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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STB다시보기 | [인터뷰] 일본 속의 신라사

    3회 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처럼 일본은 우리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골이 깊은 나라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한일 고대사의 문제는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채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올바른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세신궁에서 고조선 신을 모셨다



    Q 김철수 교수: 일본에 가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게 ‘신사神社’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신사神社의 나라’라고도 하는데요. 신사라는 명칭도 있고 신궁神宮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이런 명칭들에 차이가 있을까요?

    A 홍윤기 교수: 네,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은 국가 ‘신도神道’의 나라라고 하는데요. 왕실 계통의 천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신궁이라고 하고 이보다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로 치면) 사당과 같은 곳을 신사라고 부릅니다. 일본은 하늘의 천신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도 국가입니다.

    Q 김철수 교수: 일본은 신神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신사나 신궁에서 모시는 신들은 어떤 신들을 모시고 있는 것일까요?

    A 홍윤기 교수: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 불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비롯한 다양한 신을 모십니다. 동경제국대학 최초의 역사교수였던 구니다케 교수는 ‘일본 왕실에서 모시는 최고의 신궁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고대의 천조대신을 모시지 않고 고조선의 신을 모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으로 일본이 발칵 뒤집혔고 구니다케 교수는 파직까지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Q 김철수 교수: 일본의 신이라 하면 800만 신이라고 해서 참 많은데요. 천신들을 모신 신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모시는 천신들은 우리 민족과 연관성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홍윤기 교수: 물론입니다. 이를테면 천조대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인 ‘스사노오노 미코토須佐之男命’ 이분이 하늘에서 내려간 곳이 신라 땅인데요, 강원도 춘천이 신라의 경계선이었다고 합니다. 춘천에 우두산이 있는데요 이 우두산에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내려왔었고 이후 일본 이즈모 지역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내용을 종합해볼 때 일본 고대사를 지배했던 것은 사실 한민족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게히신궁의 주신은 신라 왕자 천일창



    Q 김철수 교수: 일본 신사에 모셔진 신들을 분류해보면 한반도에서 내려온 천신, 일본 영토 내에 있었던 국신, 일본 왕, 일본 왕족과 관련한 신들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요. 교수님께서 답사를 많이 다녀오신 ‘게히신궁’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홍윤기 교수: ‘게히신궁氣比神宮’에는 신라 천일창天日槍 왕자가 모셔져 있습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게 게히신궁이었습니다. 게히신궁은 일본 동북 지방의 유일한 왕실 신궁인데, 여기에 모셔진 분이 신라왕자 천일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공황후와 응신왕 등을 추가하여 일곱 분의 신을 함께 모시게 됩니다.

    Q 김철수 교수: 신공황후가 신라 쪽에 왔다가 마치고 돌아가면서 북규슈에서 낳은 아들이 응신왕應神王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응신왕이 야마토 국가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또 많은 도래인들이 왕인을 포함해서 그 당시에 일본으로 넘어갔고요. 또 환단고기 대진국본기에 보면 의라왕依羅王이 나옵니다. 이 의라왕이 응신왕인데, 응신왕도 게히신궁에 같이 모셔져 있다는 게 좀 의아합니다.

    A 홍윤기 교수: 유일의 신궁에 신라 왕자가 모셔져 있다 보니 일본인들이 예민해져가지고 역사 왜곡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신공황후를 계속 내세웠던 겁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신공황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일본의 저명학자들은 웃습니다. 신공황후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보는 일본 학자들이 많습니다.

    Q 김철수 교수: 응신왕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 야마토 국가 건설의 토대를 이루게 되죠. 일본 쪽에서는 이런 한반도와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 신공황후라는 가상적인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공왕후의 아들 응신왕은 백제인


    A 홍윤기 교수: 네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야마토 국가를 건설하게 되는 응신왕은 백제인 아닙니까? 이분을 낳은 분이 가상의 인물이라 여겨지는 신공황후라고 하니 참 역설적입니다. 응신왕은 야마토 국가를 만들게 되는데 오사카에 왕인이 건너와서 일본의 글자도 만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오사카의 중심가인 ‘난바’를 만든 것도 백제인들이 만들었습니다. 난바가 예전에는 바닷가였는데 지금은 시내 중심가가 되었습니다. 해변을 메워서 육지를 만들었던 것이죠. 그 당시엔 왕인의 ‘난파진가難波津歌’라는 시가詩歌가 있었습니다. 이 난파진가라는 시가는 백제인이 오사카 땅을 점거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 시가를 싫어합니다.

    Q 김철수 교수: 게히신궁에 최고신으로 모셔지는 천일창 왕자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 문화 흐름을 밝힐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인물인데요. 천일창에 대한 기록은 한국에는 없고 일본 쪽 기록에만 있는데,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라 왕자 천일창이 벼농사를 전해줬다


    A 홍윤기 교수: 응신왕 쪽에 기록이 나오는데요, 신라 천일창 왕자는 오사카 쪽으로 왔다가 와카사만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와카사만의 ‘와카사’도 신라어, 즉 경상도 말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말인 ‘와갔소’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볼 때 신라인의 터전이 된 지역에 천일창 왕자를 모시는 게히신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일본은 이 신라인들을 통해 벼농사와 생활 문화를 전수받게 됩니다.

    Q 김철수 교수: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일본에 전수된 벼농사와 천일창 왕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홍윤기 교수: 단순히 벼농사만 건너간 것이 아니고 일본의 서부 지역 해안가에 신라인들이 건너와서 벼농사와 생활 문화가 건너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본은 야요이彌生 시대(서기전 3세기~서기 3세기)에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나와 있는데요. 천일창 왕자를 비롯한 신라인을 통해 벼농사가 전수되었기에 신궁을 세우고 모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천일창 왕자의 다른 이름 중에 ‘게히대신’이란 호칭이 있는데, ‘식령食靈’이란 의미입니다. 게히신궁 역시 ‘식령食靈을 모신 신궁’이란 의미이기에 천일창 왕자와 일본의 벼농사 전수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Q 김철수 교수: 신라로부터 일본에 농사법이 전해진 야요이 시대부터 일본의 생활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A 홍윤기 교수: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로부터 벼농사를 전수받으면서부터 일본의 생활이 향상되었다고 일본 교과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이 실린 교과서를 제가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이런 공식 기록은 나중에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Q 김철수 교수: 게히신궁의 주신主神이 천일창 왕자이고, 천일창 왕자는 일본에 벼농사법을 전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A 홍윤기 교수: 천일창 왕자가 일본에 건너와서 벼농사 문화를 일으킨 흔적들은 일본의 고대사학자들을 통해서도 입증이 됩니다.

    Q 김철수 교수: 지금까지 교수님께서 직접 발로 뛰어다니시며 노력하신 결과에 의해, 한국과 일본 고대사의 비밀들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홍윤기 교수님과 함께 천일창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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