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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도전 산책 | 알음귀 번뜩이는 삶

    하민석 (청주우암도장, 교무도군자)

    폴 메카트니와 어거스틴의 영적 체험


    인간의 삶이 늘 기쁨과 보람으로만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좌절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저 역시 암담한 터널을 통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런 제게 많은 위로가 됐던 노래가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그 노래를 한 소절만 함께 들어 보겠습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면 어머니 메리께서 내게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속삭이십니다. “그냥 내버려두렴.” 암흑의 시간에 갇혀 있을 때, 어머니 메리께선 바로 제 앞에 서서 귀띔하십니다. “순리대로 놔두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다들 아시는 비틀즈의 대표 명곡, 이죠. 이 곡을 쓸 당시, 폴 메카트니는 슬픔과 좌절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요즘 진행되는 상황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었어요.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습니다. 정말로 기뻤어요. 열네 살 때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꿈에서나마 만나서 너무나 기뻤죠. 어머니는 내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정말 내가 힘든 시기에 어머니는 나를 찾아와 주셨어요.”


    어릴 적에 여읜 모친 메리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바로 “Let it be!” 입니다. 이 노래에는 폴 매카트니의 생생한 영적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난관에 봉착해 신음하는 지구촌 형제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약 1,600년 전, 로마 시대를 살았던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양의 가장 위대한 교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설, 원죄설, 구원설을 주장하면서 가톨릭의 교리 체계를 만들었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로 방황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의 『고백록』은 회심回心 과정을 반추하면서, 자신을 거듭나게 한 신의 은총을 찬미하고 있는데요. 세속적 야망을 추구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신으로부터 멀어지려던 마음을 신에게로 되돌리게 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서기 386년 8월의 여름,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친구 저택 정원에 있었습니다. 정돈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로 너무 답답하여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절규하며 몸부림치던 중 그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들고 읽으라, 집어 읽으라!(Tolle lege, Tolle lege! = Pick it up, read it. pick it up, read it!)” 그는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어 곧장 서재에 들어갔고 이어 성경 사본을 펼칩니다. 그때 마주한 대목이 바로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바로 그 순간, 즉각 회심하게 되는데요. 그는 훗날 이렇게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뒤 안도의 빛이 마음 가득히 배어들어 모든 의심의 그늘이 사라져 버렸다.’ 거듭난 어거스틴은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로 우뚝 섭니다. 어거스틴의 일화는 만유 생명의 어머니, 태모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느닷없이 생각나서 읽는 글이 도수(度數) 맡아 오는 글이니 명심하여 감격(感激)하라.” (道典 11:224:5)


    현대 문명의 소자출은 영감


    영감靈感을 순우리말로 ‘알음귀’라고도 합니다. 알음귀는 예술과 종교의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미국의 에디슨은 전구, 전신, 축음기, 영사기 등을 고안한 명실상부 ‘발명왕’입니다.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된 미국 특허권 숫자는 1,093건이고, 다른 나라 특허권까지 합하면 1,500건이 넘습니다. 평균 2주에 하나씩 발명 특허를 낸 셈입니다. 그는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99%의 노력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이 말의 본래 의도는 무엇일까요? 에디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99%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조차 소용이 없다.”


    99%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1%의 영감이 필수란 뜻입니다. 99도까지 고요히 잠잠하던 물이 보글보글 끓으려면 1도가 더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에디슨이 죽은 뒤, 그의 집에서 무려 3,400개의 수첩이 발견됐습니다. 수첩은 그가 떠올린 영감들로 꽉 차있었습니다. ‘단 1%의 영감’을 위해 그는 규칙적으로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꿈에서 얻은 알음귀를 곧장 메모하여 발명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죠.

    “나는 꿈속에서 모든 원소들이 정확히 있어야 할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일람표를 보았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즉시 종이에 그것을 기록했다.”


    꿈을 꾸고 나서 주기율표를 완성한 멘델레예프처럼 말입니다.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발견한 적이 없다(I never came upon any of my discoveries through the process of rational thinking).”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I am enough of an artist to draw freely upon my imagination.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Knowledge is limited. Imagination encircles the world).”


    192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샤를 리콜도 비슷한 고백을 하는데요,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이처럼 예술과 종교, 과학과 의학, 현대 문명의 전반에 걸쳐서 알음귀를 발판으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으로 강세하신 천주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는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소자출을 이렇게 밝혀 주셨습니다.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道典 2:30:6-8)


    우리가 지금 누리는 최첨단 스마트 문명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입니다. 천상에서 받아 내린 고급 정보를 지하신이 지상의 엘리트들에게 귀띔해 준 덕분에, 기기묘묘 신통방통한 아이템들이 일상에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理-神-事의 원리로 전개되는 인사


    상제님은 사람의 행위를 매만지는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해서도 소상히 일러 주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명(命)이 있으므로 신도(神道)에서 신명이 먼저 짓나니 그 기운을 받아 사람이 비로소 행하게 되느니라.” (道典 2:72:2~3)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역사적 사건은 신명이 먼저 짓고, 인간이 그 신의 명을 받아 인사로 열어 나갑니다. 이법理法이 선재하고 신도神道가 있고, 변화의 마무리 과정으로 현실 사건, 역사歷史가 있습니다. 지상의 역사는 인간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과 그 사람의 마음자리에 응기한 천지신명의 합작품입니다.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에 따라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천상의 신명이 선행을 하면 그에 감응한 인간이 역사로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이신사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영화 시나리오가 이법이라면, 그 대본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이 인간들입니다. 배우들을 돕는 영화 스태프들에는 카메라와 조명, 음향과 의상, 분장 등이 있겠죠.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게 신명들입니다. 신명들은 연예인의 매니저처럼 우리 곁에 찰싹 붙어 있습니다. 시나리오와 배우, 모든 스태프들을 총괄하는 영화감독인 상제님께선 신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네 양쪽 어깨에 신명이 없으면 기운 없어서 말도 못 혀. 눈에 동자가 있어야 보이듯이 살아 있어도 신명 없이는 못 댕기고, 신명이 안 가르치면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여. 신명이 있으니 이 모든 지킴이 있는 것이다.” (道典 2:61:3~5)


    우리들 하루하루의 삶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사건은 이런 이신사理神事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진리의 삼박자, 이신사의 법도! 그 중심 자리에 신도가 있습니다.

    인생은 미지수로 가득 찬, 복잡한 방정식입니다. 학창 시절에 수학 문제를 풀던 기억을 되살려 보십시오. 머리를 쥐어뜯으며 궁리하다가 미지수의 정체가 환하게 밝혀지면, 후련했었죠? 현대인들이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간과하는 X값이 바로 신의 문제, 신도세계입니다. 그 신비를 풀면 인생이 후련해집니다. 신비한 조화를 부리는 신명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일상에 어떻게 깃들어 있느냐. 그걸 살펴보겠습니다.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道典 4:62:4~6)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그때 그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 (道典 4:48:1~2)


    신神은 어디에든 있고, 무엇이든 합니다. 대우주의 실상이 신입니다. ‘신난다’는 모국어는 신명이 나와서 새로운 기운이 열릴 때 감지되는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겁니다. 마음 상태는 신명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께선 명확히 통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공의 관건은 일심


    천지의 모든 성신들은 사람의 마음자리에 응하여 드나듭니다. 마음자리에 따라 해당 신명이 드나들기 때문에 상제님께서는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사람 마음이 열두 가지로 변하나니 오직 송죽처럼 한마음을 잘 가지라.” (道典 8:6:1~2)


    고 하시며 일심법 생활화를 당부하셨습니다. 일심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제 모든 일에 성공이 없는 것은 일심(一心) 가진 자가 없는 연고라.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나니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일심 못함을 한할 것이요 못 되리라는 생각은 품지 말라. 혈심자(血心者)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일은 성사되느니라. 복마(伏魔)를 물리치는 것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일심을 잘 갖는 데 있나니, 일심만 가지면 항마(降魔)가 저절로 되느니라.” (道典 8:52)


    우리 모두는 성공을 꿈꿉니다. 성공의 관건은 일심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항상 방해를 하는 존재도 있는데요. 엎드릴 복伏 자, 마귀 마魔 자를 써서 복마伏魔라고 합니다. 일을 그르칠 수 있도록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복마를 제압하는 힘도 일심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성을 들이는 일심에 반드시 신도가 감응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명이 그 사람의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에 알음귀도 열어 주는 겁니다.

    다들 뜻대로 성공하면 좋으련만, 우리 주변에는 실패하고 좌절한 이들로 가득합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응급실에서 뛰어다니다 보면, 자해와 자살 시도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납니다. 약을 먹거나, 칼로 손목을 긋거나, 목을 매는 등 방법은 다양하지만 마음 상태는 동일합니다. 자포자기! 그런 측은한 상황을 목도할 때마다 상제님 말씀을 되새깁니다.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器局)에 따라서 그 임무를 감당할 만한 신명이 호위하여 있나니 만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여 제 일에 게으른 마음을 품으면 신명들이 그에게로 옮겨 가느니라. 못났다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보호신도 떠나느니라.” (道典 4:154:1~3)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모른다.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Many of life's failures are those who didn't know how close they were to success when they gave up).”


    에디슨의 말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사실은 성공의 문턱 바로 앞이란 뜻이죠. 에디슨은 약 2,000번의 시행착오 끝에 전구를 발명했고, 축전지의 완성을 위해 25,000번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점수漸修 끝에 쏟아지는 돈오頓悟처럼 그 정성에 감응한 강력한 보호신명과 지도령들이 잔뜩 달라붙어 숱한 발명의 알음귀를 열어 준 것입니다.

    알음귀는 무슨 일이든지 일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도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영이 너무 어두워서 신도의 가르침, 즉 신교를 받지 못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신교는 평소 몸과 마음을 잘 닦아 영성이 활짝 열릴수록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안정된 심령에 성령이 응해야 새로운 활로가 열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잘 닦아 영성을 활짝 열 수 있을까요? 태모님께서는

    ‘태을주(太乙呪)는 심령(心靈)과 혼백(魂魄)을 안정케 하여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하며 천하창생을 건지는 주문’ (道典 11:180:4)


    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을주를 읽어야 신도(神道)가 나고 조화가 난다’ (道典 11:282:3)


    고도 하셨지요.

    바야흐로 후천개벽기, 여러모로 엄혹한 시기입니다. 그럴수록 자포자기하지 말고 매사에 일심하시길 바랍니다. 일심으로 우주의 노래 태을주를 읊조려 보세요. 여의주 태을주를 열심히 읽다 보면 알음귀 번뜩이는 신나는 일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뜻대로 조화롭게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천지신명과 조상 선령신의 축복으로 충만한 나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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