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특별기획 | 예카테리나 2세 시즌Ⅰ

[STB하이라이트]
러시아제국의 황금시대를 세우고 그 공적에 의해 황제의 칭호를 얻은 예카테리나 2세의 생애를 그린 러시아의 역사 드라마입니다.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 가운데 하나가 되고 예카테리나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가 붙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첫 번째 시즌(10편)은 러시아의 황제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를 시청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사상을 소개해 드립니다.

1.러시아의 황금시대 : 표트르 1세(1672~1725) ~ 예카테리나 2세(1729~1796)


18세기 표트르 1세의 독자적인 통치가 시작되면서 러시아의 본격적인 서구화가 진행되었다. 행정, 경제, 군사, 교육, 예술 등 국가 전반에 대한 개혁 정책이 실시되었다. 표트르 1세의 개혁은 국력강화와 서구문화 전파를 지향했으며, 동시에 절대주의 체제확립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러시아문화의 전통적 요소가 훼손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고, 근대적 발전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스웨덴과 벌인 북방전쟁(1700~1721년)의 승리 이후 러시아는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또한 1721년 10월 22일 차르 표트르 1세가 전 러시아의 황제(임페라토르)로 추대됨으로써 러시아제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최고통치자의 칭호나 국가명칭의 변경이 아닌 국제관계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위상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표트르 1세가 기초한 러시아의 발전은 지속되었다. 특히 계몽군주를 자처한 예카테리나 2세 시기에는 서구화가 진척되어 러시아사회는 더욱 개화되었고, 적극적인 해외 확장정책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다.

2. 러시아 여제의 탄생


러시아에서 여제가 탄생한 배경에는 표트르 1세에 의해 공포된 새로운 제위계승법이 있었다. 표트르 1세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남성직계 상속의 관습을 폐지하고, 군주의 판단으로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로 인해 이 시기 동안 4명의 여제가 탄생하게 된다. 1796년 예카테리나 2세 사후 즉위한 파벨 1세는 표트르 1세의 제위계승법을 폐지하고 장자상속의 원칙을 공포했다. 이로써 로마노프 왕조의 여제 시대는 끝이 났다.

3.예카테리나 2세의 공적 (재위기간: 1762~1796년)


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프로이센) 출신으로 표트르 3세의 황후이다. 1762년 궁정혁명을 통해 남편 표트르 3세를 퇴위시키고 제위에 등극하여 1796년까지 3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다. 그녀는 표트르 1세가 이룩한 성과를 이어받아 제국을 확대했고 통치제제를 근대화했으며,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연유로 독일 출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사에서 표트르 1세와 함께 러시아황제 중에서 대제大帝 칭호가 붙는 두 명의 황제 중 하나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1, 2차 튀르크 전쟁의 승리로 흑해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했고, 세 차례의 폴란드 분할에 참여함으로써 벨로루시 및 발트해 지역을 획득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를 문명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국민계몽을 위해 교육체계를 정비하여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러시아 최초의 사범대학을 설립하여 교사를 양성했다. 또한 러시아 최초의 사설 출판사와 인쇄소 설립을 인가하여 언론출판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국제관계에서 러시아의 역할 강화와 영토확장을 지향했다. 1774년 제1차 튀르크 전쟁 후에 러시아는 드네프르와 돈강 연안, 케르첸스크만 지역의 주요 거점들을 획득했다. 1783년에는 발타, 크림, 쿠반 지방 등을 병합했다. 제2차 튀르크 전쟁(1787~1791년)은 러시아가 부크강과 드네프르강 사이의 연안지대를 획득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러한 영토확장으로 인해 러시아는 흑해지역을 공고히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러시아 영토는 현저히 확장되었고, 인구는 1763년 2,320만 명에서 1796년 3,74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러시아는 전체 유럽인구의 20%를 점유하는 최대 국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