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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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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강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프로그램소개]
    1910년의 경술국치,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의 광복. 처절한 희생과 고통 속에서 치열하고 끈질긴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 교육의 현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및 국내 독립운동, 만주와 연해주에서 일어난 치열한 무장투쟁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정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STB상생방송에서 기획 제작한 10부작 강의프로그램입니다.

    오늘 강의는 우리가 되찾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왕조 치하에 있었는데요, 일본을 내쫓고 다시 세운 나라는 왕국이 아닌 민국입니다.


    독립전쟁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나라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는 독립전쟁에 대해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월드컵을 할 때 각 나라들 소개를 하지 않습니까? 각 나라들의 국가國歌들을 보면 격렬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가 보편적으로 그런 격렬한 근대사를 경험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격렬한 독립전쟁을 겪어왔음에도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독립전쟁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는 헌법에 나와 있습니다. 헌법전문에 보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헌법 자체가 민족주의와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에 항거했던 부분이 해방 이후에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많은 권력을 잡게 되면서 축소되고 사장되었던 것입니다.

    민주공화제 이념의 탄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념은 독립운동가들이 먼저 만든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전쟁에서 나타난 민주공화제의 이념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양반 사대부 출신들이 많고 북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민족종교 분들이 많습니다. 서간도 지역에 정착했던 분들은 우당 이회영 일가를 비롯해서 석주 이상룡 일가, 백하 김대락 일가, 강화학파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양명학을 많이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주자학과 양명학이 다른데요 주자학은 남송에서 나왔고 양명학은 명나라에서 나오죠. 큰 차이는 명나라에서는 농민들의 지위가 많이 상승합니다. 이 농민들의 지위를 대변하는 학문이 양명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명학에서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합니다. 주자학, 성리학에서는 사람을 신분에 따라서 나누는데요, 양명학에서는 사람을 신분에 따라 나누는 것을 거부하고 직업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 주의를 추구합니다. 그러한 양명학이 갖고 있는 사대동포주의 사상에 서구의 민주주의 정치이론을 주체적으로 수용해서 민주공화제의 이념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민주공화제 이념이 해방 이후 미국에서 가져다준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우리 역사를 몰라서 그런 겁니다. 1910년에 간도지역으로 망명할 때 이미 이런 이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제 이념의 탄생배경


    두 번째는 북간도에 민족주의 종교 분들이 정착하게 되는데요. 임시정부를 구성할 때 80~90%는 서간도와 북간도의 독립운동가 분들로 구성되게 됩니다. 그런데 북간도에 정착했던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민주공화제와 연결되는가 하면, 이런 현상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민족주의를 말할 때 영어로 내셔널리즘으로 번역하는데요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국가주의로도 번역됩니다. 서양 개념에서는 민족개념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서양은 중세를 벗어나 자본주의 중심의 민족국가화가 되면서 곧바로 제국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서양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가 되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했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그런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족주의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주의에 맞서 싸운 이념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민족주의자라면 백범 김구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있는데요.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보면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씀하시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철저한 민족주의자면서 아나키스트입니다. 아나키스트란 각 개인의 철저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이념입니다. 이런 분들의 사상이 우리 민족주의의 기본이념인데 이것을 우리 내부에서 비판한다는 것은 그 비판하는 관점이 일본 제국주의 관점에서 보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민족주의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하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로 비판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민족종교를 중심으로 한 북간도에서 나타난 민주공화제 출처는 우리는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고, 단군을 조상으로 같이 모시기 때문에 평등사상과 공동운명체와 같은 민주공화제 이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불편한 진실


    대한민국의 헌법도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메이지 헌법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법의 사상 자체도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법들을 무력화시키고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헌법을 통해 입헌 군주국으로 발돋움하게 되고 국력을 성장시켜서 청일전쟁을 일으켜서 청나라를 내쫓고, 러일전쟁을 일으켜서 러시아를 내쫓고,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서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차지한다는 밀약을 맺게 됩니다. 그 다음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내부에서 을사오적과 같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에 붙은 고위관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실종된 근본을 찾으라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는 데 가담한 매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병전쟁의 한계


    일본이 군사점령을 하게 되니까 의병들이 일어나서 의병전쟁들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의병전쟁에는 내부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正(성리학)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위정척사를 내걸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正은 성리학 중심의 주자학 사회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상적인 지향점에서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한대토벌 작전


    어쨌든 일본은 대한제국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기 전에 전국의 의병들을 토벌한다는 ‘남한대토벌’ 작전을 계획하게 됩니다. ‘남한대토벌’ 작전계획을 살펴보면 전라남북도가 첫 번째 토벌구역으로 나옵니다. 사실 우리가 요즘 얘기하는 호남차별론의 뿌리도 일본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은 1909년 9~10월까지 ‘남한대토벌’의 작전으로 의병을 완전히 뿌리 뽑고 대한제국을 점령하게 됩니다.

    망국, 선비의 두 길


    일본이 나라를 빼앗고 나서 한국인 76명에게 귀족 작위를 주고 막대한 돈을 주게 됩니다. 76명의 당파를 분석해보면 북인 2명, 소론 6명, 노론 56명입니다. 조선 귀족열전이라고 해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들이 자랑하듯이 책을 펴냈습니다. 정리해보면 인조반정 이후에 계속 집권했던 노론에서 주도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매천 황현 같은 분은 “이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 년에 나라가 망했는데, 책임지고 죽는 선비 한 명 없어서 되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음독자살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만주에 독립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집단 망명하기도 합니다. 망명할 때 전 재산을 팔아서 갑니다. 우당 이회영 일가 같은 경우는 전 재산을 팔아 당시 금액 40만 원을 마련해서 망명하게 되는데요 현재 화폐가치 기준으로 600억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삼권분립의 철학


    석주 이상룡 선생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 재산을 팔아서 만주로 망명해서 ‘경학사耕學社’라고 하는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게 됩니다. 이 경학사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만들게 됩니다.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이자 경학사 장이셨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만주기사滿洲紀事〉라는 글을 보면 아래쪽에 ‘정부규모자치명政府規模自治名, 삼권분립방문명三權分立倣文明’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부의 규모는 자치를 명분으로 삼고,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인 삼권을 분립하는 것은 문명을 본떴다는 의미입니다. 경학사가 1911년에 만들어지는데요 이때 이미 삼권분립이란 이야기를 이상룡 선생이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이미 나라가 망하기 전부터 입헌공화제가 되었던 민주공화제가 되었던 공화제로 가야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근대정치사를 보면 나오는 홉스, 로크 하는 인물들의 책을 석주 이상룡 선생이 모두 읽고 만주로 망명하면서 쓴 망명일기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적 바탕 위에 서간도에 독립운동기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폭압과 임시정부의 탄생


    일본은 3.1혁명 이후 식민통치에 대한 우려를 하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기록이 있냐면 총독부 경무총감이였던 미즈로 랜타로가 잔뜩 겁에 질려서 쓴 일기가 있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해서 11시 열차를 타고 올라가려고 했다가 혹시 공격을 당할까봐 열차 시간도 바꾸고 앞뒤로 무장한 군인들을 태우고 서울로 오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대문에 도착했을 때 강우규 의사의 폭탄 의거를 겪게 되죠. 그래서 총독부에서는 군중들이 몰려들어 공격을 할까봐 밤이 되어도 불을 켤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강우규 의사는 김태석이라는 친일경찰에 의해 체포되게 되고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김태석이라는 인물은 이후 의열단원들을 많이 체포합니다.

    그런데 해방 후 반민족특별위원회를 조직해서 친일청산을 하려고 할 때 김태석은 용산경찰서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 얼마나 많은 친일세력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억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1혁명의 결과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입니다. 임시헌장을 보면 지금의 헌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무장군부를 가졌던 임시정부


    임시정부를 상해에 둔 것은 외교에 초점을 둔 것인데요.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는 무장독립군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로 합쳐지게 됩니다. 참의부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입니다. 이 참의부에서 국내 진공작전을 엄청 많이 전개합니다.

    일본의 정보보고를 보면 국경지역은 항상 전쟁상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외교만 한 것이 아니라 무장 군부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의부에서 실행했던 일 중에 총독부 총독 사이토 마고토 저격사건이 있습니다. 압록강을 타고 내려오는 사이토 마고토 총독의 배를 향해 총탄 수백 발을 쏜 사건입니다. 총독이 죽지는 않았지만 혼비백산해서 겨우 도망쳤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항일무장투쟁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입니다.

    정이형 선생의 통탄


    정의부의 정이형 선생은 해방 후에 친일인사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10년 동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친일인사들을 처단하지 않으면 그들이 정권을 잡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때 친일인사들의 입후보권과 투표권을 제한해서 공직 진출을 막았더라면 대한민국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졌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일세력들이 해방 후에 계속 득세를 하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


    신민부는 북만주에 민족종교 중심으로 활동을 했는데요. 상해에는 외교를 중시한 임시정부가 있었고 만주에는 무장투쟁하는 삼부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의열투쟁이라고 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일본에 저항하는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인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보면 이분들이 직접 행동을 하기 전에 선서를 하는데 이 선서를 할 때 연도를 씁니다. 연도를 쓸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국된 1919년을 1년으로 삼아서 ‘대한민국 13년’, ‘대한민국 14년’으로 연도를 쓰고 의열투쟁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


    헌법의 내용과 같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나라는 제국인데 되찾을 나라는 모든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이며, 그 씨앗은 외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단군을 모시는 한민족의 뿌리정신에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싹텄고 대한민국은 이러한 독립운동의 이념을 계승해서 탄생한 국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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