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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상종도사님 말씀]

    후천 새 역사를 개창하는 진리

    道紀 138년 5월 1일, 태모님 성탄치성,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하늘땅 사이에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자연섭리, 자연이법에 의해서 생멸生滅, 생겨났다 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은 천지의 질서, 대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때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다. 여름 세상이 지나가고 가을·겨울 세상을 맞이하는, 묶어서 말해 천지의 틀이 바꿔지는 가을 개벽기다. 그래서 문화도 봄·여름 선천先天 문화가 가을·겨울의 후천後天 문화로 바꿔지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라 하는 것은 우주변화 원리, 천지 자연 질서에 의해서 조성이 되는 것이지, 사람이 천지이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우주 일 년 과정에서 이때는 천지의 농사를 결실하기 위해서 우주의 주재자, 통치자가 반드시 오시게 돼 있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 땅에 직접 오시게 된 것이다. 그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기존 성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미륵이 출세를 한다’고 한 것이다. 기존 성자들이 말한 아버지 하나님, 미륵이 바로 그 매듭을 짓는 분, 그 통치자, 옥황상제님이시다.

    우리 증산도 신도는 새 세상을 준비하는,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진리꾼이라 할까, 일꾼이라 할까. 지구상 어디에도 없고, 다만 대한민국 권내에 증산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 상제님 일은 후천 오만 년 새 세상, 새 역사를 개창하는 진리이고, 증산도는 우주년, 12만9천6백 년, 생장염장하는 우주년 한 해 역사를 집행하는 자리다.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그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전부 들어 있다.

    사람은 공분심公憤心과 의분심義奮心이 충만해야 한다. 사람은 바르게 살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뜻 있는 신앙을 하라. 어떻게 편하고서 일이 되기를 바라는가! 노력하고 정신을 차려야 다만 알갱이를 여물지,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알갱이가 여물어지지 않는다. 우리 성도들은 ‘나는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내가 생활하는 것은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그날그날 살아나간다, 나는 공도에 입각해서 상제님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심법과 자세로 신앙을 해야 한다.

    상제님 신앙은 유형도, 무형도 다 바쳐서 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다만 세상이 처넘어가는 것 하나밖에 없다. 세상만사는 생연후사生然後事다. 살고 난 다음 이야기다. 바르게 살고, 노력하는 것이 멋진 삶이다. 멋진 세상을 살아서 멋진 열매를 맺으란 말이다. 천지에서 그 공덕, 그 대가를 반드시 준다. 천지에서 몇 천 배, 몇 만 배 성과급을 준다. ‘너는 멋지게 살았다. 거짓 없는 세상을 살았다’ 하고 그런 대가가 온다. 누구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신명이 보고 있고 진리가 보고 있다. 진리가 진리로서 그 대가를 계산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가? 진리가 알고 신명이 다 안다. 그렇게 마음에 부담이 안 되는 생을 영위하라. 사람은 어쨌든 발라야 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그런 것을 우리 신도들에게 끝으로 부탁을 한다. ■


    천지의 틀이 바뀌는 하추교역기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다시 한 번 정리해 주거니와, 하늘땅 사이에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자연섭리, 자연이법에 의해서 생멸生滅, 생겨났다 가는 것이다. 절대로 그 이상 더도 덜도 없다.

    봄여름 세상, 승평昇平시대를 살다 갈 때는 그 세상 역사과정에서 주어진 대로 허우적거리다가 가면 그것으로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은 천지의 질서, 대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때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다. 여름 세상이 지나가고 가을·겨울 세상을 맞이하는, 묶어서 말해 천지의 틀이 바꿔지는 가을 개벽기다. 그래서 문화도 봄·여름 선천先天 문화가 가을·겨울의 후천後天 문화로 바꿔지는 것이다.

    사람 두겁을 쓰고 난 사람으로서는 천지의 질서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누구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무의미하게 대세와 더불어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만유생명이 살아가는 천지의 순환 틀


    인간은 창조의 경쟁을 하고, 또 만유의 생명체 중에 주체가 된다. 과학이 발전하면 과학만능이 돼서 대자연 천지도 정복할 것 같이 생각한다. 사람들의 사고, 두뇌가 그렇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으로써 과학 아니라 과학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자연 질서를 정복할 수가 없다. 자연을 정복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늘 이야기하고, 우리 증산도 신도들도 늘 말하지만,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하는, 천지가 순환하는 불역지리不易之理,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틀이 있다. 그것이 대자연의 섭리, 생장염장生長斂藏으로 둥글어 가는 틀이다. 천지가 순환하는 우주질서, 변화원리가 그렇게 돼 있다. 그것을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다시 말하거니와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천지가 둥글어 가는 그 질서에 의해서 생멸할 뿐이다. 그 이상 더도 덜도 없다. 이것이 천지이법의 전부다.

    상극이 사배한 선천 세상


    인간의 역사라 하는 것은 우주변화 원리, 천지 자연 질서에 의해서 조성이 되는 것이지, 사람이 천지이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착각이다. 천지이법에 의해서 인류 역사가 조성되고, 인류 역사에 의해서 좋은 일도, 그른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좋은 치자治者가 맡아서 그 세상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조금 편하게 살 수 있고, 못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안 해도 될 것을 필요 이상 고생하다가 가는 게고 말이다.

    그런데 크게 묶어서 말하면 지나간 봄여름 세상은 상극相克이 사배司配해서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게 돼 있다. 천지의 이법이 그랬다. 천지이법이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항하고, 투쟁을 해야 된다. 또 그런 심리를 타고났다. 천부지성天賦之性이 그렇게 돼 있다. 자연섭리에 의해서 역사가 그렇게 조성됐기 때문에 그 세상에서는 사람 두겁을 쓰고 나온 사람 치고서 원한을 맺지 않고 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때, 그 시의時宜에 맞는 성자들이 와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순리대로 살아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우주이법이 상극이 사배한지라, 사람이 조금 가르치고 변화시킨다고 될 리가 없다. 그 가운데서 철천지한을 맺고 가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연출했다.

    상제님이 그 비극 속에서 천고의 한을 남긴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을 전부 해원시켜서 좋은 세상이 열리게 해 놓으셨다. 장차 열리는 가을·겨울 세상은 남녀가 평등한 좋은 세상이다.

    또 그 세상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세상이다. 상제님도 “이때는 원시반본하는 때다.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는다.”(道典 2:26)라고 하셨다. 춘하, 봄여름에 성장을 잘 못 한 것은 원시반본이 안 된다.

    알기 쉽게 말해서 봄철, 청명 곡우 입하, 그 시절이 되면 파종을 한다. 각색 만유 생명체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면 천지에서 싹을 틔워서, 소서 대서 입추를 거쳐서 키워준다. 거기에 인사人事를 가해서 사람이 매고 가꾸고, 거름도 주고 기른다. 그러면 입추부터 가을 금金기운이 발동을 한다. 입추 처서 백로 추분, 금기운으로 여물어지고, 결실을 한다. 본래의 제 모습을 찾는 것이다. 다음에 다시 또 저를 찾아야 되니까 원시반본을 하는 것이다.

    천지의 목적을 매듭지으러 오신 상제님


    우주변화 법칙으로 해서 천지가 한 바퀴 둥글어 가는데 가장 핵심, 중요한 때가 여름 가을이 바뀌는, 만유의 생명체가 매듭을 짓는 때다. 이 열매, 결실, 알갱이, 그것을 위해서 일 년이라 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천지에서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하는 그때가 일 년의 핵이다. 지구년도 그렇고, 우주년도 그렇고 말이다.

    우주 일 년 과정에서 이때는 천지의 농사를 결실하기 위해서 우주의 주재자, 통치자가 반드시 오시게 돼 있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 땅에 직접 오시게 된 것이다. 그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기존 성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미륵이 출세를 한다’고 한 것이다. 기존 성자들이 말한 아버지 하나님, 미륵이 바로 그 매듭을 짓는 분, 그 통치자, 옥황상제님이시다.

    그렇게 결론이 맺어진다는 것을 성자들이 그런 대로 이야기했다. 그렇건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선천의 성자들을 몇 천 년씩 신앙하는 사람도 모른다. 그것을 가르쳐 주려면 자연섭리, 우주변화 법칙부터 수십 시간, 수백 시간을 이야기해야 된다.

    후천 오만 년 새 세상을 개창하는 진리


    오늘은 억조창생과 천지신명의 어머니, 태모太母님 성탄 치성일이다. 후천 오만 년 동안 경축해 마지않을 그런 절대자 어머니의 성탄 치성일이다. 어머니 태모님, 이 태太는 새 세상을 창출하는 태 자다.

    우리 증산도 신도는 새 세상을 준비하는,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진리꾼이라 할까, 일꾼이라 할까. 지구상 어디에도 없고, 다만 대한민국 권내에 증산도가 있을 뿐이다.

    인사 문제를 이끌어 가는 그 주체가 지금 삼대三代를 다 바쳐서 일하고 있다. 여기 종도사 나이가 아직 90은 안 됐지만 이제 거반 90이 차려고 한다. 헌데 이 종도사는 말소리를 들어도 여태 젊은이들 못지않다. 삼대를 다 바친 그 수확, 그 결과가 여기 있는 일꾼들이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떻게 되느냐?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상제님 일은 후천 오만 년 새 세상, 새 역사를 개창하는 진리다. 세상 사람들이 상제님 진리를 다 알고서 달려 붙으면 누가 그 길을 찾기 어렵다고 하겠는가. 상제님 진리는 인연이 없으면 만나기가 어려운, 만날 수가 없는 그런 진리다. 상제님께서도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게 되느니라.”(道典 2:78)라고 하셨다.

    두문동 72현


    내가 어저께 어디 일이 있어서 다녀왔는데, 고려국이 망하고 이씨 조선이 새로 들어설 때 고려 충신 72명이 산골로 숨어들어서 세상하고 벽을 치고 자기네들끼리만 살았다. 그 동네를 막을 두杜 자, 문 문門 자, 두문동杜門洞이라고 했다. 문을 막은 동네다, 세상과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휴전선에 가로막혀서 자유스럽게 볼 수도 없는 곳이다. 충신들이 자기네가 모시던 그 임을 위해서 그렇게 충절을 다 바쳤다.

    그런데 역사상 천 년을 간 나라가 별로 없다. 신라도 박씨 석씨 김씨, 박석김 삼성三姓이 체번替番해서 다스렸지만 천 년을 못 채웠고, 백제도, 고구려도, 고려도, 한양 조선도 천 년을 못 갔다. 그저 4백 년, 5백 년, 9백 년, 거기 어디서 다 왔다 갔다 하고 말았다. 그렇게 잠깐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도 두문동 충신 같은 이들이 나와서 다 바쳤다. 우리 증산도는 앞 세상이 매듭지어질 때까지, 끝막을 때까지 오만 년이 남았다. 이 대우주 천체권이 동결돼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할 때까지 오만 년이 남았다. 자연섭리, 우주변화 원리라는 것은 절대 거짓이 없다.

    우주 일 년의 역사를 집행하는 진리


    증산도는 우주년, 12만 9천6백 년, 생장염장하는 우주년 한 해 역사를 집행하는 자리다. 상제님 진리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 있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선천 기존 문화권을 순리대로, 합리적으로, 자연섭리와 합치되는 방법으로 정리를 하셨다. 자연섭리에 합치되는 그런 방법으로 해원解冤 상생相生을 해서 새 세상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 새 세상은 상생의 세상, 평화의 세상,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안락과 평화를 구가謳歌하는 현실선경 세상이다. 앉아서나 서서나, 자면서 꿈을 꾸면서나 늘 그렇게 살기가 좋다. 그저 좋은 것밖에 없다. 백 프로 다 좋은 것이다. 그래서 현실선경이다. 신인神人이 합일해서 무엇이고 ‘사반공백배事半功百倍’, 일 하나 하면 백의 공을 거둔다. 그런 조화선경이다. 예를 들어 지상에는 어지간하면 다 꽃동산이 되고, 비금주수飛禽走獸도 다 좋아서 춤추는 그런 지상선경이다.

    상제님 진리는 어떤 가치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조금 전에 살펴봤듯이 몇 백 년 가는 그런 나라에서도 천지를 뚫어 꿸 수 있는 충혼이 나오는데 상제님 진리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은가.

    모사는 내가 하리니 성사는 너희들이 하라


    사실이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그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전부 들어 있다. 그 외에 더 있을 수가 없다. 상제님 진리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있다.

    과거로는 우선 원신과 역신을 다 정리해야 한다. 선천은 천지 섭리가 상극이 사배하기 때문에 원신과 역신의 역사를 창출했다. 그 시대 상황이 그러했고 역사가 그렇게 조성됐다. 그래서 원신, 역신을 다 해원시키지 않고서는 새 세상을 조성, 창출할 수가 없다.

    그 일을 하러 오신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요 미륵님이요 상제님이시다. 증산 상제님이 그 험한 일을 하러 오셨다. 선천 원한의 역사를 다 정리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주재자, 상제님, 바로 그 통치자가 오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신명이 말을 들어먹겠는가. 권위가 서지 않아서도 못 하는 것이다. 선천 역사에서 한漢 무제武帝 같은 사람은 태양이 넘어가니까 싸우다 말고 칼끝으로 냅다 태양을 잡아 꿰서 몇 발씩 올려놓고서 싸움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선천의 역사를 조성했다.

    그 역사를 이화理化해서, 두드려 뭉쳐 반죽을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되는데, 천상의 절대자 하나님, 옥황상제님이 강증산이라는 육신의 탈을 쓰고 오셔서 그 험한 일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인간 강증산, 그분의 역사를 알 것 아닌가. 여기는 그 인간 강증산 상제님을 모시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어떻게 편안하게 안일을 도모하려고 하는가. 일 년 농사도 어떻게 짓는가? 몇몇 달 그렇게 어렵게 농사를 지어서 겨울에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 절대자가 오셔서 바위 밑에서 어렵게 잠을 주무셨다. 초빈터에서 송장을 끌어안고 이엉 덮고도 주무셨다. 때때로 굶으시고, 열매도 따 자셨다. 그러면서 내가 와서 모사謀事는 했으니 인사화人事化 하는 것은 너희들이 하라고 하셨다. 모사謀事는 재천在天이요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성사는 너희들이 맡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편하기를 바라는가? 편하고서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가 말이다.

    하늘에서 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 좋은 찬스, 하늘에서 주는 기회, 12만 9천6백 년 만에 오직 한 번 있는 이 기회를, 우리 성도들이 잘 살려서 복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성도들에게 차례가 안 간다. 세상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아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 바쳐서 해야 한다.

    이 일은 한 달, 두 달, 일 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체는 개척단체다. 불교나 기독교처럼 3천 년, 2천 년 된 단체가 아니라 개척단체다. 상생방송이 송출된다 하더라도 방송이 입도까지 시켜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상생방송은 포교하기 쉽게 세상에 공인을 시켜 준다. 나팔수 노릇을 해 준다. ‘자, 세상은 이렇게 둥글어 가는 것이다’ 하고 진리의 나팔 노릇을 하는 것이다.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가. 노력을 않고서 수확이라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천지이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 일꾼들은 국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봉사를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신도들 고생도 많이 하고 했지만, 잘 되려면 심법心法을 바르게 가져야 된다.

    왜 두문동 72인을 이야기하는지 아는가? 고려가 망할 때 두문동 72인들, 그 충혼들을 생각해 보라.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그 사람들 의식은 ‘때가 허락하면 고려국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우리 상제님 일꾼들은 가치관으로 해서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치관이라고 하면 다 알 것 아닌가? 다음에 생겨나는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 그 절대자가 이런 공을 쌓아서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과연 참, 인간 하나님이시다. 고맙습니다. 무엇으로써도 다 보답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봉사를 하라. 사람 하나 생겨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어머니가 뱃속에 열 달을 넣고 길러서 산통을 겪고 낳으면, 똥도 수만 번, 오줌도 수만 번 갈아준다. ‘생자生子가 비난非難이라 양자난養子難이요, 양자養子가 비난非難이라 교자난敎子難이라.’ 애를 낳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키우기가 어렵고, 또 기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상제님의 세상


    천지가 둥둥 떠서 세상이 넘어가는데, 이러건 저러건 세상은 상제님의 세상이다. 이 세상은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결정하신 대로만 둥글어 간다. 그러니 상제님의 세상이지 그 누구 것도 아니다.

    나는 진리의 사도司徒로서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이 현실, 지구라 하는 것은 상제님 천지공사를 집행하는 무대다. 이 지구가 활무대이고,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65억 70억 인구는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배우들이다.

    그래서 현재도 육자회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본래는 오선위기五仙圍碁,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둔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조선, 이렇게 다섯 나라다. 우리 조선이 하나라야 오선위기가 되는데 한 나라가 지금 남북으로 갈려 있다. 나라는 하나인데 남쪽, 북쪽, 양쪽에서 대표로 나와야 되니까 육자회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선위기다. 백 년 전 천지공사에서 상제님이 이미 ‘이렇게만 둥글어 가거라’ 하고 틀을 정해 놓으셨다.

    상제님 말씀이 “이 세상 모든 것을 풀어놓아 자유행동에 맡겨 난도亂道를 지은 연후에 진법眞法을 낸다.”(道典 4:32)라고 하셨다. 이제 진법이 나오려고 그러는 것이다. 진법 속에서 바른 사람이 돼서 진법을 집행한다. 그러니 일을 하지 않고 그저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정의를 바탕으로 해서 사는 사람이지 허튼 걸음을 걷는 사람이 아니다. 허튼 생각을 해 본 사실도 없다. 상제님 사업 이외에 다른 꿈을 꿔 본 사실도 없다.

    상제님 진리는 천지이법이요, 자연섭리요, 상제님은 진짜 참 하나님이시다. 상제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둥글어 가게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강증산 상제님의 세상이다.

    천지의 일을 집행하는 증산도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의사 전달하는 문자 지식보다도 더 소중한 지식이 있다. 이 현실 생활, 경쟁장에서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시비를 따지고 웃고 찡그리고 하면서, 사람을 상대해서 얻는 지식이 의사 전달하는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열 사람 상대한 사람 다르고, 백 사람 상대한 사람 다르고, 만 명 상대한 사람이 다르다.

    상제님 진리를 무기로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라. 제주도에 가면 붓을 걸머지고서 포교하려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고 있다. 진짜로 복을 받으려면 자기 인격을 도야해야 한다. 자신을 세련시키기 위해서라도 강증산 상제님 진리를 무기로 해서 다니며 포교를 해 보라. 몇 해 하고서 보면, 승상접하承上接下에 사람을 교제해서, 외교에 세련되어서 참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덮어놓고 앉아서 우두커니 있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 사업은 한마디로 묶어서 말하면 천지의 일이다. 증산도는 천지의 일을 집행하는 곳이다. 여기 증산도는 자연섭리를 집행하는 곳이다. 증산도는 학술적인 무엇을 공부하는 데가 아니다. 증산도 교주가 어쩌고 사기해 먹고 하는 데가 아니다. 나는 개인 영달을 하는, 그런 사심을 0.1%도 가진 사실이 없다. 그런 데는 전혀 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공분심公憤心과 의분심義奮心이 충만해야 한다. 누가 도통을 했으면 저 혼자 좋다가 가는 것이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공헌한 게 뭐냐 말이다. 사람은 저 자신이 알면 아는 것만큼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제 비위 맞추기 위해서 생겨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저 잘 나면 잘 났지, 다른 사람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이다.

    사람은 바르게 살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인장지덕人長之德이요 목장지폐木長之弊라.’ 사람은 큰 사람, 윗사람의 덕을 입고, 초목은 큰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가 가려져 죽는다는 소리다. 내가 잘났으면 다른 사람도 좀 좋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오죽 많은가. 개인 가정으로 보나, 사회 국가, 여러 가지로 보더라도 지금 세상이 넘어간다. 요새 조류독감이니 뭐니 하는 것이 장차 우리 인간에게 닥칠 병란의 전주곡前奏曲이다. 누구도 살고 싶고, 복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노력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이렇게 해서 뜻 있는 신앙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내가 솔직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편하고서 일이 되기를 바라는가! 노력 않고서 공짜로 되는 일이 없다. 앞 세상은 더군다나 그런 게 없다. 실속이 없는 것은 빈 쭉정이가 돼 버리고 만다. 정신을 차려야 다만 알갱이를 여물지,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알갱이가 여물어지지 않는다. 천지 이치를 생각해 보라. 어디 그런 게 있나 말이다.

    증산도 전 신도는 자기가 스스로 일을 해야 한다. 남의 힘으로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부자지간도 밥을 각각 먹어야 자기 배가 부르고, 죽음도 각각 죽고 말이다. 몸뚱이가 다 각각이다. 정책적으로 속임수를 쓰고 그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지금은 다 컴퓨터로 아는 문화가 돼서 거짓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어떻게 거짓이 통하나.

    상제님 진리가 그렇다. 이런 문화도 다 상제님이 공사로 봐 놓으신 것이다. 상제님 천지공사 내용을 봐라. ‘이것을 없애는 것이 좋으냐, 이것을 두고서 그냥 내려가는 것이 좋으냐?’ 이렇게 성도들에게 다 물어서 공의公議를 들어 처결하셨다. 지금 이 세상이 상제님 공사 내용 그대로 둥글어 간다.

    상제님 진리는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대자연 섭리다. 그 대자연 섭리 속에서 만유의 생명체가 생멸하는 것이다. 생겨나고 멸하고, 생겨나고 멸하고, 생멸을 한다. 상제님의 진리는 억만 분지 일 프로도 거짓이 없는 진리다. 나는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집행하고 설파할 뿐이다. 내가 하는 말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증산도 종도사에게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 증산도 종도사를 거짓이나 정책으로써 속인다든지, 어떻게 속여 넘기려 해도 절대로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당하지도 않고 거짓과 타협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진실을 가지고서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나는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내가 생활하는 것은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그날그날 살아나간다, 나는 공도에 입각해서 상제님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심법과 자세로 신앙을 해야 한다.

    상제님 신앙은 유형도, 무형도 다 바쳐서 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다만 세상이 처넘어가는 것 하나밖에 없다. 세상만사는 생연후사生然後事다. 살고 난 다음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밥도 먹지 말고 직장도 내던지라는 것이 아니다. 허튼 생각 가지지 말고, 여덟 시간, 일곱 시간 잘 것을 조금 덜 자고 그 시간에 더 노력하면 된다. 청수 모시고 주문 읽는 것은 신도의 기본이다.

    진실한 삶을 살라


    상제님 사업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은 절대로 남을 속이면 못 쓴다. 정당하게 자기가 노력하고 진실하게 세상을 살면 밥 굶지는 않는다. 육신을 가진 사람은 노력하면 저 먹고 살 벌이는 다 한다. 내가 편하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남 속여서 뺏어 먹으려는 사람은 정신이 비뚤어진 사람이다. 남에게 한 돈어치를 속이면 두 돈 어치를 당하는 것이다. ‘앙화殃禍는 백 년이라.’ 못된 짓 하고서 자기 대에 죗값을 못 물면 제 자손 대에라도 받는다. 남에게 좋은 일하면 복 종자를 심는 것이다. 그 자손이 찾아먹는다.

    상제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신앙을 하라. 그렇게 해서 바르게 살고 복 받기를 기원한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절대로 한마디라도 거짓말하려 하지 말고, 뒷등치려 하지 말고 말이다.

    바르게 살고, 노력하는 것이 멋진 삶이다. 멋진 세상을 살아서 멋진 열매를 맺으란 말이다. 천지에서 그 공덕, 그 대가를 반드시 준다. 천지에서 몇 천 배, 몇 만 배 성과급을 준다. ‘너는 멋지게 살았다. 거짓 없는 세상을 살았다’ 하고 그런 대가가 온다.

    누구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신명이 보고 있고 진리가 보고 있다. 진리가 진리로서 그 대가를 계산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가? 진리가 알고 신명이 다 안다.

    또 모르면 어떤가? 바르게 살면 됐지. 떳떳하지 않은가? 바르게 살면 단잠을 잔다. 하늘에서 ‘우르릉 떵!’ 해서 벼락을 쳐도 겁날 것이 없다. 마음에 걸리는 일을 할 것 같으면 ‘어이쿠 내가 잘못했어’ 하고 깜짝 놀란다. 바르게 산 사람은 그런 것이 없다. 하늘에서 벼락을 쳐도 ‘어아於我에 하관何關이리오’, 내가 잘못 산 사실이 없는데 무엇을 겁내나 말이다.

    그렇게 마음에 부담이 안 되는 생을 영위하라. 사람은 어쨌든 발라야 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그런 것을 우리 신도들에게 끝으로 부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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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6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