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FOCUS | 환단고기 Book 콘서트 - 경주편 1부

[STB하이라이트]

신라 천년역사의 비밀을 밝힌다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신라를 연 6촌장은 어디서 왔으며, 신라인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단군조선의 맥을 이은 북부여에서 나온 한 뿌리 한 형제이며, 북방 훈족도 단군조선에서 보낸 군주에 의해 이룩된 나라입니다.

경주 환단고기 북콘서트는 신라 천년 역사의 뿌리와 원형문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단군조선과 신라의 연결 고리, 불교 이전의 한민족 원형문화와 화랑도의 유래, 포석정의 진실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진정한 신라의 원뿌리, 왜곡되지 않은 신라의 역사 문화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내용
-신라 천년역사 문화의 힘
-신라 천년역사의 비밀


신라 천년역사 문화의 힘


지리: 천년왕도의 틀을 갖춘 경주의 지리


지리를 중심으로 볼 때 저 백두산에서 한반도 척추라고 하는 태백산으로 지맥이 쭉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데, 경주는 중앙에 있는 첨성대와 그 주변의 반월성을 중심으로 남산, 서쪽 선도산, 동쪽 토함산이라든지 북녘의 산 등 오악이 아주 제자리를 잘 잡고 있습니다.

또 지리학의 핵심 하나는 물이 어디서 생生해서 어디로 빠져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결론은 물이 역逆을 해야 지리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형산강이 경주 중심부를 흘러서 포항으로 빠져나가요. 그래서 ‘서출동류西出東流’라는 말을 쓰는데, 지금 하동지를 비롯해서 물이 전부 왼쪽에서부터 이렇게 쭉 훑어 올라와 서쪽으로 흘러서 합수가 됩니다. 역국逆局으로 해서, 한 천년 왕도를 할 수 있는 틀이 잡혔습니다. 이런 지리의 신비로움을 알고 신라의 6촌장들이 여기 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문: 하늘 이치에 따라 계획한 왕도, 경주


천문天文을 보면 우주의 삼원, 28수 별자리를 중심으로 왕도王都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우주의 전체 근본 별자리를 경주, 이 왕도에 그대로 심어 놓았습니다. 그 중심에 첨성대가 있고, 주변 여러 왕묘와 주요 문화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사: 국가경영과 삼국통일의 주인공, 화랑도


인사로는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문화 역사의 힘, 토대가 화랑입니다. 이 화랑 문화의 실상을 제대로 알면 신라 역사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화랑! 대부분 한국인들이 화랑을 ‘나라를 위해서 내 생명을 초개처럼 버리고 싸운 젊은 군인 조직’이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화랑은 군인이 아닙니다. 인류의 창세문화 정신을 계승한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서 자원해서 목숨을 걸고 나가서 싸운 것이 화랑 문화입니다.

신라는 진한이다


‘신라는 진한辰韓이다.’이것은 우리 역사의 근원을 체계적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역사 문화 주제, 근본 주제입니다.

진한의 실체를 알면 천년 역사 신라 문화와 그 창세역사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신라 역사의 자랑스러움을 정말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9천 년 역사의 큰 주제는 단 한 글자로 밝을 환桓, 우주광명 환입니다. 이 우주의 광명이 크게 셋으로 나누어져서 하늘 광명과 땅 광명과 사람 광명인데, 이것을 ‘환桓 단檀 한韓’이라 합니다. 여기에서 삼한三韓의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천년왕도 신라의 역사문화 정신


신라의 왕도, 이 경주는 ‘고대사와 근대사의 성지聖地’입니다. 9천 년 창세문화 역사의 세계관, 우주관의 정수를 근본으로 해서 신라가 건국되었습니다.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방 모퉁이에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 원천적 우주 정신문화의 근본을 바로 세우면서 조직화하였고 백성들의 문화 역사 정신으로 응집시키면서 통일을 이뤄 나갔습니다.

진한이라는 문화 정신을 상징하는 이 자랑스러운 신라 금관을 보면 원형문화의 상징 문양이 중심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신라 금관의 문양 속에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는 조금 충격적인 인류 창세문화 정신의 핵심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신라 천년역사의 비밀


『삼국사기』가 전하는 진한辰韓의 뿌리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를 연 6촌은 단군조선이 망하면서 그때 북방에서 내려온 백성들, 조선의 유민이라는 겁니다. 단군조선의 삼조선 강역의 중심이었던 진한에서 신라가 왔다는 겁니다.

“선시先是 조선유민朝鮮遺民 분거산곡지간分居山谷之間
위육촌爲六村... 시위진한육부是爲辰韓六部”
이보다 먼저 조선의 유민들이 산과 계곡에 흩어져서 살았는데 이들이 진한의 육촌을 이루었고, 이들을 일러 진한 육부라 했다. 『삼국사기 中』


그럼 이 구절에서 ‘선시先是,’즉 신라의 진한이 생기기 이전은 언제일까요? 『환단고기』를 보면 서력 전 238년에 단군조선 마지막 47세 고열가단군이 단군 자리를 내놓고 은둔하셨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만주 영역인 진한이 그때 망하고 6년 공화정으로 들어갑니다. 진한이 망한 것을 기준으로 약 180년 전부터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바로 신라 땅 경주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신라 땅, 경주 지역도 본래 단군조선의 영역이었습니다. 이것이 『삼국사기』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진국辰國(진한辰韓)


단군조선을 전체로 부를 때는 진국이고, 그것을 나눠서 부를 때는 만주가 진한이고, 그다음에 왼쪽 요서, 산동까지가 번한이고, 한반도 전체는 마한입니다. 나중에 22세 색불루단군 때 삼한이 삼조선 체제로 바뀝니다.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에서 “총지總之하야 명왈단군관경名曰檀君管境이니 시즉진국是則辰國이오 사칭단군조선史稱檀君朝鮮이 시야是也라”, 이를 총칭하여 ‘단군 관경’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이라 했습니다. 단군이 전체 영역을 다스렸고 이것이 진국이라 했습니다. 역사에서 말하는 단군조선이 바로 진국입니다.

『환단고기』의 역사 문화 언어와, 역사 문화 시대와, 역사 문화의 근본정신에 대한 정의가 우주관에 근거하여 얼마나 힘차고 명료한지 읽으면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라의 탄생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어머니는 파소婆蘇인데, 선도산에 가면 선도산 성모 박혁거세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그럼 성모 파소는 누구일까요?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을까요?

한 무제가 우거를 무너뜨리고서 동북아 대천자가 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구국의 영웅이 튀어나왔는데 그분이 고두막한입니다. 파소는 이분의 따님입니다. 일설에는 고두막한이 47세 고열가단군의 후손이라고도 합니다.

고두막한이 한 무제를 꺾고, 전쟁을 10년, 20년 수행했는데 자기 스스로 당시 북부여의 4세 임금을 압박했어요. 그러자 4세 임금이 죽고 동생 해부루가 등극했지만 등극하자마자 쫓겨나 버렸어요. 해부루왕이 동쪽 가섭원에 가서 나라를 연 게 동부여입니다.

그러고서 동명왕이던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세 단군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이 역사가 사라지고 중국에서 이 역사를 완전히 제거하자, 후세의 우리 역사가들이 그것을 차마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북부여의 후기 시대인 5세 고두막단군의 따님인 파소가 혼전 임신을 해서 이 경주까지 오게 됩니다.

그리고 고주몽의 둘째 부인 소서노는 북부여 마지막 6세 단군의 외동 따님입니다. 소서노가 비류와 온조를 낳았어요. 그런데 동부여에 있던 예씨 부인이 낳은 유리 태자가 찾아오니까, 소서노는 자기 아들들에게 불리하다 해서 요동, 요서 지역으로 내려가서 어하라於瑕羅라 불리는 여왕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왕국을 하나 세웠지만 아들 비류와 온조가 저 인천 미추홀로 왔다가, 하남 위례성에서 백제 발판을 굳히고 왕국을 열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결론은 삼국이 크게 보면 가야까지도 단군조의 정통을 계승한 한 형제이고, 직계로 보면 바로 북부여를 뿌리로 한 형제입니다.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형제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의 국호 변천과 원뜻


신라가 1세 박혁거세(재위 BCE 57~CE 4년) 때 ‘서라벌, 진한, 사로, 시림’등 여러 국호를 쓰다가 4세 탈해왕(57~80년) 때 계림으로 바꾸었습니다. 15세 기림왕(298~310년) 때 국호를 신라로 썼어요(307년). 여러 국호로 쓰던 것을 실제 신라로 딱 못을 박아서 쓰기 시작한 것은 22세 지증왕(500~514년) 때입니다.

그런데 이미 광개토대왕 비문에 신라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라의 원뜻은 ‘덕업일신德業一新 망라사방網羅四方’입니다. 여기에는 ‘덕업이 새로운 나라, 밝은 햇살, 천지의 광명이 온 천하를 덮으소서’라는 기도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의 김씨 시조


13세 미추왕이 첫 김씨 왕입니다. 이 김씨는 북방 유목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흉노의 한 왕자, 한 무제에게 생포됐던 그 왕자의 후손이라 합니다. 그 왕자가 난이 일어났을 때 한 무제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훈족은 사람 모양에 금을 입혀서 천제를 올리는 풍속이 생겼는데 그것을 ‘제천금인祭天金人’이라 합니다. 그것은 환웅천황을 뜻하는 ‘웅상雄像’을 모시는 전통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한 무제가 제천금인의 풍속에 따라서 김씨 성을 주었는데 그 왕자가 김일제입니다. 김일제 후손 가운데 왕망이 자기 아들을 죽여 가며 대권 잡아서 나라를 뺏었습니다. 그래서 신新나라라 했지만 30년 만에 패망하고, 그때 김씨 왕족들이 망명을 해서 여기 신라와 가야에 들어왔습니다.

김일제의 동생이 김륜인데 이 두 사람의 5세손 중에 형이 김알지, 바로 신라의 김씨 왕조의 시조이고 그 동생 김수로가 가야의 시조입니다.

신라 역사 전체로 보면 그 역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김씨 왕조의 왕족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북방 유목문화를 형성하고 유럽의 역사를 평정한 흉노족 왕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의 김씨 시조 김알지가 탈해왕을 ‘하늘에서 나에게 보낸 아들이다’ 해서 길렀는데 김씨와 석씨가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 되는 내용이 정말로 신비스러워요.

신라 30대 문무왕 비문에도 우리 조상 할아버지는 ‘투후제천지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황하가 굽이친 오르도스의 투후로서, 아주 강력한 제후로 봉함을 받은 김일제, 즉 흉노 왕손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문무왕이 직접 ‘우리 조상은 북방 유목민 흉노의 왕손’이라고 밝힌 겁니다.

북방 유목문화와 소통되는 신라 유물


유목문화는 지구촌 동서남북의 문화를 소통하는 진정한 개척자로서, 문화 소통자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유목민은 야만인이 아닙니다. 말 타고 가축을 몰고 이동한다고 해서 문화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유목문화의 정수는 황금문화인데, 실제로 우리가 지구촌 여기저기를 가보면, 스키타이라든지 몽고 서북쪽에 있는 소련 땅 파지릭이라든지 아프가니스탄 등 여기저기의 황금문화를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목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지구촌의 유목 강국들은 공통적으로 3수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립니다. 몽골, 흉노, 선비도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3수의 정신에 따른 좌현왕, 우현왕이 있고 그 밑에 군 조직에 우방과 좌방이 있고 24장의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방 유목문화는 그 유물을 보면 신라, 가야 유물과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편두褊頭를 하고, 기마상을 보면 동복銅鍑을 말 등에 싣거나, 엉덩이 위에다 지고 다닙니다. 동복도 제대로 잘생긴 걸 보면 삼신의 3수 문양으로 되어 있어요. 러시아를 답사할 때 유목 문화권의 박물관을 가니까 지구에서 가장 큰 동복이 있어요. 몇천 명이 먹을 밥을 지을 수 있는 거대한 동복도 봤습니다.

전 세계에 황금 금관이 열세 개 나왔다고 하는데 그중에 여덟 개가 신라에서 나왔습니다. 신라는 금관의 종주국입니다. 여러 무덤에서 나온 신라의 금관은 인류의 원형문화, 우주 역사의 원형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신라의 금관문화에 나오는 우주 창세 역사 문화의 어떤 최상의 상징, 우주의 진정한 수수께끼를 곡옥曲玉이라고 봅니다. 곡옥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술어입니다. ‘구부러진 옥’이라는 뜻인데 사실은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식민사학의 연장선에서 나온 하나의 술어입니다.

중국에서는 5,500년 전에서 한 9천 년 전 홍산문화라고 불리우는 진정한 동북아의 인류 창세 역사 문화의 유적지가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문화의 상징이 용봉龍鳳입니다. 초기에 옥으로 만든 용을 곡옥이라 하지 말고 옥룡玉龍이라 부르자고 했습니다.

북방 유목문화의 유물에서 보면 아주 재미난 문화 정신이 나타나 있습니다. 신라의 황금보검을 보면 삼태극三太極이 있는데, 이 삼태극 문양을 구부러진 곡옥처럼 새겨 놓았습니다. 그럼 삼태극 문양의 원상原象은 무엇일까요?

우주광명 환桓에서 분화된 하늘 땅 인간에 살아있는 삼신의 신성, 그것을 천일 지일 태일이라 합니다. 이 우주의 조물주의 생명과 신성이 3수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일-지일-태일, 하늘광명-땅광명-인간광명을 저렇게 구분해서 삼태극 양식으로 새긴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신교를 모체로 유교, 불교를 통합한 신라의 천년 역사


신라는 신교神敎를 모체로 해서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이고, 도교와 함께 융합을 해서 신라 천년 역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신라 문화의 모체인 신교는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하니 왈풍류曰風流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아주 현묘한, 지극히 신령스러운 도가 있는데 예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는 뜻입니다.

본래 동방 문화, 즉 조선 문화의 본성이 풍류도風流道라는 것입니다. 신명神明의 도, 신도神道를 열어 인간의 밝은 본성을 회복하는, 신명을 열어 주는 도, 신명과 하나가 되는 도, 만물과 하나로 화해하는 신명의 도가 그것입니다.

이런 신교문화의 전통에 따라 중심 세력인 6촌장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모시고 나라를 다스렸고, 2세 남해왕은 석탈해를 사위로 삼고, 중국 호칭인 왕 대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이 호칭은 전부 우두머리, 광명을 상징합니다.

신라의 원형 불교문화


신라에는 석가 부처님이 오시기 전 원래 원형 불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절터가 일곱 개나 있습니다. 그 터는 역사적으로 바로 신교의 제천 소도蘇塗 터인데 여기에 전부 절을 세워 나간 것입니다. 바로 우주광명 전통 신교문화의 성지, 천신 기도터를 중심으로 불교가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신라 왕도 경주는 미륵신앙의 성지


신라 불교는 단순히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불교가 아닙니다. 화랑 문화를 보면 화랑은 각자가 ‘화랑은 미륵의 화신이다’라는 미륵의 심법으로 미륵의 이상 낙원을 건설하는 주인공이었습니다.

경주의 흥륜사 승려 진자가 기도한 대상은 석가불이 아닌 미륵불이었습니다. 그는 ‘법당의 주인이신 미륵불상에 나아가 발언 맹세했다’(당주미륵상전堂主彌勒像前 발원서언發願誓言)고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습니다. 분명 신라 왕도 경주는 미륵신앙의 성지입니다.

신라 천년 불교 문화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삼국을 통일하는 역사의 추동력은 ‘미래에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개벽을 하는 도솔천 천주님 미륵불이 이 땅에 오신다’는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전륜성왕을 꿈꾼 진흥왕은 자기 두 아들을 ‘동륜’, ‘사륜’이라 했습니다. 이는 전륜성왕이 굴리는 윤보輪寶의 명칭입니다. 말년에 직접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삶을 마감한 진흥왕은 불교의 이상적 제왕인 전륜성왕이 되려 한 것입니다. 이 미륵신앙이 돈독했기 때문에 신라의 초기 왕대에 도솔가라는 전통 음악이 나왔습니다. 노래 제목이 왜 도솔가일까요? 도솔천 미륵에 대한 신앙은 어디서 발원이 된 것일까요? 정말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신라 천년 역사의 국력을 강력하게 결집하게 한 화랑도 문화의 조직이 원광법사의 계율에 의해 빠르게 체계화되었습니다. 원광법사가 환국, 배달, 조선에서부터 내려온 소도 제천의 성지인, 우주광명의 인간 심법을 전수하는 경당扃堂에서 가르친 오상지도를 바탕으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려 주었습니다.

‘원광’은 우주광명이라는 뜻입니다. 원광법사가 중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유학에 도통했습니다. 신라 왕가에서 이분을 모셔다가 모든 외교 문서를 관장하게 했습니다. 이분을 찾아온 두 젊은이인 귀산과 추항이 “우리는 속세의 사람인데 사군자와 교유하는 데 필요한 심신 수양의 계를 알려 주십시오.”하자 원광법사가 “불계로는 보살계가 있어 이를 십계로 삼고 있으나, 지금 세속오계가 있으니..”라고 하면서 계율로 내려 준 것입니다.

이미 전해 오는 세속오계가 있었다는 겁니다.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이라는 것은 유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신교 경당문화에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경주 편 1부 끝, 2부는 다음 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