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산책 | 본심을 찾는 태을주 수행

[기고]
권동주(태전선화도장, 교무도군자)

가장 알기 쉬우면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존재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인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가. 어릴 때 가졌던 그런 의문들을 풀어 주는 속 시원한 가르침이 없어 방황을 하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인생 공부에서 가장 성스러우면서도 가장 위대한 순간이 바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 의식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또는 소속된 집단 안에서 나 자신은 적당히 포장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군지를 평가하고 존재성의 의미를 찾아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합니다.

하지만, 내 삶이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나오는 나의 모습, 나의 행동과 사고는 가장 진실된 나의 평가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그 순간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정도가 나의 존재성, 가치성을 찾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의 정도에 따라 나를 평가할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나의 평가와 존재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믿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참 나를 세우는 것이 모든 인생 공부의 시작이 아닌가 합니다. 천지의 어머니 하나님, 태모님께서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도전道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태모님께서 물으시기를 “찬홍이 너는 누구를 믿느냐?” 하시니 찬홍이 “제가 저를 믿지요.” 하고 대답하니라. 이에 “꼭 그런가?” 하시니 “꼭 그렇지요.” 하매 다시 물으시기를 “꼭 그런가?” 하시니 또 “꼭 그렇지요.” 하더라. 태모님께서 “그 다음에는?” 하고 물으시니 찬홍이 “다음은 증산 상제님을 믿지요.”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꼭 그렇게 하라. 저를 못 믿으면 상제님 또한 못 믿느니라.” 하시니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한테 내가 있다, 나를 찾아라. 내가 나를 못 찾으면 이 천지를 못 찾느니라.” 하시니라. (11:69:2~7)


내가 나를 못 찾으면 이 천지를 못 찾는다고 하신 태모님의 말씀을 통해 천지를 찾는 것이 진리 공부의 결론이지만 진리 공부의 시작점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찾을 때 만물 생명의 공통체이며 진리의 원형인 천지자연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죠.

진리를 공부하는 것은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바로 선 나를 ‘진아眞我’라고 하는데요. 진리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바로 서야 사물도 바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배우기 이전에, 종교 생활을 하기 이전에 나를 찾고 나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의 본래의 마음을 찾아야 밝아집니다.

저는 조석으로 천지부모님이신 상제님과 태모님 양위 전에 청수를 모시고 천지에 올리는 천지절인 사배심고를 하면서 늘 마음속으로 새기는 상제님의 성구가 있습니다.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고 하는 성구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저는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꼭 찾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참된 자신의 내면, 본래의 마음, 본심입니다. 그 본래의 마음을 어떻게 찾고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서 참된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 본래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 천지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하고 또한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본심이 가려져 있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외형의 모습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숨어있는 하나님의 마음, 그것을 각 종교에서는 본성 또는 불성이라고 하는데요. 그 마음을 찾아 드러내어 실천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즉, 천지의 마음을 찾아 그 마음을 얻어 실천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것이 참된 나를 찾는 길입니다.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는 공부, 이 공부가 가장 큰 인생 공부인 것입니다.

“태을주는 본심 닦는 주문이니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깊어지느니라. 태을주를 읽어야 신도(神道)가 나고 조화가 나느니라.” (11:282:2~3)


나의 본심을 찾아 나를 찾고 천지 하나님의 조화를 받아 내려 참된 인생의 삶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의 기운과 병마와 불운한 기운을 몰아내는 주문이 바로 태을주입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신도가 나고 조화가 난다고 하셨는데, 본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결국 신명이 나는 것입니다. 본심을 찾을수록 광명을 체험합니다. 나의 본심도 하나님의 마음인 광명입니다. 인간 생명의 본성도 밝음이고 신명의 본성도 밝음입니다. 그래서 신의 글자 옆에 밝을 명자를 붙입니다. 태을주 주문 수행을 통해 닫혀 있는 내 마음의 문을 열 때 밝음이 깨어납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 또한 오늘보다는 내일이,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밝아지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내가 밝아지면 주변이 밝아지고, 또한 주변에서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춘추 시대 말기 초나라의 군사가이자 정치가인 심제량沈諸梁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지방을 잘 다스리려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공자님, 백성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니 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드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날마다 백성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공자께서는 ‘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라는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근자열 원자래’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하죠.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딱 이 말입니다.

나를 감동시켜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내 삶에 감동을 받아야 상대방의 삶에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이죠. 내 삶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공부가 바로 태을주 주문을 읽는 수행 공부입니다. 내 인생에 광명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태을주 주문입니다.

상제님께서는 ‘태을주는 여의주’라고 정명해 주셨습니다. 인생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고 내 마음속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혀 주며, 무슨 일이든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여의주 주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는 “태을주는 우주의 산소다. 태을주는 앞 세상 전 인류의 제1의 생명이고, 내 생명은 제2의 생명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내 생명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고 산소를 호흡해야 살 수 있듯이 태을주를 숨 쉬듯 읽어야 선천에서 후천 가을 앞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동서 수행 문화에 참선도 있고 명상도 있고 요가도 있는데 왜 주문 수행을 해야 할까요?

핵심 단어는 뿌리입니다. 뿌리가 나의 생명입니다. 근원을 찾아 뿌리로 돌아갈 때 생명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인류 수행 문화의 뿌리는 바로 광명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주문 수행 문화입니다. 광명 체험은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직관의 세계이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체득하는 것입니다.

한민족 9천 년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동서 인류 문화의 원형과 정신문화의 시원을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지난 2012년 7월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오한기 지역의 집터에서 흙으로 구운 남신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요서 지역으로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배달국 시대 수행 문화의 전통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남신상의 모습을 보면, 땋아 올린 듯한 머리 모양에 다리는 반가부좌를 틀고 있고 손은 하단전에 모으고 입은 동그란 모양으로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주문을 읽고 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통맥을 보면 환국-배달-단군조선-북부여-고구려-대진국/후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모두 광명을 상징하는 국명을 사용함과 동시에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요. 천지의 마음이자 하나님의 마음인 광명을 뿌리로 하는 문화가 바로 한민족의 문화이며, 광명 문화를 체험하는 정수가 바로 수행 문화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의 목적은 또한 천지의 마음을 얻어 천지의 이치를 깨달아 천지의 판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천지의 대행자 노릇을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천자天子 사상이며, 태일太一 사상입니다. 지금까지 진리 공부의 성취는 나를 찾는 공부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말씀드렸고, 나를 찾는 공부로서 태을주 수행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태을주 주문 수행은 사물을 직관할 수 있는 공부이죠. 수행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치를 벗어난 공부는 반드시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하늘이 이치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2:20:3)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 즉 하늘과 땅의 생성 작용 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숙하며 휴식하는 생장염장 순환 과정의 이치에서 살아갑니다.

동양의 고전인 주역을 보면 음양론으로 균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남자와 여자, 운과 기가 상대적 관계를 통해 창조성을 갖습니다. 본심 닦는 공부인 태을주 수행과 이치 공부를 균형 있게 함으로써 우리는 진리를 바르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사는 지금 만물의 분열과 성장 시간대에서 대통일의 성숙 시간대로 들어서는 제3의 가을 대개벽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본심을 회복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천지의 환경과 천지의 때를 알지 못하는 철부지가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구도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 시원한 청량음료와도 같은 진리의 깨달음으로 늘 다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수행 공부와 더불어 진리의 깨달음 또한 나를 바르게 세울 수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선지후각先知後覺’이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치를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먼저 알아야 큰 깨달음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마음만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깨달음, 마음을 충전시킬 수 있는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인생의 축복입니다. 이치에 대한 깨달음과 본래의 마음을 찾는 공부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깨달음과 본심 회복은 상호 관계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흔히 가장 큰 병은 마음의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병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유될 수 없지만 깨달음의 진리가 들어가면 병이 낫습니다.

지금껏 틈새로 세상을 보고 배우고 발버둥 치는 삶을 사셨다면 이제는 태을주 수행과 이치 공부를 통해 더 큰 진리의 세상으로 나오시길 소망합니다. 바늘구멍의 틈새를 깨고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도전道典』은 천지이치로써 나를 바로 세우고 천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인생의 시작점과 종착점을 찾는 진리 교과서입니다.

오늘은 본심 찾는 공부, 태을주 수행을 주제로 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더불어 도전을 통해 이치 공부를 함께 하자는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상제님은 이치 공부를 한 글자로 통通이라 하셨고 수행 공부를 두 글자로 개안開眼이라 하셨습니다. 통 공부와 개안 공부의 목적은 세상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만 잘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준비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오늘 이 시간을 마칠까 합니다.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나니
옛적 일(上古之事)을 더듬어 보면 다가올 일(來到之事)을 알고
다가올 일을 알면 나의 일을 아느니라.
우주의 순환 이치를 알아야 이 길을 찾을 수 있느니라.
일왈(一曰) 통(通)이요, 이왈(二曰) 개안(開眼)이요, 삼왈(三曰) 포교(布敎)니라. (11:122)


우주의 순환 이치를 알아야 상제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치 공부와 태을주 수행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을천지의 열매가 되시길 소원하면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