2014년부터 미국과 함께 IS와 시리아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인 약 1만 명이 전사했다.# 쿠르드 전사자가 많았던 건 그들이 지상군 역할을 맡고, 미군은 공중 폭격과 포격 지원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군 철군을 “석유를 지키는 것 외에 (병력 주둔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어떠한 병력도 매우 위험한 지역(시리아 북부)에 남기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정당화했다. 석유는 지키고 동맹국 쿠르드의 안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미군의 철군이 촉발促發한 터키-쿠르드 전쟁


미군이 물러나자 터키의 위협은 더 강해졌다. 터키는 오랫동안 자국 내 쿠르드족(전체 인구의 24%)을 철저하게 차별했고 쿠르드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78년 터키 남쪽, 이라크 북서쪽, 시리아 북동쪽, 이란 북서쪽에 걸쳐 있는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 쿠르드족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쿠르드어: Partiya Karkerên Kurdistan, PKK)이 등장했다. PKK가 무장투쟁을 시작한 이래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터키 정부는 PKK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탄압했다. PKK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족과도 연합하여 IS에 맞서 싸웠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족 역시 지역 정세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북부에 있는 쿠르드 반군의 활동이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운동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터키는 IS가 와해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쿠르드족이 시리아에서 자치지역을 설립하려는 것을 자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으로 여긴다. 터키는 이라크 북부에도 쿠르드족 독립국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터키는 미군의 철수를 쿠르드족 공격의 길을 터준 것으로 해석했다. 터키는 10월 7일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의 북부 지역에 지상군을 투입해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하지만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고 여론이 악화되자 미국은 14일 터키에 대해 미국 내 자산동결 등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서방국과 주위국의 背信으로 번번히 실패한 독립


터키와 쿠르드족이 이번에 장기적 휴전에 합의하면서 앞으로 쿠르드족이 독립국을 만들 수 있을지 여부도 국제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쿠르드족은 지난 100여 년간 여러 차례 독립을 위해 싸워왔지만 번번히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의 배신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제1차 대전으로 오스만제국(터키의 전신)이 무너질 때 쿠르드족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오스만제국 이후 터키공화국이 세워지면서 터키는 서구에 “쿠르드를 독립시켜주면 안 된다.”고 설득해 이들을 터키공화국에 편입되도록 했다.

1946년에는 이란에 살던 쿠르드족이 구소련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국가인 마하바드 공화국(Republic of Mahabad)을 세웠다. 하지만 이 역시 서방의 지원을 받은 이란군의 공격으로 궤멸당했다.

1972년에는 친미 팔레비 왕조가 이끄는 이란이 접경국 이라크와 국경선을 놓고 싸울 때 쿠르드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도 동맹인 팔레비 왕조를 돕기 위해 쿠르드족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며 이라크와 대신 싸워달라고 했다. 미국과 팔레비 왕조는 이라크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의 독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 뒤인 1975년 이란과 이라크 관계가 개선되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80~1988년 이라크는 이란과 다시 전쟁을 벌이면서 쿠르드족을 자기편에 서도록 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1988년 전쟁이 끝날 무렵 쿠르드가 독립하거나 이란 편으로 돌아설 것을 우려해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대량 학살하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은 힘없고 억압받는 약소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다. 상제님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孱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라.”(도전 3편 184장)라고 말씀하셨다. 상제님은 9년 천지공사를 통해 역사의 대세를 돌려놓으셨다. 1901년 이후 천지공사의 틀대로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었고, 그 결과로 대다수 약소 민족들이 강대국 압제의 사슬을 풀고 독립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개벽 세상은 전쟁과 억압이 없는 평화의 시대다.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5편 306장),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핀다. 앞세상은 지구 상의 모든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고, 서로 화합하여 조화로운 문명의 꽃을 피우는 세상이다. 비운의 민족 쿠르드족에게도 역사의 서광이 비치는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쿠르드족의 역사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으로 인구는 약 3,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한 번도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쿠르드는 이란에서 갈라져 나왔고,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되는 쿠르드어를 독자 언어로 사용한다. 종교는 수니파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시아파 계열 소수종파인 알레비파가 적지 않다. 이 밖에 야르산, 야지디, 조로아스터,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이들이 섞여 있다.

쿠르드의 존재는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민족집단으로서 정체성이 굳어진 것은 12~13세기 무렵으로 보인다. 중세 이후에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만제국이 무너질 때 쿠르디스탄은 이란·이라크·터키·아제르바이잔 등으로 분할됐다. 이때부터 쿠르드족은 각 거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추산에 따르면 터키에 1800만 명, 이란에 800만 명, 이라크에 500만 명의 쿠르드족이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200만 명이다. 유럽으로 간 이들도 적지 않다. 독일에 100만~150만 명이 살고 있고 프랑스에도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에도 쿠르드계 유대인 15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