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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상종도사님 말씀]

    신앙을 잘해서 참 열매가 돼라

    道紀 131년 8월 22일(수) 서울 강남 늘봄공원, 서울 순방군령

    성공의 관건은 정성과 집중


    『중용中庸』을 보면, 자사子思가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之道也요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人之道라.”라고 했다. 정성 기운으로 뭉친 것은 하늘의 도요 그 하늘의 도를 모방, 상징하는 것은 사람의 도라는 말이다.

    사람은 그 정성을 바치려고 한다. 그것이 일심一心이다. 일심이 잠시라도 중단되면 천지도 가다가 멈춰버릴 수밖에 없다. 전쟁을 하는 데도 일심을 하지 않으면 적한테 지고, 죽고 만다. 전쟁하면서 한눈 팔 수 있는가?

    또 이런 옛말이 있다. ‘이재만궁지간利在彎弓之間이라.’ 여기 이로울 리利 자는 결과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매듭짓는다, 열매 맺는다는 리 자다. 매듭지어서 결실하고, 성과를 거두는 관건이 어디에 있느냐?

    궁수弓手가 과녁을 걸어놓고서 과녁에 집중하며 활시위를 잡아당긴다. 그 광경을 한번 생각해 보라. 유형과 무형이 과녁에 집중된다. 활시위를 잡아당기는데 육체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정신도 그 과녁에 집중해야 관중貫中을 한다.

    그러니 성공은 사수가 활시위를 걸어 당기는 데에 있다. 유형, 무형을 다 바치라는 말이다. 조금만 하자가 있어도 과녁판을 맞히지 못한다.

    우주촌 건설의 설계도, 천지공사


    우주변화 법칙이라 하는 것은 생장염장生長斂藏밖에 없다. 지나간 세상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도 그렇고, 생장염장으로 둥글어 간다. 비단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차기夏秋交叉期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은 천지에서 사람 농사 지은 것을 다 추리는 때다. 일 년에도 농사를 잘 지어서 수확을 많이 하면 풍년이 들었다 하고, 수확이 적으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천지라 하는 것은 사람 농사 짓는 것 아닌가? 천지일월은 다만 사람 농사 짓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헌데 요 시기, 하추교차기가 되면 반드시 참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적인 과정의 신명들을 다 역사役事하게 하신다. 참 하나님이 오셔서 그 신명을 소집해서 신명들로 하여금 심판하게 하시는 것이다. 신명은 가을철에 가야 출동을 한다. 우주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이번에 개벽을 한 후에는 후천선경이 된다. 그 세상에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할 때까지 신명과 사람, 신인神人이 합일合一하여 같이 살아간다.

    상제님이 천지공사 보신 그 내용 이념이 순전히 신명들 공의公議에 의해서 집행된 것이다. 한 세상을 살다간 그 신명들이 공도에 의해 재판해서 그렇게 집행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이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다.”(道典 4:48:4)라는 말씀을 하셨다.

    상제님께서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의 방법으로써 천지공사를 보셨다. 알기 쉽게 말하면 천지공사는 상제님이 현재와 미래의 설계도를 꾸며놓은 것이다. 천지공사는 머리털만큼도 틀림이 없다.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을 집대성한 우리 『도전道典』은 이 세상 둥글어 가는 시간표, 이정표다. 상제님 공사라는 것은 인사 문제도 그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천지에서 죽고 살고, 일이 어떻게 되고, 누가 일을 매듭짓고 하는 것이 다 정해져 있다. 내가 철을 알면서 70년 동안 이 세상 둥글어 가는 것을 상제님 진리 그 설계도에 맞춰보고 있다. 현재까지 그렇게 됐고, 미래도 상제님 공사에 의해서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다.

    그렁저렁 상제님 천지공사가 이제 매듭 단계가 됐다. 매듭이라 할 것 같으면 의통목까지가 매듭이다.

    상제님 사업에 일심하라


    우리가 상제님의 신도가 됐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다 바쳐서 신앙해야 한다. 일심 신앙을 해서 제대로 된 육임을 짜자.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제대로 된 육임을 짜서 의통성업을 완수하자는 것이지 딴 것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 상제님 말씀과 같이 ‘남 죽는 세상에 나 살고, 나 살고 남 산 그 뒤 세상에는 잘도 되자’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가 사실이 그렇게 돼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죽는 세상에 내가 살고, 내가 사는 그 성스러운 진리로 가족도, 인아족척姻婭族戚도 다 같이 살려야 될 것 아닌가. 세상에 살면서 사귄 사람들,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나는 평생에 일시도 상제님 사업을 한다는 생각을 버린 일이 없다. 자면서도 그 일을 위해서 꿈을 꾼다. 2변 도운 때 대한민국에서 상제님 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었다.

    신앙을 잘해서 참 열매를 여물라는 말이다. 결실하는 법이 그렇잖은가? 신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50% 여무는 사람도 있고, 반 쭉정이 되는 사람도 있다. 집만 지어놓고 마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진실한 신앙, 참 신앙을 해서 열매를 여물어서 상제님 말씀과 같이 기수영창其壽永昌하란 말이다.

    우리 신도들은 천지공사 보신 상제님의 그 기막힌 고생을 잘 알 것 아닌가? 겨울철에 어디 들어가서 주무실 데가 없어서 저 초빈草殯한 데 가셔서, ‘나래’라고 짚으로 엮은 것 두어 장 덮고서 주무셨다. 그렇게 초빈 터에 가서 주무시고, 여름철이면 저 바위 밑에 가 주무시고 말이다. 그걸 어떻게 다 형언할 수가 있나?

    상제님이 조그만 호연이를 증언하라고 데리고 다니셨다. 그 어린 것과 더불어 다니실 때 얼마나 거치적대었겠는가? 그렇게 해 가며 천지공사를 보셨다.

    인류의 생사가 일꾼 손에 달려 있다


    상제님 말씀으로 내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道典 8:21:3) 이 말씀을 『도전』에서 여러 번 봤을 것 아닌가? 너무도 무서운 말씀이지만 몇 번씩 다 봤을 것 아닌가?

    천하창생, 60억 인류의 죽고 사는 문제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좀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일 수도 있다. 다 죽을 것을, 나 살고 남 살 수 있는 의통醫統으로 살 길을 제시해 주셨단 말이다. 그 대권으로 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너희들 하기에 따라서 많이 살릴 수도 있고 다 죽일 수도 있다 하는 말씀이다. 얼마나 간곡한 말씀인가?

    또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道典 8:21:2)라고 하셨다. 아니 나 혼자만 산다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다.

    그러니 포교를 부지런히 해라.

    지구상에서 우주원리를 다루는 데가 증산도밖에 없다. 우리 대한민국 권내에서도 우주원리를 다루는 데가 여기밖에 없다. 상제님 천지공사가 전부 신명 이야기 아닌가? 쉽게 말해서 귀신 이야기이다. 참 허망하고 알기 어렵단 말이다. 그래서 내가 우주원리 도표를 그려 놓았다. 우주년은 전 6만 년, 후 6만 년 해서 12만 9,600년이다. 그것을 춘하추동, 동서남북으로 맞추어서 그린 것이다. 이제 주역周易 세상은 다 갔고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정역正易 세상 아닌가?

    상제님 진리 우주원리를 밑바탕으로 해서 포교를 해야 된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생겨났느냐?’ 자신보고 물어 보라. ‘나는 상제님 사업을 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일심 신앙인이라 할 것 같으면 직장에 다니고, 공부하고, 밥 먹고, 자는 모든 가지 활동이 상제님 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 상제님 일꾼은 누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무슨 천하사고, 천지사업이고, 상제님 후천선경 건설하는 역군인가?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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