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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개벽뉴스]

    홍콩 시민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반대해

    200만 명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홍콩 시민들,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해



    一國兩制가 무너지고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감 팽배…
    중국의 잇단 反中 인사 납치·감금이 대규모 시위 촉발시켜


    홍콩 역사상 가장 큰 시위


    홍콩이 상복을 상징하는 검은색으로 변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검은 옷의 시위대가 6월 16일 홍콩을 뒤덮었다. 집회 주최 측 추산으로 2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참가했다고 한다. 홍콩 시민 740만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22년 만에 사상 최대 규모다. 홍콩 전체 역사상으로도 1989년 150만 명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던 시위를 훨씬 능가하는 숫자다. 7월 1일 홍콩 반환 기념식이 벌어질 때, 일부 시위대에 의해 홍콩 입법회가 점거되기도 했다.

    홍콩 시위의 표면적인 이유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민들은 불안감과 의심의 눈초리로 홍콩 당국과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이 반중反中 성향의 홍콩 시민들을 탈법으로 납치해서 끌고 간 전례가 여러 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 중국 공산당 비판 서적들을 팔던 홍콩 서점상 5명을 중국 당국이 홍콩에서 납치, 압송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은 더 이상 ‘납치’라는 방법을 동원할 필요 없이 반중 인사들을 합법적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일국양제


    하지만 이번 시위가 사상 최대 규모로 커진 배경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홍콩의 ‘자유’가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민심의 분노와 불안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덩샤오핑은 홍콩에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고,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최소한 50년간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 그리하여 홍콩은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행정부·법원을 보유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2012년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은 매년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던 2014년의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을 강경 진압했다. 2015년 이후에는 중국 당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 언론인, 기업인들의 납치·실종 사건이 잇따랐다. 중국은 또 입법회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파 인사들을 각종 명목을 걸어 당선 무효로 만들었다. 중국 국가나 국기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법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국가 안보와 공공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 민족당의 활동을 금지했고, 홍콩 독립파 인사의 강연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외신 특파원의 비자 연장을 불허하기도 했다.

    무기한 연기된 법안


    시위가 몇 주일씩 계속되자, 6월 15일 람 행정장관은 결국 ‘법 개정의 무기 연기’를 발표했다. 홍콩 시민들이 작은 승리를 거둔 셈이다.

    홍콩 시위에 대해 영국과 미국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지지 시위가 벌어졌다. 또 홍콩 시위의 여파로 대만에서 반중 독립 인사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중국 내 소수민족도 문제다. 중국 당국은 내심 홍콩의 자유가 강화될수록 중국 내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장 미중 무역전쟁 중에 자칫 홍콩 사태로 그들의 전열이 무너지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홍콩 사태, 중국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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