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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조상님의 손길로 바른 길을 찾다 외 (이진호, 이원교, 백정희)

    상생방송에 매혹된 나의 삶


    이원교(여, 86) / 부산온천도장 / 149년 음력 9월 입도


    종도사님 말씀에 상생방송 애청자가 되다


    젊었을 때부터 드문드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천지는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생각을 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키우면서 깊이 있게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궁금증을 가지며 살아왔었습니다.

    불교를 믿으며 절에 한 달에 한 번씩 다니긴 했지만 이것이 맞는 말씀이며 마냥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가족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기 위해 다녔었습니다.

    TV 채널을 돌려 보다가 3년 전부터 상생방송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상생방송에 나오는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말씀을 듣고 매혹이 되어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방송을 꾸준히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태을주 주문을 접하게 되고, 집에서 혼자 태을주를 매일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맞다는 생각에 올린 천도식


    그러던 올 5월경 친한 친구 자녀의 혼사가 오랫동안 잘 성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도장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부산온천도장에 연락을 하고 친구와 같이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불교에 심취해 있는 터라 계속 오진 않았지만 저는 상생방송에 자주 접해서 익숙하였고 여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장에 다니면서 입문식과 천도식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직선조 천도식을 먼저 올려 드리고 싶었는데, 시집을 간 터라 조상님들이 서운해하시지는 않을까 하여 시직선조 천도식을 먼저 올려 드렸습니다. 평소 오래 앉아 있는 게 불편하여 천도식을 하는데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편하고 좋았습니다.

    평소 저는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나타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너희 언니를 알아봐라.” 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 기구한 삶을 살던 언니였는데, 젊을 때 폐결핵으로 전라도에 있는 요양소로 보냈다는 얘기만 수년 전 들었고,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언니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애타게 찾고 계셨던 듯합니다.

    그 이후 ‘아, 빨리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드려야겠구나’라고 생각해서 바로 다음 도장에서 진행하는 천도식에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드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애가 많이 탔었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안심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천도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히 진리를 전하려 해


    두 달 사이에 천도식을 두 번 올려 드리면서 천도식 전후로 3·7단위로 21일 수행을 했었습니다. 천도식 후 21일이 끝나고 이제 입도를 하게 됩니다. 요즘에도 꾸준히 집에서 자시 또는 새벽 3~4시에 항상 기도와 수행을 시작하여 2~3시간씩을 하고 있습니다. 집 근처를 산책할 때는 항상 태을주를 읽으며 걷고 있습니다.

    도전에 나오는 성도들처럼 전국을 누비며 포교 활동을 하러 다니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나이와 체력의 한계가 있음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려 합니다.

    아직까지는 자녀와 주변 지인들이 제가 얘기하면 마이동풍처럼 잘 듣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전하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앙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도합니다.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항상 기도하고 주문을 읽으며 상제님의 참신앙을 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증산도 진리로 인생의 길을 찾다


    백정희(여, 59) / 부산덕천도장 / 149년 음력 8월 입도

    상생방송의 진리 말씀이 좋다는 말에


    저는 1961년 음력 5월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안동우체국 집배원이셨습니다. 3세 때 부산시 초량동으로 이사를 했고 다시 6세에 구포동으로 이사를 한 후 지금까지 부산시 구포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25세에 결혼을 해서 자식은 1남 1녀를 두었고, 결혼 후 힘든 일도 많았지만 모두 극복하고 지금은 남편과 함께 1997년부터 구포동에서 ‘돈우촌갈비’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 저는 자연스럽게 불교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저는 칠성에서 태어나서 공을 많이 들여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 신앙을 심도 있게 하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진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를 풀어 줄 인생의 도道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년 전에 우연히 불교방송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관심을 크게 가지고서 시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손태름 도생님이 2019년 5월경 저에게 상생방송의 진리 말씀이 좋으니 계속해서 시청하라고 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상생방송을 열심히 시청하였습니다.

    진리를 공부하며 확신을 갖게 되다


    손태름 도생님의 인도로 지난 8월 25일 부산덕천도장에 방문하였으며 최승철 포정님과 증산도 신앙 상담 후 9월에 입도하기로 결정하고 당일부터 입도를 위한 21일 정성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도장에 방문한 이날은 손태름 도생님과 함께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우리 역사 찾기 강연 행사에도 참석하였는데, 강연자의 말씀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에 역사 회복을 위한 후원에도 동참하였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7시에 도장에 나와서 28일 동안 정성수행 후 입도 공부를 하였습니다. 입도 정성수행과 공부를 하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정성수행 후에 증산도 도전과 팔관법 진리, 우주변화원리 공부를 하면서 상제님과 태모님의 천지대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으며 증산도 진리에 확신을 가지고 9월 22일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조석으로 봉청수를 모시며 정성수행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7시에 도장에 나와서 정성수행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헌신 봉사하는 태을랑이 될 것


    상제님과 태모님의 천지대도로 인도하여 주신 저의 조상 선령신님들과 손태름 도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입도 후에 조석으로 봉청수와 정성수행을 꾸준히 하겠습니다. 도장에 헌신 봉사하며 증산도 도전 중심의 진리 공부를 확립하고 태을주를 숨 쉬듯이 읽어서 가족포교와 지인포교, 개척포교로 6임포교 천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태상종도사님이시여, 종도사님이시여, 조상 선령신님들이시여 제가 포덕천하 태을주, 광제창생 태을주를 성사재인하는 천하사 태을랑이 될 수 있도록 태을주 조화성령을 크게 내려 주시옵소서. 보은! ◎

    조상님의 손길로 바른길을 찾다


    이진호(남, 44) / 익산신동도장 / 149년 음력 8월 입도

    “절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거라.”


    저는 2남 3녀 중 장남으로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가족 모두가 천주교를 신앙했기에 저도 모태 신앙으로 성당을 다녔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저희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는 생활의 신조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보다는 유달리 장난기가 많은 개구쟁이였고, 남들보다 엉뚱한 행동을 많이 저질렀던 철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저를 보고 많은 꾸지람도 하셨지만 무엇보다도 장남이기에 저를 많이 다독여 주셨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와 둘이서 바닷가에서 낚시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개구쟁이였던 저에게 “진호야, 네가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너의 삶을 설계해라. 다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해도 절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거라.”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유년기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직하여 첫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남들에게 직장 생활을 참 잘한다는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도 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꿈은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는 음향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방송 관련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방송에 관련된 일을 맡아볼 기회가 생겼는데, 음향 기사가 아닌 연예인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매니저 일이 많이 힘들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본래 연예인들이 대부분 유달리 성격이 민감한 편이라 힘이 들어도 넉살 좋게 맞추면서 일을 했습니다.

    매니저 생활을 4년 정도 하면서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졌는데, 아버지께서 그만 암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였습니다. 저는 4년 동안의 매니저 생활을 정리하고 김제로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였습니다. 당시 누님들은 분가하였고 남동생은 취직 준비로 병간호를 맡길 수가 없어 어머니와 저는 1년 반 동안 밤낮으로 교대하면서 간호를 했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도전문화 콘서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김제에서 살던 집을 떠나 익산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익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인도자인 이다감지(이정미) 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눈인사만 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친분이 두터워져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어느 날 다감지 도생의 차에서 한문이 적힌 스티커를 보았습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태을주였습니다. 평소 다감지 도생과의 만남은 잦았으나 서로 종교 이야기는 없었기에 태을주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오후 3시부터 새벽까지 하는 식당 일이라서 잠시 점심시간에 보는 정도지만 만날 때마다 즐거웠습니다.

    하루는 다감지 도생이 증산도에 <도전문화 콘서트>가 있는데 같이 가 보자고 했습니다. 평상시라면 휴일을 평일로만 잡아야 하는데 운이 좋게도 6월 23일 일요일에 휴일을 잡을 수가 있게 되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도장 입구에 도착하여 수호사님과 인사도 나누고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여러 도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증산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전 상생방송국 앞에 도착해서 보니 증산도가 이렇게까지 웅장하고 찬란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순백색의 많은 성도들과 함께 <도전문화 콘서트>를 보러 태을궁이란 곳에 들어가 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상제님과 조상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돕는 조상님이 편안해 하시니


    저는 하나님, 예수님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진리 공부를 하면서 저를 지켜 주시는 분이 조상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일이 잘 풀릴 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은 항상 저의 주위에서 조상님이 도와주신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잘못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면 벌을 주심을 알고서는 늘 조상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4년 전쯤에 회사 창고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시고 하얀 도포를 입으신 아버지가 꿈에 보이시는데 밟게 웃고 계셨습니다.

    도장에서 진리 공부를 하면서 개벽의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알았습니다. 상제님 신앙을 하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상제님의 말씀처럼 후천 가을개벽을 위해, 또한 조상님과 후손을 위해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앞으로 일심을 다해 도생들과 함께 참된 일꾼이 되어 사람 살리는 주역이 되겠습니다. 참된 길과 진리를 알려 주신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님께 보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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